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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152화 (152/204)
  • 152화. 굴러온 돌

    엘리펀츠에서 이적해온 박우혁. 아무래도 연차가 있으니 사람들이 트레이드 메인 카드라고 해주지만 이 아저씨보다 오히려 좌완투수 윤기수 선배가 메인 카드라고 봐야 할 것이다. 뭐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지만.

    이 아저씨도 꽤 파란만장한 야구선수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야구 좀 봤다는 사람들한테도 박우혁의 소속팀을 물어보면 선뜻 어디라고 대답하기 곤란할 만큼 자주 팔려 다닌 선수. 그래서 예전 기억 속의 나는 이 아저씨를 롤모델로 삼은 적도 있었는데….

    “맞네! 맞아. 너냐? 김소전 네가 여기 일진이라며?”

    “네? 제가요? 일진이요?”

    이 아저씨 내 머릿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좋은 기억을 이렇게 배신할 수 있나. 보자마자 시비야

    “봐라. 여기 너보다 고참이 하나도 없잖아. 네가 선배들 다 쫓아낸 거 아니야?”

    이 아저씨 말이 심하네. 아무도 안 쓰는 훈련장 내가 먼저 쓰기 시작한 건데

    “저희 훈련장 충분히 큽니다. 그리고 선배님들 필요할 땐 와서 같이 운동하십니다.”

    “그래~ 그럼 나도 써도 되는 거지? 난 랩터스에 가면 김소전이 군기 잡는다고 해서 바싹 졸았네. 그럼 나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것 마저들 해”

    괜히 나한테 시비를 걸고는 성큼성큼 거울 앞으로 걸어가는 아저씨…. 느끼한 눈으로 자기 몸을 스캔하고는 천천히 스트레칭부터 시작한다.

    음…. 몸 푸는 건…. 제대로네….

    “형 공 계속 던질까요?”

    “어. 저놈 오늘 사람 될 때까지 해보자”

    “현범아 들었지? 소전이형이 너 오늘 사람 만들어주신단다. 가즈아~”

    새로 온 아저씨 때문에 잠깐 흐름이 깨지긴 했지만, 다시 하던 일에 집중한다. 그렇지 공에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잘한다 경준이!

    악마가 된 경준이가 자기 친구를 상대로 오락하듯 피칭머신으로 공을 쏘아내고 있는데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덮쳐온다.

    “너희들 뭐하냐?”

    하…. 이 아저씨…. 오지랖 장난 아니네….

    “현범이 포구가 안 좋아서요. 저희끼리 훈련하고 있어요”

    “쯧쯧쯧. 코치님들이 아무 말 안 하시냐?”

    “저희 팀 코치님들 소전이형은 손 안 대세요. 미국물 먹고 와서 말 안 듣는다고 안대세요”

    저… 저눔시키…. 어디서 그런 유언비어를….

    “맞네! 여기 일진 김소전”

    “아닙니다.”

    자꾸 나보고 일진이래. 어떤 일진이 후배 놈들한테 밤마다 야식 삥뜯기냐? 내가 지난달에 얘들 야식 사준 게 30만원도 넘는다.

    “소전아. 기계랑 놀면 실력이 느냐?”

    이건 또 뭔소리야?

    “안 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네가 시켰으면 책임을 져야지. 효과도 없는 기계 쓰지 말고”

    응? 뭐라고? 기계쓰지 말고 책임을 지라고?

    “현범아 나와. 나랑 캐치볼 하자. 내공 못 받을 때마다 푸시업 10개씩! 나와봐”

    피칭머신앞의 돌 글러브를 꺼낸 아저씨가 가볍게 가볍게 캐치볼을 주고받는다. 사회인야구 3부리그에서나 할만한 속도로 이어지는 캐치볼…. 감흥이 없다.

    “이야~ 이거 엉망이네. 코치님이 너 포구 안 봐주시냐?”

    “봐주시긴 하는데…. 감독님이 타격 훈련을 위주로 하라고 하셔서 움직임 위주로 배우고 있습니다.”

    뭐…. 뭐야…. 너 기본 캐칭도 안 되는데…. 기본기는 코치님이 봐주지도 않는 거였어?

    “랩터스 메이저식이라더니 진짜 메이저네. 그렇지 기본기는 2군에서 완성해서 올라와야지. 그런데 캐치볼도 못하는 애가 어떻게 1군에 올라온 거야?”

    “죄송합니다.”

    “야. 나한테 죄송하게 뭐가 있어. 나야 연봉 받고 같이 뛰기만 하면 되는 사람인데. 그래도 보고 있기 답답하니까 내일 정안이랑 수경이 데려와서 같이 얘기 좀 해보자.”

    이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경기 후 스트레칭과 캐치볼 몇 번 하고는 사라졌다. 나보고 선배들 훈련장 못쓰게 한다고 구박하고는 사라진 아저씨…. 내가 먼발치에서 보기만 했지 같이 뛰어보질 않아서…. 이런 캐릭터인 줄 몰랐네….

    그렇게 잘하시면 본인 성적이나 올리시던가…. 자기도 백업이면서 주전선수한테 지적질은… 에효….

    그래도 나한테 한 거 아니니…. 뭐…. 나야…. 지켜만 볼까…. 하기엔…. 화가 나네….

    “현범아. 나랑 캐치볼 마저 하자. 자 던져봐”

    “네 형…. 형 저 포구가 그렇게 이상해요?”

    “아니야. 너도 프로 밥을 몇 년을 먹었는데 저 선배가 괜히 자극되라고 그러는 거야….”

    아니네….

    “야! 공을 손목으로 잡는 사람이 어딨어! 너 학교 다닐 때 공 잡는 거 안 배웠냐?”

    “헤헤…. 전 학생야구 할 때도 홈런 연습만 해서…. 헤….”

    맞네…. 이XX 경준이 친구 확실하네…. 이 화상을 어쩔꼬….

    - 어제 패배를 당한 워호스가 복수하느냐. 아니면 랩터스가 연승을 이어 가느냐. 양 팀의 피할 수 없는 경기 광주에서 보내드립니다.

    현란하다. 감독님…. 요즘 작두 타세요? 정신 사납게 뭐 하시는 짓이세요?

    - 랩터스 타선의 변화가 상당합니다.

    - 오늘은 우투수를 상대로 좌타라인을 전진배지 시켰어요. 시즌 중에 라인업의 변화를 거의 주지 않는 랩터스인데 벌써부터 가을야구를 준비하나요?

    언제는 좌우 놀이에 심취하시더니 오늘은 좌타라인에 빠지셨다.

    1번부터 4번까지 좌타로 도배를 하더니 5번에 경준이를 넣고 또다시 좌타를 넣어준다. 라인업에서 포수와 중견수를 제외한 전원 좌타라인업…. 요즘 감독님 눈이 퀭한 게…. 게임을 하네…. 요즘 게임을 해

    - 하루 만에 1번에 복귀한 김소전입니다.

    - 오늘은 선발에서 제외됐지만, 어제 루카스 선수와의 주루플레이가 인상적이었거든요. 루카스 선수의 출루가 보장된다면 어제 같은 타순도 나쁘지 않아 보여요.

    전광판에 가득 들어찬 좌타자를 보니 투수가 기분이 상했는지 마운드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왜 한 대 맞추기라도 하시게?

    - 몸쪽 깊게 찔러 들어오는 공. 볼입니다.

    - 초구부터 힘이 많이 들어갔어요.

    그 정도는 의미 없지. 사람을 맞추려면 맞추겠다는 의지를 굳게 먹고 던져야지 그런 나약한 정신으로 날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 김소전 타석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 투수의 제구가 완전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죠. 평소보다 조금 더 떨어져 있네요.

    - 이번에는 스트라이크. 타자 지켜만 봤습니다.

    - 타석에서 저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 지금 같은 바깥쪽 공은 대처하기가 쉽지 않죠. 조금 붙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쳇. 공이 무서워서 피한 건 아니고 너님 제구가 별로라. 그래서 조금 떨어졌더니 바깥쪽 꽉 찬 공을 던지다니…. 치사하다

    - 3구! 김소전! 크다! 크다! 크다! 좌측담장! 좌측담장을 넘어 관중석 상단에 꽂히는 쏠로홈런! 랩터스 오늘 경기도 선취점을 뽑아냅니다.

    - 이거거든요. 이게 랩터스의 김민중 감독이 고민하는 포인트에요. 김소전이 1번에서 잘하고 있습니다만 저 무시무시한 장타력을 살리고 싶어 해요.

    - 김소전 앞에 주자가 나가 준다면 팀의 공격력은 올라가는 건가요?

    - 그렇죠. 팀에서는 이미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해봤다고 해요. 김소전의 최선의 타순은 2번이라는 결론을 얻은 듯한데 그러려면 확실한 1번이 필요하거든요. 김민중 감독 만날 때마다 이 얘기를 하는데…. 허허. 행복한 고민이죠.

    - 하하. 행복한 고민입니다. 다른 팀은 타순에 넣을 선수가 없다고 고민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 김민중 감독이 복을 타고났어요.

    이건 너무 정직했지. 내가 좀 떨어져 있다고 물로 보고 바깥쪽에 똑같은 직구를 한 번 더 던지는 건 해도 너무한 거지… 구종 알고 로케이션 알면 뭐…. 내가 다가가서 때려줘야지.

    언제나처럼 그라운드를 정지시켜놓고 한 바퀴 돌고 오니 기분이 너무 좋다. 오늘은 경준이 대신 내 뒤에서 기다리는 주장과 하이 파이브를 하고 시시덕 거라며 덕아웃에 들어가니 선수들의 구타가 이어진다.

    맞을 때마다 아프지만 그래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안 아프게 맞는 법도 터득하고 홈런 칠만하다고 생각하면서 이온 음료 한잔을 쭉 들이키는데 누가 나한테 쓱 하고 다가온다.

    “어이구. 홈런타자님 기 좀 받아 가겠습니다~”

    “콜록…. 콜록….”

    갑자기 뭐야. 귀신도 아니고 먹던 음료수 쏟을 뻔했네

    “기…. 기라니요”

    “비싸게 굴지 말고 악수 한번 해~ 다음에 나도 홈런 하나 쳐보게~”

    선배가 타석에 나가려면 7회는 넘어야 할 텐데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꾹 눌러 참았다.

    “선배님 하나가 뭡니까. 두 개 쳐주십시오”

    “그래 내가 가서 두 개 쳐주고 온다. 정안아! 너도 하나 날려라~”

    엘리펀츠에서 온 박우혁 선배…. 연차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주장보다 1년 선배. 어디 가도 중간급 역할 정도 해야 할 연차이지만 랩터스에 오니 위에 몇 명이 없다.

    시즌 내내 덕아웃에서 나보다 어린 선수들만 소리 지르다가 주장보다도 선배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니 지금까지 뒤에서 껌만 씹고 있던 선배들이 조금씩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균형에 맞는지 안 맞는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메이저리그 출신 외국인 선수와 트레이드돼서 온 선수. 외부에서 대접받고 들어온 선수가 기존의 선수들보다 더 소리를 질러대니 박우혁 선배보다 어린 선수들이 슬슬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기존의 랩터스에서 보기 힘들었던 장면. 나보다 위급의 선수들 이래 봐야 대부분 백업선수인지라 경기중 자기가 들어갈 상황에 맞춰 컨디션 조절을 하는데 바빠 적극적으로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런데 외국인 팔아서 데려왔는데 아직까지 경기 출장도 못 한 백업선수가 먼저 나서 소리를 지른다. 그 모습을 본 선수들이 자기도 모르게 위기감을 가지며 감독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 경기 마무리됩니다. 8:4 어제에 이어 랩터스가 또 한 번 승리를 챙기면서 1위 자리를 굳건히 합니다.

    - 김민중 감독. 작전을 잘 내지 않는 감독인데 오늘은 적극적으로 경기에 개입하면서 1회부터 잡은 승기를 놓지 않았어요.

    감독…. 분명히 휴식일에 계룡산이라도 가서 작두 타고 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득점권에서 대타를 낼 때마다 성공을 시킬수가 있을까?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어딘지 밝혀내서 나도 작두를 한번 타든지 해야지…. 8회에 그 잘 맞은 타구가 어떻게 2루수 라인드라이브로 잡히냐고! 이건 귀신이 붙은 게 틀림없다. 떼어내야 해.

    어깨에 무거운 귀신을 얹어놓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슬금슬금 들어오는 선수들. 이젠 다들 말하지 않아도 자기 할 것들 찾아서 개인 훈련에 들어간다. 한 놈만 빼고….

    “현범아. 오늘도 캐치볼 해야지?”

    “네 형. 어제 형한테 포구하는 거 배우니까 좀 나아진 것 같아요”

    그럴 리가요…. 전혀요… 너님…. 전혀 나아지지 않았어요…. 여전히 어지간한 중딩 1루수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분 안 나쁘게 돌려 깔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데 멀리 훈련장 문이 열리고…. 그분이 또 나타났다.

    “어이 소전아. 현범이랑 훈련하려고?”

    네…. 그럴 생각입니다만…. 아저씨는 좀 빠져주시는 게…. 아저씨 너무 설렁설렁하는 것 같은데…. 잠깐 뒤에는 누구죠?

    “내가 아무리 봐도 너 같은 정석적인 공을 받는 것 보다 우리 주전2루수님의 실전 같은 공을 받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아서 데려왔다.”

    “소전아. 나도 같이해도 되지?”

    경기 끝나기 무섭게 주장과 함께 사라지는 수경 선배가 머뭇거리면서 훈련을 같이해도 되냐고 묻는다.

    저 사람 사람 좋은 거야 유명하지만…. 이걸 왜 물어?

    “선배님. 여기 제 것 아닌데요. 여기 구단 건데요. 선배님도 휴식일엔 와서 운동하곤 했잖아요”

    “그렇지. 나도 운동했었지….”

    아니 이 양반 왜 과거형이야? 왜…. 왜 눈은 그렇게 하고 나를 바라봐? 아니 선배님. 왜 그러시죠? 제가 뭐 잘못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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