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57화 (157/204)

157화. 압도적 전력

- 역대급 재미있는 시즌을 보낸 2029시즌 최종전. 드래곤스와 랩터스의 경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2029시즌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이 경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상대 전적이나 전력을 무시하는 처절한 경기가 이렇게 진행됩니다.

- 다들 오늘 경기는 랩터스가 쉽게 이길 거로 생각했거든요.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러야 하는 드래곤스가 랩터스가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거예요.

6회 무사 1, 2루에서 한점을 뽑으면서 1:2로 앞서갔는데…. 9회 초 박요훈 선배의 실투하나가…. 넘어갔다.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지만…. 꼭 마지막 경기에서 그래야겠어요? 오늘 경기 안 풀려서 다들 신경 날카로운데 마무리투수가 꼭 지금! 이 상황에서… 에효…. 잠깐…. 그러고 보니…. 내 차례네….

- 오늘 경기 3타수 2안타, 시즌 200번째 201번째 안타를 때려낸 김소전이 2029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이닝에 첫 타자로 나옵니다.

- 9회 초 박요훈 선수가 올라올 때만 해도 김소전에게 타석이 한 번 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봤었거든요. 한 타석이 더 돌아왔어요.

- 앞서 말씀드린 대로 KBO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은 201안타입니다.

- 201안타…. 한 시즌을 꾸준히 출장해서 꾸준히 때려도 못 때리는 안타 개수거든요. 이 대기록을 뛰어넘으려는 선수가 나왔어요. 과연 기록을 깰 수 있을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봐야겠어요.

첫 타석에 엉덩이가 빠지면서 빗맞은 내야안타, 두 번째 타석엔 잘 잡아당긴 타구가 2루수 라인드라이브, 세 번째 타석엔 몸에 오는 공 피하는데 배트에 맞은 공이 3루로 굴러가 내야안타…. 이런…. 변태적인 기록이….

기록은 기록이고 시즌 마지막 경기에 질 수 없으니 우선 치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오늘 안타 나오는 꼴을 보니…. 정상적으로 쳐선…. 답이 없겠고…. 그럼 어째야 하나….

- 드래곤스도 투수 바꿨습니다. 이번 시즌 불안한 구원 투수진을 홀로 떠받들다시피 했던 마무리 김신우가 나옵니다.

- 김신우를 올리네요. 경기 감각을 살린다는 차원에서 나왔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 보이진 않죠. 드래곤스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팬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변태적으로 야구하는 법을 모르겠다. 내가 워낙 교과서에 따라 정석적으로 살아왔어야 말이지…. 도무지 모르겠으니 그냥 하던 대로 해야 한다. 정공법이다.

- 스트라이크! 김신우의 초구 바깥쪽 꽉 찬 스트라이크가 들어옵니다.

- 지금 154가 찍혔죠. 드래곤스도 가을야구 가는데 믿는 구석이 있는 거예요. 중간이 어떻게든 마무리에까지만 연결하면 드래곤스도 쉽게 지지 않을 팀이에요.

아…. 바깥쪽 보더라인을 스치고 지나갔다. 알긴 알았지만, 투구 궤적 상 때려봐야 좋은 공 나오기 힘들다. 우선 지켜는 봤지만 다음 공도 이렇게 들어오면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 좋네….

- 2구 볼. 높은 공 볼 판정 받습니다.

- 이번에도 153이 나왔어요. 조금 높긴 했지만, 위력적인 높은 빠른 볼이거든요. 오늘 김신우 컨디션 좋네요. 타자가 어려워할 공을 던져주고 있어요.

이것도…. 쳐봐야 타구에 힘을 실어주기 어려운 코스. 높아서 볼이긴 하지만 조금 낮게 들어왔어도 때리면 안될 공…. 이러면 밀리는 건데…. 뭘 쳐야 해….

- 김소전의 배트 돌았습니다. 높게 떠오르는 공! 크다! 크다! 크다! 중견수 김민구…. 타구를 더 이상 쫓지 않습니다. 2029시즌을 끝내는 김소전의 중앙담장을 넘기는 끝내기 홈런! 시즌 39호 홈런이자 시즌 202번째 안타를 이렇게 만들어냅니다.

- 김소전 선수 이 경기를 이렇게 끝내네요. 제가 본 시즌 마무리 중 가장 기억에 남을 마무리에요. 아~ 랩터스 이러니까 우승하는 거예요.

초구와 같은 코스에 들어오는 공. 자기 공을 믿어서 그런 건지 초구를 안쳤으니 그 코스는 노리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한 번만 당했으면 됐지 두 번은 안 당한다.

맞는 순간 배트가 요동도 없이 아름다운 호를 그린다. 이런 건 타구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배트를 가만히 타석에 내려놓고 1루를 향해 뛴다.

맞는 순간부터 야구장을 가득 채우던 비명소리가 1루를 밟기도 전에 내 이름으로 바뀐다.

아까 이상한 거 하면서 들을 때는 창피했는데 지금은 밥값은 한 거 같고 들어줄 만하네… 내가 이 맛에 야구한다.

* * *

“돈 더 줘요”

“왜!”

“202안타를 쳐서 스페셜 굿즈 만들어 팔아야 해요. 돈 줘요”

“구단에 돈 없어?”

“있어요”

“그런데 왜 나한테 달래”

“쳇. 안 넘어오네”

요즘 데이트가 잦은 남자가 여자의 가벼운 용돈 타령에 매몰차게 거절하고는 시시덕거린다.

“조 단장 세상이 다 아름답지 않아?”

“오늘날 궂은 거 안보여요? 비가 오려면 오고 말려면 말아야지. 나 이런 날씨 딱 싫어”

여전히 알아가야 할 게 많은 커플이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다 말고 다른 걸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기 감독님 너무한 거 아니에요?”

“기 감독님은 왜”

“7차전 다음날로 소집일 통보받았어요. 선수들이 기계도 아니고 한국시리즈 끝나자마자 부르는 경우가 어딨어요?”

“일정이 빠듯해서 그렇지. 처음부터 감독님한테 양해 구한 거 아니었어?”

“감독님은 5차전 안에 무조건 끝난다곤 하는데…. 다들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국가대표라고 구단에 도움 되는 건 하나도 없는데 구단들만 손해 봐서야 하겠냐고요”

대한민국의 육군 포병 장교로 군 생활을 했음에도 애국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여자에게 소총수 병장 출신 예비역의 타이름이 시작된다.

“어허. 나랏일 하는데, 일반 백성이 도와야지. 나라가 잘돼야 나라 안에서 사는 백성들이 살기 좋아지는 거야. 높은 나으리들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생각은 무슨. 기 감독님 요즘 집에서 살림하느라 좀이 쑤셔서 그렇다는데. 내가 다 들었어요”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는 더 이야기해 봐야 피곤한 법. 남자가 다른 주제로 말을 바꿔본다.

“차출은 차출이고 우리 MVP님 올해는 연봉 올려줘야지?”

“MVP? 누구? 작년보다 성적 떨어지고도 MVP 받는 사람이 있던가? 내가 작년보다 성적이 떨어진 선수 연봉 깎는 건 좀 잘하는데?”

“야! 너 그런 거 범죄야! 내가 이럴 줄 알고 미리 물어봤지”

한 가지 사실을 놓고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남녀. 서로의 입장차이가 꽤 크다.

“김소전. 지난 시즌 3할 8푼 9리 OPS 1.23 홈런 42개 도루 43개, 이번 시즌 3할 7푼 1리 OPS 1.15 홈런 39개 도루 50개 성적이 떨어졌는데?”

“그게 무슨 헛소리야. 200안타하고도 2개를 더쳤어. 역대 최고기록을 갈아 치웠는데 그런 거 무시할 거야?”

“작년엔 국내 선수 최초로 40-40을 했어. 그거랑 200안타랑 퉁치고, 나머지는 성적이 다 떨어졌는데? 연봉 삭감합시다.”

“이러니 팀이 안 굴러가지. 정말 이럴 거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빠져요. 구단주까지 이러면 내가 박현민이랑 딜하기 힘드니까. 가만두면 내새끼 알아서 내가 잘 챙길까 봐 꼭 이러더라”

“퍽이나 그러겠다. 또 뒤통수나 치려고 하겠지”

“내새끼 때려도 내가 때리는 건 괜찮아. 다른 데서 맞고 다니지만 않으면 다 괜찮은 거예요”

폭력에 대해 비뚤어진 사고관을 가진 여자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남자. 점점 여자의 가정사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간다.

- 2029 한국시리즈. 4차전. 여기서 끝내려 하는 랩터스와 반전의 기회를 만들어 한 경기를 더하고 싶어 하는 워호스의 승부. 광주에서 보내드립니다.

야구는 이렇게 해야 제맛이다. 1등을 하고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니 밑에서 펼쳐지는 아비규환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물고 뜯던 아랫것들이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역대급 꿀잼을 만들어낸다.

가을야구 전 경기를 끝장 승부까지 끌고 간 아랫것들. 올라가려는 팀의 바짓가랑이를 억지로 잡아끌어 가며 처절하게 싸운 결과 한국시리즈에 오른 팀은 시즌 2위를 차지한 워호스.

썬더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선발 불펜 할 것 없이 전부 소모하고 타격 사이클마저 확 떨어진 상태로 올라온 워호스. 이런 워호스를 상대로 한 달간 남의 집 싸움을 구경하며 푹 쉰 랩터스가 1차전부터 쥐잡듯이 잡아댔다.

보통 한 달 쉰 팀의 경기력이 이 정도로 올라오기 힘든데 워호스의 지친 투수들을 상대로 1차전부터 배트에 예열을 마친 랩터스. 1차전에 5점, 2차전에 13점, 장소를 옮겨 3차전에 8점을 뽑아내면서 상대의 전의를 상실케 하고 남의 집에서 잔치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시작된 경기. 가을 밤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 김정하! 한국시리즈에서 잠잠했던 김정하마저 터집니다.

- 투수 바꾸네요. 버티기 힘들죠.

- 랩터스 오늘 경기에서만 홈런 5방을 터트리며 우승을 자축하고 있습니다.

- 스코어 15:2에서 투수가 바뀝니다.

- 고승규선수 나오죠. 엔트리에 남은 선수도 없어요.

안될 땐 그렇게 안 되던 야구가 되려고 하니까 돼도 너무 잘된다. 한국시리즈라는 큰 무대. 큰 경기 여러 번 해본 선배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한국시리즈 처음 해보는 어린 선수들까지 다 같이 미쳐 날뛰니…. 이길 수밖에…. 살다 보니 이런 일이 다 있다.

- 최창현의 타구 높이 떴습니다. 유격수와 좌익수가 낙구 지점을 확인하면서 모입니다.

- 이건 유격수죠. 유격수 정확히 콜을 하고 있어요.

- 높이 떴다 내려오는 공. 유격수 김소전이 안전하게 잡아냅니다! 2029시즌 우승을 확정 짓는 마지막 아웃카운트! 랩터스가 2029시즌의 우승을 차지합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면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냥 수많은 경기중 한경기 이긴 듯한 기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그저 기분 좋은 웃음만 얼굴에 가득할 뿐 다른 우승팀들 같은 승리에 도취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한 사람만 빼고….

- 박우혁 선수 울음을 터트립니다.

- 박우혁 선수 시즌 중간에 랩터스에 와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어요. 저니맨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박우혁이거든요. 이번 우승으로 본인이 얼마나 가치 있는 선수인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 하하하. 카메라가 저희 직원을 비춥니다.

- 짓궂네요. 김승혜 아나운서도 우는 것 같죠?

- 박우혁 선수 이번 겨울 바쁠 것 같습니다.

- 저도 올겨울도 축의금 많이 나가겠어요.

우는 사람 포함 선수단이 전부 그라운드 한가운데 모여 광주까지 내려온 몸에 녹색 피가 흐르는 팬들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찍어본다.

“주장…. 그런데요…. 우리 오늘 뒤풀이는 어디로 가요?”

한참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데 구석에서 누가 다들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묻지 못한 말을 물었다.

“그건 왜 물어?”

“저…. 그게…. 뒤풀이를 서울에서 하는지 광주에서 하는지 궁금해서….”

“뒤풀이 광주 대한 호텔에서 하잖아”

“주장…. 그거 말고….”

다들 귀를 크게 열고 기다리고 있는데 모르는 척 딴소리만 하는 주장…. 그러고 보니 랩터스 우승을 항상 잠실에서만 했었는데 지방에서 하면 어쩌는 거지?

“내가 FA로 다른 팀 가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아무것도 안 했을까 봐? 오늘 상무지구 전세 냈으니까 기대해. 1년 동안 야구 한 거 후회하지 않게 해줄게”

역시…. 주장…. 이 정도 하니까 주장 하나 보다. 존경합니다. 주장. 그런데…. 주장…. FA로 딴 데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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