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87화 (187/204)
  • 187화. WBC (2)

    - 4회 말 12점을 뽑아내며 빅이닝을 만들어낸 대한민국. 고척에서 치러지는 본선 1라운드를 쉽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 3회까지는 좀 답답한 모습이 있었는데 타선이 한 바퀴 돌면서 우리 선수들 실력이 나오고 있어요.

    타선 한 바퀴를 잘 틀어막던 선발이 경준이에게 맞고 비틀거리자 상대의 약점을 파악한 우리 팀 하이에나들이 물고 뜯는다.

    내 도루를 앗아간 경준이를 욕하기도 전에 터져 나오는 안타들. 분명 3회까지는 다들 컨디션이 별로인 모습이었는데 한번 불붙으니 멈출 생각을 안 한다. 그러면 나도 은근슬쩍 한 숟가락 얹어야지….

    - 4회 말 공격에서 노경준의 홈런과 김소전의 홈런이 백미였습니다.

    - 그렇죠. 노경준의 투런 홈런이 타이밍이 늦었음에도 타고난 힘으로 넘겼다면 김소전의 투런은 공을 앞에다 세워놓고 완벽한 타이밍에 때려서 넘겼어요.

    - 오늘 고척에 몰려든 스카우트들은 김소전 보러왔다가 노경준까지 확인해야겠습니다.

    - 노경준 선수도 이미 김소전 선수와 같은 에이전트에 소속되어 있죠. 랩터스는 불안하겠어요.

    타선이 터지며 기세를 올리자 선발투수도 기운을 낸다.

    - 루킹삼진! 폭스의 이성식! 5회까지 단 60개만 던지면서 독일의 타선을 잠재웁니다.

    - 이번 대회 투구 수 규정이 있죠.

    - 본선 1라운드에서는 65개에 투구 수 제한이 걸려있습니다. 1라운드를 통과하고 도쿄에 가면 투구 수가 85개로 늘어납니다.

    - 그리고 준결승과 결승에서는 투구 수가 100개까지 늘어나죠.

    0:12. 선발이 무실점으로 5이닝을 막았다. 아직 투구 수 5개 정도 여유가 있지만, 선발투수는 이미 아이싱하고 마사지를 받으러 들어갔다.

    불펜에서 슬슬 몸을 푸는 롱릴리프. 이미 승패가 기울어진 경기. 몸을 푸는 선수에게 긴장감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 안타! 주자 1, 2루. 5회 말 또다시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내보내는 대한민국입니다.

    - 이러면 콜드게임도 가능할 수 있어요.

    - 5회 15점 이상, 7회 10점 이상이면 콜드게임이 선언되는 이번 대회입니다.

    타석에 나가는데 뒤에서 듣지 말아야 할 소리가 들린다.

    “형~ 그냥 형이 끝내주세요~ 파이팅~.”

    타석에 들어갈 때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데 내 뒤 타자의 부담스러운 응원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 투수 그냥 가나요? 버티기 힘들 텐데요.

    - 마운드에는 케빈, 타석에는 오늘 안타와 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김소전입니다.

    - 우리 선수라 그러는 게 아니라 마운드의 투수와 김소전 선수와의 실력 차이가 상당하거든요. 독일이 힘들 상황인 건 맞습니다만 첫 경기부터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음 경기가 힘들어질 수 있어요.

    음…. 저공을 어떻게 치지….

    - 초구 스트라이크. 초구 지켜보는 김소전입니다.

    - 한복판 실투인데 김소전 선수가 놓쳤어요. 점수 차가 난다고 집중력이 조금 흐트러지는 것 같은데 그러면 안 됩니다. 끝낼 때 끝내야 해요.

    역시…. 다 알겠다. 덕아웃에서부터 본 결과 저 투수의 투구폼, 투구 궤적, 회전, 스피드까지 다 알겠다. 모를 수가 없다. 공이 저따위로 느린데…. 느린데 너클볼도 아닌 게 회전도 그다지 많이 걸리지 않는다.

    잘 봐줘서 고등학생 수준, 실상은 전국대회 중학생들도 저 정도는 던질 것 같은데….

    - 2구 파울. 1루 관중석으로 크게 날아가는 파울입니다.

    - 파워는 충분한데 타이밍이 안 맞네요.

    문제는 공이 안 온다. 느려도 너무 느리다. 던지는 공이라고는 중력에 영향을 받는 것 같은 직구와 뭔가 꿈틀하는 느낌이 있는 슬라이더인데 투구폼도 크게 달라 뭘 던지는지 알려주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 공이 안 온다.

    내 인내심의 한계가 끝날 때야 겨우 홈플레이트 앞에 도착하는 공.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배트에 시동을 걸지만, 눈치 없는 팔이 너무 빨리 빠져나와 공을 때린다.

    너무 일찍 맞아 1루 관중석으로 날아가는 타구. 눈에 보이는데 못 치니 화가 난다.

    - 파울. 또다시 파울을 만들어내는 김소전. 오늘 독일 투수들을 괴롭히는 김소전입니다.

    - 4회랑은 다르게 타이밍을 못 맞추는 기분이 들긴 합니다만, 지금까지 보여주던 것과 다르게 상대 투구 수를 길게 끌고 간다는 게 고무적이네요. 김소전이 더 무서워져서 왔어요.

    아오. 짜증이. 진짜. 저거 왜 안 맞냐. 별별 짓을 다 해도 안 맞네. 무슨 공이 올 생각을 안 해.

    “형~ 이성식 선배가 그만하고 집에 가재요. 그냥 쳐요.”

    우이씨. 그게 되면 내가 벌써 쳤지, 안되니까 그렇지…. 잠깐…. 나도 너처럼 쳐볼까?

    발을 평소보다 좀 더 넓게 벌리고 바닥에 강하게 꽂아 넣는다. 무릎을 살짝 굽히고 팔은 귀 뒤쪽, 파워포지션에 올려놓고 공을 기다린다. 투수의 손에서 떠나는 공이 천천히 날아와 홈플레이트 앞에 보이는 순간 허리를 비튼다.

    허리의 회전과 함께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는 팔. 머릿속으로는 경준이처럼 다운스윙을 하려고 했지만, 몸에 새겨진 DNA가 몸을 비틀어 접으면서 배트를 하늘로 치켜올린다.

    - 김소전~ 김소전의 타구~ 까마득하게 날아갑니다.

    - 이게 뭐죠? 김소전의 타격폼이 바꿨어요.

    - 고척의 한가운데를 넘기는 김소전의 대형홈런! 5회 말 기어이 15점을 만들면서 콜드게임을 일궈내는 대한민국입니다.

    - 김소전선수 이따 물어봐야겠어요. 이런 타격을 하는 선수가 아닌데…. 허허. 저게 사람인가 싶네요.

    경준이 타격폼 봐주면서 몇 번 연습해보기는 했지만, 실전에서는 이렇게 처음 쳐봤는데…. 나랑 안 맞는다. 타구에 체중을 더 실어주지 못하는 기분이고 배트를 돌리는데 뭔가 짜릿함이 없다. 가끔 저런 도무지 내 폼으로 극복이 안 되는 투수 나올 때나 한두 번 해볼까…. 이건 못하겠다.

    - 이번 대회 우승 후보 단숨에 도약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해 도쿄로 왔습니다.

    - 본선 1차 라운드에서 무시무시한 전력을 보여줬어요.

    - 전 메이저리거와 트리플에이 선수들이 포진한 독일과 이탈리아를 5회 콜드게임으로 격파하고 힘든 상대로 예상되던 대만마저 7회 콜드게임으로 이기고 올라왔습니다.

    - 투수들이 잘 막아주는 가운데 타선이 불을 뿜었어요. 특히나 1번과 2번에 배치된 랩터스 테이블세터의 역할이 컸어요.

    - 그렇습니다. 그중에서도 자타공인 리그 최고의 타자인 김소전의 활약이 눈부셨습니다. 그 결과 지금 이 도쿄돔에 메이저리그 거의 대부분 스카우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놈의 인기가 바다 건너 일본까지 넘어왔다. 한국에서보다 더 움직이기 어려울 만큼 많은 기자가 따라와서 자꾸 말을 건다. 구단에서 미리 경호원들을 붙여주지 않았으면 경기장 들어가지도 못하고 기레기님들 사이에 갇혀서 3박 4일은 인터뷰를 했었을 것 같다.

    - 본선 2차 라운드는 1차보다는 조금 더 강한 팀들이 올라왔습니다.

    - 일본과 캐나다 그리고 쿠바가 같은 조로 들어왔어요.

    - 우리가 절대 질 수 없는 일본, 그리고 메이저리거들이 주축이 되어있는 캐나다와 아마 최강 쿠바가 같은 조입니다.

    - 상대 팀들이 강하긴 하지만 우리도 전력이 더욱 보강됐어요.

    - 그렇습니다. 2차 라운드부터는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투수 이시윤과 내셔널리그 최고의 투수 임수검이 합류했습니다.

    - 임수검 선수야 검증이 된 선수였지만 지난 시즌 이시윤 선수의 선전이 눈에 띄죠. 양키스의 선발진이 무너진 가운데 실질적인 1선발 역할을 수행해 줬어요.

    - 16승 6패의 이시윤과 19승 2패의 임수검이 합류한 대한민국. 오늘 마운드에는 양키스의 기둥 이시윤이 캐나다를 상대합니다.

    서울에는 오지도 않고 바로 일본으로 날아온 대한민국 국가대표 원투펀치. 이번에 회사 이름도 바꾼 에이전트 형이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비싼 선수들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

    WBC라고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출전한다고 사기를 치지만 이미 여러 번 해보면서 WBC 출전한 선수들이 다음 시즌에 얼마나 죽을 쑤는지 증명이 됐던지라…. 진짜 비싼 선수들은 나오지 않는다.

    적당히 잘하는 선수들. 그중에서도 올해 자기 실력을 어필해서 내년에 FA로 비싸게 팔려 가야 할 선수들 나온다.

    미국팀들도 그럴진대 양키스와 다저스의 최고의 투수들이 이 판에 끼어들었으니…. 상대 팀들은 긴장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 이시윤. 1회 초를 가볍게 막아냅니다.

    - 대회 준비를 착실히 잘한 듯해요. 당장 내일 개막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공 너무 좋네요.

    나랑 경준이야 항상 1:1훈련하는게 일상이야 1년 내내 시합 뛸 수 있을 정도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지만, 보통의 선수들은 지금 이 시점에서는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시기이다. 그래서 이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도 완벽한 컨디션이라고 보기는 힘든데…. 저…. 제정신 아닌 투수는…. 100%다.

    “투구 수 조절하냐?”

    “제한이 있으니까요.”

    “3구 3진으로 9이닝 던지면 81개면 되는데?”

    “다음 이닝은 삼진 세 개 잡아 오죠.”

    1회 초를 공 6개로 2땅-우플-3땅으로 막고 내려온 동부의 투수에게 서부의 투수가 괜한 말을 툭 던진다.

    누가 들어도 웃자고 하는 농담이지만 당사자들 사이에 사뭇 진지한 기운이 흐른다.

    여기 있다가는 숨 막힐 것 같다. 얼른 장비 차고 나가야지….

    - 1회 말 대한민국의 공격입니다. 1번 타자 김소전.

    - 지금의 김소전은 누가 나와도 막기 힘든 타자예요. 심지어 1차 라운드를 거치면서 고질적인 약점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도쿄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가 되네요.

    도쿄돔 몇 번 와봤다고 이제 편하다.

    - 캐나다의 선발 로버트입니다. 지난 시즌 필라델피아에서 6승 9패. 평균자책점 4.34를 기록했습니다.

    - 지난 시즌 성적이 좀 아쉽죠. 필라델피아 선발진이 무너진 가운데 고군분투 해준 건 인정해야겠지만 그래도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에요.

    - 현지에서는 이번 시즌이 필라델피아에서 함께하는 마지막 시즌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 프렌차이즈 스타이긴 하지만 연봉에 비해 성적이 안 좋아요. 최근 성적이 좋지 않은 필라델피아는 고액연봉자를 내보내고 리빌딩에 들어가는 게 합리적일 수 있어요.

    타석에 들어가 투수를 바라보는데 투수가 날 잡아먹을 듯 바라본다.

    WBC가 큰 대회일 뿐만 아니라 선수라면 언제나 이기고 싶어 하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결승전도 아니고 저 정도로 투쟁심을 불태우는 건…. 좀…. 과한데.

    - 초구 몸쪽 높게 들어옵니다.

    - 김소전 그대로 흘려보내죠. 저건 볼이라고 확신하는 거예요.

    XX. 누굴 죽이려고. 너무 놀라서 피하지도 못했네. 너 그러다 내 잘생긴 얼굴에 맞으면 어쩌려고 그딴 공을 던지는 거야!

    - 2구. 2구도 몸쪽에 바짝 붙습니다.

    - 김소전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아요. 기세에서 밀리지 않네요.

    와…. 진짜…. 공이 미쳤네. 밋밋하다고 생각한 공이 어떻게 홈플레이트에 다 와서부터 움직일 수가 있지? 이정도면 움직임이 이시윤보다 좋은 거 같은데? 볼에서 볼로 빠졌으니까 다행이었지 스트라이크로 오다가 볼로 빠졌으면 배트 나갔다. 우와

    - 파울! 김소전 파울. 또다시 투수를 괴롭히나요?

    - 이번 대회에서 김소전선수가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이죠. 엄청난 선구안과 엄청난 커트 능력. 안 그래도 무서운 선수가 단점이 없는 선수가 됐어요.

    사람이 던지는 공이 맞나? 다른 것보다 회전이 너무 미쳤는데?

    - 다시 한번 파울. 포수가 맞았습니다.

    - 파울타구에 포수가 맞았죠. 아프겠어요

    아. 공 끝 진짜 좋네. 그나저나 포수 약골이네. 그 정도는 안 아픈 척해야지….

    배트를 맞고 포수마스크를 맞고 홈플레이트 앞으로 떨어진 공. 공을 집어 들어 심판에게 건넨다.

    어…. 어…. 이게 뭐야…. 왜 안 떨어져.

    공을 건네는 나와 공을 건네받는 심판. 둘이 같이 야구공을 마주 잡고는 눈으로 대화를 나눈다.

    - 무슨 일이죠? 주심이 마운드로 오르고 있습니다.

    - 글쎄요. 투수 동작에 이상한 점이 있었을까요?

    사기꾼 XX. 너 딱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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