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75화 (175/204)

175화. 금메달을 향한 여정

이 정도면 국제 재판해야 한다.

7월에 중동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어지간한 종목들을 석유로 만든 실내경기장에서 치르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외부에서 해야 하는 종목의 선수들은 하루에도 열댓 명씩 병원에 실려 간다.

최상의 환경에서도 온몸의 힘을 다 쏟아부어 경기를 하고 나면 탈진하는 선수들이 사우나에서 전력으로 경기를 하고 나서는 요단강을 넘었다 들어왔다를 반복한다.

극한의 운동을 하는 선수들이 보기엔 잔디밭에서 산보하는 야구선수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다.

드넓은 야외구장에 탄소중립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에어컨을 풀가동시키며 밤 11시 넘어 경기하고 있지만, 고작 배트 세 번 돌리고 들어오는 타자들이 타석을 마치고 덕아웃에 들어오자마자 아이스챌린지를 펼친다.

타자들이 이런데 마운드에서 중노동을 하는 투수들의 상황은 더 참혹하다.

그나마 투수진의 여유가 있는 팀들은 선수들을 짧게 짧게 끊어가면서 버텨보지만 그렇지 못한 팀은 투수들이 마운드에서 토하면서 던지는 참사가 벌어진다.

어떤 놈이 이런 데서 야구하자고 했는지 그놈을 야구장 전광판 꼭대기에 매달아 놔야 한다.

- 경기 종료. 대한민국이 필리핀을 2:0으로 승리했습니다.

- 승리했죠. 이겼습니다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기예요.

- 카타르의 더위에 우리 선수들 경기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 환경이 열악하지만 집중할 땐 집중해줘야 하거든요. 오늘 경기도 김소전의 홈런과 볼넷으로 나가 2루와 3루를 연속으로 훔친 노경준의 도루 말고는 답답한 경기였거든요. 우리 선수들 힘들지만, 더 기운 내줬으면 좋겠어요.

힘든 건 이해하지만 우리 팀 선수들이 퍼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중학교 팀만도 못한 필리핀을 상대로 배트를 돌리려는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성의 없는 스윙을 하고 들어오는 타자들. 그나마 필리핀 선수들도 더워서 퍼져 있었으니 투수들이 무실점으로 막았지, 투수들도 상태가 메롱인건 매한가지. 이거 문제다.

- 유격수 잡아서 1루 송구! 1루에서 아웃. 경기 끝났습니다. 1:0 라오스를 상대로 1점 차 신승을 거두는 대한민국입니다.

- 헐크 감독이 라오스 팀을 잘 만들었네요. 우리 팀 선수들과는 다르게 투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상대 팀이지만 박수 쳐 주고 싶네요.

- 라오스도 잘했지만, 승리는 우리 대한민국이 따냈습니다.

- 라오스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랑은 객관적인 격차가 있는 팀이거든요. 우리 팀 선수들 연봉을 보면 이런 경기가 나오면 안 돼요. 우리 선수들 반성해야 합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감독님이 아무 말도 없이 경기장을 빠져나간다. 화가 나신 건지 더워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사라지셨다. 덕아웃은 미친 에어컨 때문에 덥지는 않은데…. 아…. 감독 의자가 에어컨 옆이라 냉방병인가? 그래도 저 땡볕보다는 나은데….

- 대회 시작 전까지는 중국과의 경기가 이렇게 힘들 거라고 생각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 참담하네요. 우리 팀 경기력이 이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대만과의 승부치기도 화가 났는데 중국과 승부치기는 화가 나지도 않고 슬프네요.

그나마 막아주던 투수들도 무더위에 지쳐 퍼졌다. 저걸 공이라고 던지는지. 초딩도 안 던질만한 아리랑 볼을 던져대다 맞는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 손끝에 땀이 나서 공이 빠지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해도 너무하네

- 주자 1, 2루 타석에 김소전입니다.

- 대만과의 경기 때랑 같은 상황이죠.

- 중국의 투수는 웨이준 선수입니다.

- 길게 가지 않고 대만과의 경기처럼 큰 거 한방으로 마무리는 깔끔하게 했으면 좋겠네요.

왜 해가 져도 날씨가 더운가. 날도 더운데 습도는 왜 높은가. 날씨가 이런데 경기장 왜 돔으로 만들지 않는가. 배팅 장갑 안에 찬 땀은 말리기도 힘든데 버릴까 뒤집어서 말릴까….

풀리지 않는 난제를 머릿속에 가득 담고 들어간 타석. 마운드에 빨간 옷의 투수가 날 노려보지만, 집중이 잘되지 않는다.

- 김소전 타임을 부릅니다.

- 김소전선수도 아는 거죠. 여기서 자기가 끝내지 않으면 뒤 타자들은 믿을 수가 없는 거죠.

- 배트에 타르 스틱을 바르고 다시 들어옵니다.

- 지금 우리 대표팀에 믿을 타자는 김소전 밖에 없어요. 여기서 끝내야 합니다.

후! 후! 잠깐 시간을 끌면서 정신력을 끌어올린다. 배트에 꼼꼼하게 타르 스틱을 문지르면서 잡념을 떨궈 내본다. 지금은 타석에 집중해야 한다.

- 타석에 들어선 김소전. 투수는 웨이준.

- 우리 선수들이 힘든 만큼 중국 선수들도 힘들어요. 여기서 끝내야 합니다.

타석에서 루틴을 가져간다. 담장 너머 멀리 하늘을 보고 천천히 투수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투수의 투구동작이 시작되면서 시선을 투수의 손끝으로 가져가며 초점을 맞춘다.

백스윙을 하면서 커지는 투수의 투구. 잠깐…. 저거 너무 큰데. 아니 넌 지금 뭐 하냐?

- 초구 피치아웃! 1루 주자 노경준 넘어졌습니다! 포수 1루 송구! 공 빠집니다! 2루 주자 주상훈 달립니다!.

- 이게 뭔가요.

- 주상훈! 3루 돌아 홈으로! 우익수 이제야 공을 잡습니다.

- 이런 경기가 있네요.

- 홈인! 대한민국 승부치기 끝에 중국으로부터 승리를 따냅니다.

-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노경준선수 이 상황에서 이해가 안 돼요. 한점 싸움에 도루를 할 것도 아니고 괜히 움직이다 미끄러지면서 넘어졌어요. 중국이니까 이런 결과가 나왔지, 기본기가 탄탄한 팀이었으면 찬물을 끼얹는 플레이에요.

- 대한민국이 중국까지 잡아내면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드리면서 금메달 소식을 들려줄 양궁으로 넘어가겠습니다.

- KBO는 양궁협회를 본받아야 해요! 이게 뭡니까. 선수구성이….

날도 더운데 가지가지 한다. 1루에서 헛짓거리하고는 그래도 이겼다고 웃으며 들어오는 멍청이. 2루에서 고작 홈까지 뛰었다고 금방이라도 숨넘어갈 듯 헐떡이는 다른 팀 선수. 이것들에 뭐라고 하면 꼰대라고 XX할 테고…. 머리가 아프다.

- 풀리그로 메달색을 가리는 야구. 의도치 않게 이번 대회 마지막 경기가 사실상의 결승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만난 두 팀 대한민국과 일본 양 팀 모두 4승 무패로 경기를 준비합니다.

- 일본이 대단하죠. 프로선수 한 명도 없는 순수 사회인야구 선수들이 출전했거든요. 그럼에도 무패로 마지막까지 왔습니다.

- 그래도 이번엔 다를 겁니다. 대한민국의 태극전사들이 질 수 없는 일본과의 경기 이겨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 이겨야겠죠. 상대는 프로도 아니고 사회인야구 선수들이에요. 한일전을 감안해도 우리 전력이 훨씬 좋거든요. 오늘은 안일한 경기 하지 말고 집중해서 임해줬으면 좋겠어요.

1년에 144경기 하는 선수들이 꼴랑 4경기하고 저 꼴이라니…. 덥고 힘든 건 알겠는데. 그걸 생각해도 저놈들의 모습은 눈으로 봐주기 힘들다.

어쩔 수 없다. 내가 그 옛날부터 정말 싫어하긴 했지만 지금은 한번 그 싫은 거 한번 해야겠다. 내 밑으로 다모여!

“형. 다들 라커에 불렀어요”

“후. 그래 시작하자”

주장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 실력이 모자라지만 데려온 노예를 써먹어 라커에 선수들을 몰아넣었다. 흠흠. 내가 네놈들 눈물 쏙 빠지게 해주마! 일장 연설 시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경기 지사가 전부터 축 쳐져 있는 선수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건 뭐…. 말을 해도 먹힐 상황이 아닌데….

안 되겠다. 작전 변경이다.

“선수들 힘든가요?”

‘피식’

나름 부드럽게 물었는데 저것들의 반응은 먼 헛짓거리냐는 표정이다. 하여간…. 저것들…. 팰 수도 없고….

“힘들지. 힘들어요. 나도 힘들고 우리 투수조는 더 힘들 거고”

“주장~ 할 말만 빨리해주면 안 돼요? 쉬고 싶어요~”

너…. 너는 후보라 한 경기 한 타석 들어갈까 말까 한데…. 뭘 쉬어….

“금방 끝내줄게. 기다려~”

내가 주장인데…. 권위라는 게 없네…. 다른 사람들이 주장할 때는 잘하는 것 같았는데…. 주장이 쉽지 않다.

“우리 경기력이 너무 안 좋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거 다들 알고 있죠? 주장으로서 이게 너무 마음에 안 들어요”

기레기님들의 안줏거리가 된 선수들의 표정이 확 구겨진다. 특히나 강력한 팬덤만큼 안티도 많은 선수는 더 기분이 상한 게 보인다.

“우리가 여기서 노는 게 아니잖아요? 여기서 야구 안 해본 것들이 경기력이 좋네! 안 좋네 씨부리는게 난 너무 마음에 안 들거든.”

네가 무슨 얘기를 더할 거냐는 듯이 쳐다보는 눈빛들. 그래 너희들이 듣고 싶은 얘기 해줄 거다

“그래서 말인데. 오늘 우리 야구 좀 대충합시다”

“네? 주장 대충하자고요?”

누군가가 깜짝 놀라 되묻는다.

“응. 대충합시다. 야구 그까이거 대충합시다. 열심히 해도 태업한다는데 우리 좀 대충해봅시다.”

“주장. 대충이 무슨 뜻이에요?”

너처럼 하는 게 대충이지

“우리 지금 하는 게 짧은 시간에 잘하려다 보니까 힘만 들고 욕만 먹는 것 같거든. 그러니까 그냥 슬슬 합시다. 일본 애들도 보니까 기껏해야 한 경기 2, 3점 내고 있어요. 그것도 상대 에러가 끼어서 그 정도라고요. 점수는 내가 낼 테니까 다른 선수들은 편하게 합시다. 내가 책임진다.”

“주장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야구 나 혼자 하겠다는 거지. 머리가 안 돌아가?

“내가 보니까 일본 투수들도 지쳐서 팔 돌아가지도 않더라고. 난 그 정도는 4번 나가서 3번을 칠 수 있을 것 같거든. 기왕 치는 거 좀 세게 쳐서 3개만 넘겨보게. 그러면 우리가 이기겠지”

“주장.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헉…. 우리 팀에 저런 똑똑한 놈이 있을 줄이야! 네놈들 무시하는걸 알아채다니… 소~름~

“억울하면 나보다 야구 잘하던가. 내가 이겨줄 테니까 괜히들 용쓰지 말고 쉽게 합시다. 어차피 우리는 한국 가면 죽을 만큼 욕먹을 거니까. 내가 금메달은 따서 조금 먹게 해줄게. 어차피 욕먹을 거 스트레스받지 말고 살자는 거지”

“주장. 날이 더우니까 미친 거 아니에요?”

오…. 우리 팀에 이런 투지 넘치는 선수가 있었을 줄이야. 내 집합이 이렇게 효과적일 줄이야. 역시 나는 천재….

“소전이형. 오늘 일본 선발…. 고시엔 에이스예요. 프로가면 무조건 성공한다고 인정받던 선순데 가업 잇는다고 야구선수 포기한 애예요. 메이저가 있는 달빛도 인정한 선순데…. 형 진짜 홈런 3개 칠 수 있어요?”

자…. 잠깐…. 뭐? 누가 인정해? 전력분석자료에 오늘 투수 고등학교 나오고 어디 라면집 사장이라고 그랬는데. 이번 시즌 기록도 없고…. 이건 무슨 소리야….

- 일본의 선발 기타가와입니다.

- 고등학교 때 굉장히 유명했던 선수예요. 고시엔에서 전 경기 완투하면서 팀을 우승으로 끌고 갔던 유망주였죠.

- 그렇게 좋은 선수가 왜 프로를 안 갔을까요.

- 저도 그게 이해가 안 됐었는데요. 기타가와 선수 3대를 이어온 가업을 이은 라면집을 운영하고 있어요. 저도 가본 적이 있는데 맛을 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정말 맛있어요.

- 위원님 그런 데가 있으면 저도 알려주셨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여자친구들이랑 다니기도 바빠요.

1회 초 공격을 준비하면서 보는 일본 선수의 공. 날도 더운데 짜증이 확 밀려온다. 저공…. 최소 이시윤급이다.

- 파울팁! 삼진! 양규환 파울팁으로 물러납니다.

- 투수 공 좋네요. 지금까지 상대했던 투수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예요.

- 오늘 대한민국 경기 신중히 풀어나가야겠습니다.

- 그래서일까요. 양규환 선수 스윙이 좋아졌어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양규환 선수 좋았을 때 스윙이 나오고 있거든요. 우리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진 것 같아요.

와…. 저런 공을 던지는데 프로를 안 갔다고? 라면을 끓인다고? 이거 재능 낭비 아니야?

- 1루수! 아웃. 노경준의 타구 1루수 라인드라이브로 잡힙니다.

- 노경준선수 타이밍이 늦긴 했지만, 중심에 잘 맞췄거든요. 아쉽네요.

- 공수가 교대됩니다. 1회 말 수비에 들어가는 대한민국 대표팀. 수비위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후회가 밀려온다. 라커에서 왜 그딴 헛소리를 해서…. 그냥 보통 주장처럼 욕하고 끝낼 것을…. 아니 집합을 안 걸었어야지…. 이래서 주장하기 싫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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