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82화 (182/204)
  • 182화. 결혼

    “에라이…. 이 등신아.”

    “말 다 했어!”

    “아니.”

    “안 했다고? 야! 너 진짜 이럴 거야!”

    “밥을 입안에까지 떠 넣어줬는데도 못 먹으면 어쩌라는 거야! 됐다. 내가 박복해서 그렇지.”

    왜 네가 박복한데? 박복한 건 나지?

    “집에 가서 씻고 기다리고 있어. 데리러 갈 거니까.”

    “왜! 오늘은 왜 또 오는데?”

    “쫑알대지 말고 딱 준비하고 있어. 나갔는데 괜히 씼는다 챙긴다 그러면 죽는다. 나 기다리는 거 딱 질색인 거 알지?”

    막무가내. 진짜 얘를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용히 연수원을 나와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루다가 부른다.

    너는 내 머리에 CCTV를 달아 놓은 것도 아니고…. 뭐 이러냐….

    시간을 끌어봐야 욕만 먹을 것 같아 서둘러 나가니 그동안 타고 다니던 내 차와는 다른 무광의 석탄 같은 스포츠카가 서 있다.

    “타!”

    “이건 못 보던 거다?”

    “오늘은 이런 거 타 줘야 하니까 오랜만에 끌고 나온 거다. 시간 없어. 타.”

    점점 나를 막대하는 것 같은 루다….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어디 가는데?”

    “옷 맞추러.”

    “옷? 무슨 옷?”

    신호 때문인지 아니면 뒤차 엿먹이려고 하는 것인지 급브레이크를 밟는 루다.

    “나 오늘 예민하다 건들지 말아라.”

    “그…. 그래….”

    이렇게 설명해주면 되는걸…. 무섭게 굴고 있어….

    “오늘 내 웨딩드레스하고 너 턱시도 픽해야 하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따라오라면 조용히 따라올 것이지 옆에서 쉴 새도 없이 쫑알대고 있어!”

    “아…. 알았어…. 조용히 갈게….”

    성질은 진짜…. 잠깐…. 그런데…. 뭘 픽한다고? 웨딩드레스? 턱시도?

    “루다야 잠깐. 지금 뭐 한다고?”

    “드레스 맞추러 간다고. 내가 1차 선별은 했으니까 넌 옷만 입어보면 돼. 나 필살 다이어트 중이라 기분 더럽거든. 나 신경 쓰이게 하지 마라.”

    다이어트? 뺄 데가 어디 있다고…. 그나저나 오늘 하루 피곤하겠네…. 내가….

    알 수 없는 골목을 굽이굽이 돌아 들어가더니 발렛을 맡기고는 그리 대단치 않은 건물로 들어간다. 평범한 문 뒤에 숨은 돈이 흘러내릴 듯한 로비…. 서 있는 그것만으로도 여긴 돈을 퍼부어야 할거라는 게 느껴진다.

    “루다왔네~ 신랑이 이 사람이야? 실제로 보니…. 좋네…. 이목구비도 자유분방하고…. 단점 커버해야 할 것도 많고…. 디자이너가 할 게 많고 참 좋은…. 좋다.”

    저…. 아줌마…. 날 보고 좋다고 하는 거죠? 그렇게 이해하는 게 맞는 거죠? 그런데 왜 표정은 똥 씹은 표정이죠?

    “신랑 옷은 피터가 책임지기로 했으니까…. 난 음…. 그렇구나. 어차피 피터 스타일 뻔하니까… 루다야. 정말 괜찮겠어? 옷으로만 해결이 될 게 아닌데….”

    “괜찮아요. 신랑이야 그저 부케보다 조금 중요한 소품이니까요. 나만 주인공이면 돼요.”

    “그래 신부가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이리 와. 준비 끝났어. 신랑도 이쪽으로 와요~.”

    부케보다 조금 중요한…. 내 결혼식에 나는 들러리라는 거야 뭐야?

    지친다. 너무 힘들다. 너무 피곤하다. 똑같은걸 계속 보고 똑같은 리액션을 계속하는 게 너무나도 고되다. 방송국 방청객들은 이 짓을 어떻게 하는 거지….

    “그래 이렇게 선을 살리는 게 더 좋다. 루다는 어때?”

    “이게 좋네요. 어딘지 모르게 더 청순하면서 섹시해 보이고 이걸로 하죠.”

    “신랑은 어때요? 이제 본식 피팅인데 의견 좀 내봐요.”

    웨딩드레스가 한 벌이어야지…. 도대체 결혼은 한 번 하는데 옷을 몇 벌이나 갈아입는 거야….

    “좋아요.”

    “좀 성의 있게 말해봐요.”

    “첫 번째 것하고 이게 좋네요.”

    “첫 번째건 야외촬영 때 입을 거고 이건 본식 꺼 고요. 이거 어떠냐고요. 방금 전 거 하고 비교해서 어때요?”

    “이게 좋네요.”

    방금 전 것과 이거랑 뭐가 다르냐고…. 모르겠다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수백 벌의 옷을 갈아입고 수십 벌의 옷을 골라낸 루다가 나를 끌고 다시 이동한다.

    그리고 도착한 나도 아는 이곳…. 나에게 넝마데기를 입힌…. 그곳이다.

    “삼촌~”

    “루다~”

    “옷은요?”

    “으이그. 오자마자 옷 얘기만 하는 거야?”

    “삼촌 얘가 신랑이에요. 난도가 높잖아요. 걱정된단 말이에요.”

    “루다야. 삼촌 피터야~. 소전이 옷 처음 만들어 보는 것도 아니고. 걱정 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루다 결혼인데 삼촌의 예술혼을 다 쏟아 넣었어.”

    “얼~ 역쉬~ 최고라니까. 야! 뭐해. 빨리 가서 옷 입어봐.”

    내가 이러고 살아야 하는가…. 삶의 의미가 점점 사라져 간다.

    “어때? 루다의 드레스에 맞춰서 만들었어. 겨울바람을 헤치고 홀로 서 있는 루다를 지근거리에서 지켜주는 돌덩이. 느낌 알겠어?”

    뭐? 돌덩이?

    “삼촌…. 너무 좀….”

    “좀…. 좀…. 뭐?”

    “옷이 너무 멋진 거 아니에요? 이러다 제가 눌리겠어요.”

    “하하하. 아니야. 루다야 옷만 보지 말고 거기에 사람이 들어간 걸 같이 봐야지. 드레스 입은 루다가 옆에 있으면 루다가 더 돋보이는 디자인이야.”

    “하긴…. 피터는 옷을 못생기게 만들래도 못 만드니까…. 이정도로 만족할게요.”

    “루다~ 옷은 다 예쁜 거예요. 못생긴 옷은 없어요~. 못생긴 사람은 있어도….”

    자. 잠깐…. 어이 아저씨 왜 나를 봐?

    “삼촌. 다른 옷들도 입어봐야죠?”

    “그럼 이제 시작인데. 자 이쪽으로 와요. 오늘 우리 확인할 옷이 17벌이에요~”

    뭐? 몇 벌? 지금 이 옷도 입는데 20분은 걸린 거 같은데 몇 벌을 입는다고? 안 해. 나 갈 거야.

    야구선수가 야구를 해야 하는데 야구는 못 하고 헛짓거리만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첫날 드레스부터 시작해서 매일 피부과를 갔다가 마사지 샵을 갔다가 반지 치수도 재러 다녀오고, 한복도 맞추러 갔다 오고 시계도 보러가고, 사진도 수만장씩 찍고 뭐 하나 사려고 할 때마다 절차가 이렇게 많냐….

    새벽에 일어나 개인 훈련하고 루다를 만다는 날들이 얼마나 지났을까…. 내 눈앞에…. 내가 잘 아는…. 주례 선생님이 서 계신다.

    * * *

    “어떻게 하는 거냐?”

    “몰라. 할아버지도 아니고 그걸 한다고 하냐?”

    “나도 몰라 XXX야! 나도 무르고 싶다고!”

    “둘 다 조용히 하시고 대응책이나 내놔봐요.”

    시즌이 끝나고 더 바빠진 랩터스의 수뇌부와 스토브리그가 시작됐는데도 미국에 안 가고 한국에서 놀고 있는 에이전트가 한자리에 모였다.

    “대응은 무슨 대응이 있어. 구단주가 밀어주는 결혼인데 그냥 잘하면 되지.”

    “야 밀어주긴 뭘 밀어.”

    “아니야? 세계그룹 기사 나는 거 절반은 네 손에서 만드는 거 아니야?”

    “절반이라니. 난 그냥 소스만 몇 개 던져주는 거야.”

    남자들의 쓸 곳 없는 자랑을 듣던 랩터스 단장이 화제를 바꾼다.

    “결혼이야 주례 선생님이 알아서 잘 진행하실 거고 WBC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WBC야 내가 시즌 끝나고 아픈 애들 꾀어서 나오게 손썼으니까 일본만 이시윤이 잘 막아주면 될 거고 결혼이 문제지. 주례가 연애도 한 번 못 해본 이놈인데.”

    “야! 내가 왜 한 번도 못 해. 나 모쏠아니라고!”

    “아~ 중학교 때 교회 누나 손 한 번 잡은 거?”

    “너같이 클럽에서 여자 만나는 XX가 사랑을 알아?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아냐고!”

    “그랬구나. 그래서 나 클럽 갈 때 쫓아와서 나까지 뻰찌 맞게 하는 거였구나. 가슴속에 피어나는 사랑을 찾으려고 그러는 거였어.”

    “그런 더러운 얘기는 니들끼리 하시고요. 우리 팀 얘기를 하라고요. 내년에 김소전 FA 되는 거 확실해요?”

    서로 주먹 다툼을 하면서 으르렁대는 남자들을 다시 한번 뜯어말린 여자가 꼭 필요한 문제를 묻는다.

    “세상에 확실한 건 없지. 하지만 김소전이 결혼하고 루다가 약속과 다르게 케어하지 못하는 상황만 아니라면 이번 WBC도 우리가 우승하리라고 봐. 내가 미국하고 일본에 작업한 게 아까워서라도 우승해야 해.”

    자기 팀 선수가 포스팅도 아니고 FA로 해외로 나간다는데 흐뭇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구단주. 그 꼴을 보는 단장의 속이 뒤틀린다.

    “한국에 남기면요? 우리가 잡으면 어때요?”

    “뭐? 랩터스가? 랩터스가 김소전을 잡는다고?”

    “내가 구단주를 팔아서라도 돈은 만들어 올게요.”

    “야! 그 구단주가 나야!”

    자기가 팔릴지도 모르게 생긴 구단주가 잠깐 발끈하지만, 단장이 무시하고는 에이전트만 바라본다.

    “조 단장. 지금 시장 상황을 몰라서 그러는데…. 시장규모가 달라.”

    “그러니까 얼마냐고요. 얼마면 김소전 줄 거에요?”

    “어허. 남의 패 보려면 자기 패부터 까야 하는 거 몰라?”

    “패까고 병원으로 실려 가는 것보다는 순순히 까는 게 좋지 않겠어?”

    단장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들은 선수의 에이전트가 한기를 느끼고는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조금 털어놓는다.

    “미니멈 5년에 1억”

    “1억?”

    “미니멈”

    “유에스 달러로 1억?”

    “얘 포스팅도 아니고 FA야. 포스팅비도 없다고.”

    “미쳤구나.”

    “예전에 양키스로 간 다나카가 7년에 1억5500을 받았어. 김소전이 1년에 2천을 받으면 염가봉사지.”

    어이가 없어진 랩터스의 단장이 깊은 고민에 빠진다. 얼토당토않은 금액에 협상의 주도권을 뺏겨버린 단장이 굳게 마음을 먹고 마지막 제안을 해본다.

    “10년 총액 300억”

    “야!”

    “더하기 대한 그룹 사장단급 대우.”

    “조수아! 니가 회장님이라도 되냐! 무슨 그런 걸 걸어!”

    옆에서 구단주가 소리치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고 협상에만 집중하는 단장.

    “미국 가서 사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은퇴하면 한국에 돌아올 거잖아요. 알겠지만 돈만 있으면 전세계에서 살기 가장 좋은 나라가 여기예요.”

    “놉. 금액이 너무 안 맞잖아. 그리고 결정적으로 김소전이 KBO에 있는 건 생태계 파괴하는 짓이야. 나가야 해.”

    “생태계고 뭐고 난 관심 없고 랩터스가 천년만년 우승하는 게 목표니까 딜을 더해보죠. 금액이 안 맞으면 좀 더 올릴 수도 있어요.”

    단장을 보며 어이없어하는 에이전트가 다시 한번 확실히 이야기해 준다.

    “지금 뭐 잘못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난 김소전을 1년에 200억씩 받게 만들 거고, 김소전이 누구랑 결혼하는지 잊었어? 대한 그룹만은 못해도 세계그룹 외동딸의 사위야. 앞으로 삶이 부족하지 않아.”

    “그렇지. 거기다 내가 이번에 작업하면서 이현석 회장의 알짜는 전부 루다한테로 돌렸어. 당장 현금 동원은 몰라도 10년, 20년 후에 배당은 우리나라에서 루다가 가장 많이 받을 수도 있다고.”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터질듯한 단장. 누가 봐도 화가 머리끝까지 난 모습이다.

    “됐어. 안 해. 내가 올해 김소전 개처럼 굴려줄 테니까 그렇게들 알고 있어. 그리고 내년에 김소전 같은 선수 못 뽑아오면 둘 다 심장까지 뽑아버릴 거야. 각오 단단히 하고 준비해!”

    소속 선수의 결혼식을 앞두고 향 피울 날짜를 받은 두 남자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 * *

    “…… 마지막으로 우리 김소전 선수가 처음 트레이드돼서 왔을 때……. 마지막으로 내가 루다 6살 때 화장실을 데려갔는데…. 엄숙한 이 자리에서 옛날이야기를 하는 건 그렇지만…. 세계그룹과 대한그룹의 협력관계가….”

    “삼촌… 끊어… 그만해…”

    “아 오늘의 신부 루다의 성격이 좀 급한 게 있는데 그때가 언제냐 하면 수능을 보던 날….”

    “삼촌… 그만하라고… 나 화낸다.”

    “그리고 루다와의 추억이 또 생각이 나네요. 루다가 먹던 빵을 가져갔더니 화를 내는데….”

    “그만하라고!”

    세 시간째 이어진 주례사를 들으면서 졸았다 깼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옆에서 루다가 소리를 빽 지르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본 광경은…. 하… 안볼란다….

    주례를 하고있는 구단주 형의 마이크를 뺏었든 루다가 뒤를 돌아 자기가 직접 결혼식진행을 하기 시작한다.

    “주례 선생님의 좋은 말씀 잘 들었어요. 루다가 소전이 잘 데리고 죽을 때까지 잘 살 거니까 다들 걱정하지 마시고요. 오늘 음식 맛있으니 많이들 드시고 저희 결혼해서 잘살라고 축복해주세요.”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당황해서 뭐라 말도 못 하고 있는데…. 갑자기 루다가 나를 확 잡아끌더니 시뻘건 입술을 나한테 들이받는다.

    “자! 다들 봤죠? 얘 이제 내꺼니까 예쁜 언니들 관심 끊어주시고요. 지금까지 루다의 결혼식이었습니다~ 안녕~.”

    뭐…. 뭐야…. 이게….

    “야. 가자 허리를 졸라매서 숨도 안 쉬어지는데 삼촌이랑 더 있다간 미쳐버릴 것 같아. 나와.”

    세계그룹 외동딸의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신부가 신랑을 끌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걸 보는 것으로 내 결혼식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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