소설리스트

12시간 뒤-1화 (1/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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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연

    “이번 역은 역삼 역삼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나는 번개 같이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고,

    “삐빅”

    교통카드를 대고, 다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헉 헉 헉”

    평소 운동 따윈 전혀 하지 않는 저질 체력이라 금세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다. 하지만 발을 멈출 수는 없다. 달리던 와중 나는 급하게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시계는 8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늦을지 말지는 내 발에 달렸다. 나는 쉬지 않고 발을 놀렸다.

    회사는 지하철 출구 바로 옆. 출구를 나서면 횡단보도 하나.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된다. 나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번개같이 달려 올라갔다.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이제 지각 여부는 횡단보도의 신호등에 달렸다. 지하철역을 나온 나는 바로 횡단보도의 신호등을 바라보았다. 신호등은 초록색 점멸, 그리고 남은 시간은.

    “아...”

    단 3초만을 남겨두고 있다. 내가 전속으로 달리고 있는 우사인 볼트가 아니라면 제 시간에 건너기는 이미 글렀다. 나는 휴대폰 시계를 보았다. 8시 52분. 남은 시간은 8분. 신호대기 남은 걸 생각하면, 이미 게임은 끝났다. 나는 지각이다. 귓가에 상사 허 과장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야이 게으른 자식아 그 따위 밖에 못하냐?’

    나는 그 자리에 짝다리를 진 채로 서 머리를 떨어뜨리며 이마를 짚었다.

    “아 나...”

    그런데, 그 때 내 구두 바로 앞, 노랗고 빨간 작은 카드가 하나 눈에 띄었다. 보통 ‘미녀 24시간 항시대기’나 ‘100% 즉시 대출’과 같은 광고가 쓰여 있는 찌라시. 평소 같았으면 나는 그저 그걸 보지도 않고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요상하게 거기 쓰인 문구가 나를 사로잡는다.

    [이걸 들어서 뒷면을 보세요.]

    [오늘은 지각해도 혼나지 않습니다.]

    ‘뭐야?’

    나는 그걸 들어보았다. 생긴 건 평범한 카드형 찌라시다. 다만 붉은 바탕에 노란색 글씨로 ‘이걸 들어서 뒷면을 보세요. 오늘은 지각해도 혼나지 않습니다.’라고 쓰여 있을 뿐이다. 나는 그걸 든 채로 피식 웃었다.

    ‘누가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기발한 마켓팅이로군. 나처럼 지각한 사람들을 노린 건가.’

    나는 그 카드를 돌려 뒷면을 보았다. 거기에는

    ‘919-31413-11721로 주로 쓰는 메일 주소를 보내주세요.’

    라고 쓰여 있다.

    ‘웃기네 이거...’

    내용이라고는 우스운 전화번호들 뿐이다. 010으로 시작을 하는 것도 아니고, 뒤가 네 자리 수로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일종의 장난인가? 아니면 사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곁에 있던 수많은 인파가 잰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파란불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횡단보도를 뛰기 시작했다. 지각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늦었다. 단지 1분이라도 덜 늦기 위해 뛰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숨이 찬 모습이라도 보여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헉 헉”

    저질 체력이 다시 한 참을 뛰었다. 나는 다시 한 번 회사 문 앞에 서서 시계를 보았다.

    [9시 2분]

    2분 지각에, 거친 숨소리. 이정도면 조금, 아주 조금 감면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빠르게 허 과장부터 찾았다. 나를 매일 갈구는 악마 같은 상사. 그런데, 그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마침 입사 동기 김 사원이 앞을 지나간다.

    “여 한상훈. 늦었네?”

    나는 그에게 물었다.

    “허 과장님은?”

    “아... 어젯밤에 입원하셨대. 맹장 때문에.”

    나는 깜짝 놀랐다.

    “뭐어?”

    김 사원은 나를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허 과장님 출근 했으면 왕창 깨졌을 텐데 운 좋다 너?”

    김 사원은 한 마디를 남기고 자기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자연스레 주머니에 손을 가져가보았다. 카드형 찌라시. 나는 그걸 보며 거기 쓰여 있는 문구를 중얼거렸다.

    “오늘은 지각해도 혼나지 않습니다...”

    ‘우연?’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 찌라시를 뒤로 돌려보았다.

    ‘919-31413-11721’

    여전히 그 웃기는 전화번호가 쓰여 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웃고 넘어갔을 텐데, 묘하게 그 번호가 끌린다. 나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휴대폰을 들었다.

    ‘업무용 이메일, 자주 쓰는 이메일 주소 말고... 잘 쓰지 않는 걸로 하나 보내 볼까...’

    나는 학창시절에 만들어두었던 옛날 이메일 주소를 떠올리고는

    ‘[email protected]’

    그걸 써서 문자를 보냈다.

    ‘부르르’

    그런데, 문자를 보내자마자 바로 답장이 왔다.

    [감사합니다. 무료구독 시작되었습니다.]

    ‘무료구독? 무슨 야한 사진이라도 보내주는 건가?’

    어쩌면 그 찌라시는 성인 사이트 홍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렸을 적에 부모님 눈을 피해서 접속했던 성인 사이트들을 떠올렸다.

    ‘구시대적이로군... 요새 누가 돈 내고 야한사진 같은 걸 본다고... 하긴 뭐 이런 거에 낚일 사람이면 결제를 할지도...’

    나는 인터넷창을 켜서 그 잘 쓰지 않고 버려두었던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내버려진 메일함에는 ‘999개’의 메일이 와 있었다.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메일함에는

    [김미영 팀장님입니다. 고객님께서는 최대 4천만원까지 대출 가능합니다.]

    [화제의 자동차 보험. 지금 확인해보세요.]

    익숙한 스팸메일들이 가득 차 있다.

    ‘이것들은 아닐테고...’

    그런데 가장 위에 눈에 띄는 제목의 메일이 있다. 제목에

    ‘12시간 뒤’

    라고 쓰여 있는 단순한 메일.

    ‘12시간 뒤? 야한 사진이 아닌건가...?’

    나는 그걸 클릭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눈에 띈다. ‘보낸 사람’이 완전히 비어 있었던 것이다.

    ‘뭐야 이게?’

    보낸 사람이 없다. 이런 메일은 난생 처음 받아 본다. 그걸 보니 예전에 신문에서 봤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해커들이 보낸 메일 주의’

    ‘이메일을 통한 바이러스 전파’

    ‘클릭 한 순간 데이터 해킹 시작 소실’

    최근 ‘사회’란에서 그런 기사를 본 것만 같다.

    ‘어쩌지?’

    나는 고민하다 잠시 오른쪽 아래, 윈도우 창을 확인해보았다. 백신의 실시간 감시는 켜져 있다.

    ‘설마...뭐 별일 있겠어?’

    결심을 한 나는 좌클릭을 해 그걸 열어보았다. 곧 모니터에는 메일의 내용이 펼쳐졌다. 그걸 본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뭐야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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