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80화 (180/204)
  • 180화. 주장의 임무

    정규시즌이 끝나고 와일드카드와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기다리는동안 1위팀은 차분하게 휴식과 훈련에 매진한다.

    고만고만한 전력의 팀들이 전쟁같은 가을야구를 펼치는 사이 정규리그 우승팀의 한 선수는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전쟁 같은 개인사에 파묻힌다.

    “넌 왜 자꾸 와?”

    “너보러 온거 아니다. 신경꺼라.”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집에 찾아오는 루다. 자꾸 엄마만 보고 사라진다.

    “너 왜 자꾸 오냐고! 우리 엄마하고 무슨 얘기를 하고 가는 거야!”

    “소전아 넌 가서 씻어. 루다는 조심히 가고. 아버님께 인사 잘드려주고. 죄송해서 어쩌냐….”

    “죄송하긴요. 아빠가 바빠서 그러신건데요. 어머니~ 또 올께요.”

    엄마에게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아양을 떨더니 나에게 메롱을 하고 집을 나서는 루다. 저것한테 물어봐야 속 시원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니 엄마에게 물어야 한다.

    “엄마! 루다 왜 자꾸 와요? 무슨 얘기를 하고 가는 거예요?”

    내 질문에 엄마가 혀를 끌끌 차며 한마디 하고 방으로 들어가신다.

    “내가 얘를 낳고 미역국을 먹었으니… 에효.”

    엄마… 왜? 내가 어때서? 나 이번시즌 가장 잘한 야구선수야!

    * * *

    “내 인생 가장 선택하기 어려운 순간이다.”

    “간단하게 생각해. 어차피 거스를 수 없는 순간이면 돈이라도 챙겨야지”

    “넌 사는데 돈이 전부냐!”

    “모르냐?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만 한 게 없어. 복싱을 해봤어야 돈이 좋은 걸 알지. 쯧쯧쯧.”

    “쓸데없는 얘기들 하지 마시고 우리가 이 시점에 이딴 얘기를 왜 해야 해요?”

    “조 단장! 이 시점에 이것보다 중요한 얘기가 어딨어! 랩터스 최대 위기다!”

    가을야구가 치열하게 치러지는 동안 랩터스의 고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랩터스 미래를 결정할 회의를 가진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서로 다른 생각들이 한자리에 쏟아진다.

    “조단장 내가 정리해줄 테니까 잘 들어봐봐.”

    오늘 회의를 직접 소집한 랩터스의 구단주가 현재 상황을 브리핑한다.

    “국가 대표 감독에 기인환 감독님이 다시 선임되면서 내년 3월에 WBC가 열릴 거야.”

    WBC.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라는 야구판의 월드컵. 이 말이 나오자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의 우선순위가 한번에 정리된다.

    “여기서 우승하면 FA자격일수 60일 채워지지. 그말은….”

    “다음 시즌을 마치면 김소전이 포스팅이 아니라 FA로 빅리그에 나갈수있다는 말이지. 하하하.”

    구단주의 말을 받아 이어붙이는 김소전의 에이전트. 랩터스 구단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지는데 반해 혼자만 웃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지금 왜 하냐고요. WBC가 올해 열리는 것도 아니고 시즌 끝나고 내년 3월에 열리는데 지금 무슨 상관이냐고요.”

    “쯧쯧. 단장이 이렇게 선수에게 무관심하니 팀이 잘 돌아갈 리가 있나….”

    현민이가 괜히 깐족대다 조 단장의 불타는 눈빛을 받고는 쭈그리가 된다.

    “그렇지 어차피 이번 시즌이 끝나도 김소전의 신분은 FA도 포스팅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지. 암 그럼. 내년 시즌까지는 확실한 우리 선수지.”

    구단주의 내년 시즌까지는 이라는 말에 단장이 버릇처럼 입술을 깨문다.

    “김소전 잡게 돈줘요.”

    “얼마나?”

    “어이. 아저씨. 얼마면 돼요? 김소전 얼마면 게약해줄꺼에요?”

    순식간에 이방 최고의 갑의 위치에 올라선 에이전트가 거만한 표정으로 단장을 바라본다.

    “선제.”

    “죽을라고!”

    “그럼 나 안해.”

    “진짜 이따위로 할꺼야! 구단주 친구라고 봐줬더니 적당히가 없어! 적당히가!”

    욕을 먹거나 말거나 이 상황이 너무나도 즐거운 에이전트가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는다.

    “조 단장. 팀에 헌신적으로 7시즌 뛴 선수에게 너무하는 거 아니야? 소전이가 6시즌동안 3할5푼에 홈런을 190개나 때려줬어. 거기에 도루도 190개나 해줬고. 이런 선수는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으면서 남아달라고 해야하는거 아니냐고.”

    “그럼 남아는 줄꺼고?”

    “아니.”

    “꺼져.”

    이 상황이 마냥 즐거운 에이전트. 욕을 먹으면서도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워~ 워~ 다들 진정하시고~ 어차피 되지도 않은 얘기를 왜들하고 그래~ 진정 진정~.”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돈내놔요. 김소전 잡게. 야!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진정하라는 소리에 단장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 이 상황이 즐거운 에이전트는 계속 깐족된다.

    “흐흐흐. 돈으로 될까? 돈만으로 되는 상황이 아닌데?”

    “양키스든 보스턴이든 말만해봐. 내가 구단주를 팔아서라도 돈 만들어 올 테니까!”

    난데없이 어디론가 팔리게 될 처지에 놓인 구단주가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한다.

    “조 단장…. 화내지 말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 그럼 뭐가 중요한데!”

    “김소전 1월에 결혼해.”

    “김소전이 1월에… 뭐? 누가 결혼을 해?”

    “소전이 1월에 결혼한다고.”

    구단내 일어나는 모든일을 챙기던 단장이 처음듣는 이야기에 주먹을 부르르떤다.

    “김소전이 몇 살인데 결혼을 해? 누구랑? 설마… 걔?”

    “어. 세계그룹 이현석회장이 대한호텔 빌려달라더라고. 1월에 결혼시킨다고.”

    “와… 이XX들 답없네. 제정신이야? 세계그룹이 동네 구멍가게야? 김소전하고 세계그룹 외동딸하고 왜 결혼을 해?”

    “딸내미가 김소전이 좋다잖아. 나도 말려봤는데 안되더라고. 어쩌겠어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다고.”

    어이가 없어 순간 눈동자가 풀려버린 단장. 냉수를 쭉 들이켜고는 다시 정신줄을 잡아 온다.

    “천천히 설명좀 해봐요. 이루다가 왜 이 시점에서 김소전과 결혼을 하는지 정확히 설명 좀 해보라고요. 설마… 속도위반? 뭐 그런 거야? 내가 선수들한테 여자 조심하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이XX가.”

    점점 입이 거칠어지는 단장을 바라보던 구단주가 말을 얼른 끊는다.

    “아니야! 그런 거. 그런 거 아니라고.”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남녀 사이에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루다가 그런거 아니라고 했어. 아니야.”

    “그럼 왜 이 시점에서 결혼 같은 얘기가 나오냐고요. 지금 결혼할 이유가 없잖아. 한국 나이 스물여섯이 결혼할 나이냐고!”

    옆에 있는 에이전트는 웃고만 있고 이 상황을 설명해야할 구단주는 난감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다.

    한참의 침묵이 이어진 후 결심을 한 구단주가 다시 한번 천천히 설명을 시도한다.

    “2031년 시즌 종료를 기점으로 소전이는 순수 플레이로만 5시즌을 채우게 돼. 그리고 첫 시즌엔 75경기를 채웠지”

    누구보다도 김소전의 등록일수를 정확히 세고 있는 단장이 또다시 입술을 깨문다. 얼마나 세게 깨무는지 입술이 터질듯하다.

    “김소전이 지금까지 적립한 국가대표 포인트가 155포인트. 한 시즌 하고 15점이 남지.”

    “그리고 이번에 60점을 더 받게 되면 첫해도 시즌 인정이 된다는 말씀. 하하하.”

    구단주의 설명에 참지 못하고 끼어드는 에이전트. 단장의 눈에 또다시 불이 켜진다.

    “다 아는 얘기 하지말고. 결론만 말해요. 결론만.”

    “현민이가 또다시 임수검과 이시윤을 국대로 데려올거고, 우리는 금메달을 가져올꺼고 내년에 김소전은 FA로 미국에 나갈꺼라는 얘기지.”

    “그러니까 그거랑 결혼이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 갑자기 이 시점에 무슨 결혼이야기가 나오냐고!”

    옆에서 웃기만 하던 에이전트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명함을 한 장 내민다.

    “단장님. 저희가 이번에 사명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세계그룹에서 투자를 받아 스포츠 전 분야를 아우르게 된 루다앤에이치입니다. 잘 좀 봐주십시오.”

    “뭐… 뭐야? 이게?”

    오늘 충격적인 이야기를 여러번 듣는 단장

    “이현석 회장이 평소 루다 하고 싶은 거 하게 해주는 게 돈 버는 목적이라고 얘기했거든. 루다가 결혼하고 소전이 미국에서 야구시키는게 소원이래. 그래서 현민이 회사를 사버렸지 뭐야. 돈 많이 들었다. 현민이도 이제 서민아니고 중산층은 됐어.”

    단장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간다. 이해가 갈듯하다가도 어딘가 자꾸 연결고리가 안 맞는 이야기들. 생각에 생각을 하다 머리가 터질꺼 같아 구단주를 노려본다.

    “이유가 뭐야? 진짜 이유가 있을꺼 아니야?”

    단장의 낮은 으르렁거림에 흠칫 놀란 구단주. 단장과 눈을 한번 마주치고는 할 수 없다는 듯 숨겨둔 마지막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현석 회장이 재산 다 기부한다고는 했지만, 사람이 어떻게 그래. 이번에 현민이 회사 인수하면서 고급기술 좀 들어가는 거지. 밖으로는 낼 거 다 내고 세계그룹 핵심지분은 다 이 회사로 들어가. 조 단장. 지금이 마지막 기횐데… 현민이 회사 지분 조금 탈래? 내가 수수료 조금만 받을게.”

    “하… 이XX들… 하여간… 안 걸리는 거지? 깨끗한 거지?”

    “어허. 조 단장. 내가 이 분야는 세계 최고야. 내가 다른 재벌 3세들과 다른 점이 뭔지 알아? 난 그놈들처럼 입만 가진 게 아니라 진짜 실력이 있다는 거야. 나 못 믿어?”

    단장의 마음속에서 여러 가지 자아가 싸우다 결국… 랩터스를 사랑하는 자아가 이긴다.

    “사비로 10억만 탈까요?”

    “조 단장 꿍쳐둔 돈 많네”

    “너님이 잘 굴려줬잖아요”

    “하긴 조 단장 돈은 다 내가 만들어 줬지. 조 단장 나만 믿어. 나랑 꽃길만 걷게 해줄게”

    “내가 너님이랑 꽃길을 왜 걸어! 기분 더러워졌어.”

    * * *

    - 투수 바뀝니다. 폭스 역부족입니다.

    - 폭스도 플레이오프를 3경기 만에 끝내고 기세 좋게 올라왔거든요. 그래도 안 되네요. 순수하게 전력 차이가 커요.

    예전 같으면 한국시리즈 기다리는 동안 나이 많은 선배들 휴식하고 치료하느라 변변한 훈련도 못 하는 시간이 길었는데 이번엔 다르다.

    팀의 주축이 나보다 어린 선수들인지라 하루 이틀 휴식하더니 몸들이 쌩쌩해져서 훈련장에 나타난다.

    시즌을 치르면서 본인의 문제점을 찾아내지만, 매일매일 경기하느라 시즌 동안에는 크게 고칠 수 없었던 걸 이번 기회에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고쳐나간다.

    경기 감각도 살아있는데 수정하는 선수들. 스프링캠프 때보다도 훨씬 효과적인 시간이 흘러갔고 이 시간을 알차게 보낸 결과가 한국시리즈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 양규환! 양규환 선수까지 터집니다.

    - 큰 경기 앞두고 타격폼을 잘 안바꾸거든요. 양규환 선수 한국시리즈에 들어오면서 준비 동작이 바뀌었어요

    - 그래서일까요. 한국시리즈에서 장타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 힘으로 치는 건 아니에요. 힘으로 치는 건 아닌데 컨택이 좋아지다 보니까 2루타, 3루타가 나오네요. 좋은 선수예요.

    역시 머리 나쁜 놈들은 반복훈련을 시키니까 효과가 있군… 경준이한테 해봤던 걸 응용하니 선수마다 맞춤훈련도 되고… 기분이 좋다.

    - 최진우 선수에 이어 도순우 선수 등판입니다.

    - 이번 시즌 신인들이죠. 좌우만 바뀐 쌍둥이 같아요. 이렇게 원포인트로 나왔을 때는 타자들 공략이 쉽지 않아요

    - 삼진. 삼진으로 이닝을 마무리하는 도순우. 랩터스 이제 우승까지 2이닝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투수들도 자세 조금만 잡아주니까 잡스러운 동작 사라지고 좋은 공을 뿌린다. 시즌 중에도 방학 같은 게 좀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러면 지금처럼 해줄 수 있는 게 많을 텐데.

    - 고해정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냅니다. 시리즈 전적 4:0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랩터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에 성공합니다.

    - 이번 시즌 너무 압도적이었어요. 다음 시즌엔 다른 팀들의 전력보강이 절실해 보여요.

    다들 행복한 이 순간… 나는… 머리가 복잡하다… 준비가 잘 됐으려나… 내가 용역을 주긴 했는데… 얘가 잘했겠지….

    “형~ 우승했는데 표정이 왜 그래요.”

    “아… 아니야… 기뻐서 그래… 기뻐서.”

    “형 안 기쁜 거 같아요.”

    “아니야… 기뻐… 기뻐서… 그래.”

    “기쁜 거 맞죠? 어디 아픈 거 아니죠?”

    “아프긴 좋아… 좋아서 그래….”

    딴 때는 눈치가 없어도 이런 땐 눈치가 100단인 경준이… 혼자 있고 싶다… 좀 떨어져라….

    “형… 그런데…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데요.”

    “뭐… 뭘….”

    “우리 오늘 우승파티 어디서 해요?”

    “어디서 하긴 대한호텔에서…. 하지….”

    “에이… 형… 랩터스 우승의 이유가 뭐다? 주장의 우승파티다~ 이거 몰라요? 주장~ 우리 우승파티 어디서 해요?”

    이… 이XX가 진짜….

    “어~ 정재현 대리님~ 대리님~ 경준이 오늘 외박해도 되요?”

    “어… 어디? 형… 어… 어디… 쁘니야~ 어디?”

    준비가 됐으려나… 모르겠다… 주장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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