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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204화 (에필로그) (204/204)
  • 204화. 에필로그

    “사…. 살려줘….”

    “왜…. 현민아 무슨 일이야? 너 왜 그래?”

    “여…. 여기…. 악마가 있어…. 살려줘.”

    미국으로 돈 벌러 떠난 친구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은 랩터스의 구단주가 영문을 몰라 당황해한다.

    “왜 그러는데? 또 양다리 걸치다가 걸렸어?”

    “차라리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

    전에 한 번에 여러 여자를 만나다 머리에 바람구멍이 날뻔했던 친구가 그것보다 심각한 일이라고 하니 구단주가 진지해진다.

    “그럼 왜 그러는데”

    “보스…. 우리 보스가….”

    “보스? 루다?”

    “어… 루다가…. 악마였어.”

    루다를 어릴 때부터 봐와서 여전히 그저 귀여운 조카로만 보는 구단주가 별거 아니라는 듯 친구를 달랜다.

    “루다가 장남이 심해서 그래. 속이 나쁜 애는 아니잖아. 좀 봐줘”

    “나쁜 애가 아니긴 속에 악마가 들어있어. 살려줘….”

    예쁘기만 한 조카를 나쁘게만 보는 친구에게 살짝 빈정이 상한 구단주가 친구에게 톡 쏜다.

    “왜 그러는데. 루다가 뭐라고 했길래.”

    멀리 이국땅에서부터 들려오는 한숨 소리. 긴 한숨이 흐르고 친구가 화가 난 이유가 들려온다.

    “보스가 일을 너무 벌여.”

    “그건 너도 그렇잖아. 너도 한 번에 4명까지 찝쩍대다 칼 맞을뻔했잖아.”

    “야! 그런 거랑 다르다고!”

    뭐가 다른지 이해가 안 되지만 꾹 참고 들어주는 구단주.

    “나도 일을 많이 벌이지만 나는 내가 해결하잖아.”

    “그렇지 네가 벌인 일이니까 네가 해결해야지.”

    “그런데 얘는 아니야!”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에게 점점 지루함을 느끼지만 꾹 참고 더 들어준다.

    “뭐가 아닌데?”

    “얘는 일을 벌이고 다 나한테 떠넘겨. 김소전 세부 계약 내용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더니 나한테 다시 조정해서 가져오라고 시키고 김호영 것도 얘기 다 된 거 옵션 조정하더니 다시 가져오라고 하고 기존 계약도 재협상 범위 검토하라고 하고….”

    “응? 그게 왜?”

    도무지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되는 대한 그룹의 3세가 진짜 이해가 안 돼서 묻기 시작한다.

    “루다가 너 보스라며?”

    “그렇지.”

    “그럼 검토하고 시켜야지.”

    “아니. 내가 그래도 공동 대표고….”

    “루다가 실소유자 아니야? 너희 지분비율도 루다가 많잖아. 세계그룹까지 하면 루다꺼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내가 만든 회사에….”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재벌 3세.

    “그럼 해야지. 위에서 결정해서 일하라고 시키면 하는 게 맞지. 뭐가 잘못된 건데?”

    “야! 그게 말이야?”

    “어? 왜? 뭐가 잘못됐지?”

    전화 반대쪽에서 긴 한숨이 또 나온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야구 관련된 건 내가 해준다고 치고.”

    “치는 게 아니라 네가 해야지.”

    “야 이 XXXX. 그게 말이야! 그래도 마음 넓은 내가 야구 쪽은 어떻게든 해준다고 치고.”

    “치는 게 아니라 당연한 거지만 그렇다고 치고.”

    잠시 전화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어쨌든! 야구는 그렇고 루다가 하는 사업관리도 왜 내가 해야 하는 거냐? 난 선수 에이전트인데 언젠가부터 내가 회계도 보고 있다. 이게 말이 되냐?”

    “오~ 우리 현민이 능력 있네. 루다가 아무나 믿지 않는데 회계를 맡겼다는 건 네가 핵심 인사라는 뜻인데~ 오~ 내 친구 자랑스럽다.”

    “XXX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내가 이일 저일 다 떠맡고 있냐고.”

    일 잘하는 사람에게 일을 더 주고 많이 부려 먹는 게 왜 컴플레인이 걸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재벌 3세.

    “루다가 돈 안 주던?”

    “돈? 우리 회사가 연봉은 세지.”

    “넌 그 돈을 왜 받는다고 생각하냐?”

    “그거야 내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아서.”

    “그렇지 네가 능력이 있지.”

    “그렇지 내가 능력이 좋지.”

    “그거야.”

    “뭐야 XXX야!”

    이렇게 설명해줘도 못 알아듣는 친구에게 사람 부리는 걸 조기교육 받은 모태 갑이 눈높이에 맞춘 설명이 들어간다.

    “김소전이 왜 연봉이 많냐?”

    “잘하니까.”

    “그렇지 잘하지. 그런데 타격만 좋았으면 저 정도 금액일까?”

    “아니지, 수비가 좋으니까 그것도 연봉에 반영이 되지.”

    “그렇지 그런데 김소전이 1루수만 잘했으면 그 연봉 받았을까?”

    “아니지. 김소전은 포지션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유격수를 하니까 그게 반영이 되는 거지.”

    “그렇지 그런데 그게 다야?”

    “아니지. 김소전은 급할 때 외야도 나가니까 그것도 반영이 되지.”

    “그렇지. 그게 네가 연봉을 많이 받는 이유야.”

    “뭐? 갑자기 뭔 헛소리야 이 미친 XX야.”

    “네가 김소전처럼 다재다능하니까 연봉을 많이 받고 필요할 때 여기저기 땜빵으로 일을 시키는 거라고. 내 친구. 대견하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지 전화기 반대쪽에 침묵이 흐른다. 그러다.

    “이 XXX야. 어디서 약을 팔아! 이래서 재벌 놈들이랑은 상종하면 안 돼. 아 몰라. 나 이제 일 안 해! 일 안 할 거라고!”

    * * *

    “단장님 결재받으러 왔어요.”

    랩터스 단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운영팀장이 조심스럽게 상사의 눈치를 본다.

    “결재? 직접 온 거 보니 중요한 거야?”

    특유의 날카로운 모습으로 꼼꼼하게 결재서류를 검토한 단장이 일필휘지로 사인을 하면서 의문을 표한다.

    “겨우 이거 가지고 직접 온건 아닐 거고. 홍지야. 왜?”

    직책이 아닌 이름을 부르는 단장. 단장을 친언니처럼 따르는 운영팀장도 해야 할 말을 던진다.

    “언니…. 드릴 말씀이 있어요.”

    둘 사이의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가 흐르고 뭔가를 직감한 단장이 긴 숨을 몰아쉰다.

    “어디야?”

    “네?”

    “내가 너를 얼마나 봤는데. 눈빛만 봐도 알아. 어디야? 자리는?”

    말투와는 다른 언니의 기쁨 반 걱정 반의 눈을 본 운영팀장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인다.

    “타이탄스요 단장이요.”

    “기가 막히게 뽑아가네. 축하해.”

    다음 시즌부터 강적을 상대해야 하는 랩터스 단장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다 펴지더니 진심으로 축하를 해준다.

    “언니 미안해요. 한국시리즈 끝나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 안 드렸어요.”

    “아니야. 내가 고맙지. 팀 안 흔들리게 티 안 내고 있어 줘서 고마워.”

    서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내뱉고는 있지만, 말과는 다르게 두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역시 타이탄스네. 모기업이 없는 팀이니까 편견 없이 인재를 골랐어.”

    “언니만 하겠어요. 벌써부터 걱정이에요.”

    “나한테까지는 그러지 마라. 다음 시즌 경계 대상 1호는 타이탄스다.”

    “언니. 그러지 마요. 올해 꼴찌 한 팀이에요.”

    방금전까지 눈물을 보이던 사이좋은 자매는 어디 가고 경쟁팀 단장들끼리 치열한 말싸움이 벌어진다.

    “타이탄스 전력보강은 돼? 지금처럼이면 내년에도 쉽지 않을 텐데?”

    “그래서 걱정이에요. 단장님 우리 트레이드 맞춰볼까요?”

    사직서 낸 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벌써 이적한 회사 업무에 돌입하는 경쟁사 직원.

    “아니. 당분간은 타이탄스랑 트레이드 금지야. 우리 팀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안 돼. 절대 안 돼.”

    “좀 봐줘요.”

    “사직서 수리도 안 됐는데 나 뒤통수치려는 애하고는 안 해.”

    “칫. 언니 일할 때는 하나도 안 봐주더라.”

    “여 단장님. 승부의 세계는 냉철한거야. 봐주는 게 어디 있어? 나 앞으로도 봐줄 생각 없으니까 열심히 하세요.”

    “네 네. 어련하시겠습니까. 저도 최선을 다할 거예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으로 전 직원을 보던 랩터스의 단장이 고민하던 말을 꺼내 든다.

    “아. 여홍지 팀장님. 마지막 업무가 있는데. 이거 하나는 하고 가지.”

    “네. 마지막 업무니까 확실히 해놓고 가겠습니다. 말씀하세요.”

    평소처럼 날카로운 모습으로 내리는 마지막 업무지시.

    “더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 보류선수 명단에서 외야수 박우혁은 빼줘. 베테랑이 엔트리를 잡아먹고 있으니까 신인들이 올라올 수가 없는 것 같아. 풀어줘.”

    “언니….”

    “마지막 업무야. 잘해줘. 그리고 지금까지 잘해줘서 고마워.”

    * * *

    - 25년 후 -

    “회장님. 김소전 선수 만나고 가겠습니다.”

    “가셔봐야 달라질 거 없을 거예요. 아시잖아요. 고집 센 거.”

    “그래도 이번엔 부탁 좀 드려보겠습니다. 저희가 위기에요.”

    스포츠 에이전트로 시작한 회사가 어느새 커져 미국과 멕시코를 아우르는 대기업으로 거듭났다.

    야구선수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온 한국인 기업가가 미국에서는 보기 힘든 경영전략을 사용해서 회사를 급격하게 키웠다.

    샌디에이고 다운타운의 골목골목 상권을 돈으로 하나하나 장악해 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서남부와 멕시코 골목상권을 싹 쓸어갔다.

    그리고는 그걸 바탕으로 자전거래를 통한 부동산 뻥튀기. 동양의 어느 나라 신도시에서 조직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단신으로 해낸 철의 여인이 언제나처럼 야구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MLB 사무국에서 찾아왔다.

    그리고는 이미 수십 번 시도했던 부탁을 또다시 했다.

    “남편이 원하지 않아요. 보세요. 지금도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잖아요”

    KBO에서 데뷔해 26살에 미국으로 건너온 전설의 선수를 찾아온 MLB 사무국 직원들.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선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피터! 달려! 달리라고! 달려! 2루까지 달려!”

    미국에서 야구한지만 25년 한국에서 한 것까지 합하면 프로에서만 32년째 야구를 하고 있는 살아있는 야구의 전설이 안타를 치고 2루를 갈지 머뭇거리는 자팀의 어린 선수에게 소리를 지른다.

    “김소전 선수 여전하시네요. 사무국에서 나왔습니다.”

    경기에 몰입하고 있던 전설의 얼굴이 확 구겨진다. 마이너 경기이긴 하지만 엄연히 정규경기인데 외부인에 덕아웃에 들어온다는 것부터 기분이 상한다.

    * * *

    “경기 후에 보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 경기중입니다.”

    “그래도 되지만 어차피 거절당할 거 빨리하고 가겠습니다.”

    느낌이 왔다. 또 그거…. 안 한다고 할 수가 없다고.

    “김소전 선수 이제 은퇴하시죠.”

    “그럴 수 없어요. 시즌 중이고 전 아직 은퇴할 생각이 없습니다.”

    없기는 은퇴하고 싶은 생각이 한가득하다.

    “이제 빅리그 올라가기도 힘들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그만 하시죠.”

    “안 한다고요.”

    “명예의 전당에 바로 입성 되는 겁니다. 요즘 야구가 위기인 거 아시지 않습니까. 도와주세요.”

    “아직 야구에서 더 배워야 할 게 있습니다. 이대로는 은퇴할 수가 없어요.”

    없기는…. 못하는 거지…. 빅리그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많이 뛰다 보니 몸 어디 한구석 멀쩡한 곳이 없다. 그런데도 은퇴를 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이 팀에 묶여있기 때문이지….

    첫 계약 4년을 하고 나서 다시 찾아온 FA. 나와 함께 4년 동안 팀을 탄탄하게 탈바꿈한 샌디에이고가 6억 불 계약을 제시했다.

    구단과는 연평균 4천만 불씩 15년을 초안으로 시작했지만, 우승을 위해 다른 선수들을 데려오느라 계획이 깨졌다.

    내 연봉 때문에 무지막지한 사치세가 부과될 위기에 빠져버린 구단이 나에게 40년 6억 불 제안으로 바꿔버렸다.

    처음엔 거부해보려고 했지만…. 우리 구단의 실제 주인이자 우리 집의 주인이신 그분이 나타나 무조건 도장을 찍으라고 협박을 하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찍고 말았다.

    40년 계약을 들은 MLB 사무국에서 사기라고 하도 난리를 치고 계약 무효소송까지 하는 바람에 나는 꼼짝없이 샌디에이고에서 40년 계약기간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중간에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 언제라도 그만둘 수는 있지만 그랬다간 연간 1천5백만 불의 연봉을 못 받게 되고…. 우리 집 주인님이 그걸 바라지 않으시기에 난 앞으로도 15년을 더 야구장에 출근해야 한다…. 이 아픈 몸을 끌고….

    “이번에 사무국에서 큰 결정도 내렸습니다. 김소전 선수의 남은 연봉도 최대한 보전할 수 있도록 돕기로 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시죠.”

    훗 이미 루다와 수천 번 예행 연습한 문제다. 루다의 말로는 저 말에 넘어가면 연봉 20%도 보전받지 못할 거라고 한다.

    사실…. 나…. 그래도 상관없는데….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는… 에효….

    “연봉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난 아직도 경쟁력이 있고 야구가 재미있습니다.”

    속이 쓰리다…. 이런 말 안 하고 싶은데….

    “정말 안되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오늘도 돌아가겠습니다. 생각 바뀌시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십시오.”

    가…. 가지 마…. 조금 더 설득을 해줘… 루다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가지고 와서 날 설득시켜달라고….

    야구의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줘….

    내 구원의 희망이 사라졌다. 이제는 선발로 출전해서 한경기 뛰기도 힘들어 더블에이에서 감독 겸 선수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이 짓을 앞으로도 15년을 더 해야 해….

    허탈한 마음에 멍한 눈으로 그라운드만 바라본다.

    그라운드에 아까 지시에 따라 2루에 들어간 선수가 리드를 길게 하고 있고 타석에 타자는 배트를 짧게 잡고 2루 주자를 들어오게 하려고 이를 악문다.

    헛스윙.

    그게 아니라고 벌써 수백 번은 얘기했는데 타석의 타자는 여전히 불안한 스윙을 한다.

    갑갑한 것들….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게 올라오지만, 꾹 눌러 참아본다.

    헛스윙.

    그게 아니라고. 팔꿈치를 몸통에 붙이고 쳐야지…. 아….

    다시 속에서 뭐가 올라오려고 한다…. 안된다. 참아야 한다. 이거 못 참고 또 경기에 나가면 루다한테 세 시간 마사지 받아야 한다.

    내가 경기만 하고 나면 얼마나 아파하는지 대기업 회장인 루다가 회사도 못 가고 항상 나만 따라다니겠는가…. 나 때문에 고생하는 루다. 그리고 루다 때문에 루다보다 더 고생하는 전 에이전트 현 루다컴퍼니2인자 현민이 형을 위해서라도 참아야 한다.

    헛스윙. 삼진….

    꼴사나운 스윙을 보자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

    “타임~ 대타.”

    나도 모르게 그라운드로 뛰쳐나가 주심에게 대타를 외쳤다.

    대타가 누구냐는 듯 나를 바라보는 주심.

    “대타…. 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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