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81화 (181/204)

181화. 우승 파티

세상은 이해하고 사는 게 아니다. 이해가 안 되는 걸 이해하려고 해도 안 되고 내일 세상이 무너질지언정 오늘은…. 아무 생각하지 않으련다. 여기는 천국일까…. 지옥일까…. 지옥이어도…. 여기 살고 싶다.

“형~ 어떻게 해요? 다들 난리에요.”

“기다려봐.”

언제나처럼 대한 호텔에서 열린 랩터스의 우승축하연. 이제는 소를 잡다 못해 참치에 다금바리 해체 쇼도 동시에 진행하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다지 감흥이 없다.

다들 높은 분들의 훈화 말씀이 짧게 끝나고 다음 일정만을 기다리는 상황. 아니 그 높은 분들도 자신의 사회적 위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음에도 없는 고생 했다는 말만 되뇌이는 상황.

이놈이나 저놈이나 호텔 파티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1년의 노고를 보답받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공간에서 선수단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홀로 감내하는 랩터스의 주장은 아직도 울리지 않는 전화기만 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다.

“형~ 구단주님 벌써 올스타전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후반기하고 한국시리즈 하기 전에는 위치 돌려야 해요.”

“알아. 기다려봐.”

여자친구랑 죽고 못 사는 척을 하면서도 오늘 하루는 연락하지 말기로 하고는 서로 다른 파티에 참석하기로 한 커플. 이 시간이 초조해 미치는 경준이는 계속해서 닦달해댄다.

나도 연락 안 와서 미치겠다고!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는데 갑자기 선수들 핸드폰이 일제히 울려댄다.

“형…. 형…. 여기가 어디예요?”

“몰라 인마! 그냥 거기로 와.”

선수단 전원에 다른 말 없이 위치만 달랑 찍혀 들어온 문자. 이게 뭔가 싶지만, 이 자리에 모인 선수들은 여기를 가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소전아~ 형이 도와준다니까 말 안 듣더니. 여기가 어디냐?”

“저…. 주장이 바꿨으니까 우…. 우리 룰도 바꿔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이…. 이게…. 제가 만드는 랩터스 룰…. 그래요…. 랩터스의 새로운 규칙이에요.”

“형…. 우리 진짜 여기로 가요? 여기가 어디예요? 무슨 연수원? 진짜…. 여기가 어디예요?”

“보면 몰라! 그냥 와.”

“정안 선배…. 다시 주장해주시면 안 돼요? 주장이 팀을 망치고 있어요.”

저…. 저것들이 진짜…. 나도 모른다고 진짜….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른다고….

“다들 적당히 눈치 보고 오세요.”

“형~ 어디 가요~.”

뒤에서 나를 잡으려는 사람들의 눈초리를 느끼면서 걷는 것도 아닌 뛰는 것도 아닌 하지만 엄청 빠르게 빠르게 빠져나왔다. 속에서 천불이 치솟지만, 지금은 택시를 타고 빨리 연수원으로 움직일 시간이다. 잡히면 죽는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택시를 잡아타고 이 사태를 이렇게 만든 범인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를 쳤다.

“빨리 나왔네. 준비는 시켜놨는데 내가 조금 늦을 수도 있겠는데.”

“빨리 나온 게 아니고 연수원은 뭐야! 너 우리 우승 파티가 어떤 의미인 줄 몰라?”

“알지”

“아는데 그래! 하기 싫으면 싫다고 말하지, 이게 뭐 하는 거야! 너 일부러 그런 거지!”

내가 말을 너무 심하게 했나 반대쪽에서 말이 안 들려온다.

“들어? 듣고 있어?”

“듣는다.”

우는 줄 알았는데 우는 건 아닌가 보네.

“그래. 내가 소리 질러서 미안은 한데. 아니 미안한 건 아니고. 하여간 그런데.”

“그냥 닥치고 있어 줄래? 내가 너 우승한 날이니까 꾹 눌러 참고 있거든. 그러니까 나 뚜껑 열리게 하지 말고 조용히 와라.”

“조용히가 아니고….”

“그냥 오라고 이XX야! 난 별짓 다 해서 준비했더니 시작부터 초를 치고 XX이야! 그냥 조용히 와라. 누나 힘들다.”

무슨 여자애가 입이 저리 거칠어서 시집이나 가려는지…. 누가 데려갈지 나 같으면 접싯물에 코 박고 죽는다.

전화기를 뚫고 나온 소리가 얼마나 임팩트 있었는지 택시 기사님이 내 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운전에만 몰두하신다. 나도 적응돼서 다행이지 처음엔 바짓단이 시원해 지곤 했었는데…. 기사님…. 제가 속으로 참 죄송해하고 있어요.

세계그룹에서 운영하는 연수원. 우리나라에서 말만 하면 알만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데니 허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5성급 호텔처럼 삐까뻔쩍하지도, 강남이나 이태원의 클럽처럼 화려하지도 않은 그다지 감흥 없는 무심한 돌덩어리.

참담한 마음으로 현관에서 멀뚱히 서 있으니 누군가 내게 다가온다.

“모시겠습니다.”

뭐야? 이 양복 입은 거대한 사람들은….

덩치들의 안내를 받고 들어간 실내…. 여긴…. 미쳤네….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던 네모반듯한 건물 안에 이런 클럽을 빼다 박은 공간이 있을 줄이야…. 문하나 바깥으로는 쿵쾅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는데 문안은 미쳐 날뛸만한 파티장 그 자체다.

“형…. 이제 왔어요?”

뭐…. 뭐야…. 내가 이놈보다 먼저 움직였는데…. 넌 어떻게 여기 먼저 와있어.

“형 여기 장난 아니에요. 제가 본 클럽 중에 여기가 최고예요. 술도…. 와…. 여기 기본이 몇백만 원씩은 하는 술들이에요! 형~ 역시…. 전 형을 믿었다고요~.”

“그…. 그래…. 많이…. 많이 먹어….”

기본이 몇백이면…. 오늘 얼마가 깨지는 거지? 구단에서 나중에 일정부분 보조는 해준다고 하긴 했는데…. 이 수준은 아닐 텐데…. 나중에 운영팀이랑 이야기해 봐야 하나….

잠시 혼자 머리 아픈 시간을 가지는데 술 취한 누군가의 볼멘소리가 들려온다.

“주장~ 이게 뭐야? 내가 이러려고 한 시즌 죽어라. 고생한 줄 알아~.”

“형. 취했네. 형.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취하면 어떡해요.”

“야! 놔~ 어~ 안놔~ 놔~ 나 아직 말 안 끝났는데~ 놔! 어! 손! 손 때.”

아이고…. 누가 저 선배 술을 먹인 거야…. 생긴 것만 말술이지 소주 반병이면 치사량인데…. 양주 먹였네… 양주먹였어….

“소전아. 우리끼리 이렇게 좋은 거 놓고 먹는 것도 괜찮지. 오늘 노래도 좋고 좋네. 공간이 쪼금 크고, 술 먹는데 조금 심심하고 그래서 그렇지, 좋다.”

그 표정은 좋다는 건가요? 안 좋다는 건가요? 나는 지금 한 병에 몇백씩 하는 술병이 물병처럼 사라지는 걸 보면서 머리가 아픈데요….

디제이가 연신 신나는 음악을 틀어 재끼지만, 우승하고도 어쩐지 흥이 살지 않는 선수들…. 술이 한 잔씩 들어가면서 선수들의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진다.

“주장…. 다 좋은데…. 아니…. 하…. 우리가 주장을 잘못 뽑았어.”

“소전이한테 뭘 바란 건 아니지만…. 돈을 써도…. 이따위로… 에효.”

“주장형~ 우린 술만 먹으면 되는 거죠? 네~ 술만 먹겠습니다. 좋은 술이라 그런지 겁나 써요~.”

쓰면 먹지 말라고! 얼마짜린데 이온 음료 마시듯 마시냐. 야~ 그 아까운 걸 왜 쏟아….

내 정신이 가출하려는 그 순간….

“어~ 뭐야~ 노래도 좋고, 조명도 좋고, 술도 좋은데 여러분 뭐해요?”

드디어 왔다. 이 파티를 망쳐버린 범인…. 너 거기 딱 서라….

문을 열면서 소리를 지른 루다가 디제이 옆으로 뛰어 올라가 마이크를 잡는다.

“랩터스 오빠들~ 나 누군지 알죠~.”

“이루다! 이루다!”

설마…. 너를 모르겠냐….

“오늘 이 파티 준비 루다가 했는데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최고예요~ 이루다! 이루다!”

저…. 저 나쁜 놈들. 아까 나한테 하던 반응이랑 다르잖아!

“에이~ 오빠들 얼굴이 그게 아닌데? 왜 뭐가 부족해?”

“아니야! 없어~ 우린 너만 있으면 돼~.”

“진짜~ 그래도 돼요? 내 친구들 데려왔는데 다 돌려보낼까?”

“아…. 아니지…. 그건 아니지. 오신 손님 보내는 건 경우가 아니지~.”

이러니까 운동선수들이 못 배웠다고 욕먹는 거 아니야? 루다의 장난질에 넘어가는 거 봐…. 진짜 못 봐주겠네.

“와~ 나 속상해지려고 하네. 나로는 부족하다는 거네. 됐어요. 오빠들 마음 다 알았으니까 됐네요. 얘들아! 들어와~.”

문이 열리고…. 우리 선수단보다…. 3배는 많은…. 여신님들이 들어오신다.

“오빠들. 내가 최근에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굶주린 애들로 엄선해서 데려온 친구들아~ 더 설명 해야 해?”

저것의 머리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정상이 아닌 건 확실한데…. 그나저나 엄선해서 저 정도면…. 엄선 안 했으면…. 대대급이냐….

“자~ 오늘 선수들 다 입장하셨으니까 이제부터 몇 가지 공지사항 알려드릴게요~.”

아나운서라 그런 건가 아니면 타고나길 관종이라 그런 건가…. 여기서도 진행을 하고 있네.

“오늘 이 건물 우리가 독채 냈어요. 그리고 오늘 여기 모든 분들 1인 1실이 배정되었어요. 놀다 집에 가셔도 되고 여기서 주무시고 가셔도 되고 방에서 혼자 독서를 하셔도 되고 둘이 보드게임을 해도 되고 뭘 하든 상관없어요. CCTV도 꺼놨으니까.”

“끼아~.”

어지럽다. CCTV를 왜 꺼….

“루다가 다른 사람은 걱정이 안 되는데 딱 한 사람이 걱정이 돼서요. 아무래도 말을 해야겠어요~.”

누구? 누가 걱정이 되는데? 무슨 말을 하려고?

“오늘 파티 랩터스의 우승 파티이자…. 하나 더 있어요.”

뭐야? 뭐가 있어?

“이루다 하고 김소전하고 다음 달 1일 대한 호텔에서 결혼합니다. 그래서 오늘이 김소전 총각파티를 겸하는 거니까 알아서들 잘 가르쳐 놓으세요. 결혼하고 못 배운 티 내면 여기 선수들 다 나하고 면담하는 거예요!”

자…. 잠깐…. 지금…. 너…. 뭐라고 하는 거냐….

“내일 아침 해 뜰 때까지 시간이 모자라요~ 다들 렛츠 파뤼~ 디제이~ 드랍 더 비트~ 루다는 사라집니다~.”

“안돼~ 루다야 가지 마!~ 같이 놀자~.”

“훗. 내가 아무리 쿨하지만 그래도 내 신랑 될 남자가 다른 애랑 붙어있는걸 보는 건 좀…. 그렇잖아요? 그리고 나 없어야 저 모자란 신랑 잘 가르쳐줄 거 아니에요~ 선수님들 부탁드립니다~ 잘 알려주세요~.”

돌부처가 된 나를 뺀 다른 선수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루다가 사라졌다.

“형. 결혼해요?”

“소전아. 이런 건 얘기해야지. 다음 달이면 청첩장 먼저 줬어야지.”

“형이 결혼은 안된다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쯧쯧.”

“형~ 밥은 뭐 나와요?”

몰라! 모른다고! 나도 모른다고!

말도 못 하고 버벅대고 서 있는데 갑자기 화장품 향이 풍기더니 가느다란 팔들이 나른 잡아끈다.

“형부~ 언니가 오늘 형부 확실히 어른 만들라고 시켰어요. 형부는 가만히 있어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자…. 잠깐…. 저…. 언제 보셨다고….”

“어허…. 형부는 가만있으라니까요…. 움직이면 다쳐요…. 아…. 형부라고 그래서 그러는 거야? 오빠~.”

“아니. 오빠? 잠깐…. 오빠는 오빤데….”

내가 버둥버둥 거리면서 어디론가 끌려가는데 뒤에서 이상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형~ 얼굴 터지겠어요~ 왜 이렇게 빨개요?”

“쟤는 무슨 복을 타고나서 여자 넷이 끌고 가냐….”

“형~ 파이팅~.”

시끄러운 음악. 화려한 조명. 내 위속을 채우는 비싼 양주와 끊임없이 나와 몸을 부딪치는 춤사위. 나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즐거움에 몸부림을 치는 동료들…. 그들을 보면서 또다시 술을 털어 넣고 야구 말고도 잘할 수 있다고 울부짖는 내 몸뚱이를 흔들어본다.

깜짝 놀라 눈을 떴더니, 어딘지 모르는 방. 홀딱 벗겨진 체 침대에 처박혀 있는 몸뚱이. 깨질듯한 머리. 눈에 보이는 냉장고를 열어 생수를 콸콸 털어 넣는다.

지금까지 살면서 술 먹고 필름이라는 거 끊겨본 적이 없는데…. 디제이 앞에서 제로투를 추던 이후의 기억이 사라졌다. 물을 마셔가며 기억을 끄집어내지만…. 경준이와 건배를 하다 나를 형부라고 부르는 사람들한테 끌려 디제이 옆에 가서 춤춘 기억이 마지막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 이 꼴로….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니 정갈하게 개어져 있는 내 옷가지…. 그 옆에 핸드폰….

무서운 마음이 가득한 채로 핸드폰을 열어본다…. 전원이 꺼지지도 않았는데… 루다의 연락도 없다.

어쩐지… 루다에게 혼날 것만 같은 기분이 올라온다.

우이씨! 어쩌라고! 지가 이렇게 만들어 놓고는! 하…. 맞다…. 그런데…. 나 루다랑 결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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