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68화 (168/204)

168화. 주장의 무게

살면서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 시즌은 하루하루 나의 멍청함에 치를 떤다.

감독님과 코치님들로부터 들어오는 수많은 지시사항. 트레이너들이 코치님께 보고하지 않고 은밀히 알려오는 선수들의 부상 소식들…. 그것도 모자라…. 저…. 저…. 화상 같은 놈들….

“형…. 이게 말이 돼요?”

“뭐가?”

“글쎄 우리 요미가 절반만 민초단이였어요”

선수단의 잡다한 소식을 전하고 늦게 시작하는 개인 훈련. 다른 선수들은 슬슬 짐을 정리할 때 배팅연습을 시작하며 경준이의 한풀이를 들어준다.

“절반만 민초단은 무슨 소리야?”

“형. 민초 아이스크림만 좋고 따뜻한 민초는 싫대요.”

뭔 X 소리지?

“따뜻한 민초는 뭐냐?”

“아직은 밤 기온이 차서 민트초코호빵에 민초라떼를 사 가져갔는데…. 글쎄…. 한 입도 안 먹는 거 있죠… 민초는 차가운 것만 먹을 수 있대요…. 서로 입맛이 다르면 사랑하기 힘들겠죠…. 저 고민이 많아졌어요….”

고민은 내가 많아진다. 이 모자란 놈아!

“그러니까 그 얘기 하려고 여태 나 기다린 거야?”

“꼭 그런 건 아니고요…. 겸사겸사. 오늘 우리 요미가 늦는다고 해서 이따 보려고 기다린 것도 있고….”

죽여버릴까?

“연애질은 네가 알아서 하시고요. 차가운 민초니 따뜻한 민초니 난 둘 다 싫으니까 그냥 가서 데이트나 해라. 난 오늘 훈련이 부족해서 좀 치다 가련다.”

“형! 그런 신성모독을 하면 어떡해요! 민초가 싫다니. 신의 음식을 싫어하면 벌 받아요!”

“너 훈련 다 했으면 그냥 가라. 괜히 욕먹지 말고.”

스프링캠프 이후 대놓고 빌런짓하는 놈들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손 많이 가는 놈들만 한가득…. 내가 진짜 이러려고 야구하는게 아닌데…. 그래도 작년보다 연봉이 올랐으니…. 참아본다.

- 시즌 초 순위가 결정되어가는 가운데 대전에서 랩터스와 재규어스가 만났습니다. 단독 선두를 지키려는 랩터스와 중위권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재규어스. 양 팀의 경기 지금 시작됩니다.

새로 뽑힌 주장이 잘해서 그런가 아니면 봄터스의 버프가 올해는 조금 더 길게 가는 것인가. 도무지 질 것 같지 않은 경기가 계속된다.

그래. 팀도 이기고 분위기도 좋고 다 좋다. 점점 말라가는 내 모습만 아니면 진짜 위아더 월드인데….

그래도 경기가 시작하면 야구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으니…. 이 순간을 즐기자.

- 루카스의 기습번트! 1루에서 살았습니다.

- 발 진짜 빠르죠. 수비수들이 대비했는데도 살았어요.

작년까지는 수비와 주루만 기대했을 뿐 타격에는 전혀 기대가 없었던 루카스가 올해는 깔끔한 맛은 없지만 계속해서 출루에 성공해주고 있다.

그래봐야 3할 5푼대 출루율이지만, 루카스의 출루는 다른 선수들의 출루와는 조금 다르다.

- 루카스! 2루를 훔쳐냅니다. 시즌 초반 벌써 도루 5개를 적립하는 루카스.

- 스피드 하나는 정말 발군이에요. 재규어스 배터리 알고 있으면서도 못 막았거든요. 이렇게 흔들리면 괴로워요.

나가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나가기만 하면 확실히 상대 수비진을 흔들 수 있는 루카스. 2루도 모자라 3루까지 노리는 모습을 보여주자 날 상대해야 하는 투수가 나에 대한 집중력을 잃고 자꾸 등 뒤의 주자에게 시선을 꽂힌다.

흠…. 나 별로 안 무섭구나. 살짝 기분 나빠지려고 하네.

- 주자 2루에 두고 김소전 2구를 기다립니다.

- 김소전 선수가 초구를 좋아하지 않았으면 루카스 선수의 도루는 더 늘었을 수도 있어요.

- 루카스 선수 리드가 깁니다. 3루도 노려보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 아무리 루카스 선수의 발이 빠르다지만 경기 초반 3루까지 노리는 건 부담스럽죠. 그리고 타자가 김소전이란 말이에요.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2루 베이스의 외국인 타자는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고 있고 마운위의 투수는 나를 보는 건지 등 뒤를 보는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이고….

진짜…. 난…. 버림받은 거냐.

- 투수와 포수의 사인이 길어집니다.

- 이제 1회거든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야 해요. 순리대로 풀어가야 합니다.

공 몇 개 던졌다고 이 날씨에 송골송골 땀을 맺는 투수. 포수와 사인이 길어져서 그런가? 자신감을 잃어버린 듯한 눈이다.

- 김소전 타격! 1루수 키를 넘어가는 안타! 공 이제 잡았습니다! 2루 주자 3루 돌아 홈에서 세잎! 그사이 타자주자는 2루에 들어갑니다.

- 잘해요. 김소전 잘해요. 지금도 살짝 낮은 공 잘 잡아당겨서 1루수 머리 뒤로 떨어뜨렸거든요. 좋은 타격기술 봤어요.

요즘 잠이 부족해서 그런가 낮은 공을 퍼 올리는데 평소보다 비거리가 안 나온다. 이래서 매일매일 보강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네.

- 스코어 0:1, 무사 주자 2루. 3번 타자 노경준입니다.

- 노경준선수도 3번에 들어가면서 장타력을 늘리고 있죠. 2번을 칠 때보다 3번으로 들어가면서 출루에 대한 부담을 버리고 장타에만 올인하고 있어요.

- 노경준! 벼락같은 스윙! 높이 떠서 날아갑니다~ 타구~ 타구~ 센터 펜스를 넘어갑니다! 점수 차를 벌리는 투런홈런을 때려내는 노경준! 랩터스 오늘 경기 1회부터 점수를 뽑아내며 재규어스에게 악몽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야이~ 멍청아! 내가 루카스 나갔을 때 하는 거 못 봤냐! 나도 뛸 타이밍을 줘야 할 거 아니야! 루카스는 3루를 못 가도 나는 3루 갈 수 있다고!

내가 툴툴대면서 덕아웃에 들어왔지만 덕아웃의 멍청이들은 나 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 아니 안 쓰는 건 아니고 나는 좀 톡톡. 그리고 홈런 친 경준이에게는 체중을 실어서 합법적인 폭행을 가한다. 흠…. 이따위면 무서워서 홈런 치겠나….

- 1회부터 빅이닝을 만들어내는 랩터스. 5번 타자 성현범의 홈런으로 스코어를 5점까지 벌립니다.

- 지금 노아웃이죠. 랩터스 강하네요.

- 재규어스 투수코치 올라옵니다.

- 바꾸겠네요. 못 버텨요.

올 시즌 처음 온 대전인데 선발투수가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 잡고 쫓겨나게 해서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때뿐이다. 나 이기기도 바빠죽겠는데 누가 누굴 생각해….

- 오정찬~ 좌익수! 좌익수! 좌익수 글러브 위로 넘어가는 투런홈런! 랩터스가 시즌 시작부터 단독 질주할 준비를 갖춥니다.

- 타선이 이렇게 골고루 터지면 상대는 막을 방법이 없어요. 재규어스가 무슨 수를 쓸지 봐야겠어요.

또. 또 이런 식이다. 점수를 좀 나눠 내야지 꼭 낼 때 몰아서 내고 그래. 이대로 두면 다시 내 차례 오겠네.

- 루카스! 내야안타! 내야안타를 치고 나가는 루카스!

- 루카스 선수 지난 시즌 출루율이 고질병이었는데 이 정도면 올해 루카스 선수의 출루율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요. 지금 같은 내야 땅볼에도 1루에 살 정도면 입으로 떠드는 게 미안한 수준이네요.

결국 주자를 하나 두고 내 차례가 돌아왔다. 투아웃에 주자 1루. 스코어는 7:0. 이럴 땐 그냥 냅다 때려야지.

- 김소전의 배트 오늘 불을 뿜습니다! 좌측담장을 훌쩍 넘겨버리는 김소전 스코어를 9:0까지 벌립니다.

- 이 팀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랩터스 선수들 오늘 재규어스를 상대로 너무 잘 치네요. 재규어스 이번 시리즈 끝나고 팀의 재정비가 필요할지도 몰라요.

그래 이게 홈런의 손맛이지. 그런데…. 나야 그렇다고 치고 저놈들은 왜 이러는 거야

- 랩터스의 연속안타! 1회 초 공격이 계속 이어집니다!

- 투수 또 바꾸죠. 막을 수가 없어요.

- 성현범! 다시 한번 타구를 경기장 밖으로 날려버립니다!

- 완벽한 스윙이었어요. 랩터스 막을 수 있을까요?

불안하다. 잘해도 적당히 잘해야지 너무 잘하면 불안감이 너무 커진다. 이러면…. 내일 어쩌려고….

- 랩터스 매 이닝 점수를 내고 있습니다.

- 재규어스는 사실상 항복선언을 했거든요. 그래도 사냥감을 잡은 랩터스가 좀처럼 놓아주지 않네요. 재규어스 괴로워요.

이제…. 그만…. 제발…. 그만 좀…. 잘하려면 나눠서 잘하라고….

- 양규환! 양규환의 벼락같은 스윙! 좌측담장을 넘어가는 솔로 홈런! 이번 시즌 첫 홈런을 신고하는 양규환입니다.

- 무섭네요. 무섭게 터지는 랩터스 타선이네요.

- 하하. 양규환 선수 뒤로 돌아서 홈플레이트를 밟고 있습니다.

- 음…. 썩 좋아 보이진 않네요. 이벤트 경기도 아니고 정규시즌 경기거든요. 큰 점수 차에서 저런 행동 좋지 않아요.

뭐…. 뭐냐? 지금 내가 뭘 잘못 본 건가? 15:0에서 홈런치고 문워크로 홈에 들어왔어? 저게 미쳤나?

- 경기 끝. 최종점수 17:1. 랩터스가 1차전을 가져갑니다.

- 브래들리 오늘 완봉을 노리다 9회에 연속안타를 맞은 게 두고두고 한에 남을 것 같아요.

경기가 끝나고 슬금슬금 덕아웃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뒤통수가 따갑다. 안 봐도 뻔하지. 약이 바짝 오른 재규어스…. 내일은 조심해야겠다.

- 어제의 대패를 만회하려는 재규어스가 칼을 갈고 나왔습니다. 어제 이어 오늘도 랩터스가 이기면서 1위 자리를 굳히느냐, 아니면 재규어스가 이기면서 어제 경기를 설욕하느냐. 잠시 후 확인하시겠습니다.

어제 쓸데없이 상대 팀을 흥분시킨 것에 대해 한마디하고 시작되는 재규어스와의 2차전…. 오늘은…. 가관이네….

- 루카스 몸에 맞았습니다.

- 공이 좀 빠졌죠.

- 루카스 선수 1루까지 가면서 투수에게 뭐라고 한마디 합니다.

- 입 모양만 봐서는 잘 모르겠죠. 영어 같은데요.

내 이럴 줄 알았다. 당연히 이렇게 빈볼이 나오지. 어제는 마운드에 계속 어린 신인들이 올라오니까 딱히 빈볼이 나오진 않았지만, 오늘은 확실하다.

- 랩터스 오늘도 좋은 기회 잡았습니다. 무사에 발 빠른 주자 루카스는 1루. 지난 시즌 MVP 김소전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조심해야 한다. 언제 나한테 공이 날아올지 모르니 조심하자

- 볼. 몸쪽에 바짝 붙여보는 공입니다.

- 위험했어요.

저…. 저 XXX. 저놈 일부러 그랬어. 화가 확 올라오지만…. 이정도는…. 예상했으니…. 한번은 참는다.

- 2구 스트라이크. 바깥쪽 꽉 찬 공이 들어왔습니다.

- 데미안 선수 구위는 좋아 보여요.

공 좋은데. 칼 갈고 나온 것 같은데

이대로 붙으면 쉽지 않을 것 같기에 타임을 부르고 잠시 타석 밖으로 나와 본다.

- 김소전 사인이 안 맞았나요. 3루 코치의 사인을 신중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 특별히 작전이 나올 상황은 아닌 것 같고 타자의 루틴을 맞추려고 나온 것 같아요.

크게 심호흡을 하고 타석에 들어가는데 지금까지 너무 당연해서 의심조차 안 해보던 게 보인다.

- 김소전 3루로 푸시 번트! 물러나 있던 3루수 급하게 들어옵니다.

이건 무조건 산다. 죽어라 달려본다.

- 김소전 번트로 1루에 살아 들어갑니다.

- 주자가 있어서 강하진 않지만, 시프트가 걸려있는 상황이거든요. 지금 이 타이밍에 기습번트를 대내요.

휑한 3루 쪽을 보면서 툭 밀고 죽어라. 1루로 달린다. 준비했어도 못 잡을 코스로 들어간 타구. 기쁜 마음으로 1루에 들어간다.

- 아. 이게 뭐죠. 포수가 일어나 타자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 지금 상황이 묘하게 됐어요

- 그래도 금방 정리됩니다. 재규어스의 시프트에 대해서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쪽으로 번트 대는 게 싫으면 전진수비를 하다가. 자기들도 감독이 사인 엄청 내면서 왜 우리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 삼진! 노경준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 커브였죠. 낙차 크게 잘 떨어졌어요

- 다음 타자 성현범 선수입니다.

- 오늘 황경철 선수 대신 4번의 중심타선을 맞게 된 성현범이죠.

- 성현범 선수도 이번 시즌 좋습니다. 벌써 홈런 4개를 치면서 홈런레이스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저…. 저 XX. 타석에 들어와서 뭐 하는 짓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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