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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165화 (165/204)
  • 165화. 먹튀

    “소전 선수 밥 안 먹었어?”

    “네.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어서요. 이거 맛있네요”

    “송아지고기야. 많이 먹어요. 내가 사무총장 오빠 만나서 한마디 해야겠네. 고생한 선수를 굶기면 어째…. 아~ 누나가 쌈도 하나 싸줄게”

    차대영 선배가 나와 릴리인지 리모컨인지 하는 아줌마를 강남의 고깃집에 떨구고 사라지자, 아줌마가 다짜고짜 구석방에 끌고 들어가 고기를 먹이기 시작한다.

    이래도 되나 생각이 들었지만, 아침도 못 먹은 빈속에 코끝으로 참을 수 없는 고기 타는 향이 들어오자 딱 한 점만 먹어보기로 했다.

    “3인분? 아니 5인분은 더 시켜야겠지? 소전 선수 입 짧다고 하더니 아니네. 먹는 거 보니 장사네 장사야~”

    이 아줌마 먹는데 자꾸 말 걸고 그래.

    입안 가득 고기를 밀어 넣고 다시 불판에 새 고기를 올리는데 앞에서 별로 듣고 싶지도 않은 말을 떠들어댄다.

    괜히 말 섞다 힘들어질 것 같아 살짝 웃어주면서 다시 고개를 식탁에 박고 고기를 흡입해 본다. 핏기만 살짝 가신 고기…. 배고파서가 아니라 송아지고기라 맛있는 거다.

    “소전 선수. 아니 내가 소전이라고 불러도 될까?”

    응? 방금 뭐라고 한 것 같은데 기름장 찍다 정확히 못 들었다. 잘 못 들었을 땐 그냥 웃어주면서 고기만 끄덕이면 된다.

    “호호호. 우리 막냇동생 같고 잘 먹으니까 누나가 너무 좋다~ 소전이 술도 한잔해? 우리 동생은 무슨 술을 좋아하려나~”

    응? 뭘 더 시키려고 메뉴판을 들춰보지? 난 그냥 지금 이 고기가 좋은데

    “소전이~ 여기 술은 별로다. 아~ 요 근처에 내가 아는 동생이 있는데 좋은 술 좀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불러야겠다~”

    때마침 들어오는 5인분.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띄워진다.

    “어~ 여기 송아지 잘하는데. 그래~ 어머~ 딸도 같이 있어? 에이~ 뭐 어때. 둘이 나이도 비슷할 텐데 친구 하면 좋지~ 그래~ 5번 방으로 와~”

    확실히 좋은 고기가 맞는 것 같다. 불에 살짝 데치기만 해서 입으로 넣는데 배도 부르지 않고 쭉쭉 들어간다. 이래서 루다가 소고기~ 소고기~ 한우~ 한우~ 노래를 부르는구나. 미국 가기 전에 한번 먹여야 하나? 여기 꽤 비싸 보이는데… 루다는 다이어트해야 하니까 1인분만 사줘도 되겠지?

    이렇게 마음이 넓은 친구가 없다.

    입속으로 고기를 다시 집어넣으면서 루다가 2인분을 시키면 어째야 하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는데 방문이 열린다.

    “어머~ 릴리~ 더 이뻐졌네~”

    “무슨. 자기 예뻐졌다고 자랑하려고 그러는구나? 말해. 탄력 크림 바꿨지?”

    “어머. 어머. 어머. 무슨 소리야~ 엠플만 하나 바꿨어.~”

    “이럴 줄 알았어. 좋은 거 있으면 나도 하나 주고 해야지~ 이러면 나 서운해”

    음…. 난해하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게 비슷하게 생긴 아줌마 둘이 서로 예뻐졌다고 싸우는 모습…. 난 그냥 고기나 더 먹고 싶은데….

    “이모~ 제가 프랑스에서 구해온 거예요. 파리에 연락해서 이모 것도 보내라고 할게요”

    “봐~ 딸이 엄마보다 낫네. 우리 제이는 엄마 안 닮고 아빠 닮아서 참 좋아~”

    “무슨 소리야~ 제희는 날 닮았지~”

    음…. 저분의 아빠는 모르지만, 엄마를 닮지도 않았고 강남역 성형외과 포스터의 그분과 비슷하게 생긴 것 같은데….

    “호호호. 내가 여기 귀한 손님을 두고 소개도 못 하고 있었네. 요즘 대한민국에서 야구를 제일 잘하는 김소전 선수야.”

    뭐…. 뭐야. 갑자기 나를 왜 소개해

    “소전아. 누나의 절친인 대운 목재 안주인님이셔. 그리고 이 아름다운 아가씨는 대운 목재 셋째딸 공제희”

    “안녕하세요~ 제이에요”

    “네…. 네… 김소전입니다.”

    밥 먹다 체할뻔했네. 남 젓가락 들고 밥 먹고 있는데 갑자기 악수하자고 손부터 내미는 매너는 어디 루다같은 매너냐! 갑자기 입맛이 떨어지려고…. 는 아니네…. 밥 먹게 좀 가시지….

    “내가 멋진 남자하고 맛있는 거 먹는데 술이 없더라고~ 술 가져왔어?”

    “가져는 왔는데 작은 병만 가지고 와서 모자랄 것 같은데? 어쩌지?”

    “그러게, 어쩌지? 그럼 이건 여기 두고 두 사람이 마시라고 하고 우리는 마사지나 받으러 갈까? 그래야 할 거 같은데?”

    자…. 잠깐. 뭐? 고기 사준다더니 어디 가려고….

    “소전이~ 누나가 아무래도 먼저 가봐야 할 거 같은데 우리 제이랑 식사 마저 해~”

    그리고는 사라졌다. 고깃값은 내고 간 건가? 사준다고 해서 쫓아 왔는데 이거 갑자기 뭔가 싶고…. 머리가 멍해진다.

    “김소전 선수 말로만 듣다가 실물 보니까 생각보다 더 크네요?”

    “아…. 네….”

    슬퍼진다. 아침에 받은 스트레스 고기로 풀고 있었는데…. 그게 끊겼다…. 기분이 축 가라앉는다.

    “후. 그쪽도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알죠?”

    나는 모르는데 혼자만 뭔갈 아는 여자가 난데없이 핸드백에서 전자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실내는 금연인데….

    “우리 쉽게 가죠. 나 정도면 나쁘지 않고, 그쪽은 2년 후에 미국 간다면서요.”

    뭐냐? 나도 모르는 미래를 어떻게 그쪽이 알고 있는 거죠?

    “내가 고등학교하고 대학까지 미국에서 나왔어요. 그러다 엄마가 바람피다 걸려서 아빠한테 잡혀 한국에 끌려왔거든요. 내가 다시 미국 갈 수 있는 방법은 그쪽이랑 결혼하는 것밖에 없는데 나 어때요?”

    음…. 잠깐…. 보자…. 얼굴은…. 내가 강남역 뒤에 붙은 광고랑 비슷하게 생겼고 몸매도…. 뭐… 루다만 못하지만 어디 가서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듯하고 전자담배도 저렇게 맛깔나게 필 정도면 진짜 연초를 가져다주면 멋이라는 게 폭발할 테고…. 아니…. 이건 아니고….

    “전 결혼 같은 거 생각 없습니다.”

    “2년 후에 미국 간다면서요. 운동선수들 일찍 결혼하고 미국 진출한다던데요? 어차피 할 거 나랑 합시다.”

    우와 박력. 무식한 것까지 루다 주니어네.

    “진짜 결혼 생각 없습니다. 야구만 하기도 바쁩니다.”

    헛소리는 이제 그만 듣고 싶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을 해주지만 내 말 따위 전혀 듣고 있지 않다.

    “우리 아빠가 우리나라 시장점유율 2위의 목재회사 사장이에요. 잘 몰라서 그러시는데 이렇게 이름 안 알려진 회사가 진짜 알짜배기에요. 당장 내 앞으로 강남에 빌딩이 세 개고요. 나랑 결혼하고 쇼윈도로만 살아요. 서로 사생활은 터치 안 하기로 하고”

    와우. 이 조건 진지하게 들어야 하나? 강남에 빌딩이 세 개면…. 내가 놀고먹으면서 야구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만 일어나실까요? 여기 불도 꺼져서 고기도 더 굽기 힘든데.”

    “그래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잘 생각해봐요. 여자만 돈 많은 남자 잡는 게 아니에요. 그쪽 같은 스펙에 나 정도면 무조건 잡아야 하는 거예요.”

    내 스펙이 어때서? 야구선수가 프로까지 올라와서 골든글러브 받을 정도면 충분히 상위 0.1%데…. 기분 팍 상하네.

    “가시죠”

    “귀여운 맛이 있네요. 다음에 봐요”

    저. 저것이 제멋대로 먼저 고깃집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고기 굽는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가면 반땅하고 가야지…. 저래서 미국에서 학교 나오면 못 배웠다고 욕먹는 거다.

    “얼마에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카운터에 다가갔다. 나를 슬쩍 보고 방을 한번 본 직원이 테이블 밑에서 보자기에 싼 큰 물건을 꺼낸다.

    “계산되셨고요. 계산하신 분이 손님 나가실 때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갑자기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머릿속에 리모컨 아줌마로 기록되던 사람이 릴리누나로 수정되었다.

    * * *

    “그래서 저녁에도 어머님이랑 고기를 구워 먹었다?”

    “어 송아지고기가 다르긴 다르다. 집에서 구워도 맛있다”

    “송아지고기 처음 먹어보냐? 내가 사줘?”

    “야! 이거 비싸다. 월급쟁이가 살만한 고기가 아니야. 쓸데없이 먹는데 돈 쓰지 말고 너도 차곡차곡 적금 넣어서 저축해. 그래야 노후가 편안하다.”

    “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노후까지 생각하는 건 너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 아빠도 걱정 안 하는 내 노후를 왜 네가 걱정하냐?”

    쯧쯧. 이래서 안 돼. 방송국 다니면서 또래들보다 월급 좀 더 받는다고 기고만장해서…. 어휴….

    “야! 국민연금만 믿고 살 거야! 미리미리 연금보험도 들고 적립식 펀드도 들고 해야지. 넌 성격도 더러워서 시집가기도 힘들 텐데 혼자 요양병원 갈 거까지 벌어놔야지. 한 푼 한 푼 아껴”

    “네가 나 걱정해주니까 눈물이 다 나려고 한다. 어이가 없어서”

    그렇지? 네가 생각해도 어이없지? 내가 좋은 친구다. 너처럼 생각 없는 애도 좋은 길로 인도하는 착한 친구다.

    “됐고 대운 목제 셋째딸은 또 만날 거야?”

    어? 누굴 만나?

    “나 연락처도 안 받았는데”

    “거기 돈 많다는데 연락했어야지. 그래야 가끔 얻어먹지.”

    “아…. 잠깐. 고기는 릴리누나가 사줬는데?”

    “누나? 그 중매쟁이가 누나? 이제 미쳤구나.”

    “너무 그렇게 색안경 끼고 보지 마! 나 고기 사준 좋은 분이야.”

    예전부터 배고픈 이를 돌봐준 사람들이 다 복 받더라. 복 받을 누나다.

    “그럼 그 중매쟁이 아줌마는 또 볼 거야?”

    음…. 그러게…. 오늘은 너무 배고파서 그랬지만 나도 딱히 얻어먹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는데….

    “아니다. 연락 오면 따라가서 밥이나 얻어먹어라. 오늘도 송아지고기 사준 거 보면 좋은 거 많이 사주겠네. 어차피 다음 주에 미국 가잖아. 그전에 잔뜩 먹어놔.”

    아…. 나 라타코치님 만나러 가야 하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번 겨울에 릴리누나 볼 시간이 많지 않구나….

    “먹고 싶다는 게 아니라 맛집 공유 좀 받으려고 하는 거지. 누나가 맛있는 집 정말 많이 알더라고….”

    * * *

    ”누나~ 어디서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

    ”어? 차대영이네? 야 내가 너 총각 때 사고 친 것도 다 막아주고 네 마누라도 소개해주고! 너 그러는 거 아니다!“

    ”누나! 조용히 해! 남들 듣겠어“

    폴 엔터의 대표 릴리 사장님의 단골 프라이빗바에 타이탄스의 투수 차대영이 찾아와 취한 사람을 챙기기 시작한다.

    ”그 XX 진짜 고자야? 아니면 이게 말이 되냐고!“

    ”누나 왜 그래. 누구 얘기하는 거야?“

    ”김소전! 김소전 그 고자 XX“

    “왜 누나가 그런 순진한 애는 바로 작업할 수 있다며?”

    아는 동생의 방문에 정신이 잠깐 들어온 폴 엔터 사장님이 뚜껑이 열려있는 위스키병을 한 손에 쥐고 입에 털어 넣는다.

    “누나. 왜 이래. 그러다 취해.”

    깜짝 놀란 선수가 손에 있는 술병을 뺏자. 지금껏 눌러왔던 한풀이가 시작된다.

    “그 XX한테 내가 부잣집 딸 7명을 데려갔어. 그중에 미스코리아도 있고 걸그룹 연습생 출신도 있었다고! 그런데 아무한테도 에프터를 안 해! 내가 지금 걔네 엄마들한테 얼마나 욕을 먹는 줄 알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동생이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누나 그러기에 밥 먹으면서 술 한 잔씩 먹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지. 남자도 분위기에 약하다니까.”

    “야! 내가 안 했겠냐? 내가 이 짓 몇 년을 하는데!”

    “그런데 왜?”

    “그 XX가 고자라고! 송아지고기에 장어에 지네 먹은 닭까지 먹였는데 반응이 없어. 여자가 옆에서 고기를 싸서 입에 넣어주는데도 반응이 없어. 그 XX 고자 아니면 게이야. 이럴 수가 없어.”

    “술을 덜 먹인 거 아니야?”

    “그 XX 술도 안 먹고 고기만 죽어라 먹어. 일주일 동안 그 XX 밥값만 수억 깨졌어.”

    사고 친 당사자 대신 폴 엔터 사장님의 분노를 대신 받던 남자가 눈길이라도 피해 보려 말을 돌린다.

    “누나. 괜찮아. 겨울은 길어~ 그놈도 여자가 생각나면 한 번씩 연락하겠지~”

    “야! 불난 집에 부채질하냐! 그 XX 미국으로 먹고 튀었어. 내년에 시즌 개막해야 온단다. 아 짜증 나. 너 오늘 집에 가지 마. 나랑 밤새 술 마셔”

    장단을 맞춰주려던 동생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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