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92화 (192/204)
  • 192화. 수비 능력

    - 시즌 초반 이변을 연출하고 있는 2031 KBO 프로야구. 어우랩을 외치는 랩터스와 왕조의 부활을 외치는 소닉스가 어린이날 잠실에서 만났습니다. 어린이 팬의 동심을 지키기 위한 양 팀의 승부. 지금 시작합니다.

    처음엔 하기 싫었는데 매년 하다 보니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더군다나 올해 연봉이 7억5천만 원인데 계약서에 구단 행사에 적극 참여한다가 적혀 있으니 열심히 해야지

    “기념품 받아 가세요.”

    “와~ 김소전이다~.”

    “어린이날 기념품 받아 가세요.”

    “김소전이다~ 루다언니 실물이 진짜 더 예뻐요?”

    “티켓 확인 되시면 이쪽으로 와서 기념품 받아 가세요.”

    “형~ 결혼하고 루다누나는 더 예뻐지는데 형은 왜 더 못생겨져요?”

    홍시 누나의 명령으로 선수들이 관객들에게 어린이날 선물을 나눠주었다. 얼핏 듣기로는 작년 재고 터는 거라고 하던데 슬쩍 가방을 보니 제법 알차게 들어있는 게 나도 애가 있으면 하나 가져가고 싶을 만한 물건들이다.

    하나 가져가서 루다 줄까….

    “싸인해주세요.”

    정신없이 기념품 가방을 나눠주고 있는데 시커먼 옷을 입은 여자가 사인을 해달라며 유니폼을 내민다.

    “형! 싸인해주지마요! 소닉스 팬이잖아요.”

    “소닉스는 3루로 갈 것이지 왜 이리로 와!”

    “근본 없는 소닉스 팬은 물러가라!”

    귓가로 우리 팀 열성 팬들의 야유가 쏟아지고 펜을 받아든 내 손이 순간 멈칫한다.

    이 여자… 예쁜데….

    주변의 폭언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한 표정으로 나에게 여벌의 소닉스 홈 유니폼을 내미는 여자. 나도 웃는 얼굴로 기꺼이 소닉스 유니폼에 정성스럽게 사인을 시작한다.

    “형! 해주지 마요! 우리 팀만 해줘요!”

    내가 너희들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찌 그럴 수 있냐…. 너도 앞에서 봐봐…. 손이 알아서 움직인다.

    “내가 내년에 어디로 갈 줄 알고?”

    우리 팀 팬들에게만 해주라고 소리치는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팬에게 시크하게 한마디 던져주고는 싸인에 하트까지 그려 넣어줬다.

    내가 봐도…. 음…. 난 화가를 했어도 대성했을 거야…. 음….

    “형! 진짜 내년에 다른 팀 가요?”

    “랩터스가 안 잡으면 다른 팀이라도 가야지.”

    “형! 가지 마요. 형이 우리의 희망이자 롤모델이란 말이에요. 절대 가지 마요….”

    가슴이 웅장해진다. 야구를 하지 않는 저런 아이들도 나를 보고 미래를 계획한다니. 김소전 성공했구나. 이제 내가 세상을 이끄는 리더가 됐구나.

    “형같이 못생긴 사람도 루다누나같은 여신님과 결혼하는데 저도 연애할 수 있겠죠? 형도 하는데 사람같이 생긴 저도 할 수 있을 거잖아요. 맞죠? 그렇다고 해줘요.”

    자…. 잠깐…. 뭐라고? 너 뭐라고 했냐? 이 안경 낀 XXX. 너 같은 긁어도 안 될 복권 하고 요리조리 뜯어봐도 잘생긴 구석밖에 없는 나하고 비교질하고 있는 거 실화냐? 갑자기 성질이 확 나네

    “장난 그만하고 이리 와. 형이 사인해줄게.”

    “싫어요.”

    “싫어?”

    “싫어요!”

    내가 소닉스 팬 사인해줘서 화났나…. 사인해준다고 해도 싫다고 하다니…. 좀 미안하네….

    “형 싸인 너무 많아요. 싸인 좀 그만해줘요.”

    뭐…. 뭐야…. 야구선수한테 싸인을 그만 해주라니…. 이게 무슨….

    “그럼 셀카라도 같이 찍을까?”

    “형. 내 핸드폰에 형이랑 찍은 사진이 절반이에요. 싫어요. 그만 찍을래요.”

    추…. 충격적이다…. 사진도 거부하다니….

    구단에서 팬이 보일 때마다 싸인해주고 사진 찍어주라고 했는데…. 그래야 사랑받는 선수가 된다고 그랬는데…. 왜….

    “그…. 그럼 형이 뭘 해줄까?”

    “저…. 음…. 그게….”

    그래 너도 원하는 게 있구나. 그래 만족을 모르는 팬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더 찾아보자

    “뭘 원해?”

    “루다누나랑 영상통화 해줄 수 있어요?”

    뭐…. 뭐 이 자식아! 쪼끄만 게 누구 마누라랑 전화를 하려고!

    “어이~ 꼬맹이~ 나를 찾았나~.”

    다른 사람의 부인을 탐하는 쓰레기 고딩에게 인생의 참맛을 어떻게 알려줄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린이날 산타도 안 믿는 고딩이 왜 왔지?”

    천방지축으로 까부는 고딩에게 일침을 날리는 루다. 역시. 내 마누라 잘한다.

    “누…. 누나…. 너무 예뻐요….”

    “그런 남들 다 아는 사실은 확인해줄 필요 없고. 어린이날 다 큰 녀석이 왜 왔냐고.”

    “도…. 동생이랑 같이 왔어요….”

    “동생은 어디 있지?”

    “어…. 엄마랑 랩터스샵에 갔어요. 와…. 누나…. TV보다 더 예뻐요….”

    저 모자란 놈 할 말이 예쁘다 밖에 없냐? 루다가 예쁜 얼굴은 아닌데… 에효… 너도 취향이 독특하구나.

    “김소전의 사진이 필요 없다면 내가 해줘야겠군. 이리와 누나랑 사진 찍게.”

    “와…. 와…. 누나…. 와…. 와….”

    어린이날을 맞아 선수들이 팬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행사가 SBC 아나운서가 선물을 나눠주고 사진 찍어주는 행사로 변질됐다.

    루다가 오는 순간부터 몰려드는 사람들. 결혼식 때처럼 나는 루다옆의 소품이 되어 이용되는 시간이 흘러만 간다.

    내가…. 이 팀의 선수고…. 얘는 이방인인데…. 세상 참…. 더럽다.

    “여러분~ 루다 방송하러 가야 해서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또 만나요~.”

    짧은 시간 동안 수천장의 사진을 찍어준 루다가 나를 끌고 방송실로 끌고 간다.

    “언제 왔어? 오늘 온다고 했었나?”

    “너 내 말 안 듣지? 내가 오늘 잠실 온다고 했잖아.”

    그랬나. 요즘 내가 너 때문에 피곤해서 아무 생각이 없다.

    “그랬나? 그런데 왜 왔어? 요즘 현장 잘 안 나오잖아.”

    “오늘 마이애미 수석 스카우트가 온다. 약 좀 쳐야 하니까 오늘 잘해라.”

    마이애미? 마이애미는 왜? 에이전트형은 양키스랑 LA를 1순위로 두고 작업한다고 그랬는데

    “나 마이애미 가?”

    “아니.”

    뭐야

    “마이애미 놀기는 좋은데 1년 내내 살기는 좀 내 취향이 아니라서.”

    야구는 내가 하는데 왜 네 취향이 우선시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좀 높은 분이 왔다는 거지.

    “그리고 마이애미 수석 스카우트보다 내가 왔는데 잘해야지. 오늘 못하면 죽을 줄 알아. 홈런도 좀 치고. 딴 데서는 홈런 치면서 잠실에서는 왜 안치는 건데? 꼭 쳐. 두 개쳐.”

    그게 내 마음대로 되냐? 홈런이 그렇게 쉽게 나오면 개나 소나 다 홈런 타자하지.

    - 1년 중 어린이 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경기. 어린이날 라이벌전. 소닉스의 선공으로 시작됩니다.

    수비에 들어가서 관중석을 보자 중앙테이블 석에 미국 아저씨와 단둘이 앉아있는 루다가 보인다. 경기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늘어놓고 있는 음식들… 루다가 한국야구를 제대로 알려주고 있구나….

    - 이병삼 잡아당긴 타구! 유격수 키를~ 잡힙니다. 유격수 김소전의 슈퍼 캐치! 원아웃! 시작부터 슈퍼플레이를 보여주는 랩터스의 김소전입니다.

    - 송호일 선수의 체인지업이었거든요. 이병삼 선수가 잘 잡아당겼는데 무조건 유격수 키 넘어간다고 봤거든요. 그걸 잡아내네요. 수비 정말 잘합니다. 김소전.

    루다…. 저것. 뭐가 신났는지 배 나온 미국 아저씨한테 쉴 새 없이 뭐라고 떠들어댄다. 쉴 새 없이 떠드는 것도 모자라 이제 호호거리면 웃기까지 한다.

    저것이 지금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뭐 하는 짓이지? 저 정도면 영업이나 연기가 아니데? 저거 뭐 있나?

    가만히 있어도 열이 확확 오르는데.

    내 눈에 불이 타오르는데 갑자기 날아드는 공. 안 그래도 짜증이 확 올라오는데 어디서 이딴 애매한 공이 날아오는지. 날아오는 공을 눈을 쫓으며 뒤로 스텝을 밟는다. 타이밍 맞춰서 점프. 공이 글러브에 들어온다.

    봤냐? 저 배 나온 아저씨가 이런 거 할 수 있을 것 같아?

    - 송호일 선수 오늘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 이병삼의 타구도 안타성 타구였고요. 볼넷에 이어 여민석에게 우전안타까지 오늘 제구도 정교하지 못한데 구위도 안 좋거든요.

    - 1아웃에 주자 1, 2루. 랩터스 경기 어렵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 그래도 송호일 선수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니까요. 악조건 속에서 경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지켜보죠.

    나는 루다 때문에 짜증이 나는데 오늘 호영 선배 공은 왜 저러지. 제구와 미친 구위로 먹고사는 양반이 두 개가 다 안 되면 어쩌라는 거지.

    아니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해. 저 이루다. 이제 저 아저씨한테 들러붙고 있네. 이것이 진짜.

    - 타석에 4번 변성호입니다. 이번 시즌 성공적으로 4번에 자리 잡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리그에서 귀한 우타거포죠. 지난 시즌부터 자기 스윙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것 같아요. 못 맞출지언정 어설픈 스윙을 하지 않아요. 상대하는 투수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어요.

    수비를 하면서 포수의 사인을 보고 타자의 모습을 보면서 수비위치를 조정하고 타구 준비를 해야 하는데…. 지금 그런 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계속해서 눈에 거슬리는 저 테이블 석의 둘…. 저. .저봐. 지금도 또 둘이 종이 한 장 놓고 쓱싹쓱싹…. 너…. 너….

    - 변성호 파울! 아프겠는데요.

    - 본인이 친 타구에 발 안쪽을 맞았나요? 아파요. 스파이크 위로 맞아서 안 아프다고 생각이 될 수도 있는데 맞아보면 알아요. 얼마나 아픈지.

    잠깐. 타자는 왜 넘어져 있어. 아니. 지금 타자가 문제가 아니라. 너 왜 웃어? 왜 웃는데?

    - 2구를 기다리는 변성호.

    - 소닉스 1위 랩터스와 승차가 더 벌어지면 쫓아가기 힘들죠. 오늘 경기 이기기 위해서라도 경기 초반 잡은 기회 잡아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잠깐… 니들 종이로 얼굴을 왜 가려? 뭐 하는데?

    - 유격수 전진해 들어옵니다.

    - 변성호 선수가 극단적인 우타자 풀히터거든요. 그런데 유격수가 전진해 들어온다? 이런 건 본적이 없는 극단적인 수비거든요?

    - 수비위치 보면 유격수만 들어오고 다른 수비수들의 위치는 그대로입니다.

    - 모르겠네요. 경기 끝나고 물어봐야겠어요.

    안 보인다. 저 종이 넘어 무슨 일이 있는지 봐야 하는데 안 보인다. 내 의지랑 상관없이 발이 앞으로만 나간다.

    - 변성호 타격! 빗맞은 타구가 유격수 앞으로 흐릅니다. 전진해있던 김소전! 6-4-3! 6-4-3으로 이어지는 더블플레이! 1회 초 실점 없이 수비를 마치는 랩터스입니다.

    - 완벽하게 짜여진 각본이에요. 오늘 송호영 선수 컨디션이 좋지 않거든요. 그래서인지 평소 우타자에게 잘 안 던지는 슬라이더를 몸쪽 낮게 던졌어요.

    - 이 공이 슬라이더였군요

    - 슬라이더에요. 슬라이던데 구위가 좋지 않다 보니까 살짝 풀렸거든요. 공이 만만하니까 변성호 선수가 잡아당기는데 타이밍이 안 맞고 궤적이 떨어지다 보니 땅볼이 나왔어요.

    - 땅볼이 나오는데 유격수는 전진수비를 해서 들어와 있었습니다.

    - 그렇죠. 김소전이 계산한 거예요. 배터리가 지금 몸쪽 낮은 슬라이더로 카운터를 잡으려고 한다. 잡으면 좋고 배트에 맞으면 땅볼이 나올 거라는 걸 알고 들어 왔어요.

    - 확실히 다르네요. 괜히 김소전 김소전 하는 게 아니네요.

    - 김소전 선수가 타격에서 워낙 좋은 모습을 보여주니까 팬분들이 타격만 잘한다고 생각하시는데 김소전의 진가는 사실 수비에서 나오거든요. 수비에서 단독으로 상황을 정리해주면 경기하기 쉽죠. 아까 나온 하이점프 캐치보다 이게 훨씬 더 좋은 수비였어요. 대단하네요.

    더블플레이를 마치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면서도 테이블 석에서 눈에 떨어지지 않는다. 너 또 웃어? 웃어? 지금 외간 남자하고 웃어? 이것이 진짜. 너 집에 가서 보자.

    - 김소전 선수 공수교대를 위해 덕아웃에 들어가면서도 시선에 한곳을 향합니다.

    - 하하. 오늘 이루다 아나운서가 경기장에 와있죠? 신혼은 이래야지요. 보기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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