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97화 (197/204)

197화. 페어웰 투어

“해도 너무 한 거 아니야? 단체로 나 엿먹이려고 작정한 거야!”

스포츠 분야 뿐만 아니라 사회 분야까지 기사를 도배한 올스타전. 경기가 끝난 이후 랩터스의 단장실에서 큰소리가 울려 퍼진다.

“우리 조 단장 왜 또 열 내실까. 그러지 마. 얼굴 주름져. 이제 나이도 있어서 팔자주름도 생기는데 예쁜 얼굴 그렇게 막 쓰지 말자~.”

“죽고 싶어!”

“또 그런다. 그렇게 성질만 부리니까 남자가 안 붙지.”

“남자 같은 쓸데없는 것들 얘기는 탄천에 집어 던지고 무슨 생각인지 얘기 좀 해봅시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절대 갑인 구단 앞에 끌려 나온 리그 최고 선수의 에이전트가 단장의 호통에도 짐짓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조 단장. 나도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잖아. 좋은 물건은 좋게 포장해서 팔아야 한 푼이라도 더 받지. 상품의 한 면만 보여주지 말고 다양한 면을 다양한 클라이언트에게 어필하는 것. 세일즈의 기본 아니겠어?”

“혓바닥을 튀겨버릴까 보다.”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던 에이전트가 급히 입을 닫는다. 앞에 있는 단장의 눈에 살기가 어린다.

“자 봐. 양키스는 랩터스의 투수를 원한다!, 다저스 3루 공백을 메울 선수는 한국에서!, 보스턴 페이롤을 비우기 시작한다! 어제 오늘 나온 기사들이야. 이거 누구 작품이야?”

“내 작품이지”

“우선 그 혓바닥을 뽑고 시작하자.”

나이도 어린 여자한테 막말을 듣는 에이전트의 기분이 확 상한다.

“조 단장. 이번 시즌까지야 소전이가 랩터스 소속이지만 시즌만 끝나면 FA야. FA. FA 뭔지 몰라? 프리 에이전트. 자유계약선수. 무슨 말인지 몰라?”

“XX하네.”

“야! 너 말이 너무 심하잖아.”

“심하면 안 돼?”

“진짜 이럴 거야?”

“김소전 이번 시즌 아직 145일 못 채웠어. 2군에 처박아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소리치지 마. 소리는 나만 치는 거야.”

다른 사람이 저런 헛소리를 하면 당장 판 걷고 일어나겠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꾹 참고 말을 이어나가는 에이전트.

“원하는 게 뭐야? 서로 편하게 가자. 조 단장은 선수들을 너무 자기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그러면 안 돼. 선수는 단장의 소유물이 아니야!”

“내꺼야. 랩터스꺼라고. 들어오고 나가는 거 다 내 손 거쳐서 나가는 거야. 그러니까 팔 때도 잘 팔아야 한다고. 내꺼 파는 거니까.”

계속되는 단장의 괴변에 에이전트의 인내심이 바닥까지 떨어진다.

“말을 하라고. 왜 그래? 이벤트 경기에 1이닝 던진 게 뭐 그렇게 잘못했다고 사람을 괴롭혀.”

“투수는 안 돼.”

“뭐야?”

“김소전 투수로 보내는 거 안된다고.”

“그걸 왜 랩터스에서 신경 써.”

“내가 얘기했지. 내꺼라고. 내 거 팔 때 내가 그냥 보내는 거 봤어? 난 내 새끼들 보낼 때 거기 가서 잘 살 수 있을지 확인하고 보내.”

“뭐야. 그래서 투수는 안 된다고?”

“어.”

얼마 전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 에이전트가 한숨을 푹 쉰다.

“조 단장 아직 메이저 시스템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거기는 필요하면 야수도 마운드 올라가는 게 죄가 되지 않는 나라야. 그런데 야수가 마운드에서 160을 던진다? 이건 마운드에 ATM 기계를 세우는 꼴인데 이걸 안 해? 내가 얘기했잖아. 야구는 비즈니스야.”

“그래서 안된다고.”

“조 단장! ATM이 영어라 몰라? 현금인출기. 그런 거 몰라? 안 써봤어? 김소전 이제 미국 가면 걸어 다니는 현금인출기라고. 그런데 그걸 왜 못 하게 하는데.”

“한계야. 거기까지가 한계야. 더는 안돼.”

“뭐?”

씩씩대며 열을 내던 단장이 책상에서 두꺼운 서류뭉치를 턱턱 꺼낸다.

“이게 뭐야?”

“김소전 리포팅.”

소속 선수의 리포팅에 흥미를 보이는 에이전트가 책장을 넘기려고 하지만 압도적인 분량에 쓱쓱 몇 페이지만 보고서는 덮어 버린다.

“이게 어쨌다고”

“선수를 돈벌이로만 보는 XX들은 못 보는 거.”

“내가 못 보는 게 뭔데”

“김소전에게 야구 말고 다른 게 없어. 인생의 모든 게 야구에만 맞춰져서 다른 세상이 없어.”

“없기 뭐가 없어. 결혼도 하고 신혼생활도 잘 지내고 있는데.”

“그나마 그게 숨통이지. 아니었으면 조만간 터졌어. 김소전에게 이 이상의 야구는 독이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의 에이전트

“그게 무슨 소리야. 김소전에게 야구가 큰 부분인 건 인정하겠지만 김소전 나름 잘 살고 있는다고. 영화 보는 취미도 있고 건전해.”

“니들 보는 영화를 아는데 건전은 무슨.”

“다른 사람의 취미생활을 그렇게 폄훼하지 말라고.”

에이전트의 반론에 눈 하나 깜빡 안 하는 단장이 본론으로 돌아간다.

“지금까지 노경준과 공 던지던 거야 훈련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본격적으로 공까지 던지면 김소전 스타일상 모든 걸 쏟아부어서 투구 연습할 거야. 그러면 얘 인생에 남는 게 없어.”

“그게 단장이 할 소리야?”

“난 야구선수 김소전을 가지고 있지 김소전이란 사람을 가진 건 아니니까.”

“그런 사람이 선수를 그렇게 굴려?”

단장의 위선에 기분이 상한 에이전트가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어이 박 사장님. 그러니까 계속 나한테 무시당하는 거야. 팀에서 김소전을 사회에 적응시키려고 얼마나 노력한 줄 알아?”

“무슨 소리야. 구단이 선수 등골 빼먹을 생각이나 했지 언제 도와줬는데?”

혀를 끌끌 차는 단장.

“김소전이 주장이 어떻게 됐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거야 라정안이 주장 안 한다고 해서 그런 거 아니야!”

“단순히 그거였으면 주장시킬 선수가 없었을까 봐. 김소전이 자기한테 다가오는 사람하고 밖에 이야기를 못 하니까 먼저 다가가라고 구단에서 시킨 거야.”

“그런 헛소리를.”

“노경준은 왜 김소전 따라다녔을 거라고 생각해?”

“뭐? 그거야 둘 다 똘아이니까…”

“김소전 지명하고 나서 우리 스카우트팀이 노경준 머릿속에 김소전을 새겨넣었어. 항상 혼자만 운동하는 김소전 훈련파트너 만들어 주려고 구단이 만들어 준 거라고.”

“그걸 믿으라고?”

전혀 믿는 표정이 아닌 에이전트.

“박 사장님. 사장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구단들이 하는 게 많아. 에이전트야 눈이 선수 하나에만 고정되어 있지? 우리는 저런 걸 하면서도 다른 선수들이 편애한다고 생각 안 하게 조절도 해야 한다고. 알아? 그러니까 우리 팀 선수들의 만족도가 높은 거야.”

“그거야 연봉을 많이 주니까 그렇지.”

지기 싫어 말을 하지만 뒤로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진다.

“사무실에 투타 겸업 재검토 시켜볼 테니까 그런 줄 알아.”

“검토가 아니고 유격수로 써줄 팀을 찾으라고.”

“거 참. 오빠가 알아서 할 테니까 조 단장은 오빠만…. 악.”

“저 혓바닥을 뽑아야 했는데….”

후드티에 야구모자를 뒤로 쓰고 젊은 척하는 아저씨에게 적지 않은 나이의 단장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사인볼을 집어던졌다.

“조 단장. 이거 폭행이야. 나 고소할 거야.”

“하시던가.”

고소한다는 협박에도 눈 하나 깜빡 안 하는 단장. 괜히 눈싸움을 걸었던 에이전트가 슬며시 눈을 내리깐다.

“투어 조율됐어.”

“뭐?”

“김소전 페어웰 투어해주라며.”

“진짜?”

“내가 이런 거로 장난하는 거 봤어?”

“고맙다. 조 단장 고마워! 사랑해! 사랑한다 조 단장~ 악.”

사랑 고백을 하고 또다시 사인볼에 맞은 에이전트가 괴로워하며 바닥을 뒹군다.

“너…. 너 내가 진짜 고소할 거야.

“하라고. 제발 좀 하라고. 한 번만 더 그딴 더러운 소리 하면 공이 아니라 배트가 날아갈 거니까 그리 알고.”

“성질머리하고는.”

욱했다가 눈앞의 단장이 야구 배트를 집어 드는 걸 보고 급하게 화를 가라앉히는 에이전트.

“어쨌든. 김소전 페어웰 투어 해주는거로 생각할 테니까 준비 잘해줘.”

“내 걱정 말고 박 사장님 걱정이나 잘하시지. 계약조건 맘에 안 들면 내가 뒤집어엎을 거야. 긴장해.”

긴장하라는 말에 의지와 상관없이 온몸이 확 굳어지는 에이전트. 기분을 불어보고자 한마디를 더해본다.

“김소전은 야구 말고 자기 삶을 찾으라면서 조 단장은 왜 자기 삶도 없이 일만 해? 김소전보다 조 단장이 더 자기 삶이 필요한 거 아니야?”

“난 그런 거 필요 없어. 야구가 나고 내가 야구야”

진짜 미친 사람을 눈앞에서 본 에이전트가 조용히 랩터스 사무실을 나선다.

* * *

이게 뭐야…. 간단한 행사라더니…. 이게…. 뭐야….

- 벌써 시즌이 후반기로 접어들었습니다. 랩터스와 엘리펀츠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시작하기 전 다양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 우천순연 된 경기가 남았습니다만 시즌 일정상으로는 오늘이 양 팀의 마지막 부산경기죠.

- 그렇습니다. 10월에 두 경기가 예비일에 편성될 예정이지만 시즌 일정상으로는 오늘이 부산에서의 마지막 맞대결입니다.

- 이번 시즌을 마치고 랩터스의 김소전 선수가 FA자격을 획득하게 되면서 엘리펀츠가 선물을 준비했어요.

- 랩터스와 엘리펀츠. 엘랩라시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라이벌의식이 강한 두 팀인데 엘리펀츠에서 큰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 엘랩라시코요? 아 엘꼴…흠.흠. 두 팀의 관계가 남다르죠. 그러다 보니 이번 시즌을 끝내고 미국에 진출할 김소전선수를 색다른 방식으로 축하해주고 있어요.

- 중계하면서 원정팀 선수가 홈팀 팬을 상대로 사인회를 하는 건 처음 봤습니다.

- 하하. 저도 처음 봤어요. 그래도 분위기 좋던데요. 그리고 김소전 선수도 워낙에 자팀, 타팀 상관 안 하고 사인 잘해주기로 유명한 선수라 위화감도 없었어요.

무섭다. 랩터스의 초록색이 아니라 엘리펀츠의 회색 옷을 입은 팬들에게 둘러싸여 사인을 강요당하니 더 무섭다.

“이름은요?”

“알아서 뭐할 건데요?”

까칠하다. 생긴 건 곱상하게 생긴 아가씨가 목소리에 날이 서 있네.

무서우니까 얼른 사인이나 해서 보내야지.

“여기요.”

“한마디 더 써요.”

“네?”

뭐야. 이름을 물어도 알아서 뭐할 거냐 더니 한마디 더 쓰라니.

“절대 안 돌아오겠습니다. 한마디 더 써요.”

뭐…. 뭐야…. 이름 석 자만 쓰다가 절대…. 뭐? 몇 글자를 더 쓰라고.

“빨리 써요. 절대 안 돌아오겠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앞에 있는 고딩인지 대딩인지 모를 여자를 바라보는데 주변에서 무서운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들리다.

“빨리 써라.”

“후딱 써라! 절대 안 온다 써라.”

“그거 쓰고 돌아오면 나한테 죽는 거다.”

무서운 아저씨들…. 말을 해도 이리 험하게 하다니….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고 팬이 원하니까 팬들이 원하니까 써준다.

“또박또박 써라.”

“생긴 것만 못생긴 줄 알았더니 글씨도 못생겼네.”

“쟤가 진짜 이루다랑 결혼한 거야? 이루다 취향 참 독특하네.”

- 경기시작전 간단한 선물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 엘리펀츠에서 준비했죠. 김소전 선수에게는 극찬인 것 같은데 선수가 어찌 생각할지는 모르겠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계략이다. 자기네 선수도 아니고 상대 팀 선수인데 경기 시작 직전까지 붙잡아다 사인을 시켰다. 미친 듯한 사인을 하다 보니 오른손에 감각이 없다.

이거 내 경기력을 떨어뜨리기 위한 작전임이 틀림없다. KBO에 진상조사를 요청해야 한다.

- 액자네요. 제법 큰 액자가 들어옵니다.

- 멋지네요

팔도 뻐근한데 뭔 선물을 준다고 경기시작전부터 불러댄다. 지금부터라도 정신 집중하고 경기 준비해야 하는데 사람 참 귀찮게 하네.

- 유니폼이네요. 불에 탄 엘리펀츠 유니폼입니다.

- 재작년에 엘리펀츠가 꼴찌로 떨어졌을 때 팬들이 화형식을 거행했었거든요. 그해 꼴찌를 한 게 김소전 선수 때문이라고 생각한 팬들이 엘리펀츠 유니폼에 선수 이름을 마킹해서 불태웠어요. 그때 타고 남은 조각을 어렵게 구했다고 해요.

- 그게 남아있는 것도 신기하고 그걸 구한 엘리펀츠 구단도 대단합니다. 김소전 선수에게는 정말 극찬이겠네요.

뭐…. 뭐냐…. 이 쓰레기는…. 선물을 준다며…. 어디다 버리지도 못할 쓰레기를 왜 주는 거야.

이거 해보자는 거지? 오늘 너 죽고 나 죽고 한번 해보자. 나 진짜 화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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