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98화 (198/204)

198화. GOAT

세상이 단체로 나를 속이고 있다. 이 거대한 음모. 나를 놀리는데 재미를 붙인 사람들. 화가 난다. 저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불구덩이를 배트에 담아 날린다.

- 랩터스의 순위는 결정되었지만 우리는 단 한 순간도 랩터스의 경기를 놓칠 수 없습니다. 프로야구의 바뀌는 역사를 잠실에서 함께 하실 시간입니다.

돌고 돌아 원정이긴 하지만 잠실까지 왔다. 자꾸 어디를 갈 때마다 주는 쓰레기들. 불타다 만 유니폼부터 시작해서 찢어진 베이스, 부정배트 검사해보려고 분석했다는 내 부러진 방망이까지…. 세상 쓸데없는 것들을 선물이라고 주는 나쁜 놈들.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욕을 할 수 없어 웃으며 쓰레기를 받아주니 사람들이 내가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줄 안다.

그래 남들은 그렇다고 치자. 내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가는데 한 이불 덮고 자는 루다도 내가 가져온 쓰레기를 어디엔가 차곡차곡 모아놓고는 흐뭇해한다. 쓰레기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는 루다…. 저런 거 내가 티비에서 많이 봤다. 보통 벼락 맞고 정신 나가면 저렇게 되던데….

- 소닉스와의 잠실 원정. 소닉스도 김소전선수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 한 지붕 라이벌팀이어서 그런가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거든요. 그래도 선물은 준비하네요

오늘이 마지막 경기도 아니어서 별거 없이 지나가나 했더니 뭔 선물을 준다고 나오라고 그래. 이놈들 또 예쁘지도 않은 쓰레기나 줄 텐데…. 안 받고 싶다.

- 포장이 엄청나게 큽니다.

- 뭘까요? 생긴 것만 봐서는 커다란 액자 같은데요

불안하다. 멀리서 들어오는 커다란 물건만 봐도 불안한 기운이 엄습한다. 도망가고 싶다. 도망가야 하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다.

- 아. 이거 의미가 있겠네요. 김소전선수의 신인드래프트 사진과 현장에서 수기로 적어넣은 소닉스 드래프트 명단입니다.

-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소전선수 사실 랩터스에서 뽑은 선수가 아니죠. 소닉스에서 뽑혀서 랩터스로 트레이드된 선수예요

이…. 이 XX들이…. 이건 선 넘었지

- 김소전선수의 2025 신인드래프트 선발 당시의 사진입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우는 얼굴이 생생하게 나타내줍니다.

- 아직도 젊은 선수입니다만…. 풋풋하네요. 저 심정 드래프트 안 나와 본 사람은 몰라요

- 김소전선수 지금은 없어진 2차 드래프트 6라운드에 소닉스에 지명을 받았습니다.

- 지명되자마자 2:2 트레이드로 바로 랩터스로 넘어왔죠. 그렇다고는 해도 지명한 건 소닉스였어요. 소닉스의 스카우트는 대단한 선수를 잘 뽑았고….

- 소닉스의 프런트는 대성할 떡잎을 보지 못하고 2:2 트레이드로 내줬습니다.

와…. 진짜…. 볼수록 화가 나네. 어디서 저런 추하게 우는 모습을 찍은 거야. 와…. 뭐로 찍었길래 이렇게 크게 뽑았는데도 화질의 저하가 없어. 두 배로 화가 난다.

- 트레이드 당시에는 소닉스가 이겼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 소닉스 입장에서는 롱릴리프가 가능한 투수와 추격조를 받고 끝내 터지지 않은 우타 빅뱃과 타격에 재능이 없는 2차 6라운드 신인을 내줬으니까요. 김소전 선수의 신인 때 기억이 나네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선수였어요

- 가끔 자료화면으로 나오는 신인 때 김소전은 발만 빠른 대수비, 대주자였습니다.

- 그런 선수가 지금 같은 선수가 됐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트레이드에 실패가 없는 소닉스의 유일한 오점이에요

- 소닉스의 원석이 랩터스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이 되었습니다.

오늘 나 막는 놈들은 다 북에 계신 수령님보다 나쁜 놈들이다. 너희들 다 죽었어.

- 경기 시작됩니다. 1번 타자 소닉스에서 찾아 랩터스에서 꽃피운 김소전입니다.

- 김소전선수 아직도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얼굴이 붉죠

- 같이 일하는 이루다 아나운서의 말에 따르면 생긴 것과는 다르게 마음이 여리고 여린 남자라고 하거든요. 아직 콩깍지가 쓰인 신혼의 말이라 다 믿기는 어렵습니다

- 하하. 이루다 아나운서 입담이 보통이 아니거든요. 그렇긴 하지만 야구 할 때 말고는 참 순박한 김소전 선수예요. 자꾸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정말 다시는 KBO에서 못 볼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전 국민 앞에 추하게 질질 짜는 사진을 공개한 나쁜 놈들. 씹어먹어도 모자랄 놈들. 내가 정의의 이름으로 절대 용서치 않겠다.

- 소닉스의 선발 최기훈입니다.

- 최기훈 선수의 최근 기세가 좋아요. 특히 지난 경기에서 7이닝을 완벽하게 지켜내는 모습을 보여줬거든요. 한번 기세를 타면 그대로 쭉 밀고 나가는 최기훈이에요

눈에 보이는 게 별로 없다. 그저 마운드에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는 누군가가 있을 뿐. 다른 건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

- 초구부터 벼락같이 배트를 돌리는 김소전! 크다! 크다! 좌중간! 좌중간! 좌중간 훌쩍 넘어 관중석 상단에 떨어집니다~ 1회 초 선두타자로 나와 홈런으로 1점을 신고하는 김소전! 랩터스 라이벌전에서 앞서나갑니다.

- 투수가 던진 공 바깥쪽 빠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밀었어요. 김소전이 밀어서 좌측담장을 넘겼어요. 김소전이 밀어서 홈런을 치는 선수가 아닌데 넘겼어요. 잡아당기기만 해도 무서운 선수가 넘기면…. 무섭네요

잡아당겼어야 했는데 치사하고 야비한 투수가 바깥쪽 공을 던지는 바람에 잡아당기지 못했다. 잡아당겼으면 관중석이 아니라 잠실야구장을 넘겨버릴 수 있었는데. 아깝네. 다음 타석에선 무조건 넘긴다!

- 누구에게나 초심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 이 자리에. 처음 시작하던 초심을 다시 떠올린 선수가 있습니다. 경기 지사가 전 프로지명의 순간을 선물 받은 선수가 오늘 경기 4번째 타석에 들어섭니다.

- 오늘 김소전의 활약이 정말 대단해요. 3타수 3안타를 모두 홈런으로 때려내고 있어요

- 1회 솔로 홈런을 시작으로 3회 쓰리런, 4회 만루홈런을 때리면서 팀의 8점을 모두 자신의 홈런으로 만들어낸 김소전입니다.

- 타구의 질이 모두 좋았어요. 1회 밀어친 홈런부터 시작해서 3회 쓰리런 홈런은 잠실의 중앙을 둘로 크게 가르는 홈런이었죠

- 그리고 뒤이어 나온 4회의 그랜드슬램은 전형적인 김소전표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홈런이었습니다.

- 지금 투런 홈런 하나가 빠진 싸이클링 홈런인데…. 아쉽죠

- 스코어 8:6 투아웃에 주자 1, 3루 타자는 오늘 홈런만 세 개 기록 중인 김소전입니다.

왜 헐크가 항상 화가 나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헐크도 분명 영화에서 표현 안 된 자기만의 수치스러운 사진이 세상에 공개돼서 항상 화가 나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화가 가라앉을 생각을 안 하는데 내 타구가 잠실야구장을 넘기지 못한다. 난 고작 펜스를 넘기는 거에 만족할 수 없다. 잠실야구장 외야 관중석까지 넘겨야 이 치솟아 오르는 화가 누그러질 것 같다.

- 소닉스의 배터리 신중하게 사인을 교환하고 있습니다.

- 그럴 수밖에 없어요. 오늘 김소전에게는 뭘 던져도 맞고 있거든요. 제가 감독이라면 차라리 2루를 채우는 것도 생각해 볼 것 같아요

주변에 모든 걸 지우고 투수만 바라본다. 언제부턴가 타석에서 대기할 때 노골적으로 투수를 바라보는 것 안 했는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투수만 잡아먹을 듯 바라본다.

넌 오늘 그냥 재수가 없는 거다. 그러니 시간 끌지 말고 얼른 던져라

- 다시 한번 김소전의 배트가 불을 뿜습니다! 외야 수비 그 자리에 정지합니다.

- 도망갈 거면 확실하게 도망가야죠. 오늘 김소전 배트가 뜨거운데 저런 어정쩡한 공은 손쉬운 먹잇감이죠

아…. 또 안 넘어갔어…. 아우 씨!

- 4-6-3! 4-6-3으로 물 흐르듯 이어진 랩터스의 수비. 더 이상의 추가 실점을 막아내며 1점 차 살얼음판 리드를 지켰습니다.

됐다. 공격! 공격하자

- 공수 교대됩니다. 11:10 한점을 앞선 랩터스의 9회 초 마지막 공격. 9번 타자 루카스부터 시작됩니다

루카스야. 루카스야. 걸리적거리지 말고 죽으려면 빨리 죽고 비켜라. 내가 오늘 좀 할 일이 남아있다.

- 랩터스 대타가 나옵니다. 루카스 선수 빠지고 대타 송한규 선수입니다.

- 이번 시즌 신인이죠. 신인을 이런 중요한 상황에 내는 김민중 감독이네요

- 2군에서는 102타수 27안타. 타율 2할 6푼 5리. 13타점 홈런 2개를 기록했습니다.

- 루카스의 우투상대 성적이 좋지 않다 보니까 대타를 기용한 것까지는 좋습니다만 송한규 선수 조금 더 편안한 상황에서 데뷔 기회를 가졌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드네요

뭐야. 나는 마음이 바빠죽겠는데 무슨 대타를 내고 그래. 루카스나 저 신입생이나 내 앞에 있으면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일 텐데.

- 크게 배트를 휘둘러보는 송한규. 볼카운트 노볼 원스트라이크로 바뀝니다.

- 신인이라면 저런 씩씩한 모습이 있어야죠. 김민중 감독도 다른 거 바라지 않고 자기 스윙을 해주기만을 바라면서 내보냈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좋은 스윙을 해주고 있어요

그래 못 칠 것 같으면 그냥 빨리 죽어라. 형 쳐야 한다.

- 2구. 아…. 몸에 맞습니다.

- 그래도 엉덩이에 맞았죠. 그중 가장 안 아픈 부위에요

가지가지 한다. 몸을 비틀거면 뒤로 빼면서 비틀어야지 몸을 또 앞으로 밀어 넣는 건 무슨 생각이냐. 그러다 다치면 너만 손해다.

- 9회 초 노아웃에 주자 1루. 타석에는 오늘 경기 4홈런을 완성한 김소전입니다.

- 연타석 5홈런은 어디에도 없는 기록이에요. 기회는 있을 때 잡아야 해요

- 그뿐만이 아닙니다. 솔로 홈런, 쓰리런 홈런 두 개, 그랜드슬램이 한 개. 그리고 1루에는 송한규. 여기서 김소전이 홈런을 치면~ 사이클링 홈런을 치는 최초의 선수가 됩니다.

- 그뿐만 아니죠. 연타석 5홈런도 없는 기록이에요. 이 선수 자기를 뽑아준 친정팀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켜 주네요

투수가 나를 보고 한숨을 내쉰다.

왜? 날 보고 시비야? 나 이제 눈곱만큼 마음이 편해지려는데 왜 노려봐?

- 소닉스 투수 그대로 밀고 나갑니다.

- 사실 바꿀 선수도 없어요. 어떻게든 버텨야 합니다.

또다시 내 몸이 불타오르는 기분이 든다. 이 기분 그대로 배트를 휘둘러서 공을 야구장 밖으로 날려버린다. 가즈아~

- 투수 쉽게 공을 던지지 못합니다.

- 긴장이 돼서 그래요. 안될 수가 없죠.

후…. 후…. 나도 투수 리듬에 맞춰서 숨을 쉬어본다. 후…. 후….

- 투수 던졌습니다. 쭉쭉 뻗어 나가는 타구~

- 갔네요. 갔어요

- 홈런~ 장외로 넘어가는 대형홈런~ 김소전의 투런 홈런이 지금 이 순간 터집니다.

진작에 이랬어야. 이제야 10년 묶은 체증이 싹 가시는 거 같네.

- 점수를 13:10으로 벌려놓는 김소전. 그리고 9회에 터진 김소전의 투런이 최초의 사이클링 홈런을 완성시켜 줬습니다.

- 김소전이 잠실에선 홈런을 못 친다고 누가 그랬었죠? 그 말씀 하신 분은 나오셔서 사과하셔야겠어요. 비거리가 아주 그냥…. 어휴…. 말로 설명이 안 돼요

그라운드를 유유히 돌아 홈플레이트를 밟고 나니 급 현타가 찾아온다.

루다한테 오늘 도루에 중점을 두고 경기하겠다고 그랬는데…. 이 사태를 어찌 해결하지….

아…. 몰라. 배 째던가. 지금은 그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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