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56화 (156/204)

156화. 운수 좋은 날

1년에 144경기를 하는 야구. 그중 그저 한 경기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가 주는 압박감은 특별하다.

1위 팀이던 10위 팀이던 모두 함께하는 마지막 통과 점. 일 년을 울고 웃었던 2029시즌을 정리하는 그 경기가 5개 구장에서 동시에 열린다.

“형 오늘 1번이네요”

아…. 최 대리님이 200안타 치면 팔아버린다고 그랬는데…. 눈치 없는 감독이 1번에 박아버렸네…. 이거…. 어쩌지…. 그냥 못하는척할 수도 없고…. 고민이다….

“형 오늘 만원 관중이래요. 지난 경기에 형 199안타 이벤트 때문에 암표도 엄청나게 팔린다는데요?”

무슨 한국시리즈냐? 암표를 팔게? 그리고 요즘 그거 단속 심해서 걸리면 큰일 난다는데…. 뭐. 그런 짓을….

“아…. 형…. 그리고 오늘 형 200안타 치면 오늘은 2만 원짜리 상품권 나눠준대요. 그리고 대한전자에서 핸드폰도 200대 나눠준다던데요? 형 오늘 안타 못 치면 집에 못 갈지도 몰라요”

웃냐? 지금 웃음이 나오냐? 안타를 치면 팔아버린다는 구단 직원과 못 치면 집에 못 간다는 팬들…. 뭘 선택해야 하는 거냐….

- 2029시즌 마지막까지 왔습니다. 잠실에서 드래곤스와 랩터스의 16차전, 동시에 각 팀의 144번째 경기를 보내드립니다.

- 랩터스는 1위를 진작에 확보했고, 드래곤스는 지난 경기에 이기면서 4위를 확보했어요.

- 역대급으로 치열했던 순위싸움. 1위 랩터스 2위 워호스, 3위 썬더스, 4위 드래곤스, 5위 소닉스까지 가을야구에 진출한 가운데 포스트시즌을 준비해서 드래곤스의 엔트리 주전을 많이 뺐습니다.

- 어쩔 수 없죠. 내일 하루 쉬고 소닉스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러야 하는 드래곤스거든요. 오늘 경기가 순위와 관계가 없는 만큼 최대한 전력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운영을 할 거예요. 이게 맞는 선택이죠.

알고는 있었지만…. 휑한 드래곤스의 라인업. 그에 비해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주전을 전부 투입한 랩터스. 하여간…. 감독…. 자비가 없어요.

- 1회 초 드래곤스의 공격 마무리됩니다. 경기 시작부터 매섭게 몰아쳐 본 드래곤스였습니다.

- 빗맞은 안타가 나오면서 김호영 선수가 살짝 흔들리는 모습이 나왔지만 후속 타자를 삼진으로 잘 잡아냈어요.

기운이 요상하다. 투수가 구위로 압도하는데 밀린 타구들이 빈자리로 날아간다. 그나마 김호영 선배가 직구로 찍어누르면서 삼진으로 돌려세웠으니 망정이지…. 배트에 맞아 나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런 날은…. 불안한데….

- 이어지는 랩터스의 공격. 1번 타자 유격수 김소전부터 시작됩니다.

- 시즌 199안타를 기록 중인 김소전이에요. 리그에 단 한 번밖에 없었던 200안타를 다시 기록할 수 있을지 기대를 하고 있어요.

“형 관중석 한번 보고 나가요. 그러면 안타 칠 수 있어요!”

덕아웃에 들어와 장비를 챙기고 나오는데 뒤에서 경준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도 모르게 둘러보는 관중석. 녹색의 물결에 손에는 다들 200안타를 새겨넣은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보고만 있어도 기운이 나야 하는데…. 지난날 밤샘 사인의 악몽이 떠오르면서 어깨가 뭉쳐온다….

- 타석에 김소전. 긴장된 표정입니다.

- 선수도 알고 있을 거거든요. 대기록을 앞두고 평소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이겨내야 합니다.

상대 투수는…. 내가 잘 아는 투수 천우식. 1군에선 거의 보지 못하지만 2군에서는 쏠쏠한 이닝이터 역할을 해주는 전형적인 2군 선수. 예전엔 참 자주 만나곤 했었는데….

- 드래곤스의 선발투수 천우식입니다. 이번 시즌 대체선발로 4경기 나와 13이닝을 던지면서 평균자책점 5.54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천우식 선수 좋은 체인지업을 가지고 있는데 직구의 구위가 받쳐주지 못해 항상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본인을 위해서 한 단계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 초구 스트라이크. 초구 높은 쪽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천우식.

- 이건 안쳤죠. 김소전 선수 볼카운트에 여유가 있을 때 이 코스의 공을 안 치고 흘려보내요. 이게 무서운 거거든요. 배트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선수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은 공은 참을 수 있는 선구. 좋은 선수예요.

직구도 아닌 것이 체인지업도 아닌 것이 알 수 없는 애매한 높이로 날아오다 마지막에 살짝 가라앉았다. 이게 체인지업이었단 말이지. 내가 높은 건 어지간하면 안치지만 이건 힘으로 붙을 만한데? 그립도 확인했겠다. 또 던져봐라.

- 바깥쪽 스트라이크. 천우식 김소전을 맞아 과감한 승부를 해주고 있습니다.

- 바깥쪽 꽉 찬 슬라이더였어요. 몸쪽공을 본 타자는 이번 공 멀어 보일 수밖에 없거든요. 경기 운영 능력은 확실히 좋은 투수예요.

아…. 눈앞에 체인지업만 머리에 넣고 있다가 당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똥볼에 농락당하면 안 된다. 집중. 집중하자.

- 억지로 가져다 댄 타구 3루로 흐릅니다. 3루수 전진! 1루 송구! 1루에서 세잎! 세잎! 김소전 선수 시즌 200번째 안타를 발로 만들어냅니다.

- 몸쪽으로 잘 붙인 직구였는데 타이밍이 안 맞았지만, 코스가 좋았어요. 그래도 어지간한 선수였으면 1루에서 살기 힘들었는데 김소전 빠르네요.

-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200번째 안타를 신고하는 김소전. 팬들이 김소전 선수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습니다.

하…. 이게 무슨 추태…. 투수의 직구가 워낙에 똥볼이라 그랬지 삼진당해도 할 말 없는 공이였는데. 아…. 뭐야! 저런 걸 전광판에 다시 띄우면 어떡해!

- 김소전 선수의 200번째 안타 다시 보시죠.

- 보면 타이밍을 뺏겼어요. 그래서 어정쩡하게 엉덩이가 뒤로 빠지면서 몸이 다 무너졌거든요. 그러면서 손목만 가지고 공의 코스만 3루로 돌려놨어요. 이런 게 기술이거든요.

하…. 저 처참한 모습을…. 느린 화면으로 돌리다니…. 이건 인권위에 신고해야 한다.

- 김소전 선수가 풀히터로 알려져 있는데요.

- 그렇죠. 김소전 선수 좋은 공이든 나쁜 공이든 자기 스윙을 가져가는 선수거든요. 김소전 선수 시즌 중에 이렇게까지 중심이 무너지는 걸 본 적이 없는데 200안타를 치겠다는 집념이 느껴지는 타격이었어요.

- 김소전 선수를 연호하는 함성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 부럽네요. 이렇게까지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 그라운드에서 어떤 기분일까요.

쪽팔린다. 프로가…. 저따위 타격을…. 후배들한테 삼진을 당할지언정 무조건 자기 스윙해야 한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저따위…. 숨자…. 숨어야겠다.

- 2번 타자. 루카스 나섭니다.

- 후반기 정식 등록되면서 단조로웠던 랩터스에 다채로움을 만들어줬어요. 일발장타 위주의 타선에 엄청나게 빠른 선수가 들어가면서 루상에 나갔을 때 상대가 느끼는 압박이 어마어마하거든요. 기록으로 나오는 모습보다 훨씬 파괴력이 있어요.

- 그렇습니다. 실제 후반기 들어 랩터스의 작전이 확연히 늘어난 게 보였습니다.

- 그렇죠. 모리스 선수가 타석에 있을 때는 터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게 나쁜 게 아니라 그런 타자 지금 랩터스 타선에는 성현범도 있고 황경철도 있고 한단 말이에요. 김민중 감독이 좋은 판단을 했어요.

아 몰라. 코치의 강권에 의해 관중석에 인사도 했는데 끝나지 않고 계속 내 이름만 들려온다. 도망가고 싶다. 그래…. 차라리 빨리 죽어야지….

- 천우식. 루카스를 상대로…. 1루 주자 2루로 달립니다. 볼. 크게 빠지는 볼. 포수 2루로 던지지도 못합니다. 200안타에 이어 도루마저 성공시키는 김소전! 시즌 마지막 경기에 기어이 50도루를 채웁니다.

- 지금 자신이 있어요. 천우식 선수 공 던지기도 전에 2루로 뛰었거든요. 보세요. 공 빠지니까 마지막에 속도도 줄였어요. 200안타에 50도루. 이미 결정이야 돼 있었지만, 시즌 MVP에 못을 박아버리네요.

살려고 뛴 게 아니고 죽어도 된다고 뛰었는데… 살았…. 뭐…. 이러냐…. 그만…. 그만 좀…. 왜 자꾸 내 이름만 부르는 거야…. 내가 뭘 했다고….

- 1회 말 랩터스 4번 황경철 선수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앞서가며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 랩터스 입장에서는 조금 아쉽죠. 선두타자가 안타 치고 도루로 2루까지 갔는데 1점만 냈어요.

- 랩터스 오늘 잘 맞은 타구들이 야수 정면으로 갔습니다.

- 치기는 잘 치는데 조금씩 운이 따르지 않네요.

뭔가 이상하다 기운이…. 기운이 이상하다.

- 팽팽한 경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경기전 랩터스에 무게추가 기운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네요. 드래곤스 선수들 마지막까지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 6회 초 1점을 만회하면서 1:1동점을 만들어낸 드래곤스 6회 말 수비를 준비합니다.

이럴 줄 알았다 꼬였어. 완전히 꼬였다. 야구를 하다 보면 이런 날이 꼭 있다. 우리 팀이 때린 공은 무조건 야수 정면, 상대팀이 때린 공은 무조건 텍사스히트. 오늘이 그런 날이다.

- 맞았나요? 몸에 맞았습니다.

- 옷깃에 살짝 스쳤죠. 바짝 붙인다는 게 살짝 스쳤네요. 드래곤스 아쉽겠어요.

그래 이렇게 나가면 되지. 공이 자꾸 야수 정면으로 날아들면 공을 때리지 말고 맞고 나가면 되잖아.

수경 선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6회 말 스코어 1:1 무사 주자 1루. 타석에 김소전. 오늘 첫 타석에서 내야안타로 시즌 200안타를 기록했습니다.

- 첫 타석 안타 두 번째 타석에선 잘 맞은 타구가 2루수 직선타였죠. 세 번째 타석에선 어떤 모습을 보일지 보죠.

평소보다 조금 더 홈플레이트 쪽으로 붙고 공이 다가오길 기다린다. 최대한 안 아프게 방금 전 수경 선배처럼 옷깃만 살~짝~ 펄럭거리게. 자 할 수 있다!

- 김소전 선수 타석에 바짝 붙어섭니다.

- 오선화 선수의 바깥쪽공을 때리겠다는 거죠. 방금 몸에 맞는 공이 나왔기 때문에 몸쪽은 투수가 부담을 가질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야구를 보는 시야가…. 대단해요.

투수님아. 방금 전처럼 붙여주세요. 겁먹지 말고 붙여주세요. 제가 재빠른 반사신경으로 옷깃만 스쳐볼게요

- 초구 볼! 몸쪽에 붙여보는 오선화. 김소전 깜짝 놀라 피해 봅니다.

- 과감하네요. 투수가 이래야죠. 타자가 붙어온다고 피하기만 해서는 해결이 안 돼요. 지금 같은 공을 계속해서 던질 수 있으면 오선화 선수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어요.

와…. 사람 차별하는 거야? 방금 수경 선배한테는 맞아도 안 아플 만한 공을 던지더니 나한테는 나가 죽으라고 짱돌을 던지네

너무하네! 진짜. 누가 이기나 해봅시다.

- 여전히 타석에 가깝게 붙어서는 김소전.

- 이게 시즌 마지막 경기인가요? 양 선수 최종순위랑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네요.

- 머리 위로 날아가는 공! 위험했습니다.

- 의도는 없어 보이는데요. 공 빠진 것 같아요.

야! 누굴 죽일 셈이야!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어디까지 던질 수 있나 보자 해봐!

- 3구. 배트에 맞았습니다. 3루수! 3루수 공 잡지 못하고 미끄러집니다! 1루 주자 2루까지 타자주자 김소전 1루에 들어갑니다.

- 지금도 공이 머리를 향했는데 피하는 김소전 선수의 배트에 공이 와서 맞았어요.

- 피하면서 맞은 공이 절묘하게 3루수 앞으로 굴렀습니다.

- 코스도 좋았는데 3루수가 급했죠. 달려들다가 혼자 넘어졌어요.

- 기록 우선 안타로 기록됩니다.

- 기록원들 이걸 안타로 기록하네요. 애매하긴 했어요. 넘어지지 않았어도 김소전의 발을 생각하면 박빙이었을 것 같은데. 기록원도 그렇게 생각해서 안타를 준 것 같아요.

야구 인생 최대의 수치다. 타자가 타석에서 풀스윙을 가져가도 모자랄 판에….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야…. 자괴감 든다.

- 201안타. KBO 역대 한 시즌 최다안타와 타이기록을 세우는 김소전입니다.

- 대단한 선수예요. 이 선수가 이제 고작 만으로 23살 선수거든요. 앞으로 얼마나 더 대단한 선수가 될 수 있을지 상상도 못 하겠어요.

죽고 싶다.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데 자꾸 등 뒤에선 내 이름이 들려온다. 아까처럼 2루라도 훔치고 싶은데 2루는 수경 선배가 차지하고 있고….

나도 다른 사람처럼…. 멋지게 야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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