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55화 (155/204)
  • 155화. 이벤트

    이 사람들… 시즌이 끝나가는데…. 1위도 확정을 지었는데…. 왜 이러시는 거지….

    팀의 핵심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선배들이 열심히 한다. 외부에서 들어온 참견쟁이 아저씨가 미친 척 한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오자 고만고만한 다른 선배들도 따라간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선배들이 플레이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서 하자 후배들은…. 방법이 없다. 1루까지 이 깨물고 죽어라. 달려야 한다.

    순위싸움 1위 팀을 만나 잠깐이나마 편한 경기를 기대했던 상대 팀들의 볼멘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감독은 매 경기 포스트시즌처럼 엔트리를 전부 소모해가며 이기는 경기를 끌어간다.

    시즌 초 전문가들이 팀의 구심점이 없어 흔들리며 하위권으로 떨어질 거라는 예상을 날려버리는 랩터스. 그런 X 소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성공적인 리빌딩으로 다시 장기집권 체제의 기틀을 만들며 2029시즌 끝을 향해 다가간다.

    - 썬더스 오늘 경기 어렵습니다.

    - 야구 이렇게 해야지요. 시즌 끝까지 관중석을 채워주시는 관중들이 있거든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오늘 경기 지면 썬더스 3위로 떨어집니다.

    - 이겨내야지요. 아직 2이닝 남았으니까 잘 막고 이겨내야 합니다.

    시즌 중반이 넘도록 어지럽던 순위싸움에서 홀로 벗어난 랩터스. 그런 랩터스와 반대로 여전히 따닥따닥 붙어있는 상위권 팀들…. 자비가 없는 랩터스는 모든 팀에 공평하게 최선을 다한다.

    - 1사 주자 1, 2루. 타석에 김소전입니다.

    - 2개 남았어요.

    - 200안타까지 2개를 남겨두고 있는 김소전. 오늘 마지막 타석에 199번째 안타를 쳐낼지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형. 파이팅”

    “갑자기? 뜬금없이?”

    “형 봐요. 198. 지금 하나 더 치면 작년 기록 넘는 거예요”

    “놀리냐? 작년보다 타율도 홈런도 떨어진 거 안보이냐?”

    “와~ 욕심쟁이네. 형. 사람이 이것보다 어떻게 더 잘 쳐요. 가서 199번째 안타나 치고 오세요”

    2루에 똥차가 있어서 안타 말고 큰 거를 쳐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경준이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

    안타 개수 그저 타석에 많이 들어가면 알아서 따라오는 기록인 것을…. 타율이 안 올라서 속상한데 쓸데없는 얘기를….

    - 초구 볼. 많이 빠집니다.

    - 투수도 알고 있어요. 지난 시즌 김소전의 198안타가 개인 최다안타거든요. 맞고 싶지 않을 거예요.

    하…. 전광판…. 저러라고 만들어 놓은 전광판이 아닐 텐데 ‘도전! 199안타’를 화면 가득 새겨놓았다.

    경기장에 있는 사람은 절대 모를 수 없는 촌스러운 번쩍임…. 저거 없애기 위해서라도 하나 쳐야겠다.

    - 볼. 연속으로 볼이 들어옵니다.

    - 부담스러워요. 부담스럽죠.

    - 1사 주자 1, 2루. 투볼을 내주는 썬더스.

    뭔가 강한 공을 던지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공도 별론데 제구도 안 되네…. 이거 배트를 내보지 않아도 이겼는데?

    - 3구! 타격! 2루수 키를 넘어가는 안타! 오늘 경기에서 기어이 199번째 안타! 개인 최다안타를 만들어내는 김소전입니다!

    - 시간문제였어요. 언제라도 치는 거였거든요. 이제 200안타가 눈앞에 다가왔어요.

    - 2루 주자! 득점! 1루 주자 3루! 타자는 1루까지! 본인의 199번째 안타를 1타점 적시타로 만들어내는 김소전! 이제 200안타를 향해 달려갑니다.

    평소 같으면 궁디 팡팡만 해줄 1루 코치님이 등 뒤 관중석을 향해 내 몸을 돌린다.

    눈앞에 가득 들어오는 관중석. 이 늦은 시간 날도 추운데 집에도 안 가고 공놀이를 지켜보는 환자들이 199를 새긴 플랜카드를 흔들며 ‘김소전’을 외쳐준다.

    별거 아닌데…. 그저 1, 2번 타자로 나와서 기회가 많았을 뿐인데…. 사람 무안하게….

    쑥스러움이 커서 관중석을 향해 폴더를 접어 인사를 하고 투수를 바라봤다. 평소보다 20배는 더 큰 저 목소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별것도 아닌데 왜 이래….

    - 스코어 4:7. 랩터스가 3점을 앞서있는 가운데 타석에는 노경준입니다.

    - 노경준 선수도 이번 시즌 좋았어요. 본인의 단점으로 지적되던 출루율이 개선됐거든요.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더 무서워요.

    에잇…. 경준이가 나왔는데도 저 눈치 없는 응원단장 계속 내 이름만 부른다…. 진짜…. 너무하네

    - 초구 던지자마자 1루 주자 2루를 훔칩니다. 2루 롱텍~ 세잎! 살았습니다. 199번째 안타에 이어 49번째 도루까지 성공시키는 김소전!

    - 과감하네요. 투수 투구동작 들어가기도 전에 출발했어요. 이러면 잡을 수가 없죠.

    - 랩터스의 남은 경기는 1경기. 김소전의 시즌 기록은 199안타 38홈런 49도루. 이번 시즌 김소전의 기록은 진행형입니다!

    - 지난 시즌은 40-40을 했어요. 하루 쉬고 모레 경기를 마치고 나면 김소전선수가 어떤 기록을 새겨넣을지 궁금하네요.

    뒤에서 들리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냥 뛰었다.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좀 덜해질까 싶어서 뛰어 봤는데…. 실수다…. 그냥 있는 게 나았을지도…. 저 야구환자들…. 안타도 아니고 도루 하나 했다고 내 이름을 더 크게 불러댄다…. 추운데 기운 빼면 내일 몸살 나요. 그만 앉아서 따뜻한 거나 마시세요

    - 볼넷…. 볼넷으로 출루하는 노경준. 1루가 비니까 노경준을 채웁니다.

    - 다음 타자 성현범이죠.

    - 1사 주자 만루 타석에 성현범.

    - 이번 시즌 랩터스의 신데렐라는 타자 중엔 성현범이에요. 헐거워진다고 봤던 랩터스의 중심타선에 큰 축을 담당해 주고 있어요.

    - 그렇습니다. 풀타임 첫 시즌에 22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성현범입니다.

    - 성현범의 타격이 조금은 거친 면이 있지만…. 아…. 이거 다른 선수 이야기를 할 수가 없네요.

    - 하하하. 잠실의 관중들 김소전만 연호하고 있습니다. 팬들이 김소전 선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직 경기 안 끝났는데…. 왜 자기들끼리 신났어…. 님들 자제 좀….

    - 잘 맞춘 타구! 중견수! 중견수 오버~ 중견수 키를 넘어갑니다! 3루 주자 홈인! 2루 주자 홈인! 1루 주자! 1루 주자까지 홈으로 득점! 타자는 2루까지! 승기의 쐐기를 박는 성현범선수의 3타점 2루타!

    - 썬더스 이제야 투수를 바꾸네요. 조금 늦었어요.

    경기가 끝나고 락커에서 장비를 정리하는데 선수들이 나를 보고 자꾸 한마디씩 한다.

    “어이구 대타자님 저도 상품권 주시나요?”

    “네?”

    “형~ 저도 버블헤드 가지고 싶습니다.”

    “뭐? 뭔 헤드?”

    “이런 거 있으면 미리 좀 알려주고 해야지. 그래야 내가 지인들 경기장에 부르지. 다음부턴 꼭 미리 말해라~”

    “선배님 무슨 말이에요?”

    나만 모르고 다들 아는듯한 기분 나쁜 상황. 혼자 툴툴대면서 마무리 훈련하려고 준비를 하는데 매니저 형이 부른다.

    “소전아. 가자 바쁘다.”

    “네? 형 뭐가요?”

    “따라와”

    “어딜요?”

    매니저 형 손에 끌려간 허름한 창고…. 거기에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물건들….

    “형…. 이거 뭐예요?”

    “뭐긴. 네놈이 사인해야 할 굿즈지”

    “네?”

    “사인하라고! 종류별로 199개씩 사인해.”

    “그러니까 이걸 왜….”

    “하려면 좀 해! 이거 준비하고 다시 포장해야 하는 직원들 생각해서 시키는 거나 빨리해. 우리 다 파업할 판이야!”

    * * *

    “미쳤나요?”

    “미치다니?”

    “죽고 싶으면 말로 하지 꼭 이 딴짓을 해야겠어요?”

    “죽다니. 왜 좋은 일을 하고 죽어? 나 오래 살 거야. 나 단장할 때 욕 하도 먹어서 백만 년을 살 텐데? 아. 조 단장도 욕 좀 먹잖아. 우리 오래 살자~”

    랩터스의 승리로 경기가 끝난 후 관중들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는데 얼굴을 잔뜩 구긴 여자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남자와 단골 카페에서 비밀데이트가 시작된다.

    시작부터 좋지 않은 표정의 여자. 남자를 보자마자 화를 낸다.

    “내가 시스템 건들지 말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관리자 계정은 언제 털어갔어요?”

    “계정을 털다니. 나는 조 단장 컴퓨터를 털었…. 아니…. 그게 아니고.”

    “죽고 싶구나….”

    응원팀이 시즌 마지막 경기를 하지도 않고 1위를 확보하자 기분이 좋은 남자가 정제되지 않은 말을 하면서 자꾸 여자의 심기를 긁는다.

    “오늘 온 관중들한테 19,900원짜리 상품권을 말도 없이 뿌리면 구단은 어떻게 대응을 하라는 거에요? 상품권도 모자라 연간 회원들한테는 선수 사인굿즈? 돈은? 뿌리면 끝이야? 돈은 어떻게 줄 거야? 당장 캐시로 내놔요.”

    할 말이 얼마나 많은데 앞뒤 자르고 돈 얘기부터 하는 여자에게 기분이 상한 남자. 가진 게 돈밖에 없는 남자가 돈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시도한다.

    “얼마나 된다고 그렇게 돈 돈 그래. 우리 선수가 개인 신기록이자 구단 신기록 199안타를 쳤는데 그 정도 쓰는 게 아까워?”

    “아깝지! 199안타가 별거야? 타석에 많이 나와서 누적이 따라온 건데 뭐 별거라고. 올해 작년보다 성적도 안 좋은데 연봉을 깎아도 모자랄 판에.”

    자기가 사랑하는 선수연봉이 깎인다는데 발끈한 남자.

    “야! 200안타를 치는데 연봉을 왜 깎아? 더 줘도 모자랄 판에. 이러니까 조 단장 야알못 소리 듣는 거야.”

    “야알못이건 뭐건 빨리 돈 내놔요.”

    “얼마? 얼마면 돼?”

    사고쳐놓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는 남자에게 화가 난 여자가 차갑게 쏘아붙인다.

    “20억.”

    “얼마?”

    “10억.”

    “야! 왜 10억이야!”

    “상품권 5억, 굿즈 5억.”

    “무슨 계산이 그래?”

    “그러니까 누구 마음대로 사고 치래요! 돈부터 구단 통장으로 입금하고 카드 내놔요.”

    “카드? 카드는 왜?”

    “왜긴! 일정에도 없는 야근 시켰으면 윗사람이 직원들 회식도 시켜주고 해야지! 블랙카드 내놔요. 비싼 그거 먹여야겠어.”

    순간의 유희로 수십억 뜯기고 그것도 모자라 카드까지 뜯기게 된 남자가 발악을 시도한다.

    “내가 줄 수는 있는데 내일…. 내일 200안타 치면 어쩌려고? 그럼 그때 이벤트는 구단이 해야지. 내가 개인적으로 하는 것보다 더 크고 성대하게 해야지. 안 그래?”

    “내가 얘기했지. 200안타 그딴 거 그냥 타석 많이 나오면 치는 거라고. 4할을 친 것도 아닌데 유세 떨기는.”

    “야! 진짜 이럴 거야? 네가 팬들의 마음을 알아? 199안타와 200안타의 차이를 알아? 내가 왜 199안타에 이벤트를 하는데! 200안타 치라고 치성드리는 거잖아!”

    “아 몰라! 그럼 돈 더 내놓던가. 깔끔하게 구단에 20억 넣어요. 그럼 내가 소소하게 뭐라도 할지.”

    “야! 내가 원가 계산해? 구단 상품권하고 재고 물품에 사인해서 나눠주는데 무슨 20억이 들어? 이거 사기야!”

    “사기는 외부인이 경기중에 구단 계정 털어서 홈페이지에 배너건 게 사기지! 빨리 20억 넣고 카드 내놔요. 나 바빠.”

    * * *

    정신이 혼미하다…. 경기 끝나자마자 선수를 불러다 칙칙한 창고에 가두고 사인 수천 개를 시키는 게 구단이 할 짓인가…. 그렇다고 한마디 하려고 하면 내 옆에서는 컨베이어벨트 돌아가듯 착착 선물 세트를 포장하는 직원들 눈치가 보인다.

    다들 묵묵히 기계처럼 일하고는 있지만, 표정은 터지기 직전이다…. 야구선수는 야구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노가다까지 해야 하는 건 아무도 안 알려줬잖아….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끝난 사인…. 매니저 형이 나만 슬쩍 데리고 문을 열고 나간다. 그때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소전 선수. 200안타 치면 팔아버릴 거야….”

    피곤에 절었지만 낮고 단호한 전력분석팀 최 대리님의 목소리…. 무서워 뒤도 돌아보지도 못하고 못 들은 척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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