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86화 (186/204)
  • 186화. WBC (1)

    “남편아. 내 손가락 좀 볼래?”

    징글징글하다. 스프링캠프 취재를 나온 아나운서가 적당히 하루 이틀 보다 다른 팀도 가고 해야지 우리 팀에만 붙어 지냈다. 그것도 모자라 선수단 돌아가는 비행기에 같이 타고 간다.

    이걸 요청한 방송국도 이상하고 허락해 주는 구단도 이상하다. 선수의 프라이버시 이런 건 생각도 안 하고 억지로 옆자리를 만들어서 같이 태운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할 거다.

    “아시안게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쉽, 올림픽, 프리미어12, 반지가 네 개밖에 없다. 그치?”

    내 반지를…. 왜 다 네가 끼고 있냐….

    “내 손가락은 다섯 갠데, 반지는 네 개 어떤 생각이 들어?”

    생각은 무슨 생각 내 보물상자를 강탈당해 화가 날 뿐이지

    “내가 아시안게임 우승을 두 번 했거든. 집에 반지 하나 더 있을 거야”

    “이게 확! 같은 대회는 한 개로 치는 거지. 말의 맥락을 이해 못 해요.”

    맥락이고 뭐고 내 반지 도로 내놔라.

    “이 마지막 손가락에 내가 뭐가 필요하겠어?”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 뭐 이런 거? 날 괴롭히지 않겠다는 그런 약속?”

    “어허. 아직 진짜 괴롭힘이 뭔지 안 당해 봤구나.”

    “WBC 반지 하나 남았다. 추위에 떨고 있는 내 새끼손가락에게 4년을 더 기다리게 하는 그런 짓을 했다간 4년 동안 손가락의 저주가 있을 거니까 생각 잘해라.”

    손가락의 저주는 뭐냐…. 그리고 아시안게임 반지 하나 더 있다니까…. 그거 껴….

    미국에서 인천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오로지 새끼손가락으로 괴롭힘당할 내 모습을 떠올리면…. 괴로워했다.

    - 오랜만에 열리는 WBC입니다.

    - 그동안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었어요. 그러다 자꾸만 떨어지는 야구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자 올해 대대적으로 대회를 준비했어요.

    - 그렇습니다.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KBO도 야구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본선 1라운드를 고척에서 열리도록 준비했습니다.

    - 아무래도 우리 선수들이 우리나라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게 확실한 어드벤티지가 되겠죠. 이번엔 잘할 거라고 믿고 있어요.

    아직은 몸을 만들어야 할 3월.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들이 컨디션을 급격하게 올리면서 경기를 준비한다. 이미 스프링캠프 때부터 몸을 준비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평소보다 빠른 페이스에 몸 상태들이 정상으로 보이진 않는다.

    “소전아. 겨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소전아 얼굴이 왜 그래? 너 운동 살살 하라니까 겨울에 무슨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했길래 얼굴이 그래?”

    “소전이형. 얼굴이 해골이 됐어요. 살을 왜 뺐어요? 우리 팀이야 형한테 홈런 덜 맞으니까 좋긴 한데…. 형 괜찮아요?”

    내가 다른 팀 선수들을 걱정하는 그것만큼 오랜만에 나를 본 다른 팀 선수들이 날 걱정해준다. 역시 내가 인간관계가 좋아….

    “얼굴 살만 좀 빠진 거야. 걱정들 하지 마 몸 상태 괜찮아. 특히 코어는 더 좋아졌으니까 걱정들 안 하셔도 돼요.”

    내 말에 다들 반응이 별로다.

    “형. 안 그래도 형 코어 좋은데 더 좋아지다니요. 우리 팀을 얼마나 더 패려고….”

    “지금도 미쳤는데 코어가 더 좋아질 수도 있어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운동 방법 좀 공유해줘요.”

    걱정할 땐 언제고 반응들이 왜 이래. 코어 운동법이라…. 내가 코어 운동을 따로 더 한 게 있나? 항상 해오던 거 그냥 했는데. 역시 나처럼 운동 유전자를 타고나야지….

    “특별한계 있나. 밥 잘 먹고 마누라 말 잘듣고 코치님들이 시키는 운동 열심히 하는 게 방법이지.”

    내가 비법을 알려주지만, 전혀 못 알아듣는 선수들.

    “교과서 보고 1등 했어요 하는 것도 아니고. 기분 나빠졌어요.”

    - 고척돔에서 열리는 본선 1라운드. 대한민국은 독일, 이탈리아, 대만과 한 조에 묶여있습니다.

    - 독일과 이탈리아가 야구를 안 할 것 같지만 WBC 규정이 독특하죠? 국적 허용범위가 굉장히 넓어요. 독일과 이탈리아 출신의 부모님이 있으면 출전할 수 있어요.

    - 그런데도 이번 WBC에 현역 메이저리거의 출전이 많지 않습니다.

    - 경기 일정 때문에 그렇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11월이 아니라 3월 하는 대회다 보니 선수들이 시즌을 일찍 준비하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선수들의 시즌 준비 루틴이 다 깨져버려요. 이미 이전대회들에서 그럼 문제가 많이 나타났었죠.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몸 상태가 다들 제각각이다. 3월에 대회가 있어 준비한다고 한 선수들임에도 선수들 간의 페이스 격차가 크고 아직 공잡을 상태가 안된 선수들도 보인다. 이래서는…. 힘든데….

    - 고척에서 열리는 WBC 본선 1라운드. 대한민국과 독일의 경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우리 팀 선수들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지다가도 상대 팀 선수들의 훈련을 보며 안도감을 내쉰다. 3월에 야구하는게 우리만 힘들겠어? 상대도 힘든 건 똑같을 거다. 그럼 집중하는 팀이 이긴다. 할 수 있다.

    - 독일도 물러서지 않고 잘합니다.

    - 야구는 결국 투수노름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어요. 선발로 나온 필립 선수의 공을 우리 선수들이 쉽게 공략하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 팀 선수들의 컨디션도 안 좋지만 상대 팀 선수들의 컨디션도 그닥 좋아 보이진 않는다. 한 사람만 빼고…. 저 투수…. 마이너에서 뛰던 투수라고 하는데…. 짧게 떨어지는 스플리터가 꽤나 애먹게 한다…. 그럼 전략을 바꿔볼까….

    - 4회 말. 대한민국의 공격 1번김소전부터 시작합니다.

    - 1회 초 잘 맞은 타구가 투수 직선타가 됐어요. 타격감은 나쁘지 않은 것 같거든요. 한 바퀴 돌았으니까 이번엔 결과를 내줬으면 좋겠어요.

    3이닝을 27개로 막아버린 투수. 투수의 공도 좋지만 우리 타자들이 급해서 덤비다 나온 투구 수. 우선 이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 파울! 1루 쪽 파울라인을 넘어가는 파울.

    - 살짝 빠진 공인데 커트를 잘했죠. 이러면 투수 괴로워집니다. 던질 공이 없어요.

    - 투수 공 벌써 10개째를 던졌습니다.

    - 타자도 지지 않겠다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거든요. 이 대결 흥미진진하네요.

    보면서 느껴진다. 이 투수 선발을 많이 해본 투수가 아니다. 자기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구종들을 빠른 카운트에서 빠르게 던지면서 승부를 가져가려고 한다.

    다음 타석까지 생각하는 셋업따위는 없다. 그런 걸 할만한 구종도 없다. 그저 직구와 스플리터. 두 개로 어떻게든 결과를 내려 한다.

    그러니 실험을 한번 해봐야지. 네가 가진 밑천 다 꺼내 봐라.

    - 또다시 파울. 필립 선수 표정이 다시 한번 굳어집니다.

    - 타자가 앞으로 칠 생각이 없다는 듯 비슷하기만 하면 다 끌어당기고 있거든요. 투수 괴로워요.

    메이저도 아니고 마이너 선수라는데 공이 무슨 이시윤 공 같은 게 들어오네. 메이저 가면 저런 선수들이 득실거린다는 거 아니야.

    - 또다시 파울! 파울로 끊어냅니다.

    - 15구째 파울을 만들어 냈어요.

    - 오늘 필립 선수 이닝당 9개씩 던지고 있었거든요. 4회 말 김소전의 두 번째 타석에 15개를 던졌습니다.

    - 이번 대회 선수보호룰이 독특하죠. 투수의 제한투구수가 있어요.

    - 그렇습니다. 1라운드는 65개, 2라운드는 85개, 준결승과 결승에서는 100개입니다.

    - 그러면서 50개 이상 던지면 4일, 30개 이상 던지면 1일 쉬게 되어있어요.

    - 김소전의 16구. 또다시 파울로 끊어냅니다.

    - 완전히 빠진 볼인데 그걸 커트해냈어요. 투수 내보내고 싶은 것 같은데 타자가 허락을 안 하네요.

    재미있다. 처음에는 투수 투구 수가 너무 적어 풀카운트 정도까지만 괴롭히려고 시작한 건데 하다 보니…. 이거 재미있네.

    - 또다시 파울! 17구를 다시 1루 관중석으로 날려버리는 김소전.

    - 투수 괴롭네요. 투수 괴로워요. 특히나 독일에 투수진이 굉장히 약하거든요. 선발투수 필립이 내려가고 나면 올라온 다른 투수들이 마땅치 않단 말이에요.

    투수가 화가 많이 나 보인다. 저 화나면서 짜증 내는 표정. 그러니까 더 재미있다. 투수를 괴롭히는 게 이렇게 재미가 있다니…. 내가 이런 걸 재미있어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니…. 그래서 루다가 밤마다 나를 괴롭히는 거구나…. 다음엔… 나도 한번….

    - 18구!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대한민국의 첫 안타 김소전이 만들어냅니다.

    - 한복판 직구였어요. 한복판 직구를 힘들이지 않고 안타로 만들어냈어요.

    - 오늘 해외 스카우트들이 고척에 많이 찾았습니다. 지금 카메라에 잡히는 사람은 양키스의 스카우트라고 합니다.

    - 김소전선수 이번 시즌이 끝나면 어떤 식으로든 해외 진출이 가능하거든요. 이번 대회 결과에 따라서 포스팅으로 가느냐 FA자격을 취득해서 가느냐 두 가지 방안이 남아있을 뿐이에요.

    -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해외 진출 역대 최고금액은 기정사실이고 일본의 선수들보다 많이 받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 김소전은 실력으로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리그에서도 최고의 선수이지만 지금까지 출전한 모든 국제대회를 우승으로 끌고 간 선수예요. 메이저리거 선수들보다 못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요.

    이런…. 이런 짓을…. 순간 유희에 빠져…. 이런 안일한 타격을 하다니…. 한복판에 들어온 공을 순간 파울을 칠까 홈런을 칠까 고민하다 어정쩡하게 때려서 단타를 만들다니…. 이러니까 내가 루다에게 항상 혼나는 거다….

    반성해야 한다. 루다한테 혼나지 않기 위해 이런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 주자1루 타석에는 노경준입니다.

    - 최근 랩터스에서는 두 선수를 떼어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국가대표팀에서는 다시 테이블세터로 붙여놨어요. 기인환 감독은 두 선수가 1, 2번에서 뛰어줘야 생산성이 더 좋다고 얘기하고 있거든요. 기인환 감독의 생각이 맞는지 보죠.

    타석에 타자가 들어왔는데 투수 놈이 타자랑 싸울 생각은 안 하고 나만 노려본다.

    억울해? 왜? 어쩌라고? 억울하면 이시윤처럼 삼진 잡던가. 어디서 나한테 눈싸움을 걸어. 내가 밤마다 루다랑 눈싸움을 수천 번씩 하는 사람이야. 너 같은 착한 눈망울로는 날 이길 수 없어.

    - 1루 견제! 투수 1루 주자 김소전을 견제합니다.

    - 주자의 리드가 길죠. 김소전 선수 오늘 야구 참 악랄하게 하네요.

    - 투수에게 공 18개를 던지게 하고는 1루에 나가서 리드를 길게 끌고 나오는 김소전. 이 선수가 왜 KBO 최고의 선수인지를 WBC에서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네. 투수 친구. 나한테 그렇게 신경 쓰면 경준이가 화낼 텐데

    - 피치아웃! 1루 주자 김소전 움직이지 않습니다.

    - 4회에 투구 수 너무 많아요. 필립 선수 이렇게까지 반응할 필요가 없는데. 경기해야죠. 김소전에게 너무 끌려다니면 야구가 안 돼요.

    오호…. 너 이 녀석. 메이저 못 가는 이유가 있었구나. 슬라이드 스텝이 전혀 안 되네. 주자가 있는데도 발만 덜 들지 상체 움직임이 그렇게 크면 2루 잡을 수 있냐?

    - 공 빠지고 포수 2루 롱텍~ 주자 넉넉히 살아 들어갑니다. 도루에 성공하는 대한민국. 답답하던 경기를 바꾸기 시작하는 김소전입니다.

    - 김소전선수 스타트가 빠른 것 아니었는데 확신을 가지고 뛴 것 같아요. 투수에 관한 연구가 많았던 것 같아요.

    쉬운데. 오늘 야구 되는데? 3루도 뛰어 볼까?

    - 주자 또다시 스타트. 노경준의 타격! 좌측담장! 좌측담장! 좌측담장을 넘어갑니다! 노경준의 투런홈런으로 앞서가기 시작하는 대한민국! WBC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움직입니다.

    - 노경준도 잘 치네요. 기다렸다 완벽하게 받아쳤어요. 김소전에 노경준. 이번 시즌 랩터스 무섭겠어요.

    아…. 이번엔 스타트도 빨랐는데 경준이 이 눈치 없는 놈. 형이 관심받는 꼴을 못 봐요.

    너 덕아웃들어가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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