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58화 (158/204)

158화. 변화의 시작

“재미있었냐?”

“그럼~ 랩터스 우승 파티였는데”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머리맡에 전화기가 울렸다. 일어나자마자 전화를 하니 어질어질하지만 정신 잘 차려야 한다. 잘못하면 두고두고 고생한다.

“누나가 소문 다 들었다. 그래도 마음 편하게 놀라고 어제 전화 한 통 안 했어. 내가 선녀다. 선녀”

음…. 선녀는 우선 이뻐야 하는데…. 너는…. 아닌 게 확실하고….

“에이~ 선배들이나 정신없지, 나는 구경만 하느라 전화 받을 수도 있었는데. 그리고 별일 없었어.”

“별일 없어? 이게 어디서 사기를 쳐. 내가 다 들었어. 라정안이 모델과 대학생들까지 섭외했다며. 그 오빠는 전국에 무슨 그런 라인이 많아?”

글쎄다. 나도 그게 제일 궁금하다.

“나야 모르지. 그 정도 하니까 주장하는 거 아니겠냐?”

“주장은 무슨. 당장 내년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어제 주장도 그러고 너도 그러고 다들 왜 그래? 진짜 주장 다른 팀 가?”

“소문이 너무 많아서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다. 랩터스 빼고도 연결된 팀만 세팀. 4년에서 8년까지 계약 내용도 다 제각각이다.”

헐…. 아직 FA 협상 시작할 시간도 아닌데 뭔 계약 내용까지 다 돌아다녀. 그리고 랩터스가 왜 주장을 못 잡지? 돈이 없는 팀도 아니고 왜 그렇지?

“넌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듣냐?”

“야! 누나 방송국 다녀. 여긴 가만히 있어도 구단들 뭐 하는지 다 들어오는 데다. 네 이야기도 요즘 핫하다. 킥킥”

뭐야? 나는 뭐? 나는 에이전트형이 예술영화 쪽 신인배우 나온 거 말고는 딱히 해준 이야기가 없는데….

“난 랩터스에 뼈를 묻을 거다. 이천 밥이 맛있다고 하니까 매일 이천에서 밥 공수해 주는 팀이야. 다른데 안가”

“이래서 입 짧은 애들은 안돼. 그깟 밥이 중요해? 돈 많이 주는데 가야지. 내가 너 때문에 고민이 많다.”

그걸 왜 고민해

“그나저나 너 언제 올라와? 사흘 쉬고 대표팀 합류해야지”

“여기서 점심 먹고 구단 버스 타고 올라가기로 했는데…. 그러고 보니 대표팀 가야 하네. 올해도 기인환 감독님이 펑고 쳐주시려나? 펑고는 우리 감독님보다 잘 치던데….”

수화기 밖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만 흘러나온다.

“뭐야? 왜 웃어?”

“아니. 좋아서”

좋아? 이게 미쳤나. 왜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해

“어쨌든 대표팀 가서 열심히 해라. 아니 ‘열심히’가 아니고 잘해라.”

“잘하고 싶다고 잘하면 야구냐?”

“무조건 잘해라. 그러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킥킥”

이게 자꾸 웃네

“어제 술 많이 안 먹었지? 퇴근하고 데리러 갈 테니까 괜히 일찍 자고 있지 말고 기다려. 누나 어제 한국시리즈 정리하느라 술을 못 마셔서 오늘은 좀 마셔야겠다.”

어제 못 마셨다고 오늘 왜 마셔….

“그러고 보니 너 때문에 술 먹는 거네. 너 각오해 오늘 술통에 넣어버릴 거야”

하…. 대표팀 가야 하는 선수를 술통에 넣어버리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지? 머리가 어질어질한 게 어제 마신 옥수수수염 차가 상했나….

* * *

“조 단장! 이게 뭐야! 라정안이 경부선을 왜 타?”

“타긴 뭘 타?”

“증권가 찌라시 정리하다 나왔다고! 나 비싼 정보지 받고 있어. 여기서 언급된 거면 거의 진짜라고 봐야 하는 건데 어떻게 된 거야!”

평소 만나던 단골 카페를 버리고 여자가 근무하는 사무실로 달려 들어온 남자. 얼마나 급했는지 슬리퍼만 신고 뛰어들었다.

“아~ 내가 다 막았는데 어디서 하나 샜나 보네”

“진짜야? 라정안이 부산으로 가?”

“블러핑이지. 뭐 갈 수도 있고”

“야!”

자기가 여자와 함께 꿈꿔오던 미래가 깨져나가는 걸 듣던 남자의 목소리가 험악해진다.

“단장이 뭐 하는 거야! 국가대표3루수를 뺏겨? 그게 말이 돼? 우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게 말이 되냐고!”

“자기가 싫다는데 어째요? 한 바퀴 둘러본다잖아. 그걸 어쩌냐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자 점점 이성의 끈을 놓는 남자.

“야! 너 라정안한테 사귀자고라도 했냐! 그렇지 않고 라정안이 왜 가! 그것도 서울 버리고 왜 가냐고!”

“미쳤냐! 내가 라정안하고 왜 사귀어!”

“그럼 엘리펀츠에 매수라도 된 거야! 얼마나 받았어! 얼마야!”

“미쳤네. 미쳤어. 라정안 FA 정가가 4년에 50억이다. 50억짜리 선수 산다고 엘리펀츠가 나한테 얼마나 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랩터스 지분 얼마나 들고 있는지 몰라!”

치사하게 연애 문제 돈 문제까지 꺼내 들었지만, 욕만 먹은 남자가 씩씩 거리기만 하고 다른 말을 꺼내지 못한다.

“라정안이 랩터스에서 더 이룰 게 없대. 더는 랩터스에서 자기가 할 일도 없고. 팀을 위해서 떠나겠다는데 뭐라고 해”

“그게 말이 되냐고! FA가 팀 바꾸는 게 돈 때문에 가는 거지 무슨 팀을 위해가! 엘리펀츠 얼마 불렀대! 내가 두 배! 아니 세배 준다. 계약해와”

“돈 문제가 아니라고!”

여전히 말귀를 못 알아듣는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흔든다. 어제는 분명 행복한 순간이었는데 하루 만에 컴컴한 어둠이 몰려왔다.

“제시는 했어?”

“아직 FA 협상 시작하면 안 돼요”

“얼마 제시했어?”

“옵션 없이 4년 55억, 6년 85억, 8년 100억.”

“조 단장…. 돈 없다더니 많구나….”

“쓸 땐 써야지요”

여자의 돈 씀씀이를 본 남자가 곳간 열쇠를 맡겨도 되나 잠깐 고민을 했다가 더 중요한 걸 물어봐야 해서 다시 정신줄을 잡아 온다.

“그런데 안 한대?”

“내가 여기서 1.5배는 더 올려줄 수도 있다고 밑밥을 깔아도 에이전트에서 돌아보고 온대요”

“에이전트 어디야? 그놈들 제정신이야?”

“에이전트는 도장 찍고 싶어 해요”

“그런데 뭐가 문제야!”

“선수가 싫다잖아요! 선수가 돌아보고 온다는데 어쪄나고요.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에이전트가 속상하다고 그래서 같이 술 엄청 먹었는데. 나 용돈 줘요. 그날 술값 많이 나왔어요”

술은 다른 남자랑 먹고 술값을 내놓으라는 뻔뻔한 여자에게 질려버린 남자가 은근슬쩍 말을 돌린다.

“라정안 왜 그래? 진짜 왜 그러냐고.”

“라정안 꿈이 김민중 감독보다 홈런 많이 치는 게 꿈이었잖아요”

“그랬지 그놈 처음에 그 소리 하고 벌크업 하다 실패하고 지금처럼 바뀐 거잖아.”

“홈런은 포기했고 대신 우승 반지를 김민중보다 많이 꼈으니까 랩터스에선 그걸로 만족한대요. 고향 가고 싶대요”

“그게 무슨 X 소리야!”

“왜 나한테 그래요! 라정안이 그랬다고!”

말 같지도 않은 변명에 남자가 화를 내자 여자가 진실을 이야기한다.

“에이전트랑 술 먹으면서 대충 들었는데 라정안 동기부여가 안되는 것 같아요”

“동기부여?”

“벌써 우승 반지만 5개에요. 야구적으로도 완성형 선수라 바꿀 것도 없고요. 다시 벌크업 해서 홈런타자를 노릴 수도 있지만 우리 팀은 누가 단장할 때 씨름선수들만 잔뜩 뽑아놔서 홈런 칠 선수는 많지요”

자기가 아끼는 야구선수를 씨름선수라고 힐난하는 여자에게 남자가 빈정이 상한다.

“그런 식이면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 하나도 남아나지 않아. 라정안이 팀에서 든든하게 버텨주니까 다른 선수들이 따라가는 거라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주장한 거 아니야?”

여자가 피식 웃는다.

“그러니까요. 라정안이 노인정 랩터스라고 불릴 때부터 주장하면서 팀에 헌신했어요. 그런데 지금 랩터스는 덕아웃 리더가 따로 있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남자. 급한 마음에 되는대로 질렀다.

“누군지 몰라도 그놈을 팔자. 정안이는 안돼. 내가 얼마나 아끼는 녀석인데”

“김소전 팔아도 돼요? 내가 판다고 할 때는 죽어라 안된다고 하더니?”

“뭐? 누구?”

여자의 입에서 상상도 못 한 이야기를 들은 남자. 믿을 수 없어 눈만 껌뻑인다.

“라정안이 김소전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어요. 자기가 김소전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하고 나가려는 거에요. 랩터스가 싫은 게 아니고”

“이…. 이…. 이XX. 질투할 데가 없어서 23살 먹은 햇병아리를 질투하고 있어!”

“햇병아리? 이번 시즌 MVP에 U-24 대표팀 주장, 팀에서도 후배들이 인터뷰 할 때마다 빼먹지 않고 감사 인사 하는 게 김소전이에요”

“그…. 그런 게 뭐!”

“국내 선수 최초로 40-40을 하고 이번 시즌 202안타. 거기다 SBC에서 가장 핫한 아나운서랑 연인관계.”

“뭐? 뭐가 어쩌고 저째?”

“실력도 있고 리더쉽도 있는데 팬들의 관심도 한 몸에 받고있는 선수를 컨트롤할 자신이 없는 거예요.”

어이가 없어진 남자의 목소리가 자꾸 커진다.

“그게 말이 돼! 그럼 다른 팀 주장들은 전부 팀 내 최고 선수야? 라정안 정도면 충분히 주장 역할 잘하고 있다고!”

“으이그. 내가 얘기한 거 안 들었죠? 자기가 떠나야 김소전이 더 큰 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라고요. 그리고 그래야 랩터스가 더 오래 잘될 거로 생각하고 있는 거라고요”

“아 몰라. 나 간다. 라정안 이XX 잡아서 목줄이라도 걸고 올 거니까 기다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여자

“아! 전화도 안 받네. 얘 지금 어딨어?”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요!”

“어딨냐고!”

“포항으로 낚시 갔겠지”

“뭘 그렇게 멀리 다녀. 클럽에서 술이나 먹을 것이지 낚시는 무슨!”

“아 진짜 라정안 너무 모르시네. 라정안 보이는 거랑 다르게 내성적인 사람이라고요. 가서 사고 칠 거 같으면 아예 가지를 말고!”

“사고는 무슨. 내가 가서 어떻게 해결하고 오는지 봐봐”

“무슨 짓을 하려고요?”

남자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는 여자에게 대답한다.

“세상에 돈이 다는 아니지만 돈만 한 게 없다는 걸 보여줘야지”

화들짝 놀라는 여자가 나가는 남자의 뒤통수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4년 55억 이상은 안 돼! 그 이상은 사비로 해결해요!”

* * *

국가대표가 소집되고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간단한 상견례 후 바로 시작되는 기자간담회. 평소에 볼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자가 대표팀 앞에 모였다.

“주최국인 일본과 세계최강 미국이 이번엔 절대 한국에 우승을 넘기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번 대회 대표팀의 목표는 어디입니까?”

“무섭네요. 무섭지만 우리가 올림픽 챔피언인 만큼 왕좌의 무게를 이겨내 보겠습니다.”

음…. 감독…. 믿는 구석이 있는 건 알겠지만…. 이건 좀 선 넘었지…. 일본도 미국도 역대 최강의 전력을 구축한다고 선언했는데

“대표팀의 면면이 화려합니다. 선발진은 어떻게 구성하실 겁니까?”

“대만전 김호영, 도미니카전 표지상, 일본전 이시윤, 미국전 임수검이 준비됩니다.”

이 아저씨도 명장병 장난 아니네…. 감독님 아직 대회 시작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선발을 발표하면 어쩌자는 거예요?

“현역 메이저리거가 합류하면서 역대 최강의 대표팀이 구성되었습니다. 부담감은 없으십니까?”

“부담감은 항상 있습니다. 부담은 감독이 다 짊어지고 갈 테니 선수들은 맘 편히 자기 플레이만 해줬으면 합니다.”

“메이저리거 선수들이 합류하자 메이저리거 스카우트들이 대거 한국에 방문했습니다. 미국에서도 관심이 큰데요. 메이저리거 선수들 관리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하하하. 스카우트들의 관심이 과연 메이저리거 선수들에게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는 아닌데? 이번 대회 끝나고 보시죠. 대회가 끝나면 우리 대표팀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가 바꿔있을 겁니다.”

그 순간 갑자기 사람들의 얼굴이 내 쪽으로 쏠렸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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