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77화 (177/204)

177화. 개별 교습

처참한 성적으로 아시안게임을 마친 우리 팀 얼간이들이 다음 주 화요일부터 후반기에 들어가기 전 과외를 받고 왔다.

어지간하면 열심히 하려는 놈들 그냥 예쁘게만 봐주려고 했는데 뜨거운 카타르에서 경준이와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아 쓸데없이 오지랖을 부리기로 마음먹었다.

얼간이들이 과외를 받은 다음 날, 다른 때 보다 일찍 훈련장에 가서 개인 훈련을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훈련장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온몸 구석구석 스트레칭을 해주고 스케쥴에 맞춰 쇠질을 하고 조용히 타격연습장에 들어가 피칭머신과의 숨 막히는 싸움을 시작한다.

언제나처럼 박스의 공이 떨어질 때까지 서로 포기하지 않는 끝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으니 훈련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잠시 후 땀에 흠뻑 젖은 나를 보고 인사를 하고는 우르르 몸을 풀러 몰려가는 오늘의 먹잇감들. 딱 기다려라. 내가 이제부터 지옥을 보여주마. 한박스만 더치고… 구단주형이 진짜 비싼 기계라고 하더니…. 저 기계는 고장도 안 나네

나도 모르게 두박스를 더 치고 배팅케이지를 나서니 우리 얼간이들도 슬슬 타격 훈련을 시작한다.

은근슬쩍 뒤에가서 내 정성이 담긴 조언을 던져본다.

“규환아. 홈런타자가 되고 싶어?”

“현범아. 네가 3할 쳐서 뭐 하려고?”

“성신아. 네 얼굴에 겉멋 든 폼이 가당키나 해?”

내가 하나하나 꼬집어서 이야기해 주는데 일부러 그러는 건지 진짜 못 알아듣는 건지 여전히 저 꼴불견 같은 폼으로 배트를 휘두르는 얼간이들… 라떼는 선배 말 이렇게 무시했으면 밤마다 집합이었는데…. 세상 좋아졌다.

에효…. 세상이 바꿨으니 바뀐 세상에 맞게 1:1수업을 해야지…. 내년 연봉에 코치비도 달라고 하면…. 홍시 누나가 싫어하겠지…. 이건 누나 봐서 서비스다….

“현범아. 앞발을 왜 크로스로 바꿨어?”

“네?”

“너 원래 앞발 크게 열고 오픈스탠스로 쳤잖아.”

“아…. 그랬더니 바깥쪽 떨어지는걸 못 쳐서요.”

아…. 생각이 있었구나…. 그런데…. 진짜 바깥 떨어지는걸 못 쳐서 그래? 내가 보기엔 아닌데….

“현범아, 나와봐. 내가 던져줄 게 쳐보자”

“네?”

“기계랑 싸우는 것보다 내가 던져주는 게 더 효과적이잖아 나와봐.”

그렇게 시작된 우리 팀 중심타자와의 라이브피칭. 내가 투수는 아니지만 너 정도는 잡는다.

“형. 크게 맞는다고 화내시면 안 돼요.”

“치기나 하고 얘기해라.”

이 자식. 내가 고딩때 삼진을 밥 먹듯 잡던 1선발 출신이다. 그따위 타격은 왼손으로 던져도 삼진이다.

음…. 아무리 만만해도 쟤가 프론데…. 빌드업은 좀 하고….

초구는 바짝 붙여준다.

“형! 그러다 맞아요. 살살해요.”

“몸쪽! 몸쪽이잖아. 그거 무서우면 오픈스탠스로 바꾸던가?”

“아니에요. 들어오는 공은 칠 수 있다고요.”

“그래? 그럼 이것도 쳐봐라.”

투수가 똑같은 곳에 같은 공을 던져주면 안되는 법 바깥쪽 높은 공을 살짝 빠지게 던져줬다.

‘팡’

“파울이다.”

“아. 형 공 좋네요. 형 너무 무시했어요. 이번엔 제대로 갑니다.”

무시하기는 너 파울 내라고 일부러 거기다 던져준 건데. 어디 경준이만도 못한 눈으로…. 어휴.

스트라이크를 두 개 뽑아냈으니 이번에 결정구를 던져줘야지. 난 괜히 공 하나 빼는 성격이 아니다.

타자 수준에 맞게 각도 큰 커브를 바깥쪽 원바운드로 느리게 던져준다.

큰 각으로 느리게 날아오는 공에 반응하는 타자. 이건 끝까지 불필요도 없다. 넌 끝이다.

“형! 다시 해요.”

“다시? 다시 하면 칠 수 있고?”

“형, 제가 너무 무시했어요. 이번엔 깔끔하게 날려볼게요.”

저놈…. 내가 아무리 야수라지만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날려버린다고? 그딴 폼으로는 절대 못 날릴 텐데.

“내가 던져줄 수는 있는데 너 그 폼으로는 절대 못 친다.”

“형! 저는 이폼이 가장 완벽한 폼이라고 생각해요. 던져봐요. 날려드릴게요.”

경준이 친구 아니랄까 봐 쓸데없는 데서 고집을 부리는 멍청이. 그러면 하늘을 보여줘야지.

“아오. 형. 치사하게 변화구 던지지 말고 직구로 상대해요.”

“직구? 직구는 칠 수 있고?”

이 손님…. 입맛 까다롭네. 주문하는 게 많아.

“형! 치사하게 타이밍을 뺏으면 어떡해요. 다시 해요.”

“너 못 친다니까.”

그래 끝까지 해봐라. 그래야 정신을 차리지.

랩터스 미래의 4번 타자와의 승부가 이어지자 주변에 관중이 늘어난다. 그래 오늘은 모인 네놈들 다 뜯어 고쳐야 하니까 잘 보고 배워라.

“아오! 형. 왜 타자하세요? 투수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네가 못하는 건 생각 안 하고?”

“다시 던져주세요.”

이 정도 슬슬 던지는 거야 경준이랑 하는 거에 비하면 장난하는 것도 안 되는데 1,000개라도 던져줄 수 있지.

“형. 진짜 투수 안 하실 거예요? 이 정도면 아무 팀이나 가도 1선발인데요?”

어휴. 나 투수 보낼 생각하지 말고 네가 잘할 생각을 해야지.

“현범아. 너 다시 오픈스탠스로 바꿔봐”

“네?”

“너한테 클로즈스탠스 안 맞아. 넌 스퀘어도 안 맞고 그냥 오픈스탠스가 딱 맞아.”

“안 돼요”

안되긴 너 지금 꼴을 보고도 모르냐? 내가 왜 공을 던져주고 있는데.

“바깥쪽 약한 건 포기해. 너 배트 나오는 각도가 바깥에 떨어지는 건 칠 수가 없어. 차라리 포기하고 다른 부분에서 강점을 가지는 게 나아.”

“형. 그럴 수가 없어요”

그래 내가 다 이해한다. 선수가 다 잘 치고 싶지. 어디 하나 포기하고 싶은 선수가 어디 있겠느냐. 하지만 넌 지금 포기할 건 포기하고 잘하는 걸 더 잘해야 할 시기다. 아직 너 실력이 안 된다.

“현범아. 너 원래 타격폼이 나쁜폼이 아니야. 너처럼 로파워가 좋은 선수는 그런 타격폼으로 치는 게 훨씬 효과적이고….”

“형! 그런 게 아니라고요!”

“내가 이해한다니까. 형도 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쳤어. 그러니까….”

“그게 아니고요. 폼이 구리잖아요! 쩍벌해서 치는 거 멋이 없다고요. 강훈 코치님이 제 체형에 맞는 가장 섹시한 타격폼을 만들어주셨단 말이에요. 전 이걸로 성공할 거예요!”

내가 사는 세상이 어젯밤에 무너진 게 틀림없다. 어젯밤에 내가 살던 세상이 무너지고 외계인들이 사는 세상으로 순간이동을 한 게 틀림없다.

회귀도 모자라 공간이동이라니…. 신이 있다면…. 쫄딱 망하기 딱 좋은 세상을 만들어냈구나….

하도 어이없어 현범이를 쳐다보다 고개를 돌려보니 주위를 둘러싼 선수들이 보인다. 선수들을 바라보니 그들의 과외받은 타격폼이 머릿속에서 차례로 정리된다.

머릿속에서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폼들을 한 번에 꺼내 비교해보니 이제야 맞출 수 없던 퍼즐이 한 번에 맞춰지기 시작한다.

“선수들. 다들 최강훈한테 과외받은 이유가 보기 좋은 폼을 만들려고 간 거야?”

몇 놈은 킥킥대고 몇 놈은 고개를 숙인다. 말을 안 하지만 암묵적인 동의. 이것들…. 나보다 잘하고 싶다고 과외받는다더니 다 사기였어.

“규환아 네가 들어와 봐”

“성신아. 너 들어와 봐”

선수들 하나씩 불러다 내가 공을 던져주면서 타격폼을 다시 한번 뜯어보았다.

타격폼만 보면 충분히 납득이 될만한 교과서적인 타격폼.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뜯어보면 겉보기만 화려하지, 어설프고 빈공간이 가득하다. 심지어 선수마다 신체조건이 다 다른데 몇몇은 타격폼이 똑같다.

과외를 받으려고 해도 기본 사칙연산은 할 줄 알아야 받는 거지…. 자기 몸이 어떤 상탠지도 정확히 모르는 멍청이들을 상대로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할 필요가 없다. 하나하나 손으로 만져주면서 몸과 맞는 기본자세를 바꿔주었다.

“얘들아. 멋있는 타격폼이 따로 있는 게 아니야. 자기한테 맞는 타격폼을 찾고 그걸로 결과를 내면 그게 가장 멋있는 타격폼이 되는 거야. 형 봐. 형도 교과서적인 타격폼은 아니잖아. 그래도 형한테는 이게 최선이라 이렇게 치는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도 무작정 보기 좋은 타격폼만 고집할 게 아니라 너희들에게 맞는 타격폼을 찾아보자”

내가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주는데 호응을 하는 놈이 하나도 없다. 이…. 가정교육 못 받은 것들하고는….

“알겠냐고요. 선수님들아~.”

“혀…. 형…. 지금 숨쉬기도 힘들어요. 살려주세요….”

이것들… 타격폼이 문제가 아니야. 기초체력이 이렇게 부족해서야…. 이러니 우리가 성적이 떨어지지…. 전력분석팀이랑 코치님들 뵙고 우리 훈련 시간 두 배로 늘리는 거 진지하게 고민해보자고 해야겠다.

후반기가 시작되고 경기가 계속되고, 성적이 조금씩 올라오긴 하지만 여전히 자기 타격폼을 못잡는 선수들을 붙잡아 나머지공부를 시키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리고 길어지는 시간만큼 조금씩 조금씩 선수들의 타격폼이 안정되어 간다.

- 후반기 들어 선두를 질주 중인 랩터스와 최하위 탈출을 시도하는 타이탄스가 만났습니다.

- 최근 랩터스의 기세가 좋죠. 특히나 전반기 막판 주춤하던 타격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 아시안게임을 다녀온 랩터스의 선수들의 기세가 특히 좋습니다.

- 더운 나라에서 경기하다 와서 그런지 8월의 무더위에 오히려 성적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이거든요. 안 그래도 세대교체가 잘됐다고 평가받는 랩터스인데 이 젊은 선수들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상상도 안 돼요.

매일같이 후배들을 붙잡아다 맞춤교육을 시키면서 매일같이 후회의 시간을 갖는다. 경준이의 헛소리에 괜히 쓸데없는 짓을 벌여서 가뜩이나 모자란 훈련 시간이 더 줄어든다.

그것도 모자라 코치님들도 바뀌는 선수들에게 보고 조금씩 조금씩 자신들이 공부한 타격의 색을 입히기 시작한다.

“소전아. 현범이 손목을 조금 더 짜는 게 좋겠지?”

“규환이는 스윙 돌리고 첫발 떼는 게 조금 어색하다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스윙 각을 키위면서 팔로스로를 더 앞으로 뻗으면 첫발이 쉽게 뗄 거 같은데?”

문제는 코치님들도 자기 얘기하기 전에 자꾸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전력분석팀에도 물어봐야 하고 코치님들하고 상의해야 하고…. 내가 야구선순지 행정직인지 모를 업무도 늘어나고…. 분명 주장인수인계 받을 때 이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야구장에 나와 경기하는 그 순간이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된다. 그리고 이 행복한 기분을 그대로 배트에 담아낸다.

- 김소전의 배트가 돌았습니다! 높게 뜬 타구! 쭉쭉 뻗어갑니다.

- 1루 주자 루카스 선수 천천히 뛰네요.

- 넘어갑니다! 오늘도 홈런을 신고하는 김소전! 홈런 선두를 질주합니다.

- 김소전 선수 시즌 내내 타격 컨디션이 좋아요. 꾸준히 안타를 뽑아내면서 홈런도 꾸준히 뽑아내거든요. 이번 시즌 끝나고 나올 결과가 너무 궁금해요.

- 시즌 90번째 경기에서 31번째 홈런을 뽑아내면서 시즌 50개 페이스입니다.

- 허허. 50개. 말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네요.

요즘 나를 위해 야구를 하는 건지 덕아웃의 머리 나쁜 놈들에게 야구를 알려주기 위해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은 저 멍청이들에게 타격 어프로치에 대해 몸으로 보여줬으니 경기 끝나고 특타할 때 조금은 이해하지 않을까? 그런 작은 소망을 가지면서 그라운드를 돌아본다.

- 성현범! 성현범까지 담장을 넘깁니다.

- 오늘 랩터스 되는 날이네요. 김소전에 이어 노경준, 그리고 성현범까지 세 타자가 모두 담장을 넘기네요.

- 하위권 탈출을 꿈꾸던 타이탄스는 경기 어려워졌습니다.

- 투수 바꾸죠…. 추격조네요….

“현범아. 팔을 더 붙여서 나와야 한다니까. 그렇게 바깥쪽을 의식하면 스윙이 퍼져 나오잖아.”

언제부턴가 우리 팀에게 경기 승패보다 더 중요한 게 생겼다. 경기 후에 하는 특타시간에 서로의 이론이 얼마나 맞는지에 대한 심도깊은 토론. 보통은 우리 팀 멍청이들의 우기기로 끝이 나지만, 그래도 저놈들이 타격이라는 거에 대해 시키는 것만 수행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생각한다는 게 어디냐.

그런 긍정적이 마인드로 훈련장에서 선수들을 갈군다.

“형~ 기사 난 거 봤어요?”

“어? 무슨 기사?”

오늘 홈런을 치긴 했지만 좋은 타격폼으로 친 게 아니라 힘으로 넘겨버린 현범이와 뒷손의 위치에 관해 토론을 하고 있는데 연애에 미처 시즌 내내 정신 못 차리는 경준가 나타나 뜬금없이 기사 이야기를 한다.

“우리 팀 요즘 타격감 좋은 게 최강훈이 하는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아서래요. 최강훈 사진도 같이 나왔는데…. 뭐…. 잘생긴 건 알았지만 이렇게 사진발 잘 받는지는 몰랐네요. 진짜 잘생기지 않았어요?”

경고도 없이 나에게 핸드폰 속의 혐짤을 내미는 경준이. 하여간 이놈은 연애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사진 치워라. 갑자기 네 핸드폰 부술뻔했어.”

“형. 안 돼요. 여기 우리 꼬미와 추억이 얼마나 많이 들어있는데요. 절대 안 돼.요”

“헐. 요즘 사진 다 클라우드로 올라가는데 추억은 무슨.”

“형! 여기에는 클라우드에 못 올리는 사진과 동영상이 들어있다고요! 연애를 해봤어야 알지요. 하여간 핸드폰은 절대 안 돼요”

내가 뭐라고 했다고 저렇게 과민반응이지? 괜히 저 핸드폰 열어보고 싶게 만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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