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54화 (154/204)
  • 154화. 로맨티스트

    한 시즌을 보내면서 우여곡절 없이 보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겠냐만…. 이번엔….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멀쩡히 잘 굴러가던 팀이 외국인 선수를 내보내고 백업선수들을 받아오지 않나, 전반기 내내 작전을 안 걸던 감독이 후반기 명장병에 걸려 작두를 타지 않나….

    그래도 결과가 좋으면 다 이해가 되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좀 너무하다….

    “정안아~ 어디가? 와서 성신이 스텝 좀 봐주고 가”

    “형 저 약속 있어요”

    “결혼할 여자 만나러 가는 거면 인정. 아니면 와서 잠깐만 봐주고 가”

    “결혼을 왜 해요. 형도 안 해놓고는 왜 절 시키려고 해요?”

    “야! 나는 결혼할 여자는 있잖아. 너도 그만 방황하고 정착해라”

    “형…. 제가 결혼하고 용돈 만 원씩 받아 쓰는 형들 보면서 절대 결혼은 안 한다고 결심한 사람이에요. 그런 무서운 말은 하지도 마세요”

    그전부터 바빴던 주장이지만 시즌 우승까지 확정 짓고 나자 주장의 스케쥴이 더 바빠진다. 뭐 하고 다니길래…. 좋은데 다니면 나도 좀…. 데려가지….

    “아 성신이 스텝 고쳐야 하는데 보고 배울 사람이 없네”

    “소전이 있잖아요”

    “갠 안돼”

    “왜요?”

    “소전이 스텝은 알려줘도 얘 못해. 얘 스텝이 이 모양인 게 소전이 보고 따라 해서 그래. 일반인한테 배워야 해”

    뭐…. 뭐냐…. 내가 일반인이 아니면 뭐 외계인이라도 되냐?

    “아 진짜. 구성신! 너 글러브 끼고 들어가 봐. 우혁이 형이 펑고는 쳐줘요”

    “할 거면서 튕기기는. 내가 너 소문 다 듣고 있어. 마음에도 없이 간 보지 마”

    “형! 간은 무슨. 그냥 들어만 보는 거예요. 들어만.”

    경기 끝나고 주장도 기웃거리는 훈련장. 경기 끝나면 어디론가 사라지기 바빴던 선배들도 은근슬쩍 한 번씩 바라보고는 간다.

    내가 처음 운동할 때는 조영근 선배 정도나 있었지…. 그나마도 선수 생활 마지막에 재활에 몰두하면서 훈련 시간도 많이 줄었고…. 그렇게 썰렁했던 훈련장인데 이제는 미어터진다.

    절대 작지 않은 공간인데…. 서로 간에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바글대는 훈련장…. 왜…. 경기가 끝났는데 집들을 안 가는 거야…. 이거 노동청에 신고해야 해….

    “와. 라정안. 장난 아니네. 너 나중에 코치해도 잘하겠다.”

    “코치는 무슨. 성신이가 나보다 잘하는데요. 힘만 붙으면 되겠네. 잘하네”

    “너 다른 팀 선수 말하듯이 한다. 그러지 마. 너 주장이야.”

    “형. 무슨 소리예요. 누가 그래. 나보다 얘들 챙기는 사람은 없다고요”

    우리 팀 내야 유망주에게 속성과외를 해주고 떠나는 주장. 주장이 떠나자 브로커가 나에게 다가온다.

    “소전아. 아까 2볼에서 커브 떨어지는 거 알고 쳤냐?”

    “네?”

    “너 4회에 2볼에서 떨어지는 커브 퍼 올려서 넘겼잖아.”

    아…. 그거요… 구종을 알았으니까….

    “공 놓는 순간 뜨더라고요. 그래서요”

    “그래 구종은 알았다고 치고 공이 바깥쪽으로 떨어질 건 어떻게 알았어?”

    아…. 영업비밀인데….

    “지상이 커브가 들어오는 길이 거기밖에 없어요”

    “어?”

    “전력팀에서 준 자료 보면 지상이 커브 중에 힘있게 들어오는 코스는 거기밖에 없어요. 투볼에서 배트 끌어내려면 낙차가 있어야 하는데 몸쪽 붙이다 어설프게 덜떨어지면 무서울 테니까…. 거기만 노렸죠. 뭐….”

    “그런 건 형한테 얘기도 좀 해주고 해. 혼자만 알지 말고”

    혼자만 알다니요…. 숫자만 읽을 줄 알면 전력분석자료에 다 나와 있는데….

    - 랩터스와 울브스의 시즌 마지막 경기. 대구에서 보내드립니다.

    - 울브스도 재규어스와의 7, 8위 싸움이 치열해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한 단계라도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팬들을 위한 도리에요.

    시즌 마지막으로 갈수록 점점 느슨해지는 경기들. 1등을 확정지은 랩터스는 가을야구를 위해서 1년 동안 뛴 주전들에게 최대한 휴식을 주면서 컨디션 조정에 들어간다.

    - 또다시 실점하는 랩터스 점수가 5점으로 벌어집니다.

    - 이런 날이 있죠. 투수들의 공이 나쁘진 않은데 정타가 많이 나오네요.

    이럴 수도 있지 뭐. 대체선발 들어간 날. 대체선발이 신데렐라가 되어주면 감사하지만 그렇지 못한 게 태반이니까. 그나마 4이닝을 3실점으로 막아줬으니 선발은 자기 할 일 다 했어. 문제는 타자들이 친 타구가 족족 직선타로 빨려 들어가서 그렇지.

    이런 날은…. 방법이 없다…. 잘 져야지….

    - 9회 말. 랩터스의 마지막 공격. 8번 포수 김도식부터 시작됩니다.

    - 대타 나오죠.

    - 랩터스의 대타. 김도식을 대신해서 박우혁이 타석에 들어옵니다.

    - 시즌 중에 엘리펀츠에서 이적해서 궂은일을 해주고 있어요. 감독의 말을 들어보면 보이는 것보다 팀 내부에서 해주는 역할이 크다고 하거든요. 성적이 조금 아쉬운데 이적 첫해니까 다음 시즌은 좀 더 나아지겠죠.

    많이 기울어진 경기. 평소 나가지 못했던 선수들이 나가서 경기감각을 찾는 시간. 누구에겐 그저 가비지 타임일지 몰라도 타석에 들어가 있는 선수에게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시간이다.

    - 박우혁. 끈질깁니다. 공 7개를 던지게 하는 박우혁.

    - 박우혁 선수 타격에 재능은 분명히 있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팀을 옮겨 다닐 수 있는 거예요. 뭔가 계기 하나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이번 겨울엔 꼭 그 계기를 찾았으면 좋겠네요.

    덕아웃에 있을 때는 힘 빼지 말고 빨리 치고 빨리 죽으라고 하던 사람이 자기가 타석에 들어가니까 치사하게 물고 늘어진다. 하여간 사람은 믿으면 안 돼.

    - 안타! 중견수 앞에 안타를 치고 나가는 박우혁. 9회 말 랩터스의 선두타자가 출루에 성공합니다.

    - 오늘 선두타자 출루는 처음이죠.

    헐…. 공 8개를 던지게 하고 안타를 치고 나갔어…. 이러면 투수 기운 빠지지.

    - 다음 타자. 다시 대타. 9번 민수경 대신 구성신 선수가 대타로 들어옵니다.

    투수 좌투수라고 우타자만 줄줄이 쓰는 거야? 감독님 오늘도 작두 한번 타시게요?

    - 높이 뜬 타구~ 우익수! 우익수 잡아냅니다. 1루 주자 2루로 가다 돌아옵니다.

    - 밀렸죠. 힘에서 밀렸어요.

    5:0에서 왜 이렇게 열심히 해? 저 타구에 2루를 노려보다니…. 오랜만에 1루 나가셨다고 너무 기분 내시는데….

    - 또다시 대타. 오늘 경기 벤치에서 대기 중이었던 루카스 선수가 대타로 들어옵니다.

    “소전아. 너도 준비해”

    자…. 잠깐…. 왜 나는 대타 안 내주고. 나는 나가? 왜 사람 차별하세요….

    코치님의 준비하라는 말에 웨이팅서클에 들어가 몸을 풀어본다.

    - 볼넷! 볼넷을 골라내는 루카스. 원아웃에 주자 1, 2루가 됩니다.

    - 점수 차가 있어도 5점 금방이거든요. 막아줄 땐 확실히 막을 필요가 있어요.

    1, 2루? 이거…. 뭔가 해야 하는 타이밍인데….

    - 투수코치 올라옵니다.

    - 바꿀 것 같지는 않고 타이밍만 끊었다 가려는 거 같아요.

    나는 좌타잔데…. 다 우타자로 바꿔주면서…. 나는 안 바꿔 주고…. 쳇

    - 김소전! 초구부터 중견수 앞에 안타를 만들어냅니다. 2루 주자 득점! 한점을 따라가는 랩터스 스코어 5:1이 됩니다.

    - 성급했어요. 김소전 선수에게 빠른 공을 주면 안 되거든요.

    아싸 선취점이다! 타자는 타점이지….

    - 경기 알 수 없어졌습니다. 노경준마저 볼넷으로 내보내는 울브스. 주자 만루가 됩니다.

    - 이러면 울브스 생각이 많아지죠. 투수 바꾸네요.

    이…. 이상하다…. 이 경기가 이렇게 된다고?

    - 안타! 대타 김응규의 안타! 3루 주자 홈인! 주자 1, 2루! 스코어 5:4! 9회 야금야금 추격하는 랩터스가 역전주자까지 내보냅니다.

    - 왜 이런 볼 배합을 가져가는지 모르겠어. 김응규 선수 배트에 맞추고는 있지만, 직구에 밀리고 있었거든요. 여기서 변화구는 아쉽네요.

    - 투아웃 주자 1, 2루. 스코어는 5:4! 타순이 한 바퀴 돌아옵니다. 9회 대 추격전의 시작을 알린 박우혁! 팀의 승리를 위해 다시 타석에 들어섭니다.

    - 야구가 이런 거거든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야구에요.

    미쳤다…. 1위도 확정되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경기를 이렇게 만든다고?

    - 1루에 대주자 나갑니다.

    - 랩터스 엔트리 다 썼어요. 이제 더 나올 선수도 없어요.

    확장엔트리에 늘어난 선수까지 다 투입시키는 처절한 경기. 이런 경기는 중요하고 안 중요하고를 떠나서 질 수가 없다. 이런 걸 지면 아닌 척해도 후유증 오래간다. 말 많은 아저씨. 하나 쳐봅시다.

    - 울브스의 마무리 조경수. 다섯 타자를 상대하면서 벌써 공 40개를 넘겼습니다.

    - 결과도 안 좋거든요. 삼진 한 개로 아웃카운트 하나 잡았을 뿐 볼넷 두 개, 안타 두 개를 맞고 있어요.

    - 바꿔줘야 하지 않을까요.

    - 바꿀 투수도 없고. 팀의 마무리가 이 경기 끝내야죠. 직구는 힘이 있어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이럴 때일수록 쉽고 단순하게 접근해야 해요.

    이게 무슨 한국시리즈도 아니고…. 왜들 이러십니까….

    -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으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조경수. 박우혁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 직구 구위가 좋아요. 저공을 계속 던지면 상대 타자가 대응하기 쉽지 않아요.

    저런 공은 안 쳐야지…. 괜히 쳤다가 잘못 맞으면 손가락만 아파….

    - 2구 몸쪽에 붙어오는 스트라이크. 볼카운트 싸움을 쉽게 가져가는 울브스입니다.

    - 이런 공이 있는데 경기를 힘들게 끌고 왔어요. 쉽게 갈 수 있을 땐 쉽게 가야 해요.

    - 스코어 5:4 투아웃 주자는 1, 2루. 투스트라이크 노 볼에 타석엔 박우혁. 3구를 기다립니다.

    선배가 전력팀 분석자료 꼼꼼히 봤으려나…. 울브스의 포수 이세훈이라면 투스트라이크 잡아놓고 공 하나 무조건 뺀다.

    그리고 그 빼는 공은 확률 높게 바깥쪽 높은 코스

    - 박우혁! 밀어칩니다! 우측으로 뻗어가는 타구! 원바운드로 펜스를 맞춥니다! 2루 주자 득점! 1루 주자까지 득점! 역전! 랩터스! 2타점 2루타로 대역전극의 끝내기를 만들어낸 박우혁! 랩터스가 왜 이번 시즌 1위인지를 증명합니다.

    - 빼려면 확실히 뺐어야 했어요. 비슷하게 들어가니까 맞은 거거든요. 이걸 노리고 밀어친 박우혁 선수도 대단하네요.

    와! 우승이라도 한 줄…. 우리 팀 선수들이 이렇게 열정이 넘쳤나. 우혁 선배가 끝내기 쳤다고 죄다 몰려나갔다. 2루에 엎어져 있는 선배를 향한 무차별적인 구타. 적당히 들 좀 때리지…. 우리 이러다 집단폭행으로 경찰에 잡혀가겠어….

    - 오늘 대역전의 주인공 박우혁 선수를 김승혜 아나운서가 만나보겠습니다.

    어쩐 일이지…. 요즘은 경기장 아나운서가 직접 인터뷰 잘 안 하고 헤드폰만 끼고 직접 대화하는데 어쩐 일로….

    - 박우혁 선수. 오늘 끝내기 축하드립니다. 팬분들께 인사하시죠.

    - 팬분들이 끝까지 응원해 주셔서 좋은 결과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음…. 뭐가 이상한데…. 끝내기는 우혁 선배가 쳤는데 저 아나운서가…. 왜 떨어?

    - 이번 시즌 팀을 옮기면서 마음고생이 심하신 거로 알고 있는데 오늘 경기로 좀 편해지실까요.

    - 좋은 팀에 와서 좋은 선수들과 좋은 야구 하고 있습니다. 제 성적이 안 좋아서 혼자 끙끙 앓고 있었는데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이 잘 해주셔서 많이 편해졌습니다. 더 잘해서 걱정 안 끼치게 하겠습니다.

    음…. 기분이 이상한 건…. 내 탓이지? 잠깐…. 저 아나운서가 우는 거 같은데….

    - 끝으로 팬분들께 한마디 해주시죠.

    - 여럿팀에서 야구했지만 아직 우승 반지가 없습니다. 제가 우승 반지가 꼭 필요합니다. 올해 팀이 우승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할 테니 마지막 순간까지 믿고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잠깐…. 선배…. 인터뷰는 카메라를 보면서 하라고…. 눈을 어디에다 두는 거야….

    한국시리즈 같은 경기가 끝나고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마무리 훈련까지 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이 포근한 기분…. 이대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전화가…. 이럴 때는 안 해도 되는데…. 얘는 하루도 안 빼먹어….

    “아픈 데 없고, 종아리 살짝 뭉친 거 트레이너 형이 잘 풀어줬고, 오늘 삼진당한 영상도 돌려봤다. 안녕”

    “야! 하여간 이러니까 연애를 못 하지!”

    갑자기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너 물어볼 거 다 대답했잖아.”

    “넌 지금 잠이 오냐? 난 설레서 미치고 팔짝 뛰겠는데?”

    뭐…. 왜 미쳐? 아…. 넌 원래 정상이 아니었어….

    “아까 박우혁 프러포즈하는 거 봤지? 저렇게 하는 거다. 나 심장 떨려서 죽을 뻔했다. 승혜 언니는 무슨 복이 그렇게 많아서 저런 남자를 만나… 에효…. 내 팔자야….”

    자…. 잠깐…. 뭐? 무슨 소리야?

    “우혁 선배가 프러포즈했어? 언제? 아까 경기 끝나고 오늘 일 있다고 빨리 가던데”

    “죽어! 죽어버려!”

    왜 소리를 질러

    한참 동안 파이팅 넘치는 루다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세상이 진짜 미쳐 돌아가고 있었구나….

    “그러니까 우혁 선배가 김승혜 아나운서하고 사귄다고?”

    “이 바닥에서 모르는 건 너 하나다”

    “그래서 오늘 일부러 인터뷰시켜줬다?”

    “그래 PD님이 일부러 시켜줬다더라. 이런 날이 언제 오겠냐고 안 한다는 거 무조건 하라고 했다더라.”

    헐…. 이런 건 권력 남용 아니야? 왜 안 한다는 걸 시켜….

    “그런데 프러포즈는 무슨 소리야?”

    “아까 못 들었냐? 우승 반지 꼭 필요하다고 하는 거? 승혜 언니 꿀 떨어지게 보면서 얘기하는 거 못 봤어? 이런 감정이 메마른 놈을 어디에다가 쓰냐…. 어휴 내 팔자야”

    프러포즈를 우승 반지로 해? 다이아몬드 반지 사주는 거 아니었어? 아…. 우승 반지가 금으로 만드니까 금반지 준다는 건가….

    “그렇구나. 나는 결혼할 때는 반지 사서 줘야 하는 줄 알았지. 우승 반지 줘도 되는구나…. 야! 왜 소리를 질러!”

    귀 떨어지는 줄 알았네….

    “너 다이아 2캐럿! 아니 3캐럿으로 가져와 아니면 죽을 줄 알아!”

    뭐야…. 자기 혼자 소리 지르고 끊어버리고…. 그리고 내가 자기랑 결혼이라도 해준대? 누구 맘대로 반지를 가져와라. 마라야…. 그런데 다이아 2캐럿이면 얼마지?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 이…. 이천만 원이 넘어? 이거 완전 도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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