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84화 (184/204)
  • 184화. 신입생

    “단장님 안 바쁘세요?”

    “바쁘죠.”

    “바쁘신데 한국 안 들어가셔도 돼요?”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인데 여기서 할 일이 많네요.”

    “감독을 너무 못 믿으시는 거 아닙니까?”

    “감독님은 믿죠. 감독님은 믿는데 선수들 중에 못 믿을 놈들이 몇몇 있어서요.”

    “선수들이 단장님만 나타나면 무서워하고 있어요.”

    “자기들이 잘하면 무서울 게 뭐가 있다고요. 그러고 보니 신인들 오늘 스프린터 체크해야 하는데. 잠깐 다녀올게요. 감독님은 오태수 바뀐 타격자세 좀 잘 봐주세요. 손이 빨리 덮이더라고요.”

    단장이 자기보다 선수들을 더 잘 파악한다고 생각한 감독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배팅케이지로 발을 옮긴다.

    * * *

    “와…. 경준아…. 이번 신인들 장난 아니다. 어디서 저런 애들이 왔냐?”

    “형도 그렇죠? 저도 처음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려서 그런지 애들 뛰는 게 달라요.”

    작년엔 좌우 데칼코마니 같은 중간 투수들이 들어와서 깜짝 놀라게 하더니 올해는 미친 피지컬로 훈련장을 뛰어다니는 투수와 타자가 나타났다.

    어디서 저런 선수들이 튀어나오는지…. 우리나라에 야구하는 학교도 몇 개 안 되는데…. 그게 다 내가 잘해서….

    “형 신인들 스프린터 측정한다는데요. 구경하러 갈까요?”

    “그. 그럴까?”

    오전에 훈련을 열심히 했겠다. 잠깐 쉬면서 신인선수들 구경하는 것도 다음 시즌 준비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절대 손바닥에 굳은살이 떨어져 아파서 그러는 게 아니다.

    “와…. 저 XX들 미친 거 아니에요?”

    “야. 후배한테 저 XX가 뭐냐.”

    “지금 욕 안 나오게 생겼어요. 저놈들 육상을 해야지 왜 야구를 하고 있대요?”

    “너는 왜 야구하는데?”

    “학교에 야구부밖에 없었었어.요”

    “쟤들도 그렇겠지.”

    “아….”

    똑똑한 내가 항상 모자란 경준이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있는데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몰려온다.

    “김소전 선수, 노경준 선수 여기서 뭐 하죠?”

    “다…. 단장님. 안녕하세요.”

    랩터스에는 예전부터 전해 내려온 조수아 단장에 대한 전설이 있다.

    조수아 단장이 운영팀 과장을 하던 시절. 시도 때도 없이 훈련장을 돌아다니면서 선수들과 1:1로 야구배틀을 떠 싸그리 나락으로 보내버렸다는 전설.

    그때는 랩터스가 꼴찌를 전전하던 때지만 그래도 지명받고 들어온 프로선수들인데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믿기 힘들지만 여러 증언을 종합해 보면 일정부분 사실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었는데….

    오늘 그 실체를 보았다.

    “송한규! 바로 퍼져있지 말고 일어나서 근육 풀어! 처음부터 버릇을 잘 들어야 해!”

    “공인진! 너 뒤뚱거리는 거 알아 몰라? 좌우 밸런스가 안 맞아서 그래. 끝나고 트레이닝팀에 가서 확실히 상담받아!”

    어지간하면 저 민간인이 뭘 알아 라고 무시할 말이지만…. 진짜 저놈들 상태를 보고 이야기하는 단장의 말이니 무게감이 다르다.

    진짜 저 사람…. 프로선수만큼 운동 잘하는 거 아니야?

    “주장이면 나보다 먼저 선수들 상태 이야기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오우…. XX…. 왜 불똥이 나한테까지 튀는 거야.

    “단장님. 저희 코치님들이 다 보고 있습니다. 이런 건 월권입니다.”

    “월권은 무슨. 우리 코치들 거의 다 나한테 야구로 깨진 사람들인데. 내가 주장 약점도 다 읊어줘?”

    내 약점? 내 약점이야 워낙 많아서….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반인 여자한테 야구로 질까 봐…. 이런 생각을 가졌다가도 어딘지 모르게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단장님을 보고는 마음이 꺾인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넌 그게 문제야.”

    뭐야…. 진짜…. 무섭게 왜 그래.

    “넌 도전정신이 부족해. 항상 그게 부족해. 사람이 독기가 있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보겠다 이런 게 있어야 하는데. 넌 그게 없어.”

    사람이 바른 방법을 써서 이길 생각을 해야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겠다니….

    “그런데 올해 들어온 선수 중에 저 둘은 좀 다르네. 쟤들은 피지컬 때문에 뽑았는데 피지컬보다 그 독기에 눈이 가. 소프트웨어는 좋으니까 하드웨어만 완벽해지면 되는데….”

    음…. 소프트웨어만 완벽하면 되겠지요…. 그런데 단장님 왜 그런 요상 망측한 눈으로 저를 보시죠? 저는 이미 품절남인데….

    “주장. 주장이 저 선수들 좀 맡아보는 거 어때?”

    “네? 제가요?”

    “그럼 주장이 김소전이지 그 옆에 노경준일까봐?”

    단장님의 얼굴을 보고 잔뜩 얼어붙은 얼굴의 경준이가 갑자기 자기 이름이 들리자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떤다.

    “저 이미 선수들에게 할 말 있으면 하고 있습니다. 저 친구들도 소홀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런 거 말고라니…. 뭘 원하시나요?

    “저 선수들 구단에서 뽑은 게 아니라 구단주 XXX가 제 맘대로 뽑아서 내가 눈이 안 갔었거든. 그런데 직접 보니까 투박하긴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해 보여서. 그러니 경준이처럼 좀 끼고 살아봐.”

    끼고 살다니요. 그것도 경준이처럼 이라니요. 그건 절대 안 될 말씀이시죠. 그리고 이번에 루다를 끼고 살아봤더니 사람은 키우는 거 아니라는 거 확실히 느끼겠던데요.

    “저는 경준이를 케어해야 하니…. 저 선수들은 경준이에게 맡겨보겠습니다.”

    “그러네. 그게 더 좋은 생각이었어. 소전 선수 주장을 맡더니 머리도 좋아졌네.”

    “형!”

    음. 역시. 내 스마트한 머리를 알아주시는 건 단장님밖에 없구나. 경준이도 이런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어쨌든 귀찮은 건 패스다.

    “그럼 경준 선수 잘 부탁해요. 내가 잡아주고 싶지만 나까지 나서면 신인선수들 기죽을까 봐 그러지 못하겠네요…. 성질대로면 뼛속까지 바꿔주는 건데.”

    말을 하면서 입맛을 다시는 단장님….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도 내 심장이 조여온다. 예전 선배들은 단장님이랑 야구를 어떻게 한 거지….

    “형…. 저 피지컬괴물들 제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인 건가요?”

    “음…. 그런 거 같은데.”

    “형… 쟤들이 제 말 들을까요?”

    “음…. 들으면 나처럼 사는 거고 안 들으면 너처럼 사는 건데…. 이따 잘 설득해봐”

    어디 나까지 물귀신 작전으로 데려가려고. 절대 안 끌려 들어간다.

    * * *

    볼수록 대단하다. 억지로 신인선수들의 멘토가 된 경준이를 케어하느라 나까지 쫓아다니면서 신인선수들을 자주 보게 되었는데…. 진짜 대단하다. 모든 부분에서 그놈의 향기가 난다는 것만 빼고….

    “한규야~ 보고 쳐야지. 지금이야 피지컬이 좋고 반응속도가 빠르니까 보이는 거 다 칠 것 같지만 나중에 체력이 떨어지면 안 돼.”

    충분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몸에 안 맞는 폼으로 야구가 아닌 노동을 하는 어린이들. 코치님들과 함께 이 어린이들을 미래를 바꿀 계획을 세운다.

    “코치님 시간은 많잖아요. 이번에 들어온 선수들 머리도 좋아요. 경준이보다 훨씬 괜찮은 녀석들이니 길게 보고 팀에 도움 되는 인재로 키우시죠.”

    말없이 내 의견에 동조하는 경준이. 이제 자신의 멍청함을 순순히 인정하는군….

    “소전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빠르게 준비시켜야 한다.”

    “코치님. 저 녀석들 갓 들어온 햇병아리들인데 시간이 왜 길지 않아요? 좋은 피지컬만 믿고 지금처럼 플레이하면 얼마 못 가 다쳐나갈 거예요.”

    “후…. 그러겠지. 저런폼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강훈이 밖에 없을 테니까.”

    “그렇죠.”

    계속해서 진하게 풍겨오는 그 사람의 냄새…. 잠깐 반짝하는 거라면 모를까? 그 사람같이 야구하는건 다른 사람은 절대 불가능하다.

    “거기 출신이라고 티 내는 것도 아니고…. 왜 거기만 갔다 오면 다 저렇게 될까요?”

    “응 뭐가?”

    갑자기 아는척하는 경준이. 너 뭐 알고 있구나.

    “쟤들 거기 출신이잖아요. ”

    “어?”

    “지명받고 최강훈 아카데미에서 몇 번 코칭 받았다는데요. ”

    어쩐지…. 그럼 그렇지. 그렇지 않고는 저렇게 그 사람의 향기를 짙게 낼 수가 없지.

    “이놈들 왜 나한텐 거기 다녔다고 얘기 안 했지?”

    “형이 물어도 안봤잖아요.”

    “안 물어봐도 얘기해줘야지. 너도 알았으면 얘기했어야지.”

    뭐 레슨장을 다니던 당구장을 다니던 안될 건 없지만 그래도 나한테 얘기를 안 했다는데 괜히 기분이 상했다.

    “야구 다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지 뭘 그런 걸 얘기해요. 형도 결혼하고 첫날밤 이야기 안 해줬잖아요. ”

    “야! 그런 걸 어떻게 얘기해! 수치스럽게….”

    “수치요? 형…. 취향이 그런 쪽이었어요? 형이 이상한 건 알았지만 취향이 그런 쪽이었다니….”

    “너 학교 다닐 때 국어 안 배웠냐? 내 말을 왜 그런 식으로 해석해!”

    야구도 못하는 게 국어도 못해가지고…. 내가 결혼하고 첫날밤에 당한 범죄를 이상한 취향이랑 엮다니… 으…. 소름 돋는다.

    “봐봐. 형 봐봐요. 얼굴. 지금 이상한 상상 했죠. 봐봐. 첫날밤 생각만 해도 좋았네. 형 말해줘 봐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현기증은 내가 난다.

    “소전아! 가자! 빨리 본관으로 가야 해”

    날 더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경준이를 노려보고 있는데 매니저 형이 나타나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려고 한다.

    “무슨 일 있어요? 감독님이 찾으세요?”

    “아니 KADA에서 나왔어. 너 검사받으래.”

    “휴. 가야죠. 한두 번도 아니고.”

    미국까지 불시 점검 나오신 도핑위원회. 검사관님들 고생하시는데 어여가서 도와드려야지. 가서 검사받고 경준이를 잡아야지.

    “어이~ 신입생들. 한규~ 인진이~ 너희들도 따라와~.”

    전수검사는 스프링캠프 시작하자마자 했으니까 그렇다 치고 오늘 같은 표적 검사는 지난 시즌 성적이 나오는 선수들 위주로 하는데 어쩐 일로 신인들을 타겟으로 잡았지?

    우리 팀 선수들 어지간하면 다 해봤으니 신인들 잡아다 지금부터 관리하려고 그러나?

    “어? 형 저는 안 해요?”

    “경준아. 넌 아니다. 오늘은 소전이, 한규, 인진이 딱 셋이다.”

    “괜히 아쉽고 기분 나쁘네요.”

    아쉽고 기분 나쁘게 뭐 있냐. KADA도 네 실력을 보면 약 먹고 나온 거라고는 절대 이해하지 않는 거지. 너 성적은 뽀록이다. 이런 거 증명하는 거다. 아~ 기분이 상쾌해진다. 가서 검사 잘 받아야지~.

    * * *

    “감독님. 한국 돌아가 봐야겠어요.”

    “그러셔야겠네요. 저 두 친구는 어떻게 할까요?”

    “감독님 생각은 어떠세요?”

    “의심만으로 처벌을 할 순 없습니다.”

    “우선은 정상적으로 훈련에 참여시키죠. 검사 결과도 깨끗하니까요! ”

    스프링캠프를 처음부터 끝까지 진두지휘할 생각이었던 단장이 마음을 고쳐먹고 한국에 들어가기로 한다.

    처음에는 훈련장에 시어머니가 돌아다니는 게 탐탁지 않았던 감독이지만 훈련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이 여자가 얼마나 야구를 잘 아는지, 그리고 선수 한명 한명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알게 되면서 생각이 많이 변했다.

    특히나 감독이 뭐라 트집 잡을 수 없는 고참들을 휘어잡는 솜씨를 보면서 팀 성적 안 좋을 때 특별인스트럭터로 고용해야 하나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에서 터진 대형 사건. 그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구단 최고 지도자가 직접 움직여야 한다.

    * * *

    “형…. 형 큰일 났어요!”

    “뭐가? 정새현과장이 또 너 보고 싶다고 울다가 눈이 부었어?”

    “그거야 항상 있는 일이고요. ”

    나보다 결혼을 먼저 해야 했던 커플의 투덕거림을 들어주는 것도 주장의 임무라지만…. 저 투덜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 버겁다.

    “그럼 뭔데?”

    “최강훈이 그 XX가 말이죠.”

    걔가 이 시점에 왜 튀어나와?

    “학생들한테 약을 놨대요. 먹는 거 말고 주사를 놨대요.”

    “뭐? 뭐라고 이 미친 XX야?”

    “형. 제가 아니고 최강훈이요.”

    개가 똥을 끊지…. 하.

    “형. 문제가 또 있어요. ”

    “뭐가 또 문젠데? 그 약 맞은 애들이 우리 팀에라도 왔어?”

    “네.”

    “뭐?”

    “왔다고요.”

    “우리 팀에 약쟁이가 왔다고?”

    “한규하고 인진이가 거기서 야구 배웠다잖아요. 얘들 자격 정지시키라고 난리에요.”

    아…. 그랬지…. 얘들 야구 거기서 배웠지…. 설마…. 진짜? 저 피지컬이 네놈 작품이라고? 도대체…. 최강훈…. 넌 어떤 사람인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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