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59화 (159/204)
  • 159화. 관심 집중

    “오늘 훈련 재미있었다며?”

    “놀리냐!”

    일본에서 열리는 프리미어12. 세계에서 야구를 제일 잘한다는 12개 나라를 불러 왕좌를 가리는 대회. WBC라는 전 세계 야구 국가대항전과 뭐가 다른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중요한 국제대회.

    일본의 입김과 일본의 자금이 투입되어 일본에서 열리는 이 대회를 위해 우리 대표팀이 고척에 모여 훈련을 시작했다.

    시즌을 마치고도 국제대회를 위해 몸을 꾸준히 유지해온 선수들이 어색한 손발을 맞추기 위해 땀을 흘리고 그걸 사진 찍겠다고 평소보다 훨씬 많은 기자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몰려들었다.

    세간의 관심이 이렇게까지 몰린 데는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현역 한국인 투수 두 명이 대표팀에 합류했기 때문. 둘 다 소속팀의 결사반대를 물리치고 국가의 부름을 따라 국가에 희생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고국에 돌아와 절정의 기량을 보여준다.

    “와. 이시윤 선배 공 미치지 않았어요. 작년보다 100배는 좋아진 것 같아요.”

    “그래도 저공은 본 적이나 있지. 임수검 선배는 외계인이다. 외계인”

    국내에 들어와 있는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들을 수없이 봤지만 저런 공은 본 적도 없다. 타자의 배트도 부숴버릴 기세로 날아오는 공…. 저걸 치면 사람이 아니다.

    “형…. 한국에서 태어나길 잘한 것 같아요. 미국이었으면 야구 안 하고 공부나 했을 것 같아요”

    그…. 글쎄다… 네놈 머리로 공부는…. 무리지 않겠냐?

    “저런 거 보지 말고 우리는 우리 것이나 하자.”

    이렇게 시작된 경준이와의 캐치볼. 평소에 하던 것처럼 10m부터 80m까지 차근차근 거리를 늘렸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형. 좀 그렇지 않아요?”

    “그러게…. 캐치볼하고 펑고 좀 받아보려고 했는데…. 이래서는 좀 그렇지?”

    메이저리거 둘이 불펜피칭하는 걸 피해 반대편에서 슬슬 캐치볼을 했을 뿐인데 어디서 왔는지 카메라들이 우르르 따라와 훈련 모습을 찍어댄다.

    시즌 중에 팬들의 카메라를 크게 의식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너무 부담스럽다. 이러다 몸이 굳어 다칠 것만 같아 실내훈련장으로 도망갔다.

    “경준아. 그냥 타격 훈련이나 하는 게 낫겠지?”

    “네 형. 수비는 단체훈련 때나 하고 스윙이나 할까 봐요”

    이때까지만 해도 의미가 없다는 걸 몰랐다.

    “혀…. 형…. 눈 아프지 않아요?”

    “눈 감아라. 감고 치자.”

    “우와~ 형. 눈감고도 홈런인데요?”

    “하하하. 다음부턴 실전에서도 눈감고 치자.”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기자들이 관중석도 아니고 실내훈련장까지 들어와서 플래시를 터트리는 건 범죄 아니었나? 이건 훈련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김소전! 파이팅있는 모습 좀 보여봐~ 국가대표가 그게 뭐야?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노경준 좀 비켜. 김소전 가리잖아.”

    “김소전 선수. 외국 스타일로 부탁해요~ 지금은 너~무~ 코리아 스타일이야.~”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지만 이건 좀 해도 너무하네. 이정도 되면 해보자는 거지

    “경준아. 가자. 여기 더 있다가는 정신병 생기겠다.”

    “형. 저는 비키래요…. 어디로 비킬까요….”

    좀 더 일찍 움직였어야 했는데…. 얘는 벌써 미쳤구나….

    기레기들에게 구박받고 찌질이가 된 경준이를 끌고 복도로 나서는데 거기에도 어디서 왔는지 처음 보는 기레기들이 쫙 깔려있다.

    “김소전이다”

    갑자기 나를 향해 달려오는 기레기들. 초딩 때 학교 일진에 삥 뜯기던 게 생각난 건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 몰려오길래 반대쪽으로 뛰었다.

    “혀…. 형. 그만 가요. 헥… 헥….”

    “헉…. 헉…. 저 기레기들 오늘 왜 저러냐? 임수검이나 이시윤을 찍는 게 아니고 왜 우릴 따라다녀?”

    좁은 복도에서 전력 질주를 해서 숨도 가쁜데도 나를 보는 경준이의 눈이 심상치 않다.

    “왜? 너 뭐 알아?”

    “형 진짜 몰라요?”

    “뭘?”

    “형 요미우리에서 임대요청 한다잖아요”

    뭐? 뭐를 해?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자…. 잠깐 어디? 누가 뭘 해?”

    “일본에 요미우리에서 형 임대요청 준비한다고 기사 났어요. 그래서 그럴 거예요”

    미쳤네. 진짜 미쳤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넌 그런 X 소리를 이제 해!”

    “헤…. 저도 아까 화장실 갈 때 울꼬미~ 한데 들었어요”

    주먹이 꽉 쥐어졌지만 우선 급한 일이 먼저니 참는다. 너 딱 기다리라고 내가 급한 것 좀 해결하고 보자.

    * * *

    “조 단장! 이건 또 뭐야! 너 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

    “하는 거다!”

    혹시 여자가 근무는 안 하고 다른 남자를 만날까 봐 의심병이 도진 남자가 오늘도 예고 없이 여자의 사무실로 쳐들어왔다.

    “이건 뭐야! 어디 일본에서 신문팔이 하는 XX들이 내새끼를 노려!”

    “노리긴 뭘 노려! 무시해요! 그냥 거부하면 되는 거로 호들갑이에요?”

    화가 잔뜩 난 남자를 오히려 구박하는 여자. 남자의 화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이거 기사 또 전일 신문이 단독으로 냈지. 방 회장님이 노망이 나셨나. 왜 이러는 거야!”

    “그런 건 난 관심 없고, 정신 사나우니까 그냥 가요. 나 할 일 많아요”

    “우리 대응은? 홍보팀장 들어오라고 해. 반박기사 내야지”

    “아 진짜! 그만 떠들고 가시라고요. 이런 X 소리에 대응을 왜 하냐고! 냅 둬요. 그게 훨씬 낫다고”

    남자의 말을 하나도 받아주지 않는 여자. 남자의 반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화가 나 있는 남자는 그냥 두고 자기 업무에만 열중한다.

    “잠깐. 김소전 에이전트가 현민이지. 내가 이럴 때가 아니다. 현민이한테 전화를 안 했네”

    “나가서 해! 나가서! 왜 남의 사무실에 와서 떠들고 있어요!”

    “기다려봐. 아~ 얘는 또 전화를 왜 안 받아”

    “아 진짜! 나가라고!”

    “조용히 좀 해봐. 어. 현민아! 너 신문 봤냐!”

    자기 집도 아닌데 스피커폰 켜놓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남자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는 여자. 어차피 말로 해도 안 될 걸 알기에 체념하고 남자가 친구와 수다 떠는 걸 가만히 듣고 있는다.

    “그래~ 그렇지. 요미우리 이 XXX들이 랩터스에 임대를 요청하시겠단다.”

    “그런데 일본은 포스팅 없이도 되냐?”

    “포스팅을 미국 갈 때만 하는 거지 일본은 그런 거 없어 합의만 하면 이적도 가능해”

    “헐~ 쌍팔년도 시골이네”

    “넌 에이전트가 그런 것도 몰랐냐!”

    “나야 일본 같은 촌동네는 관심 없으니까. 우리 선수들 일본에 보낼 것도 아니고 야구 규약 찾아도 안봤네”

    똑같은 놈들끼리 친구 한다고 남자나 남자의 친구나 도무지 갱생의 여지가 안 보이자 참지 못하고 여자가 끼어든다.

    “다 필요 없고 신분 조회 들어와도 구단은 임대든 이적이든 동의 안 할 테니까 관심 갖지 마요!”

    “누구냐? 조수아냐?”

    “내가 누군지도 관심 갖지 말고!”

    오랜만에 남자의 친구와 통화를 한 여자가 전화를 끊으려고 시도한다. 핸드폰을 차지하려는 남자와 여자의 치열한 다툼이 있는 그때 단장실의 문이 다시 열린다.

    “단장님! 저 일본 갑니까!”

    전화기를 사이좋게 붙잡고 서로 끌어안은 형태의 커플이 갑작스러운 외부인의 출입에 당황해하면서 확 멀어진다.

    * * *

    “김소전 선수는 왜 왔어요? 국가대표팀 훈련 중일 텐데”

    조금은 흐트러진 옷매무새의 단장이 살짝 상기된 얼굴로 갈군다.

    “단장님. 지금 훈련이 되겠습니까? 저 일본 가는 겁니까?”

    “일본을 왜 가! 대한 그룹이 돈 없는 거지도 아니고 내 재산만으로도 너 하나는 지키니까 걱정하지 말아!”

    이런…. 구단주 형은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거요. 잠깐. 이형 앞 단추가 하나 뜯어져 있고 얼굴도 빨갛고…. 목소리도 잔뜩 상기된 게…. 낮술 하셨네…. 쯧쯧…. 아직 젊은데 왜 저러고 살까….

    “고척에 기자들이 쫙 깔렸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지금도 제 전화기가 울리고 있고요. 확실히 의사표시 정도는 해주서야 하는 거 아닙니까?”

    구단주 형과 조수아 단장. 둘이 이 방에서 얼굴 빨개지도록 낮술을 먹은 건 먹은 거고 우선 내 얘기는 해야겠기에 던지고 본다.

    “말 많아져 봐야 시끄럽고 좋은 거 없어요. 랩터스는 김소전 선수 임대 보낼 생각도 팔 생각도 없어요. 그러니까 선수는 운동만 열심히 하세요”

    “그렇지 소전아 너는 신경을 쓸 거 없다. 뒷일은 내가 정리할 테니까 넌 야구만 하자.”

    저 둘. 표정부터가 단호하다. 나를 절대 팔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풍기는 두 사람. 믿어도 되겠지? 엄마가 일본 싫어해서 일본으로 팔려 가고 싶지는 않은데

    “잠깐~ 왜 우리 고객님의 미래를 니들끼리 재단하시죠? 우리 고객님이 평소 일본에 얼마나 조예가 깊으신 분인데요? 우리가 이런 판~타스틱한 기회를 놓칠 것 같아요? 음. 음. 댓츠 노노~ 랩터스~ 우리 판 좀 벌여 볼까요~”

    어디선가 에이전트형 목소리가 들려 나온다.

    “박현민 미쳤어? 지금 무슨 X 소리를 하는 거야!”

    터졌다 조 단장의 사자후…. 나한테 하는 것도 아닌데…. 겁나 무섭다.

    “어허. 단장님. 단장님 사회적 지위에 맞게 고운 말을 쓰셔야지 그렇게 상스러운 말을 쓰세요. 우리 협상 좀 해봅시다. 화상통화로 바꿀까요?”

    “화상 같은 소릴 하고…. 야! 화상통화를 왜 눌러!”

    오…. 구단주 형 핸드폰 뭔가 최신기종 같은데…. 화면이 엄청나게 크고 깨끗한 게 에이전트형 못생긴 게 더 부각이 되네….

    “어? 조수아? 어디? 사무실 같은데 옷차림이 왜 그렇지? 얼굴도 빨간 게…. 설마…. 너….”

    “뭔 설마야!”

    “낮술 했구나. 낮술 좋지~ 좋은데 그래도 사무실에서 낮술은 좀…. 너무하지 않아?”

    “그따위로 해. 내 손에 잡히면 죽는다.”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그래도 랩터스의 단장인데…. 말하는 거…. 참 저렴하면서 살벌하게 하시네

    “조 단장님. 우리 이거 협상의 여지가 있지 않겠어요?”

    “없어!”

    “아니지. 우리 소전이가 세 시즌만 더 뛰면 포스팅이에요.”

    “그게 뭐! 뭐 어쨌다고!”

    “그런데 우리 소전이가 국가대표 나가면서 마일리지 쌓은 게 좀 되네요?”

    “그게 뭐!”

    “한 시즌이 줄어서 두 시즌만 뛰면 포스팅, 세 시즌을 뛰면 FA”

    FA? 지금 내 FA를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아하. FA 때 딴 데 도망갈 거니까 지금 일본에 팔아라?”

    “정답! 이라고 해주면 좋아할 거지?”

    “죽고 싶어 그러지? 하여간 한국에 들어오기만 해. 내가 요절을 내버릴 거니까”

    에이전트….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단장의 진심 담긴 말을 편안히 받아 칠만한 능력이 돼야 하는 거다.

    “말 좀 이쁘게 합시다. 그러니까 시집을 못 가지”

    “안 가는 거라고! 나 독신이라고 몇 번을 말하냐!”

    “그래 안 가는 거라고 믿어주는 척할게”

    “척이 아니고! 진짜라고”

    이게 뭐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이게 아닌데.

    “난 2년 후에 포스팅에 관심 있으니까. 그때를 위해 이번에 블러핑 좀 합시다.”

    “내가 왜?”

    “왜라니. 2년 후에 내가 김소전 비싸게 미국으로 보낸다니까. 이번에도 나 때문에 일본가는 스카우트들 꽤 될 거야. 그 친구들 전부 김소전 보러 가는 거라고.”

    한국에도 외국인 스카우트들 한 트럭인데…. 일본엔 더 많다고? 이제 실내 훈련할 때도 선크림 발라야 하나…. 플래시 싫은데….

    “필요 없어.”

    “어? 필요 없어? 내가 비싸게 팔아준다니까!”

    “내가 사치세를 10년을 내는 한이 있어도 메이저든 일본이든 돈으로는 안 밀릴 거거든”

    와…. 듣기만 해도 단장 누나…. 겁나 멋있네요….

    “저 콜로라도에서 김소전 얼마 책정하고 있는지나 알아?”

    “그런 거 관심도 없고. 사채를 써서라도 돈으로는 안 질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조수아~ 안된다고! 내가 콜로라도 스카우트팀한테 약을 얼마나 쳤는데! 너 이러면 안 된다. 그런 거 상도덕에 어긋나는 거야.”

    “XXX야! 상도덕은 너처럼 구단엔 알리지도 않고 다른 팀 만나고 다니는 게 없는 거야! 하여간 구단주 사재를 털어서라도 김소전은 지킬 거니까 꿈 깨!”

    나랑 같이 팝콘각으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구단주 형이 한마디를 한다.

    “이놈들! 싸우긴 자기들끼리 싸우고, 생색도 자기들끼리 내면서 나는 왜 끼워 넣냐? 문제 생기면 너희들 통장 털어서 책임져.”

    도대체 얼마지…. 얼마 때문에 이런 짓들을 벌이는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