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44화 (144/204)
  • 144화. 올스타 브레이크

    어그로는 확실히 끌렸다. 야구환자들이야 KBO가 무슨 짓을 하든 구단이 무슨 짓을 하든 자기 팀 욕하느라 바빠서 정신이 없지만, 라이트 팬들의 이목은 확실히 끌렸다.

    프리미어12가 뭔지 WBC가 뭔지 관심도 없던 야구팬들도 국가대표를 감독 마음대로 뽑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욕을 쏟아낸다.

    이쯤 되면 무언가 결정을 해야 하는데 여전히 우유부단한 KBO. 국가대표 감독을 설득하거나 다른 대안을 제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쏟아지는 관심에 기뻐하며 대대적인 올스타전을 준비한다.

    - 역대급 순위싸움이 펼쳐지는 2029시즌 전반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두 팀이 만났습니다. 랩터스와 울브스의 잠실 3연전 중 마지막 경기. 지금 시작합니다.

    쉽지 않은 시즌이다. 팀이 일관성을 시즌을 꾸려나가야 하는데 주 단위로, 일 단위로, 아니 이닝과 이닝 간격으로 팀의 컨디션이 확확 바뀐다.

    - 에러. 랩터스 에러. 1루수 성현범 공을 뒤로 빠뜨립니다.

    - 김민중 감독 고민이 될 수밖에 없어요. 1루 공격력을 생각하면 성현범을 안 쓸 수는 없거든요.

    저놈 저…. 경준이 친구. 안 되겠다 싶으면 몸으로라도 막으라고 했더니 공에 몸만 가져다 대고 다리를 벌리면 어쩌겠다는 거야. 친구 닮아 야구에 재능이 없어 재능이….

    - 7회 말 스코어 3:1. 투아웃 주자 1, 3루 랩터스 이번 기회를 살려야 합니다.

    - 3루 주자 김소전, 1루에는 노경준. 발 빠른 주자가 있을 때 점수를 내야 해요.

    아무리 봐도 우리 팀 시즌 준비를 잘못한 것 같다. 앞 타자들이 출루를 해봐야 2, 3, 4, 5, 6번까지 죄다 한방만 노리는 뻥 야구를 추구한다.

    그나마 경준이가 빗맞은 안타 치면서 내가 3루까지 왔지만…. 기대가 안 된다. 3, 4번도 못 친 공을 5번이 무슨 수로 쳐

    - 5번 타자 성현범. 오늘 3타수 무안타 삼진만 두 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스윙이 커요. 큰 거 노리는 건 좋은데 우선 맞춰야죠. 스윙을 컴팩트하게 바꿀 필요가 있어요.

    1회에 에러를 하고 계속 정신을 못 차리는 멍청이. 지난 타석에 삼진을 먹고 고개 팍 숙이고 들어오길래 3루 보고 치라고 이야기해줬더니 타석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만 바라본다.

    멍청아…. 나를 보지 말고 3루 보고 밀어치라고! 이 노경준 친구 놈아

    - 성현범. 초구 파울.

    - 타이밍이 안 맞아요. 조금 더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안 되겠다. 어깨만 닿아놓으면 앞으로 타구를 앞으로 보낼 것 같은데….

    - 성현범 장갑을 고쳐 끼고 타석에 다시 들어옵니다.

    나랑 계속 바라보는 현범이와 눈을 맞췄다. 눈만 봐도 자신감이 없는 게 보인다. 뭐라도 해줘야 하는데….

    할 게 없어서 이쪽으로 치라고 손가락으로 내 앞을 찍어줬다. 이쪽. 이쪽으로 치라고

    - 성현범 번트! 스퀴즈! 3루 주자 김소전 득점! 타자주자 성현범 1루에서 살았습니다! 3:2 추격의 점수를 기가 막힌 스퀴즈로 만들어낸 랩터스.

    - 투아웃에 스퀴즈를 댔어요. 울브스 전혀 대비를 못 했거든요. 이거 김민중 감독의 기가 막힌 작전이에요. 랩터스 무기를 하나 더 갖네요.

    미친놈이다. 지금 히팅사인이 나왔다. 스퀴즈 같은 게 나온 게 아닌데 저 멍청한 놈 내가 손가락으로 내 앞을 찍었다고 이리로 번트를 댔다. 정상이 아니야.

    - 성현범 이번 시즌 첫 번째 번트였습니다.

    - 성현범이 번트 댈 일이 없죠. 사실 잘 댄 번트는 아니에요. 투수가 대비했으면 잡을 수 있는 타구였는데 투수가 놀라서 대처가 안 됐어요.

    - 3루수도 대처가 늦었습니다.

    - 3루수도 타자가 성현범이다 보니까 뒤로 물러났거든요. 앞으로 달려들기 쉽지 않았어요. 대단한 작전이었어요.

    어처구니없어하면서 덕아웃에 들어오자 타격 코치님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하이파이브를 해준다.

    알 듯 말 듯한 표정의 감독님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선수들의 눈빛이 오묘하다.

    “형. 역시 대단하십니다. 투아웃에 스퀴즈는 듣도보도 못했어요”

    “형. 현범이가 번트 댈 줄 아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저 2군에서도 본적이 없었는데”

    “형. 다음엔 저한테도 사인 주세요. 제가 꼭 성공해볼게요”

    아니라고! 내가 사인 낸 거 아니라고!

    “하…. 하하…. 운이 좋았네”

    더 말 섞어봐야 나만 손해일 것 같으니 그냥 얼버무려야겠다.

    - 경기 종료. 7회 경기를 뒤집은 랩터스가 끝까지 잘 지키면서 전반기 마지막 경기 승리를 가져옵니다.

    - 7회 말 성현범의 스퀴즈가 결정적이었어요. 거기서 흐름이 완전히 넘어왔거든요. 대단한 작전이었어요.

    이겼다. 과정이야 어쨌든 이긴 게 중요하다. 그리고 이기면서 다시 선두권에 올라왔다.

    전반기가 끝과 후반기의 시작은 언제나 올스타전. 왜 매년 역대급 순위경쟁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문가들이 역대급 순위경쟁을 펼치는 와중에 치루는 올스타전. 올해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 2029 올스타전. 영예의 미스터 올스타는 타이탄스의 최강훈 선수입니다.

    - 선발 출장해 4타수 3안타 볼넷 한 개를 만들어냈어요. 특히나 6회 결승 2루타는 강수현 선수의 휘어져 나가는 공을 잡아당겨서 만들었거든요. 아주 인상 깊은 활약이었습니다.

    - 부상으로 상금과 금 100냥이 수여됩니다.

    - 2년 연속 미스터 올스타가 된 김소전 선수가 면허도 없는데 차를 계속 받는다고 팬분들이 집단 민원을 넣었다고 하죠? 그래서 올해는 금 100냥으로 바꿨어요.

    되는 놈은 갈치를 먹어도 살코기만 입에 들어오고 안되는 놈은 생선가스를 먹다가도 가시에 찔린다.

    내가 상 받을 때는 쓸데도 없는 차를 주다가 싸가지가 받을 때는 금을 주는 게 말이 되나? 지금이라도 차 가져가고 금으로 바꿔 달라고 해볼까? 그나저나 내차 루다가 길들인다고 가져가서 아직도 안 주는데…. 차 길은 몇 년을 들이는 거지?

    나도 내 차 타보고 싶다…. 면허를 딸까…. 면허 따면 음주운전을 하니까 루다가 따지 말라고 했는데…. 아…. 난 시즌 중엔 술 안 먹지…. 아니…. 비시즌 중에 먹으면…. 아…. 난 비시즌 중에도 루다랑만 먹지…. 아니…. 아…. 몰라. 짜증 나.

    내가 뚱한 얼굴로 화를 꾹꾹 눌러 참고 있는데 오늘도 역시나 아무 생각이 없는 경준이가 아무 생각이 없는 표정으로 말을 건다.

    “형. 가요. 애들 이천에서 형 오기만 기다리고 있대요.”

    “이천? 잠실도 아니고 이천에서 기다린다고? 왜?”

    “에이 왜라니요. 형이 오늘 MVP 따온다고 형 밑으로 집합하고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형 밑으로 2군에 선수들이 더 많으니까 이천에서 모였어요. 빨리 가요”

    자…. 잠깐…. 뭐야 이XX는….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들면 어째….

    “나 오늘 MVP도 아닌데 왜 모여”

    “우리야 형이 MVP 되는 줄 알았죠. 어쨌든 애들 기다리니까 빨리 가요. 울쪼꼬미가 데려다준다고 주차장에서 기다린단 말이에요”

    “울 쪼꼬미는 또 누구냐?”

    “에헤…. 알면서….”

    알면서? 정새현주임?

    “이제 사귀기로 했냐?”

    “어제부터 1일”

    “어제부터 1일? 너 사귀는 거 전 국민이 아는데 뭔 헛소리야!”

    “에이. 형. 정식으로 얘기하고 날짜 세야죠. 어제 자기가 먼저 고백했어요”

    이XX. 어제 손톱이 깨진다고 먼저 들어가더니…. 헛짓거리하러 간 거였어….

    “그나저나 아쉽네요. 오늘 형 차 받았으면 그 차 가지고 가면 되는데”

    “야! 전시된 차 바로 가져가는 거 아니야. 그거 따로 영업점 가서 사인하고 막 세금 내고 뭐 할 거 많아 그러고도 한참 있다 차 나오는 거야”

    “어쨌든. 형. 작년에 받은 차 어디 있어요? 형 차 안 가지고 다니잖아요. 울쪼꼬미 안녕이가 오래되고 좀 작은데…. 형…. 안 쓰는 차 빌려주면 안 돼요?”

    “안돼! 차하고 여자친구는 빌려주는 거 아니라고 했어!”

    나쁜 XX. 하여간 세상에서 연애하는 놈들이 제일 나쁜 놈들이다. 하여간 그렇다.

    그나저나. 이천에 애들을 왜 모아놓았어…. 뭘 해줘야 해….

    내 키가 190이다. 그리고 신인 때부터 꾸준히 체중을 불려 이제 98㎏까지 나간다. 여전히 슬림하고 멋진 몸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절대 작은 체구는 아니다.

    그런데… 쪼꼬미 님의 안녕이 뒤에 짐짝처럼 실렸다.

    “소전 선수 안전벨트는 하셨죠?”

    “안전벨트 하긴 했는데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소전 선수 벨트는 하셔야지요”

    “지금 목도 못 펴고 있거든요…. 경준아 그쪽 좀 당겨봐 그쪽으로 기대보자”

    “형. 저도 의자 더 당기기 무릎이 앞에 닿아서 안 돼요…. 아~ 아~ 무릎이 아파지려는 거 같아요”

    “쭈니 무릎이 또 아파? 재활해도 안 되나 보다. 내가 또 속상해지려고 해….”

    가지가지 한다. 저 XX 다친 게 무릎 뒤쪽 후방 십자인대인데 쇼는…. 이래서 법으로 연애를 금지해야 해.

    우여곡절 끝에 이천 훈련장에 도착하니 올스타전 브레이크 따위는 잊은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미 시간이 운동할 시간이 아님에도 실내훈련장에서 손이 터져라. 배트를 돌리는 후배들…. 그 광경을 보니…. 겁난다…. 저 나보다 훨씬 높은 순위를 받고 들어온 재능 덩어리들이 노력도 하고 있다니….

    선수들 방해 안 되게 락커로 들어가 운동복을 찾아 입고 조용히 훈련장에 들어가 구석에서 몰래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형. 오셨어요”

    “형. 언제부터 계셨어요?”

    “형. 오늘 경기는 잘하셨어요?”

    조용히 몸을 풀고 있는데 후배들이 알아보고 와서 인사를 건넨다. 티 안 나게 하려고 했는데…. 내가 워낙 폼이 좋으니 얘들이 바로 알아보네.

    “어. 다들 잘 있었어? 성신이는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본 후배들이랑 인사를 하는데 나만 먼저 훈련장으로 보내고 뭐 하고 왔는지 한참 있다 들어오는 경준이가 쏘아붙인다.

    “형. 오자마자 애들 갈구는 거예요? 좀 살살해요”

    “아니야! 인사하고 있었다고”

    자기 동기 중에 가장 먼저 1군 올라와 자리 잡았다고 동기들 대장 노릇 하는 경준이. 야구를 그렇게 했으면 내가 업고 다니지….

    “다들 밥 먹었어? 형 마무리 훈련만 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왜인지 모르게 움찔움찔하는 녀석들. 그 모습을 본 경준이가 또 끼어든다.

    “형. 지금 몇 신데요. 다 밥 먹고 야식 먹을 시간이잖아요. 형. 그러지 말고 치킨이랑 피자나 더 사주세요”

    “그…. 그럴까?”

    말하기 무섭게 경준이의 전화가 바빠진다. 스트레칭 좀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카트 굴러오는 소리가 들린다.

    “배달왔습니다.”

    뭐…. 뭐냐…. 야식 좀 먹겠다더니 저게 사람이 먹을 양이냐?

    하도 어이가 없어 경준이를 바라보자 나는 안중에도 없이 빠른 손놀림으로 1인 1 피자, 1 치킨을 분배하는 절대자만 존재한다.

    내가 전생에 야구 못한 거 말고는 세상을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하늘은 왜 나한테 저런 악마를 보내셨는지…. 슬프다.

    스프링캠프 때나 시즌 중 경기 끝나고 같이 훈련이나 했지 내가 후배들 모아놓고 뭘 사 먹여본 기억이 없다. 이렇게 모아놓고 먹으면서 이야기하니…. 내 지갑에서 돈이 쑥쑥 빠지고…. 좋네…. 뭐….

    “형은 언제 쉬세요?”

    “말도마. 저 형 안 쉬어”

    “맞아 저 형 안 쉬어. 나 봄에 술 먹고 훈련장서 잔 날 있는데 다음날 8시에 나오더라. 사람이 아니야!”

    아니…. 그건 아침 먹으러 오는 거지. 엄마도 바쁜데 아침밥 해달라기 미안하잖아. 구단에서는 공짜로 주는데

    “형이 야구를 XX 못하잖아. 그래서 그래. 야구도 못 하는데 남들처럼 할 수는 없잖아.”

    “와 재수 없어”

    “야!”

    딱히 할 말이 없어 대충 던진 말에 저놈들이 반응한다. 뭐 입에서 나가는 대로 말을 하긴 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닌데…. 야구를 좀 더 잘하고 싶어서 훈련장 나오는 건 맞는데….

    “형. 저도 형처럼 하고 싶은데 안 돼요. 어떻게 해야 형처럼 할 수 있어요?”

    나처럼 한다고? 내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닌데…. 특히나 KBO에서는 나 말고 비교할만한 모델이 없는데? 쉬운 사람들 따라가 가야지, 왜 나를 따라 하려고? 그리고 리그에 이런 스타일은 나만 존재하니까 가치가 있는 건데…. 누굴 따라 하려고?

    “규환아. 넌 뭘 좋아하냐?”

    “네?”

    “난 다른 거 좋아하는 것도 없고 야구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야구하는데 넌 뭘 좋아하냐고”

    “저는…. 뭐…. 친구 만나서 맥주 한잔하는 것도 좋아하고 여자친구랑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고….”

    “그걸해”

    “네?”

    “그걸하라고”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규환이

    “나는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이러지만 넌 아니잖아. 우리가 4번 경철 선배 같은 홈런타자가 아니라고 실패한 사람들이 아니잖아.”

    규환이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의 눈도 나에게 향한다. 부담스럽게

    “너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잘하고 있어. 너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도 그렇고 여기 있는 친구들 다 죽으라 열심히 하잖아. 너희들은 더할 생각을 하지 말고 덜어낼 생각을 해. 너희들 이 이상 하는 건 훈련이 아니라 노동이야. 빡센 훈련 후에 확실한 휴식. 너희들한텐 그게 필요한 거 같다.”

    내 경쟁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 멋대로 지껄인 말에 구석에 있던 성신이의 눈물이 터진다. 다른 동기들 다 1군에 왔다 갔다 하는데 홀로 2군을 지키는 내야수가 내 헛소리에 뭘 느꼈는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이런 건 계획에 없었는데

    “왜들이래? 치느님 앞에 두고 뭐 하는 짓들이지? 형이 비싼 거 사줘야 하는데 치킨만 사줬다고 시위하는 거야? 시즌 끝나고 형이 맛있는 거 사줄게 기대해”

    그때 자기 친구가 구석에서 울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던 나쁜 놈이 충격적인 말을 뱉는다.

    “형. 얘들 아까 대한 호텔 뷔페 털고 왔는데요? 내일 형한테 청구서 갈 거예요. 얘들아 잘 먹었다고 인사해야지”

    뭐…. 뭐라고?

    “형! 잘 먹었습니다.”

    이…. 이 XX들. 휴식은 무슨! 올스타 브레이크 끝날 때까지 여기서 합숙하면서 지옥 훈련이다! XXX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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