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64화 (164/204)
  • 164화. 슈퍼스타

    데뷔하고 리그 우승 세 번에 U-24 우승, 아시안게임, 올림픽 우승도 했다. 전에는 우승은 구경도 못 했었지만, 이번엔 무슨 복이 있는지 결승만 가면 우승 반지를 선물 받는다.

    이제는 우승이 특별하지 않을 정도로 많이 했다면 많이 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결승 경기가 끝나고 바로 열린 시상식.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슈퍼라운드와 결승에서 미국을 꽁꽁 틀어막은 임수검 선배가 MVP를 가져가고 타율, 출루율, 장타율, 최다안타, 최다도루를 내가 가져오면서 올스타팀에 뽑혔다.

    여기까지는 뭐…. 그러려니 했는데…. 우승 축하연을 하고 선수단이 모두 잠든 그 밤에 멀리 미국의 스포츠 TV에서 프리미어12 리뷰가 방송되었다.

    자잘한 이야기들 다 뛰어넘고 메이저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팀과 메이저리그 선수 둘과 트리플에이만도 못하다고 평가받는 KBO 선수들로 구성된 대한민국팀의 신랄한 비교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한건 솔리드 하다못해 통곡의 벽이 돼버린 메이저리거 두 선발투수지만 야구도 결국 점수를 뽑아야 이기는 경기인지라 결국 승리가 되는 점수를 만들어낸 내가 미국의 어느 메이저리거 타자들보다 낫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내가 자느라 못 봐서 다행이지, 봤으면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직설적으로 하는 칭찬이 이어지고 마지막에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한마디가 떨어진다.

    “지금 당장 포스팅이 가능하다면 KBO 포스팅 최고액인 연간 700만 불 이상은 확실하다.”

    국제대회인지라 KBO가 비용을 다 대서 진행하는 일정. 우승하고 그날 자고 다음 날 1시 비행기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빡빡한 일정. 조금은 무거운 몸을 아침을 먹기 위해 일으켰다.

    다른 건 몰라도 호텔 조식인데…. 먹어야지….

    옆방에 있는 경준이를 깨울까 생각해 보다가 며칠 못 봤다고 밤새 눈물로 통화하던 게 생각나서 포기했다. 어제 늦게 잔 거 같은데 깨워봐야…. 내 기분만 더럽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식당으로 향하는데 어제와는 다른 시선이 느껴진다.

    “저… 김소전 선수 사인 좀 해주세요”

    눈곱도 제대로 안 떼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왔는데도 내 미모가 어디 사라지지 않는지 어떻게 알고 사인을 받으러 오는 팬.

    구단에서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도 팬이 사진 찍자고 하면 찍어주라고 착실하게 교육을 받은 75번 교육생이 친절하게 사인을 해주자 어디서 나타나는지 사람들이 하나둘 슬금슬금 다가온다.

    엘리베이터에서 식당까지가 그리 멀지 않은 길인데 잠실의 퇴근길 같은 모습이 만들어지고…. 내 소중한 팬들 기분 나쁘지 않게 한걸음에 사인하나를 하면서 식당으로 들어갔다.

    전 랩터스 주장, 현 같은 직업 아저씨인 라정안 선배가 호텔 조식에 먹을 게 없다는 막말을 하곤 하지만 사람이 눈이 있으면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

    해달라면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계란 요리를 종류별로 시키고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베이컨에 딸기잼과 사과잼을 섞고 버터와 치즈를 올려 두꺼운 빵에 넣어 먹으면 몸에 에너지가 팍팍 돌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 목이 메면 오렌지 주스를 흡입하고 후식으로 제철 과일을 트레이로 쓸어오면 간단한 아침 식사 마무리.

    이렇게 즐거워야 할 내 완벽한 아침 식사 계획이 산산이 부서졌다.

    “김소전 선수 사인해주세요”

    “우리 애가 팬이에요 같이 사진 부탁드려요~”

    “와 김소전~ 실물이 더 못생…. 아니 잘생겼네~ 인물 훤하네”

    일본에 재일 동포가 많다더니 이 호텔에 한국 사람들이 전세를 냈나, 날 알아보고 사인과 사진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렀다 간다.

    아침에 본격적으로 먹기 전에 탐색전으로 조금 담아온 풀때기 한 접시도 채 클리어하지 못했는데 사인만 하다 하염없이 시간이 흐른다.

    이렇게 더 있다가는 밥은커녕 집합 시간도 못 지킬듯해 접시의 풀때기를 털어 넣고는 바쁜 척 전화기를 귀에 대고 식당을 나선다.

    한쪽 어깨에 전화기를 끼고 다른 손으로는 연신 사인을 하면서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갑자기 복도가 소란스러워진다.

    “김소전! 김소전이다!”

    “김소전선수! MBS입니다! 이번 대회….”

    “김소전선수! KBC 야구의 밤입니다! 프리미어12에서….”

    “김소전! 전일 신문 강 기자야! 잠깐 나랑 인터뷰 좀 하자~”

    일부 거친 팬들도 있지만 그래도 팬들은 순한 초식동물이다. 그래서 초식동물들이 조금 귀찮게 굴어도 잘 지내보려고 나도 살갑게 굴었지만 지금 나를 향해 달려오는 건 닳고 닳은 육식동물 하이에나 떼다.

    보고만 있어도 머리 위로 썩은 고기를 쫓아다니는 파리 떼가 따라오는 기분.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내 다리가 가까운 계단을 찾아 뛰기 시작한다.

    단숨에 내 방이 있는 8층까지 올라와 거친 숨을 몰아쉬고는 재빨리 방으로 숨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소전아. 조용히 나 따라와”

    아침도 못 먹고 아침 운동도 못 하고 방에서 감금되어 있는 날 구해준 건 랩터스에서 따라온 매니저 형. 이 무서운 동물원에서 어떻게 나가야 하나 패닉에 빠져있는데 드디어 살길을 보인다.

    “형…. 밖에 아직도 기자들 많아요?”

    “어. 이제 외신까지 들러붙었어. 김소전 출세했다.”

    출세? 이게 출세라면 사양하겠어요. 지금까지 팬들, 기자들 안 보고 산 것도 아닌데 오늘은 정말 살기가 느껴졌단 말이에요

    “형. 농담 그만하고 저희 지금 나가야 비행기 시간 맞추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너 짐 다 놔두고 나만 따라와. 짐은 호텔에서 챙겨서 따로 보내주기로 했어.”

    헐…. 내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야반도주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러지.

    “형. 저 사람들 왜 저러는 거예요?”

    “아 너 못 봤겠구나. 너 밤새 미국에서 유명인 됐다”

    “네?”

    “너 BA랭킹 알지? 네가 해외선수 BA랭킹 1위란다.”

    “네? 뭐라고요?”

    BA랭킹. 베이스볼아메리카라는 데에서 정리해서 발표하는 유망주 순위. 100% 맞지는 않지만 현시점에서 가장 터질 가능성 높은 유망주를 파악하는 데는 이만한 것도 없는 순위.

    보통은 마이너 선수들만 발표하곤 하지만 이번처럼 큰 국제대회가 있을 때는 따로 참가선수들만 모아서 순위를 발표하곤 한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1등이라고? 그게 말이 돼? 일본에 잘하는 선수가 얼마나 많은데

    “너 2년 후에 포스팅이잖아. 구단들 머리가 아파질 거라고 한다.”

    “형. 우리 우승했다고 미국 사람들이 놀리는 거 아니에요? 저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일본에 훨씬 좋은 선수도 많고요.”

    내가 당황한 목소리로 매니저 형한테 반문을 하자 항상 내 옆에서 챙겨주던 매니저 형이 내 눈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한다.

    “소전아. 너 잘해. 진짜 잘해. 그리고 나도 야구선수 정말 많이 봤는데 너처럼 야구만 하는 사람 본 적이 없어. 내 눈에도 네가 세계 최고다.”

    이형…. 아부 좀 하는데? 이런 스킬은 언제 배웠지. 맨날 나 야구 말고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구박만 하더니…. 갑자기 이러니까 심쿵하네….

    “에이 형. 메이저에 잘하는 선수가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을 해요. 전 아직 KBO에서도 최고가 아닌데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매니저 형. 나를 아련하게 바라보고는 내 손을 잡고 이상한 계단을 여러 개 돌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조금 돌아서 차를 타긴 했지만 확실하게 기자들을 떼어놓고 간신히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공항 앞에서도 날 지키고 있는 기자들. 매니저 형과 눈을 맞추고 전속력으로 출국장까지 달린다.

    “형.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아니면 너 비행기 못 탔어.”

    이해가 안 된다. 이해가…. 갑자기 왜들 이래?

    선수단이 비즈니스석을 전세를 내버린지라 선수들이 비즈니스석에 먼저 탑승하고 일반석으로 우리를 따라온 기자들이 자리한다.

    얼마 후 비행기가 이륙을 하고 시트벨트 사인이 꺼지자마자 저 기레기들이 비즈니스석 쪽으로 난입을 시도한다.

    “형. 저놈들 뭐예요? 왜 저래요?”

    “다 너 때문이지. 그러기에 적당히 잘하지 그랬냐.”

    승무원들의 헌신적인 육탄방어로 아무 방해 없이 인천공항에 착륙하고 일반 승객들과 다른 동선으로 나왔다.

    “형. 어쩌죠? 여기까지는 나왔다 쳐도 수속하고 공항을 못 벗어날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마! 내가 누구냐! 랩터스의 최고 브레인 매니저 아니냐. 넌 내가 신호 주면 최고속도로 달리기만 하면 된다.”

    흠…. 이형이 최고 브레인 매니저라는 거에는 전혀 신뢰가 안 가지만…. 그래도 지금 잡을 동아줄이 이것뿐인데 썩었는지 안 섞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시키는 대로나 잘하자.

    항공사 직원들에 섞여 잘 묻어서 입국 수속까지 끝냈다. 이제 마지막 관문은 저 현관을 지나 구단에서 보내주는 차를 타는 것. 이 마지막 과제만 잘 수행하면 당장 오늘은 넘길 수 있다.

    “소전아! 전화 왔다. 뛰어!”

    매니저 형의 신호에 맞춰 공항의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현관으로 달린다. 내가 뛰는 걸 보고 나를 따라오는 공항 경찰들. 그리고 그 경찰들을 보고 같이 뛰어오는 기레기들.

    앞에 있는 착한 사람들을 피하랴, 뒤에 따라오는 무서운 사람들을 피하랴 정신없이 고개를 돌리며 현관으로 달렸다.

    공항의 자동문이 열리고 내 눈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기레기님들이 보인다. 정신이 멍해지려는 그 순간….

    “김소전! 이리 와서 타!”

    다른 생각할 것도 없이 누군가가 부르는 차로 뛰어들었다.

    기자들을 저만치 두고 빙 돌아 차에 타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소전아. 너 나한테 빚 하나 진 거다. 나중에 갚아.”

    그제야 이 사람이 누군지 보인다. 타이탄스의 마무리 차대영. 대표팀을 함께하는 사이라 인사는 하고 지내기는 하지만 우리 그렇게 살가운 사이는 아닌데….

    “선배님 감사합니다.”

    “흐흐. 감사는 나한테 할 게 아니지.”

    “네?”

    뭐야? 자기가 불러서 차에 탔는데 감사를 자기한테 하지 말라니 이건 무슨 소리야?

    “호호호. 김소전 선수. 오랜만이네. 일본 다녀오더니 더 멋있어졌어. 오늘 내가 몸보신시켜줘야겠어. 호호호”

    아우 깜짝이야.

    뭐야? 이건. 뒷자리에서 왜 여자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누나. 나 이러면 섭섭해. 나한테는 살갑게 얘기 안 하면서 소전이한테는 살살거리는 거야?”

    “어머. 대영이는 유부남이잖아. 여기 소전 선수는 총각에 나이도 어리고 내가 딱 좋아할 만하지 않아?”

    “이야~ 우리 누나 언제는 남자 인물보고 좋아한다더니 다 거짓말이었네.”

    “아니 왜~ 우리 소전 선수가 어때서~ 이런 스타일이 드물어서 오히려 희소성이 있어~ 그리고 남자 잘생겨봐야 얼굴값 한다고 사고나 치지. 이렇게 진정성 있게 생겨야 장가가서도 사랑받는 거야~ 호호호”

    미치겠다. 이 아줌마…. 뭐야

    “소전 선수~ 표정이 왜 그래? 나 오랜만에 보는데 안 반가운 모양이네.”

    “당황스러워서요. 저희 그때 한번 본 것 같은데 친한 척하시니까 당황스럽네요.”

    “호호호. 그래도 나 안 잊어먹고 알아봐 주니 고맙네.”

    어떻게 잊어요. 그 지긋지긋한 싸가지하고 같이 나 엮으려던 마담뚜 아줌마를….

    “소전 선수~ 이루다하고 막 진지한 사이 그런 거 아니지? 걔 얼굴만 반반하지, 성격 세서 오래 만나면 피곤해. 지금 소전 선수가 OK만 하면 훨씬 좋은 아가씨가 소전 선수 만나고 싶어 하는데 어때? 소전 선수도 알지? 지금 소전 선수 몸값이 제일 비싼 순간이야.”

    이 아줌마…. 나랑 맞는 게 하나도 없네.

    루다는 얼굴도 반반하지 않고요. 루다가 내 몸값은 지금보다 내년, 내년보다 후년에 더 비싸질 거라고 어젯밤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훨씬 좋은 아가씨는…. 궁금하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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