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89화 (189/204)
  • 189화. WBC (4)

    남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고 여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난 성공한 인생인가보다.

    일본에서 미국으로 넘어오자 공항에서부터 이상한 사람들이 계속 따라다닌다. 단 한시도 빼놓지 않고 스토커처럼 따라붙는 사람들. 연예인들이나 파파라치가 따라다니는 건 줄 알았는데…. 나한테 왜…. 저런 카메라부대가 따라다니는지….

    급기야 KBO에서 배치한 보안요원들을 무시하고 내 코앞까지 와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건까지 발생한다. 이래서는 도무지 숙소에서 연습장까지 가는 것도 불가능한 사항. 내가 좀 잘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도무지 해결책이 안 보이는 그때 어디선가 군인처럼 보이는 소대 병력이 호텔 안으로 들이닥친다. 그리고는 나를 가운데 놓고는 주변의 잡상인들을 싹 쓸어버린다.

    전광석화처럼 벌어진 작전.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버버하는 나에게 소대장처럼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상황을 설명한다.

    “세계그룹에서 나왔습니다. 미국에 계신 동안 근접 경호하겠습니다.”

    이게 뭔 상황이지? 루다가 일반인처럼 살고 싶다고 이런 요란한 짓 안 한다고 그랬는데….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나와주니까 좋긴 한데…. 이게 좋으면서도 부담스럽고 그러네….

    “형…. 갑자기 형하고 신분격차가 느껴져요. 형…. 지금까지 함부로 해서 미안해요.”

    “신분격차는 무슨. 기레기들이랑 파파라치가 많이 붙어서 루다가 보안요원 좀 보내준 건데. 난 결혼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형…. 말하고 표정이 안 맞아요. 그 거만한 표정은 뭐죠? 더 기분 나빠졌어요.”

    요란하게 경기장에 나와 덕아웃에서 다리 좀 꼬고 앉아있는데 경준이가 와서 괜히 시비를 걸고 간다. 내가 뭐 했다고. 루다가 햇빛 조심하라고 사준 명품 선글라스에 약속 시간 늦지 말라고 사준 명품시계 좀 차고 덕아웃에 앉아있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셀카나 하나 찍어볼까? 시계가 잘 나오게 찍혀야 하는데…. 잘 안되네…. 다시….

    - 파죽지세의 대한민국! WBC 준결승전에서 도미니카공화국마저 7:3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합니다!

    - 최근 국제대회는 우리나라가 휩쓸고 있어요. 더 이상 야구의 변방이 아닙니다. 현대야구의 중심은 대한민국이에요.

    명품의 기운을 받아서인가. 파파라치 카메라의 기운을 받아서인가 뽀록이 터진 안타가 나오면서 경기가 쉽게 풀린다. 경기가 시작되면서 선취점을 뽑아주자 양키스의 선발투수가 공격력은 미국보다 좋다고 평가받던 도미니카의 타선을 꽁꽁 틀어막는다.

    저 사람…. 미국 가더니 한국 있을 때보다 두 배는 잘 던진다. 안 만나는 게 상책이다.

    - 2031 WBC 결승전. 결승에 올라온 팀은 대한민국과 미국입니다.

    - 우리는 도미니카와 경기에서 쉽게 이기면서 올라온 데 반해 미국은 일본과의 경기에서 힘을 많이 뺐어요.

    - 그렇습니다. 미국은 일본과 7:8 케네디스코어를 기록하며 힘든 경기를 펼치고 올라왔습니다.

    - 미국팀도 이번 대회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일본이 미국의 중간계투가 생각보다 약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미국의 경기장에서 미국과 만나는 결승전.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 올림픽에서 한번 경험해 봤던 경기. 나도 그렇고 우리 선수들도 그렇고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형…. 쟤들은 뭐 먹고 몸땡이가 막 이래요?”

    “고기.”

    “저도 고기 먹는데.”

    “너 무슨 고기 먹어?”

    “호주산 와규랑 미국산 프라임. 우리 쁘니가 고기는 잘 골라요.”

    쁘니…. 이것이 또 애칭을 바꿨어…. 이제 알고 싶지도 않은데.

    “거봐. 그게 문제야. 한국 사람한테 가장 좋은 고기는 한우야.”

    “한우는 너무 비싸서 못 먹어요.”

    “그렇지 한우는 한국 사람한테 제일 좋은데 비싸서 잘 못 먹지. 그런데 미국 사람들한테 미국 소는 우리나라 한우 같은 거야. 그러니까 쟤들은 한우 먹고 몸이 좋은 거라고.”

    “아…. 그렇구나. 형 기분 나빠졌어요. 한우 사줘요.”

    “여기서?”

    “빨리 사줘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덤벼드는 경준이…. 내가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가지고… 에효…

    “오늘 네가 홈런 쳐서 이기면 한우 사줄게.”

    “진짜요? 진짜죠? 얘들아~ 오늘 이기면 소전이형이 한우 쏜대~.”

    야…. 야…. 그거. 너만인데….

    선수단이 한우 먹겠다고 다 쫓아오면…. 잠깐…. 선수단이 25명이고…. 이놈들이 보통 10인분 이상씩은 먹으니까…. 한우 1인분이…. 자…. 잠깐…. 엄마한테 돈을 얼마를 보내 달라야 하는 거지…. 망했다.

    - WBC 결승. 결승이라는 이름답게 치열한 승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양 팀의 투수들이 눈부신 호투를 보여주고 있죠.

    - 6회까지 스코어 2:1. 대한민국이 1회와 3회 노경준의 적시타와 김소전의 홈런으로 2점을 뽑아낸 가운데 미국은 5회 매튜의 3루타로 만들어진 무사 3루 기회에서 서든웰 선수의 희생타로 1점을 추격했습니다.

    - 매튜의 3루타. 실책으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박승선 선수의 실책으로 봐야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발 임수검 선수가 흔들리지 않고 경기를 잘 막아주고 있어요.

    고기가 걸려서 그런지 선수들이 열심히 하려는 게 보인다. 열심히 하는 건 하는 거고 잘하는 건 다른 문제. 미국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 저쪽도 지난 올림픽처럼 지진 않겠다는 최선을 다한다.

    - 7회 초 1사 이후 대한민국 좋은 기회를 맞습니다.

    - 여기서 점수를 벌려주면 오늘 경기 쉽게 갈 수 있어요.

    내가 1번으로 나가면 타석에 많이 돌아오니까 출루를 많이 할 수 있어 좋긴 한데 그만큼 내 앞에 주자가 없는 상황이 많이 발생해서 주자의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

    그런데 어쩐 일로 7회 초 7번 타자가 간단하게 죽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8번 타자님께서 깜짝 2루타를 치시고 9번 타자님이 공에 몸을 들이대 맞아주시면서 나한테 타점을 올릴 기회를 만들어 주신다.

    이런 얼마 안 오는 기회.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한다.

    - 7회 초 1사 1, 2루. 미국의 투수 바뀝니다.

    - 투수 바뀌죠. 홀트 선수 올라오네요.

    - 미국의 구원투수 홀트입니다. 올 시즌 미네소타에서 25세이브를 거두면서 마무리로 자리 잡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 강력한 직구를 바탕으로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던지는 선수인데 변화구는 보여주는 용도로 사용하고 사실상 직구 원 피치 투수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 직구라면 우리 김소전 선수가 강하지 않습니까?

    - 김소전의 직구 대응능력은 메이저에 가도 최상급이 아닐까 생각이 들거든요. 심지어 공이 빠르면 빠를수록 타격성적이 좋아지는 선수예요. 이번 타석 기대를 해보겠습니다.

    타석에 나가보니 마운드에 웬 짐승이 올라온다. 미국이 아무리 자유의 나라라지만 짐승을 야구 시키는 짓을 하다니. 저 녀석이 불쌍해서라도 빨리 끝내줘야겠다.

    - 홀트 158! 158km가 찍힙니다.

    - 아직 선수들 컨디션이 다 올라오지 않았을 텐데 158을 던지네요. 지난 시즌의 성적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거죠.

    오호…. 이 녀석 귀엽네. 짐승이 야구를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제법 쓸만한 공을 던지네. 던지는 폼부터 난잡하게 힘으로 찍어누르는 게 딱 예전 경준이 같은 느낌이야.

    - 김소전 씩 웃으면서 2구를 기다립니다.

    - 공이 빠르긴 하지만 초구는 많이 빠졌거든요. 공 하나 보면서 칠 수 있다는 느낌이 오는 것 같아요

    이봐. 와인드업하는데 다리 올라가는 게 뻑뻑하잖아. 투수는 부드러운 게 생명인데. 그러니까 마운드 올라오기 전에 스트레칭부터 잘해야 한다니까. 운동의 기본이 스트레칭부터인데…. 하긴. 짐승이 이정도 하는 것도 대견하지.

    - 2구 160! 3월에 160을 기록하는 홀트 선수입니다.

    - 직구는 명품이네요. 구속 구위 뭐하나 빠지는 게 없어요.

    - 하지만 제구는 조금 부족한 모습입니다. 연속으로 볼 두 개를 기록하는 홀트.

    - 저 정도 공이면 제구 무시하고 한복판으로 던져도 타자들 대응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홀트 선수도 그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문제는 상대 타자죠.

    - 그렇습니다. 지금 타석에는 김소전이 있습니다. 이번 대회 최고의 타자 김소전이 홀트의 무서운 공을 보면서도 여유 있는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 이게 블러핑인지 아닌지 투수는 모를 거예요. 제 눈에는 김소전 진짜 여유가 있는 것 같거든요. 김소전의 모습은 저공을 치겠다는 게 아니라 칠 수 있다는 느낌이에요.

    귀여운 녀석. 몸이 그렇게 딱딱해서 어쩌냐. 타이밍 맞추라고 끊김 동작도 일정하게 가져가 주고…. 이러면 형이 너무 쉽잖아.

    - 견제. 1루 견제

    - 좋은 타이밍의 견제죠. 포수 에드가선수가 1루 견제 잘 시켰어요

    아…. 조련사가 내 뒤에 앉아계셨구나. 그렇다면 앞에 공 두 개도 일부러 뺀 거야? 제구가 안 되는 거야? 그게 조금 궁금하지만, 모른다고 해도 결과가 달라질 것 같진 않은데.

    - 3구…. 보시죠. 김소전의 타구입니다.

    - 설레발인 것 같지만 오늘 경기 승부를 결정짓는 홈런이네요.

    - 스코어를 5:1로 벌리는 김소전의 쓰리런. KBO의 최고타자가 세계무대에서도 절대자로 군림하는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나 치기 좋으라고 타이밍도 하나 둘 셋에 딱 맞춰서 던져주는 직구. 180, 190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160 정도면 치기 딱 좋은 공이지. 그것도 보더라인에 걸치는 것도 아니고 한복판에 그대로 들어오는데. 땡큐다.

    맞는 순간 배트와 나와 공이 하나 되는 느낌. 칠 때마다 느끼지만 루다랑 밤에 장난칠 때보다 더 기분이 찰떡같고 좋다. 이 기분을 천년만년 느끼기 위해서라도 야구 죽을 때까지 할 거다. 아니 죽어서도 할 거다.

    - 6-4-3! 6-4-3으로 이어지는 더블플레이! 경기 끝났습니다. 최종스코어 5:3! 최종스코어 5:3으로 미국을 꺾고 WBC 우승을 차지하는 대한민국입니다!

    - 한번은 운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계속되는 건 실력이죠. 우리나라가 최근 나간 국제대회에서 진 적이 없어요. 이제는 우리가 일본이나 미국보다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억지에요. 이제 우리도 세계 수준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이야기해도 됩니다. 이번 대회 열심히 해준 선수들 고맙네요. 고맙습니다.

    아오. 마지막에 공이 글러브에서 살짝 놀아서 놓칠뻔했네. 여유 있게 천천히 하는 척했지만, 여유는 무슨 공 한 번에 못 잡아서 그런 건데…. 그래도 이따 누가 물어보면 타자가 발을 빨라도 첫발이 느려 보여서 여유 있게 했다고 사기 쳐야지….

    역시…. 내 얼굴과 이런 순발력이면…. 배우를 해야 했었어. 그럼 1,000만은 순식간인데….

    “형~ 뭐해요? 가야죠~.”

    “그래~ 가자. 고생했다.”

    “흐흐…. 고생은요. 형~ 고기 언제 먹어요? 여기서? 아니면 서울 가서? 서울 가면 다들 뿔뿔이 흩어지니까 여기서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상식까지 다 하고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 경준이가 다가와 깜빡하고 있던 무서운 소리를 늘어놓는다.

    “너 오늘 홈런 못쳤잖아”

    “형! 우리가 우승했는데 주장이 이럴 거예요? 한우 예약도 다 했단 말이에요!”

    “아…. 여기도 한우를 파냐?”

    “그럼요. 여기 LA이에요. 형이 말만 하면 바로 고기 올릴 수 있어요.”

    여기가 무슨 서울이냐? 미국에서 그런 게 가능하다고? 그게 말이 돼?

    “자. 잠깐…. 나 전화 한 통화만 하고.”

    내 체크카드가 해외에서 사용이 가능하긴 하지만 통장잔고가 저 무지막지한 놈들을 먹일만큼 충분하지는 않다. 그러니까 엄마한테 전화해서 돈 좀 부쳐달라고 해야지

    “어…. 엄마…. 그게 무슨…. 엄마…. 그거 내 돈이야…. 내 돈을 왜….”

    우승하고 기분 좋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있어서는 안 될.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이건…. 안 되는 일이야…. 왜…. 엄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결혼했으면 너희 살림은 너희가 알아서 해야지. 너 통장이랑 예전부터 갚고 있는 빚까지 다 루다한테 줬으니까 루다한테 전화해. 아니다 옆에 있으니까 통화해.”

    이…. 이럴 순 없다…. 엄마…. 그거 내 돈이야… 루다 돈이 아니고…. 내가 열심히 운동해서 번 내 돈이라고….

    “왜? 돈 필요해? 얼마? 뭐하게?”

    “내…. 내 통장을 왜…. 왜….”

    “어차피 재테크 이런 거 하나도 모르잖아. 그리고 살림 안 해봐서 모르나 본데 우리 둘이 살아도 돈 들어갈 데가 많아. 아껴 써야 해. 그러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세상 이렇게 착한 마누라가 없어요. 얼마가 필요한지 말해.”

    내…. 내 연봉이 올해 7억5천이다…. 7억5천…. 이게 모자라서 아껴 쓴다고? 그리고 네가 방송국에서 받는 연봉에 성과급도 많다며….

    “우…. 우승 회식을 내가 쏘기로 했는데…. 회식비가 필요해서…. 아니. 내가 내 돈으로 고기 사 먹는데 이런 얘기까지 해야 해?”

    전화를 하다 화가 막 치밀어 오른다. 내가 내 돈 쓰는데 엄마도 아니고 얘한테 허락을 받아야 한다니….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런 거 있으면 진작 말해야지. 알아서 10분만 기다려. 우리 신랑 어디서 모양 빠지게는 안 할 거니까. 어머니~ 우리도 오늘 고기 먹을까요? 신랑 우승했다고 혼자 고기 먹는다는데 우리도 고기 먹어요~.”

    저…. 저…. 여우 같은 것. 어디서 가면을 쓰고 우리 엄마를 홀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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