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47화 (147/204)
  • 147화. 2루 주자

    다시 받아온 페이퍼. 돌아오는 택시에서 페이퍼를 살펴보니 우리 멍청한 포수 유망주님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는지가 느껴진다.

    전력분석팀에서 만들어 준 자료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알 수 없는 기호를 잔뜩 적어놓은 페이퍼…

    전력분석팀한테 욕먹는 것 보다 자기가 연구한 자료가 사라진 것에 더 속이 상했을 멍청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파져 온다.

    이게 다 경준이 닮아 멍청해서 그래. 나처럼 집에 가서 야구 노트를 쓰고 쓰고 또 써서 외어야지 못 외우고 종이 쪼가리 들고 다니니까 잃어버리고 그러지.

    다른 애들도 이런가. 이제 타격 훈련 끝나고 깜지라도 시켜야 하나. 유치원생들도 아니고…. 뭐 이렇게 손가는 놈들이 많아.

    구단에 돌아와 매니저 형한테 페이퍼를 돌려주니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발에 부스터를 달고 어디론가 뛰어간다.

    아직도 진혁이 욕먹고 있나 본데…. 적당히 들 좀 하시지….

    - 랩터스를 선두에서 끌어내린 타이탄스가 1위로 올라가기 위해 경기에 나섭니다.

    - 랩터스도 여기서 밀리면 다시 올라가기 힘들어질 수가 있어요. 양 팀 다 최선을 다하는 경기가 될 것 같아요.

    - 그래서일까요. 랩터스 엔트리 변화가 있었습니다.

    - 어제 데뷔전을 치렀던 권진혁 선수가 말소되고 박상원 선수가 올라왔죠.

    - 권진혁 선수 지난 경기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인 게 영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잘하다 실점을 하면서 허둥지둥했어요. 아직 어린 선수거든요. 2군에서 경기를 더 치르면서 실전에서 대처법을 배울 필요가 있어요.

    어제랑 크게 다를 바 없는 선발 라인업. 오늘은 안 진다. 절대 안 진다!

    - 타이탄스의 선두타자 최강훈입니다.

    - 이 선수 막을 방법이 없어요. 어제도 3안타를 치면서 타이탄스 승리를 견인했어요. 랩터스 고민이 될 수밖에 없어요.

    - 랩터스의 브래들리. 초구 스트라이크! 바깥쪽 직구로 경기를 시작합니다.

    타석에 들어선 쓰레기를 보니…. 흠…. 멀쩡하다. 어제 나를 만났을 때도 벌써 테이블에 뚜껑 따져있는 술병이 몇 병이였는데…. 멀쩡하다.

    술을 이놈이 안 먹고 다른 사람들이 먹은 건가? 그래봐야 어제 셋이었는데…. 아니면 어제 그…. 페룬지 칠렌지 하여간 그게 좋은 거라 그런가….

    - 파울! 빠른 공을 커트해내는 최강훈. 오늘도 매서운 배트를 보여줍니다.

    - 배트스피트가 정말 빨라요. 그러다 보니 공을 오래 볼 수 있는 것이거든요. 좋은 선수예요. 정말 좋은 선수입니다.

    포수미트에 들어가는 공을 끄집어냈다. 이건 끄집어냈다는 표현 말고는 쓸 게 없다. 타이밍에서 밀렸는데 저걸 파울을 만들면…. 투수는…. 직구를 던질 수가 없는데….

    - 센터 앞에 안타! 오늘도 안타를 신고하는 최강훈!

    - 변화구를 잘 받아쳤어요. 완벽하네요.

    저 야알못이 이제 수 싸움도 한다. 직구를 커트해 버리고 직구 타이밍에 변화구를 때려내면서 중견수 앞에 안타….

    조금 투박하기는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배트스피드로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들어낸다. 사람이 아니야….

    - 오늘도 치열한 경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5회까지 공방을 마친 두 팀의 스코어는 4:4. 긴장감 넘치는 경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 어제오늘 경기를 보는 팬들 심장이 남아나지 않겠어요.

    무슨 가을야구도 아니고 공 하나하나에 긴장감이 넘쳐난다. 순위싸움이 치열한 것도 그렇지만 어제 쓰레기 놈의 도둑질 때문에 우리 팀 전체가 날카롭다.

    너무 팽팽하면 안 좋은데….

    - 6회 초 타이탄스의 공격. 선두타자 다시 최강훈입니다.

    - 첫 타석에 안타가 하나 있었죠. 오늘도 멀티안타 경기가 될지 기대가 되네요.

    잔루가 쌓여가는 경기. 저놈의 얼굴을 자주 본다…. 자주 보다 정들면…. 헉…. 무슨 그런 큰일 날 소리를….

    - 좌측펜스 직격하는 최강훈! 2루까지 서서 들어갑니다.

    - 안 넘어간 게 다행이었어요. 그리고 황경철 선수 펜스플레이 잘했죠. 처음부터 펜스플레이를 준비해서 타자를 2루에서 멈춰 세웠어요.

    중심이 무너졌는데 밀어서 펜스 직격…. 사람이냐? 이게 무슨 사람 같지 않은 짓이야….

    - 다시 한번 앞서갈 기회를 잡는 타이탄스. 2루에는 주자 최강훈, 타석에는 명정욱입니다.

    - 무사 2루에요. 지금 도망가야 해요.

    주자2루. 좌타자. 2루 주자를 내가 맡을 거니까 1루와 2루수를 뒤로 물리면서 시프트를 걸어본다. 그러면서 3루수도 내 쪽으로 더 당겨놓고 슬쩍슬쩍 주자 뒤로 움직여본다.

    “후…. 흠. 힘들다. 후…. 후….”

    거친 숨을 몰아 쉴 때마다 코끝으로 날아드는 술 냄새…. 도대체 술을 얼마나 퍼마셨길래 아직까지 술 냄새가 나는 거냐….

    “후…. 훅…. 후…. 훅….”

    어쭈…. 이제 다리까지 흔들거리네…. 밤새 무슨 짓을 했길래…. 쯧쯧쯧….

    “후…. 후…. 후… 크엑…. 후….”

    아쒸…. 더럽게…. 진짜…. 등 뒤에서 잔기술 좀 부리면서 주자를 낚아볼까 하다가 바닥에 온통 침인지 뭔지 모를 걸 뱉어내는 걸 보면서 마음을 접었다.

    아웃이고 뭐고 더러워서…. 안 해. 나 안 해

    - 명정욱. 파울! 파울입니다.

    - 1루 파울라인을 살짝 벗어났어요. 1루수 성현범 선수 잘 보고 안 잡았어요

    아 진짜…. 저 경준이 친구 놈…. 파울타구 반응도 못 해. 파울이여도 공에 집중하고 있었으면 반응을 해야지. 공 빠르다고 반응도 못 하고 멀뚱멀뚱…. 저놈을 어찌 고쳐 쓰나….

    - 최강훈 2루로 돌아옵니다. 힘들어하네요.

    - 오늘 많이 뛰고 있어요. 지난이닝 수비에서도 깊은 타구를 잡아내고 공격에서도 2루타 치고…. 아직 날이 덥거든요. 선수들 체력관리 해야 합니다.

    우리 팀 멍청이들은 힘은 남는데 야구를 못 하고, 이쪽 멍청이는 술을 퍼먹어서 그런가가 야구는 하는데 체력이 없네. 그러기에 평소에 운동 좀 할 것이지…. 너…. 뭐하냐?

    - 2루. 2루 주자 갑자기 넘어졌습니다.

    - 무슨 일이죠? 이게 무슨 일이죠?

    뭐…. 뭐냐? 멀쩡히 2루 베이스 밟고 있던 놈이 왜 쓰려져? 야! 장난하냐?

    갑자기 사람이 푹 쓰러졌다. 가만히는 아니고 파울타구에 3루로 스타트 했다가 다시 돌아와서 2루 베이스를 밟고는 뒤로 벌렁 누웠다.

    무슨 일인가…. 놀래서 다가가니…. 얘…. 진짜 이상한데…. 뭐…. 뭐야….

    돌아간 눈이 초점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멍하게 벌려진 입에 몸을 부들부들 떤다. XX 이게 뭐야. X 됐다.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급한 대로 몸이 움직인다. 입안에 혓바닥이 뒤로 말려 들어가는 것 같다. 급한 대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혀를 잡아 빼면서 미친 듯이 손을 흔들어본다.

    속속 다가오는 사람들. 내 옆으로 가장 가까이 다가온 민수경 선배가 나를 밀쳐내면서 쓰레기의 고개를 돌린다. 입에서 질질 흘러나오는 침…. 이게 뭐야

    “가슴 눌러! 눌러! 눌러!”

    키는 내 반밖에 안 되는 수경 선배가 쓰레기의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반듯하게 눕히고는 나한테 심폐소생술을 시킨다.

    아무 생각도 없이 가슴을 누른다. 사람 죽는 거 본 적이 없는데 어쩐지 오늘 볼 것만 같은 더러운 기분이 든다.

    - 이게 무슨 일입니까. 최강훈 선수가 쓰러졌습니다.

    - 안 돼요. 이러면 안 돼요.

    수비하던 선수들이 먼저 2루로 다가오고 랩터스와 타이탄스의 트레이너들이 동시에 2루에 도착한다.

    - 소전이 계속 압박해. 세게 해! 더 세게!

    외과 의사인 트레이너가 나에게 더 세게 압박하라고 얘기를 하면서 쓰러진 멍청한 놈의 상태를 살핀다. 같이 도착한 타이탄스의 트레이너도 의사가 선수 상태를 살피니 뭐라 말도 못 하고 선수의 벨트와 스파이크를 풀어준다.

    - 소전이 비켜. 수경이 계속 그대로 잡고 있고.

    급기야 나를 밀쳐낸 의사샘…. TV에서나 보던 자세로 저놈의 가슴을 부서지라 눌러댄다. 심장이 멎어서 죽는 것보다 아파서 죽겠.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잔디 보호는 안중에도 없이 풀악셀로 밟으면서 들어오는 엠뷸런스. 랩터스 지정병원의 엠뷸런스에서 한무리의 사람이 알 수 없는 장비를 잔뜩 들고 내린다.

    “쿨럭”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의사샘의 땀이 환자의 얼굴에 떨어지자 혀 말고 숨 안 쉬던 멍청이가 숨을 쉬기 시작한다.

    내가 숨넘어갈 것 같던 시간이 끝나자 엠뷸런스에서 내린 무서운 사람들이 수경 선배도 치워버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각종 이상한 기계를 온몸에 부착한 요원들. 순식간에 침대에 사람을 들어 옮기더니 그대로 차에 집어넣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순식간에 사라진 2루 주자…. 몰려들었던 선수들이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다.

    - 음…. 정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2루 주자였던 최강훈 선수가 갑자기 쓰러지고 의료진이 들어와 선수를 후송했습니다.

    - 이런 상황이 나오면 안 돼요. 우리가 이미 겪어봤어요. 아픈 기억이 있어요. 이번에는 선수들도 대처가 빨랐고 의료진의 투입도 빨라 보이긴 하거든요. 제발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요.

    타이탄스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와 주심과 이야기를 시작하고 우리 감독도 같이 그라운드로 나가 주심과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슬슬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수비수들. 다들 자기 자리 찾아가는데 2루수 수경 선배가 나한테 뭐라고 한다.

    “야 혀를 왜 잡아?”

    “혀 꼬이면 숨 막혀 죽을까 봐요…. 진짜예요. 선배도 아까 봤잖아요”

    “너 구단에서 응급처치 실습할 때 잤냐? 혀 잡지 말라잖아. 턱들고 고개 뒤로 젖히라고 안 배웠어?”

    뭐…. 그랬던 것도 같고…. 난 지금 아무 생각도 안 나는데

    “선배 죄송해요. 기억이 안 났어요.”

    “죄송하긴 뭘 죄송해. 나도 쟤 쓰러질 때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네가 먼저 달려들어서 혀 잡고 하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 많이 컸다. 내새끼.”

    저…. 선배…. 내가 원래 선배보다 한 뼘은 크거든요?

    - 2루에 대주자 들어가고 경기 재개됩니다. 최강훈 선수의 소식은 들어오는 대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 마음이 너무 무겁네요. 선수들도 경기에 집중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밖에서 보는 사람도 이런데 선수들은 힘들 거예요.

    - 경기 끝났습니다. 4:5 8회에 터진 노경준선수의 결승 홈런으로 시리즈전적 1:1을 맞추는 랩터스. 내일 경기에서 승패가 갈리겠습니다.

    - 랩터스 승리는 축하하고 최강훈 선수 소식이 들어왔지요.

    - 네. 6회 경기 도중 쓰러진 최강훈 선수 현재 의식이 돌아와 휴식 중이라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 다행이에요. 예전의 나쁜 생각이 계속 머리에 떠올라서 힘들었어요.

    * * *

    “결과는요?”

    “하고 있어.”

    “나왔잖아요. 뭐래요?”

    요즘 자주 만난다고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본론부터 훅 치고 들어오는 여자. 남자도 조금 놀려줄까 하다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순순히 털어놓는다.

    “심정지. 원인은 많은데 뭐 뻔하지”

    “스테로이드 부작용?”

    “스테로이드뿐만 아니라 각성제에 호르몬제제까지 쓴 거 같다더라고. 차라리 저 상태가 나은 거라던데? 혈액제제도 쓴 거 같은데 그게 먼저 터졌으면 왜 죽었는지도 몰랐을 거래….”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주먹을 부르르 떠는 여자. 남자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남자에게 쏘아붙인다.

    “어쩔 거예요! 그냥 놔둘 거예요? 쟤 저러다 죽어요!”

    “그걸 왜 나한테 그래. 쟤가 내 아들도 아니고 한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자기 앞가림 자기가 해야지”

    “진짜 이럴 거야!”

    자기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욕먹는 남자의 심기가 불편해진다.

    “내가 뭘 어떻게 하라고 우리 팀도 아니고 남의 팀 선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기인환 감독님 2주 휴가.”

    “뭐?”

    “국가대표 기인환 감독님 2주 휴가 만들어 줄게요.”

    “기 감독님 시즌 중엔 휴가나 다를 바 없는데 무슨 소리야?”

    여자가 바보도 아니고 쓸데없는 소리를 꺼내 놓자 남자가 의아해한다.

    “사모님하고 아이들로부터 2주 휴가 드릴게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남자가 국대 감독이 휴가를 받는 거랑 자기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한마디 하려다가도 최근 친구들과의 오랜 약속을 가족 동반으로 만들어 놓고 의기소침해진 존경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니 이 거래를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한 집만 휴가 내봐야 뭐 한다고 세집! 세집다 2주 휴가 보장.”

    “콜.”

    “콜?”

    “그럼 최강훈이 이번에 은퇴시켜줘요.”

    “은퇴까지는 장담 못 하겠고 최소한 이번 시즌 안에는 못 돌아오게 해줄게.”

    “딜”

    “딜”

    순식간에 생각지도 않은 계약을 하게 된 남자. 계약을 마치자 정말 궁금한 걸 물어본다.

    “그런데 형수님하고 애기들을 어떻게 떨어뜨리려고?”

    “훗…. 우리 스폰서 여행사에서 유럽 여행 상품권 나왔어요. 거기서 몇 개 빼죠. 뭐.”

    “야! 그거 횡령이야! 너 감옥 가!”

    “횡령은 무슨 횡령! 내가 감옥 가면 너님은 아오지 30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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