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48화 (148/204)
  • 148화. 야구장 밖 이야기

    야구판에서 볼거리가 야구만 있다면 실패한 엔터테인먼트다. 멀쩡한 리그가 돌아가는 건 MLB로 충분하니 KBO리그에서 또다시 야구 외적으로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 의사 어디 갔어요?”

    “어? 김 과장님? 존스 홉킨스 교류 가셨어.”

    “그게 말이 돼? 소송 걸렸다며”

    “에이. 그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단순 실수에 벌금물리면 무는 거지 뭐. 사내에서 발생한 단순 실수니까 회사에서 책임져주려고. 대한 그룹이 이렇게 직원을 보호해”

    랩터스의 구단주와 단장이 구단 전력분석실에서 단둘이 만났다. 매일 밤늦게까지 야근하던 직원들을 다 되돌려보낸 구단 최고 수뇌부가 알 수 없는 데이터가 가득한 장비 앞에서 최근 일어난 일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 최강훈이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기사 다 나왔잖아.”

    “진짜 강제로 묶어둘 거에요?”

    “강제라니. 나가겠다면 나가라니까.”

    “말은….”

    지난밤 일어난 야구장에서의 사건. 2루에 나갔던 주자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지자 홈팀에서 준비했던 구급차가 지정병원도 건너뛰고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시설로 평가되는 대한병원으로 날아갔다.

    한밤중에 퇴근했던 교수님들이 다시 병원으로 들어오고 무시무시한 장비들을 쏟아부어 정신 못 차리고 있는 환자를 정밀 스캔했다.

    하룻밤 사이 쭉쭉 뽑아내는 검사 결과. 결과를 보고 난 교수님들이 환자에게 절대안정과 퇴원 금지를 발표한다.

    새벽에 해가 뜨자마자 시작된 대한병원에서의 긴급브리핑. 담당 교수가 카메라 앞에 나타나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 환자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 위험한 상황은 지났다고 판단하고 있고, 정밀검사 후 향후 치료 방향을 결정하겠습니다.

    - 환자의 상태가 얼마나 안 좋길래 치료 방향도 결정이 안 되고 있습니까?

    - 환자 개인정보에 대해서는 발표하지 않습니다.

    - 검사가 얼마나 걸립니까?

    - 환자의 상태에 대해서 예단하지 않습니다.

    - 일상생활이나 향후 선수 생활에 지장이 있겠습니까?

    -환자가 안정을 취하고 있고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확답할 수 없습니다.

    기자들의 눈초리가 사나워지고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르겠소만 외치는 교수님. 기자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 저 이제 회진 시간이 돼서 이만하겠습니다. 남은 질문은 보도자료로 갈음하겠습니다.

    기자들의 물음은 제대로 대답하지도 않고 종이쪽지만 두고 떠나버린 의사. 입이 댓발 나온 기자들이 의사인지 노숙자인지 알 수 없는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눠주는 A4용지를 받고 기분이 더 더러워진다.

    깨끗한 파일에 곱게 넣어줘도 모자랄 판에 이면지에 대강 출력해서 가져다준 보도자료. 새벽부터 일하러 나온 것도 서러운데 기자를 홀대하는 병원의 행태에 화가 난 몇몇 기자가 종이를 구겨서 바닥에 던져버린다.

    아침에 조기 출근한 스포츠 기자들이 아침 먹고 경기시작전까지 사우나를 가야 하나 스크린골프를 쳐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아까 모르쇠로 일관한 교수님의 요청에 억지로 참석한 의학 전문기자가 성의 없는 보도자료를 훑어봤다.

    이게 사람이 쓴 건지 AI가 쓴 건지 내용도 없고 번역 투 잔뜩인 보도자료에 욕을 하면서 뒤를 돌려봤다.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이라는 대한병원이 돈이 없어서 그런지 기자들한테 뿌리는 보도자료를 이면지로 쓴 것에 있는 놈들이 더하다고 생각하면서 슬쩍 훑어보는데 느낌이 사납다.

    이름은 안 적혀 있지만, 누군가의 진료기록. 요즘은 전부 전산으로 처리해서 이런 식으로 기록 남기지 않는데 이건 분명 보라고 만든 문서. 중요한 말은 알아보지 못하게 휘갈겨 쓰고 남들이 봐야 할 글자만 눈에 확확 띄게 정확하게 쓰여진 오래된 양식.

    의사 출신으로 교수님들한테 조인트 좀 맞아봤던 의학 전문기자가 시신경에 모든 감각을 집중시키면서 암호문을 해석한다.

    [최강훈 심각한 면역질환으로 선수 생명 위기]

    스포츠 기자들의 어그로 넘치는 기사들을 싹 다 뒤로 밀어내고 의학 전문기자가 스포츠 분야 조회수 1위를 찍는 기염을 토한다.

    검은 글씨로 한글이 쓰여있기는 하지만 일반인은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는 내용이지만 자기 팀 성적이 왜 안 나오는지만 빼고 모든 걸 통찰하는 야구팬들이 몰려들어 집단지성으로 암호문 같은 기사를 해독해낸다.

    - 최강훈 죽는 거야?

    - 죽는 건 아니고 죽을 때까지 주사 맞아야 한다잖아.

    - 최강훈 지금도 주사기 꼽고 야구하잖아.

    - 그건 도핑하는 약이고 이건 살려고 맞는 약이라고!

    - 그거 맞아도 산다는 보장이 없다며? 그럼 이제 최강훈 은퇴냐?

    - 그러지 않겠냐?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 얘는 도핑위원회에서도 약하는 거 인정해 줬는데 왜 저러냐?

    - 약을 미친 듯이 빨았다잖아. 너무 빨아서 면역력이 다 없다잖아. 당장 내일 죽어도 안 이상하다는 거 못 봤냐?

    스포츠 기자의 기사도 아니고 의학 전문기자의 기사로 쑥대밭이 된 타이탄스가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고 병원을 옮겨 정밀진단을 다시 받겠다고 선언을 한다.

    하지만 대한 병원급 병원들이 환자 상태의 심각성을 이유로 모조리 재검사를 거부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타이탄스 구단과 선수의 에이전트가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 대한병원 병원장이 개인정보 유출을 시인하며 납작 엎드리려 공개 사과를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한마디. 환자 상태의 위중성을 고려해 타 병원으로의 이송은 불허.

    미쳐가는 타이탄스 구단과 에이전트가 병원에 갇혀 있는 선수를 빼 오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하지만 압도적인 의료장비를 가진 대한병원의 물량 공세에 이송을 받을 병원을 구하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강훈 지금 상태는요? 진짜 죽어요?”

    “병원장님한테 들었는데 내가 안 시켰어도 잡아뒀어야겠다고 하더라고. 허우대만 멀쩡하지, 내장이 전부 상했대. 하루 이틀로 해결될 게 아니라더라고”

    한때는 자기가 아꼈던 선수의 비극적인 상태를 들은 단장이 입술을 꽉 깨문다. 뭔가를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도 없는 상황. 오히려 더 독하게 군다.

    “그놈 절대 못 나오게 해요”

    “병원장님도 그냥은 못 내보낸다고 했어. 이대로 나가면 다음엔 죽어서 들어올 거래….”

    고개를 가로젓는 단장. 이 이야기를 더는 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린다.

    “우리 이제 일해야죠.”

    “일해야지.”

    “3, 5, 10번이였죠”

    “어. 야! 이게 지금 날 바보로 아나 2, 5, 8!”

    “쓸데없는 거는 기억 잘하네!”

    구단주를 한번 속여보려던 단장의 잔기술이 실패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모니터에 띄우는 선수명단. 모니터에 가득 떠오른 드래프트 참가한 선수들의 이름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끝없는 회의가 진행된다.

    “지금 2번 뽑는 건 알죠?”

    “1번을 뽑을 수 있었으면 1번으로 뽑았어”

    “신고로도 뽑아올 수 있어요.”

    “그러면 안된다고. 랩터스 10년을 끌고 갈 인재야. 처음 모실 때부터 그만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야알못의 헛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단장이 화면을 빠르게 넘긴다.

    “5번은 얘?”

    “내가 마음이 너무 아프다. 둘을 묶어서 1, 2번을 뽑아야 하는데…. 속이 쓰리다.”

    “미쳤나요?”

    야구도 모르는데 운영이라는 것도 모르는 구단주를 상대하는 단장이 참다못해 두통약을 꺼내서 물도 없이 씹어 먹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면에 나오는 내년 신인 투수 둘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구단주.

    단장의 두통약 씹는 속도가 빨라진다.

    “마지막. 8번…. 얘는 어쩌려고?”

    “뽑아야지. 저런 선수 없다. 일본이 랩터스에 주는 축복이지”

    “나이가 26살인데? 일본에서도 지명 못 받고 독립리그 전전했는데?”

    “하는 거 봤어?”

    “기록이랑 영상 있잖아요. 얘 뽑겠다는 얘기만 안 했으면 영상도 안 볼 미미한 선수라고요”

    자기가 콕 집은 선수를 폄하하는 단장의 발언에 기분이 상한 구단주가 지명대상 선수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재일교포라 일본에서 차별을 받아서 그랬지 일본에서도 뽑힐 가능성이 컸던 선수라고! 특히 기본기! 우리 팀 타자들 봐봐. 죄다 크게 치려고 덤비기나 하지 필요할 때 세밀한 야구 할 선수가 없잖아.”

    “너님이 단장할 때 그런 선수들만 잔뜩 뽑아서 지금 죄다 그런 선수가 라인업에 있는 거 몰라요?”

    단장을 공격하려다 역공을 당한 구단주가 못 들은 척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다.

    “작전도 작전이고 발도 빠르지, 수비도 장난 아니라고. 일본에서 야구 한 선수라 타구 판단하고 낙구 위치까지 최단 거리로 움직이는 게 일품이야.”

    “우리도 발 빠른 수비할 선수는 많거든요.”

    “수비의 질이 다르다고 질! 호수비를 만들어내는 게 좋은 수비가 아니고 호수비를 할 필요가 없는 수비를 하는 게 중요한 거라고. 이런 단장이 팀을 꾸리니 우리 외야가 저러지 내가 단장할 때는….”

    구단주가 단장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다가 날카로운 눈빛을 받고는 하려던 말을 집어넣는다.

    “그래서 꼭 저 선수들을 뽑아야겠다?”

    “어. 죽이지? 내가 몇 년을 공들여서 지켜보던 선수들이야.”

    “죄다 신고로 뽑아도 될만한데?”

    “안돼! 지명순위가 구단이 선수에게 거는 기대감의 절대치인데! 절대 안 돼! 앞순위로 뽑으면 뽑았지, 안돼!”

    아무리 봐도 마음에 안 드는 단장이 선수들의 기록과 동영상을 돌리고 돌리고 또 돌려본다. 확실한 장점들은 있지만, 프로에서 뛰기는 부족함이 한가득한 원석들. 프로에 와서 터질지 안터질지 전혀 예상이 안 되는 선수들에게서 장점을 뽑아내려고 눈이 빠져라. 바라본다.

    “나 못 믿어? 나 믿고 뽑아”

    “그 말 들으니 더 못 뽑겠네요”

    “어허. 내가 실패하는 거 봤어?”

    “2군에 한가득”

    “야! 내가 김소전도 트레이드해오고, 노경준도 뽑고, 민수경, 김이문 강우혁까지 뽑은 사람이야!”

    구단주가 단장 시절 뽑은 선수들과 구단주 하면서 월권으로 데려온 선수들 명단이 줄줄 나오자 약을 먹었음에도 단장의 머리가 더 아파져 온다.

    “어째 정상적인 것들이 하나도 없어. 죄다 하자 있는 것들이네”

    “뭐! 누가 하자 야! 김소전이랑 노경준이 무슨 하자가 있어!”

    구단주의 고함에 코웃음으로 받아치는 단장

    “김소전은 사회성이 약에 쓸래도 없고, 노경준이는 김소전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민수경은 사이즈가 극복이 안 되고 계속해요?”

    자기가 아끼는 선수들을 험담하는 단장에 기분이 상한 구단주.

    “그럼 넌 누구 뽑아오게? 1번으로 누구 뽑을 건데?”

    “고해정”

    “뭐? 누구?”

    “소백대 고해정”

    “고해정? 고해정? 태산고 나오고 토미존 수술한 고해정?”

    “재활은 완벽해요”

    “수술한 대졸을 1번? 제정신이야?”

    “슬랩 수술한 선수를 트레이드로 데려온 사람도 있는데 이정도야 뭐?”

    공수가 바뀐 상황. 이번엔 구단주의 머리가 아파져 온다.

    “나 올해 고해정 공 던진 거 본 기억이 없는데?”

    “당연하지. 내가 못 던지게 했으니까”

    “작년에도 기억에 별로 없는데”

    “작년엔 재활 확인하려고 9이닝 던졌어요”

    야구단장을 하면 사람 속이 썩어 문드러진다는데…. 드디어 단장이 죽을병에 걸렸음을 직감한 구단주가 살살 달래기 시작한다.

    “조단장. 사람이 힘들면 쉬어도 돼. 조단장 통장에 찍힌 돈이면 휴양지 가서 평생 놀아도 괜찮잖아.”

    아직 시집도 못 갔는데 은퇴를 종용하는 구단주에게 단장이 거절의 의사를 표시한다.

    “글쎄요. 전임 단장도 힘들다고 은퇴해 놓고 여전히 구단에 간섭하는 거 보면…. 전 죽을 때까지 랩터스 단장할 거예요”

    구단주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 고용유연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대한 그룹의 월급쟁이가 평생직장을 선언하자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야! 그럼 홍시는 단장 언제 해! 너 다음에 홍시 시켜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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