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90화 (190/204)
  • 190화. 개막

    이런 건 몰랐다. 미국에서 한우를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것도 몰랐고, 미국에서 한우를 먹으면 1인당 20인분씩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배가 터지도록 고기를 먹은 선수들이 나에게 눈을 찡긋거리면서 가게 문을 나서자 기다리던 검은 차들이 선수들을 태우고 어디론가 달린다.

    한국의 클럽은 동네 키즈카페로 만들어버리는 천조국의 클래스. 우승하고 기분이 좋은 선수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클럽에서 뛰어다녔다.

    우승하고 클럽에서 노는 건 랩터스만의 전통인데…. 전통도 무시하는 루다…. 쳇 집에 가면 벌을 줘야 하나….

    폭풍 같은 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힘든 대회를 보낸 선수들이 파김치가 되었지만, 분위기만큼은 최고다. 밝은 얼굴로 인천에 내려앉은 선수들. 입국장 문이 열리고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진다.

    “김소전 선수! 양키스와 계약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김소전 선수! 텍사스에서 6년 계약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있습니다.”

    “김소전 선수! 랩터스 팬들을 버리고 미국진출 너무 배은망덕하지 않습니까!”

    좋았던 기억이 한순간에 싹 사라져 버린다. 기레기님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방금 우승하고 온 선수단에게 내 얘기만 묻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오로지 나만을 따라오는 기레기님들 덕분에 예정되어 있던 행사도 전부 취소가 되고 간단한 인사도 못한 채 선수단이 해산한다.

    미국에서부터 루다를 괴롭힐 준비를 잔뜩 해온 나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내 입에서 뭐라도 들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진 기레기님들이 나를 두 겹 세 겹으로 에워싼다.

    “김소전 선수! 피하지 말고 말씀 좀 해주세요!”

    내 옆에 근접 경호해주는 경호팀이 최대한 길을 뚫어보지만 겹겹이 쌓인 기레기님들이 어쩐 일로 포기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즉석 인터뷰가 진행된다.

    “WBC 우승으로 FA자격을 취득하셨습니다. 포스팅 절차 없이 해외에 나가게 되었는데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우승하고 온 선수한테 축하한다. 고생했다 이런 말 없이 자기들 궁금한 거나 물어보는 기자…. 한숨이 나오지만 여길 빨리 떠나기 위해서는 적당히 둘러대야 한다.

    “랩터스 선수입니다. 랩터스에서 운동하는 동안 다른 생각은 머리에 없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전혀 신뢰가 안 가는 대답이지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기레기님들은 반응도 없이 바쁘게 뭔가를 적어간다.

    “랩터스에서는 메이저리그에도 돈으로는 안 밀리겠다며 2군 훈련장을 팔아서라도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끝나고도 국내에 남을 생각이십니까?”

    잠깐…. 우리 2군 훈련장이 이천인데…. 거기 땅값 엄청나게 올랐다고 들은 것 같은데…. 얼마지….

    “이번 시즌 랩터스 선수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입은 대답을 하면서 2군 구장이 몇 평일지 머리를 빠르게 돌린다.

    “그 말씀은 이번 시즌 이후에는 다른 팀을 가겠다는 겁니까?”

    자꾸 도돌이표다. 이것들은 자꾸 나를 못내 보내서 안달이네

    “제 몸엔 초록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독감 주사 맞을 때 빨간 피가 났던 것 같지만…. 이 아저씨들은 그런 거 모르겠지

    “보스턴에서 해외선수 역대 최고액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연간 1,500만 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래도 몸에 초록 피가 흐르십니까?”

    자…. 잠깐…. 얼마? 1년에 1,500만 불? 그게 한국 돈으로 얼마지? 150억? 160억? 170억도 넘나? 그게 말이 돼? 150억이면 우리 팀 1년 연봉총액인데? 그런 거짓말을….

    “랩터스가 그 어떤 팀보다도 많이 제시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듣고 싶은 말을 들었는지 기레기님들이 어디론가 달려가면서 사라졌다. 이제야 움직일 만하네.

    * * *

    “돈 내놔요.”

    “요즘 나보면 돈 달라는 말밖에 안 나오지?”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시작된 랩터스 구단 수뇌부 미팅이 처음부터 삐걱거린다.

    “기사 못 봤어요? 그놈은 신인 때부터 어쩜 그렇게 한결같은지 모르겠어요.”

    “한결같다고? 소전이가?”

    “한결같지요. 한결같이 입만 열면 때리고 싶어져요. 어떤 사람처럼요.”

    랩터스 구단주가 단장의 마지막 말에 순간 한기를 느끼며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왜 못 할 말도 아니잖아. 성적 보면 FA에 200억도 가능하지”

    “4년 200억이 아니라 1년에 200억 달러는 가잖아요.”

    “아…. 그렇지…. 미국은 연봉이 그 정도 하지.”

    모르는 척 멍청한 소리를 하는 구단주를 째려보는 단장. 오늘 한기를 자주 느끼는 구단주가 이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야 하나 잠깐 고민한다.

    “솔직히 말해요. 박현민이랑 같이 김소전 팔아먹으려고 일부러 언론 이용하는 거죠?”

    얼음을 깨 먹다 정곡을 찔린 구단주가 당황해한다.

    “아…. 아니야…. 우리는 미국언론만 이용한다고.”

    “그런데 왜 서울에 있는 기자들이 저러고 있어요.”

    “받아…. 그래…. 미국 기사 받아서 썼겠지.”

    전혀 신뢰할 수 없다는 표정의 단장. 하지만 물증을 못 잡으니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준다.

    “어쨌든 김소전 FA로 800억 준비해줘요. 내가 잡아야겠어요.”

    “맡겨놨어?”

    8억도 신체 포기각서 쓰자고 할 판에 800억을 엄마한테 용돈 받는 것처럼 생각하는 단장에게 구단주가 난감해한다.

    “김소전이 저렇게 질러놓은 이상 최소 1,500만 불 시작이에요. 이것저것 생각하면 연간 200억은 있어야 하니까 연말까지 준비해줘요.”

    여기서 더 반발을 해봐야 이기지도 못할 것을 직감한 구단주가 이 상황을 모면하려 주제를 옮긴다.

    “그건 시즌 끝나고 생각해 보고 그놈은 어떻게 되고 있어? 최강훈이.”

    지금까지 등록선수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은퇴한 범죄자를 묻는 구단주. 질문을 받은 단장이 대답하지만, 기분은 별로 안 좋아 보인다.

    “그놈은 가르치던 선수에게 직접 주사를 놨으니까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거예요”

    “그건 나도 확인했어. 그놈 말고 우리 선수들 올해 들어오는 선수들은 무결한 거야?”

    티 하나 없는 명품을 찾는 구단주에게 화가 나지만 못내 꾹 눌러 참는 단장. 도끼눈을 하고는 구단주를 노려본다.

    “그놈이랑 연결된 선수가 송한규하고 공인진인데. 우선 둘 다 도핑검사는 깨끗해요.”

    “깨끗해야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는 하지만 자기 팀 선수들은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음에 안도하는 구단주.

    “선수들한테도 확인했고, 그때 우리 선수들과 동시기에 다녔던 선수들도 확인해봤는데 이상한 거에 연루될 가능성은 없어 보여요.”

    “완벽하지 않잖아.”

    “세상에 완벽한 게 어딨어요. 이정도 했으면 임금님 수라보다 완벽하니까 이쯤 하죠.”

    뭘 이쯤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하라니 하는 구단주. 이제 생산성 있는 이야기에 돌입한다.

    “시즌 준비는?”

    “그런 건 걱정하는 게 아니에요.”

    “어? 걱정하는 게 아니라고?”

    구단주의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던 단장이 선창을 외친다.

    “어차피 우승은?”

    “랩터스.”

    구단주이기 이전에 랩터스 열성 팬인 남자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크게 랩터스를 외쳤다.

    카페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눈초리. 목소리만 듣고 가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도 안 하는 카페 사장님이 다 떨어져 가는 약을 탈탈 털어서 한입에 넣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카운터를 지킨다.

    * * *

    - 2031 프로야구 개막전이 시작되는 잠실입니다.

    - 겨우내 야구계에 많은 일이 있었죠

    - 대한민국팀이 WBC에서 미국과 일본을 제압하면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오랜만에 들어온 잠실야구장. 이제는 여기저기 낡고 보수도 필요한 경기장이지만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야구장을 새로 지어주겠다며 표만 가져가고 실제 지어주지는 않는다.

    난 잠실은 이대로 있는 것도 괜찮은데….

    - 1회 초 3자 범퇴로 1회 말 수비를 막아낸 랩터스. 이제 1회 말 공격에 들어갑니다.

    원정팀이 잠실만 오면 힘들다고 투덜대지만…. 뭐.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난 그냥 여기서만 잘하면 된다.

    - 타석에 이 선수가 나오자 관중들의 함성이 커집니다.

    오늘 무슨 날인가? 내가 좀 잘난 건 알지만 나만 보겠다고 이렇게 모인 거야?

    - 관중들 정말 좋아하네요.

    - 관중뿐만이 아니죠. 오늘 경기장에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잔뜩 들어왔어요.

    우투수를 상대로 개막전 1번 타자로 경기에 나서니 기분이 상쾌하다. 깨끗한 그라운드를 바라보면서 투수의 초구를 기다린다.

    - 초구인데 배터리 간의 사인이 길어집니다. 타임. 포수가 타임을 요청합니다.

    - 지금 12초룰에 걸릴뻔했어요. 재규어스의 배터리 경기 전에 이야기하고 올라왔을 텐데도 김소전을 상대하기가 버거운 것 같아요.

    이게 뭐야. 투수가 1번 타자 초구를 못 던져서 포수가 타임 부르고 야구하러 가는 경우는 처음 보네.

    - 김소전 프리미어 12에서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 대회 최우수선수였죠. 김소전 선수 기록을 보면 시즌 때도 어마무시하게 잘하지만, 가을이 되면 더 잘해요.

    - 그렇습니다. 포스트시즌 성적이 정규시즌보다 확실히 좋습니다.

    - 그런데 말이죠. 김소전의 국제경기성적은 포스트시즌 성적보다 더 좋아요

    - 기록을 살펴보니 지금까지 김소전 선수가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기를 가져왔습니다. 말 그대로 팀을 홀로 이끌고 온 수준입니다.

    적당히들 하지. 초구부터 뭐 그렇게 말이 많아. 그런데 왜 귀는 자꾸 간지러운 거야. 루다가 내 인형 만들어서 침으로 찌르나? 홈경기니까 나는 이따 집에 가서 손가락으로 본인을 직접 찔러야겠다. 인형 만들기는 귀찮으니까.

    - 포수 마운드에서 내려옵니다.

    - 내려오면서도 투수에게 뭔가를 주문하면서 내려오네요

    투수가 불안해하는데 포수까지 같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어쩌려는지…. 뭐…. 우리 팀 아니니까 상관은 없지. 오히려 가운데 몰리는공 들어오면 나야 좋지.

    - 김소전 안타! 초구를 가볍게 받아쳐서 중견수 앞에 떨어트리는 안타를 치는 김소전

    - 올해도 200안타 가나요? 첫 경기부터 좋은 타격을 보여주고 있어요.

    아…. 공이 너무 좋으니까 머뭇거렸다. 이게 문제다. 컨디션이 100%일 때보다 조금 떨어져서 90% 정도일 때 더 좋은 타구가 나오는데…. 아쉽다.

    - 랩터스의 1회 말 선두타자 김소전이 안타로 나간 가운데 노경준 타석에 들어섭니다.

    - 노경준 선수도 이번 WBC에서 매우 좋았죠

    지난 시즌 종종 3번을 치던 경준이도 오늘은 2번으로 전진 배치됐다.

    타석에 있는 경준이만 신경을 쓰는 투수. 아무래도 내가 이런 상황에서 거의 안 뛰니까 확신을 가지고 계신듯하다.

    그러면…. 뭐….

    - 초구 볼. 1루 주자 2루로 뜁니다.

    - 빠르죠

    - 2루롱텍~ 세잎. 세잎입니다. 여유 있게 2루를 훔쳐내는 김소정.

    - 배터리 완전히 당했죠. 머리에 담아두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아무리 타자와의 승부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주자를 놓아주면 무조건 뛰는 거다. 오랜만에 뛰니까 밥값 좀 하는 것 같고 좋네

    - 2구 타격! 노경준의 배트가 불을 뿜어냅니다. 좌중간으로 날아가는공! 펜스 맞고 떨어집니다.

    아오. 이게 안 넘어가네. 이런 게 넘어가야 내가 그라운드에서 산보하면서 덕아웃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 오늘 경기장 찾은 스카우트들 풍년입니다.

    내가 먼저 홈에 들어가고 잠시 후 경준이가 2루에 들어간다. 낮이라 카메라 플래시가 안 켜지지만, 소리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래 응원하는지 알 수 있다.

    쳇…. 아무리 봐도 나보다 경준이 사진 찍는 사람이 더 많은데…. 기분 나빠졌어. 삐뚤어 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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