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분석
무슨 팀이 도깨비다. 시범경기를 그렇게 말아먹더니 시즌 초반 불타올랐다. 그러다 5월이 시작되면서 몰락하더니 6월 중순까지 업앤다운을 반복하고 있다. 전형적인 한 끗 모자란 팀…. 대책이 필요한데….
“안녕~ 야구 읽어주는 소녀~ 루다에요~”
볼 때마다 적응 안 된다. 얼굴이 귀염상이기를 해…. 아니면 작고 아담하길 해…. 지금 당장 옥타곤에 올라가도 세계 챔피언 할만한 분이 어디서 애교질이야….
“오늘은 팬들 사이에서 롤러코스터 팀으로 불리고 있는 랩터스를 읽어줄게요~”
오늘은 우리 팀이군….
“랩터스 이번 시즌 성적이 아주 스펙타클해요. 시즌 초반 1위를 달리다가 5월 어린이날 시리즈에서 소닉스에게 일격을 당하면서 4위까지 떨어졌어요. 그리고는 2위에서 4위까지 널뛰기를 하다가 최근 안정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안정이라니…. 하위권 팀들 잡고 간신히 순위 끌어올린 거지 우리가 잘한 게 아니라고
“이번 시즌 랩터스 행보에 대해서 다양한 분석 결과들이 있더라고 몇 개만 소개해 드릴게요”
다양? 다양할 게 있나? 그냥 못하는 건데?
“루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이거에요. 4월부터 대한 그룹 주가와 랩터스 성적을 비교한 글인데요. 자 보이시죠? 어때요? 똑같지 않나요? 그랬어요. 우리 랩터스는 그룹의 주가에 따라 성적이 바뀌는 거였어요.”
이게 무슨 X 소리야!
“이글을 소닉스 홈페이지에 쓰신 hanriver31님. 한강 가기 전 마지막 글이라고 하셨는데. 한강 물이 아니라 한강뷰로 보고 계시죠? 루다 인별로 연락처 보내주세요~ 루다의 친필 사인과 국가대표 기교환 감독님의 사인볼 보내드리겠습니다.”
기인환 감독님 사인은 그렇다고 치고 네 사인은 왜 보내냐?
“다음 분석은 엘리펀츠 게시판에서 찾은 글인데요”
랩터스 팬들은 팀 분석 안 하냐?
“랩터스 성적이 널뛰는 이유로 팀 내 베테랑 부재를 이유로 3만 자짜리 장문의 글이 있더라고요. 글을 살펴보면 주옥같은 내용들이 많지만, 결론은 급작스러운 리빌딩으로 팀 내 정신적 지주가 될만한 선수가 없다. 특히 S급 베테랑의 부재로 팀이 흔들릴 때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는 내용인데요”
뭐냐? 이건? 야수진에 베테랑이 없다고? 우리 팀에 주장도 있고! 또…. 또…. 또…. 음…. 포수 4 옵션 박상원 선배…. 드래곤스에서 이적해온 민구 선배…. 음…. 하여간 있다고!
“10년째 리빌딩에 실패한 엘리펀츠 팬이 엘리펀츠와 랩터스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쓴 글이 루다의 심금을 울리더라고요. 그래서 이 이야기에 살을 좀 붙여보기로 했어요~”
네가 뭘 안다고 우리 팀 리빌딩에 대해 이야기를 해
“랩터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수많은 우승을 만들어냈던 베테랑들이 동반 은퇴를 선언했어요. 팀의 4번 타자 조영근이 통산 339개 홈런을 남기고 떠났고,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강정상도 통산 타율 3할 2푼 5리 2,133안타를 남기고 그라운드를 떠났어요”
선배님들…. 경기할 때마다 못한다고 속으로 욕을 했지만, 기록만 놓고 보니…. 대단한 사람들이었네. 저 정도 하니까 그 나이까지 야구 하는구나.
“그리고 랩터스의 160억 FA 듀오 박재호와 정현기가 이번 시즌 플레잉코치로 빠지면서 2군에서 단 한 번도 올라오지 않고 있어요. 그 결과 팀 내 최고참이 김민구 선수인데요. 다들 아는 것처럼 김민구 선수는 랩터스라기엔 드래곤스 출신이라는 색이 강한 선수예요”
왜! 민구 선배가 어때서! 사람이 워낙 진중하고 조용조용해서 그렇지 보고 배울 거 많은 선배라고!
“그다음 생각나는 선수가 누가 있을까요?”
누가 있긴 경철 선배도 있고, 응규 선배도 있고 왜! 왜!
“딱 떠오른 선수가 있나요? 랩터스 선수단에서 다른 팀 팬들까지도 알만한 선수… 라정안선수 생각나지 않아요?”
그렇지! 우리 주장! 주장은 전국구 스타지!
“라정안 선수. 랩터스의 캡틴이지요? 벌써 5년째 주장을 하고 있는데요. 라정안 선수가 몇 살이게요?”
그러고 보니 주장이 몇 살이더라. 이번 시즌 끝나고 FA인건아는데
“31살! 27살 때부터 주장을 맡아 다들 라정안 선수가 연차가 있는 선수라고 알고들 있는데 31살이에요. 다른 팀 주장들과 비교해서 라정안 선수가 동안처럼 보이는데 동안이 아니라 진짜 어린 거라고요”
31살이 어리다…. 흠…. 노안인 네가 이야기하니까 확 몰입감 생기네
“랩터스의 덕아웃 리더가 31살 라정안 선수에요. 말은 안 해도 라정안 선수의 고생이 느껴지지 않아요? 더군다나 올해 FA 시즌이거든요? 라정안 선수가 겉으로 좀 노는 이미지가 있는데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라정안 선수와 술자리를 해본 사람들은 알 거예요~”
뭐…. 무슨 소리냐! 너! 주장하고 언제 술 먹었어! 너 나 없는데 술 먹고 돌아다니는구나! 언제야! 4월 7일 회식 날이냐! 아니면 5월 13일 라디오 작가들이랑 워크숍 갔을 때냐! 언제냐!
“이런 걸 봤을 때 엘리펀츠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정확한 분석을 하고 있다고 판단이 돼요. 이 글 쓰신 분도 루다의~ 인별로 연락해주세요~ 이분은 3만 자 정성이 있으니 루다 스티커사진과 김해영 선수 글러브를 보내드릴게요~”
너 무슨 용품점 하냐? 김해영 선배 글러브는 언제 받은 거냐?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힘들어하던 랩터스가 최근에 안정세를 되찾아 가고 있는데요. 그런데 말입니다~”
뭐하냐? 뭐 비슷한 느낌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최근 랩터스 성적이 안정화돼가는 특별한 비밀을 찾아냈습니다.”
안정화? 비밀? 우리 팀이 안정화가 된다고? 그팀에서 뛰는 나도 모르는 소식을 어디서 들은 거냐?
“얼마 전 타이탄스와의 경기 9회 김소전 선수의 번트 실패장면이 회자가 된 적이 있었어요”
아…. 그 얘기를 왜 꺼내!
“루다가 제보를 받았는데요. 그날 3루 코치의 사인을 잘못 본 김소전 선수가 자체 벌금을 받았다는 이야기였어요”
야! 쪽팔리게 그런 얘기를 왜 꺼내
“그런데 그 사건이 거기서 끝난 게 아니더라고요”
뭔 얘기를 더 하려고?
“그날 1루 주자였던 양규환 선수도 스타트 미스로 벌금을 받았는데요. 글쎄 말이죠”
글쎄 말이죠?
“그걸 김소전 선수가 말도 없이 대납했더라는 겁니다.”
애들이 몰라준다고 한탄한 걸 네가 떠들면 어떻게 해!
“그때부터였어요. 랩터스의 어린 선수들이 믿고 따를만한 선배가 하나 더 생긴 건 그때부터였어요. 루다가 입수한 소식에 따르면 양규환 선수 동기들을 중심으로 김소전 선수가 말하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다고 하더라고요~”
야! 메주는 원래 콩으로 만드는 거야! 저런 게 무슨 아나운서야! 아니지! 작가 놈들! 사전에 대본 검토 안 하냐! 이러니 방송국 놈들이 욕을 먹지!
“그래서~ 결론이 뭐냐~ 김소전 선수가 중심을 잡아줘서 랩터스 성적이 좋으니 대한 그룹 주식을 사라~ 이상! 야구 읽어주는 소녀 루다였어요~ 안녕~”
이해할 수가 없다. 이따위 날로 먹는 방송이 왜 중계방송보다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것이냐. 도무지 쓸만한 내용 하나도 없이 루다 혼자 헛소리만 늘어놓는데…. 왜….
이해할 수 없으니 스윙이나 돌리면서 머리를 비워야겠다. 에잇. 못 볼 거 봤어.
* * *
“기인환 감독님 어떻게 구워삶았어요? 일하고 욕먹는 거 싫다고 국대 절대 안 한다고 하셨는데?”
최근 지지고 볶던 관계가 안정되자 카페에서 대면을 한 커플. 여자가 보자마자 다른 남자의 이야기를 물으니 남자의 대답이 시큰둥하다.
“감독 계속 시키라고 협박할 땐 언제고 인제 와서 이래?”
남자의 말이 좋게 나오지 않으니 여자도 같이 퉁명스러워진다.
“막상 국대 계속한다니까 신경 쓰여서 그렇지요. 구단으로 선수 정보 잔뜩 요구했어요. 그거 정리하는 데만도 세월이에요”
“데이터 소팅만 하면 되는 걸 뭘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아니…. 말이 그렇다고”
괜히 한마디 덧붙이다 여자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은 남자. 황급히 말을 돌린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국대 어린애들 뽑아갈 것 같던데?”
“그러게요”
“그래도 되나 모르겠어. 그래도 단기전에서는 경험 많은 베테랑이 중요한데”
전혀 동의를 못 하겠다는 표정의 여자.
“기인환 감독님이 국대 전담하면서 어린 선수들 벌써 경험치 충분히 먹이고 있어요. 어설프게 리그 성적만 보고 선수들 뽑는 것보다 국가대표 해본 선수들 쓰는 게 나아요”
“팀이 너무 어려서 그렇지. 팀 주축이 서른도 안 돼”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잘하는데. 야구 잘하면 장땡이라면서요?”
자기가 한 말이 있으니 뭐라 반박도 못 하고 애꿎은 빨대만 씹어내는 남자.
“우리는 누구 데려간 데?”
“라정안, 김소전, 노경준은 확정, 김호영, 김이문, 백종오는 검토 중”
“김호영 폼이 미쳤는데 검토 중? 감독이 미친 거 아니냐?”
데려가면 데려간다고 욕하고 안 데려가면 안 데려간다고 욕하는 남자를 보며 혀를 끌끌 차는 여자.
“김호영 구위가 KBO에서나 먹히지, 일본이나 메이저에는 안 먹힐 거 라잖아요. 그러면 쓸데가 대만 정도라는데 대만에 쓰자니 어린애들이 눈에 밟히지. 이러니 야알못 소리를 듣지….”
“야! 내가 야구 몇 년을 봤는데 야알못이야!”
자신의 무지를 지적당하자 급발진하는 남자. 여자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날 줄을 모른다.
“김호영이랑 김이문은 그렇다고 치고 박요훈은 왜 빼고 백종오는 왜 검토 중이야?”
“박요훈은 늙어서 구위 떨어지는 거 안보여요?”
“구위 좀 떨어진다고 맞을 공이 아니야!”
“KBO에서나 그렇지 도미니카나 멕시코만 만나도 쉽지 않아요”
“백종오는! 백종오는 왜 검토야?”
“걘 어리잖아. 어린데 길게도 가능하고 연투가 가능하잖아. 마당쇠로 굴려 먹기 딱이지”
자기 선수를 굴린다는 소리에 발끈하는 남자
“내새끼를 왜 굴려! 그런 거 하려면 울브스 박준형도 있고 폭스 박연승도있고! 그런 노예들 가져다 쓰지 왜 내 팀에서 곱게 키우는 왕자님을 굴려 먹으려고 그래!”
답답한 마음에 커피를 들이붓는 여자.
“부족한 어린애 큰 무대 데리고 가서 키워준다 그러면 넙죽 절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그리고 검토 중이라고요. 뽑아줄지 안 뽑아줄지 모른다고. 안 그래도 내가 보내기 민망하다고 그랬는데 창피하게 왜 이래요?”
“창피라니! 백종오가 어때서 창피해! 앞으로 크게 될 놈이야! 팀만 잘 만나 데뷔했으면 3천 이닝도 던질 고무팔인데!”
선수 어깨를 갈아버리겠다는 말을 저런 식으로 돌려 하는 남자에게 정이 떨어지는 여자. 그러다 궁금한 게 생겨 다시 처음 했던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꺼요. 기인환 감독님하고 통화 자주 한다면서 이런 얘기 안 해요?”
“안 해. 감독님 나랑 야구 얘기하면 밑천 털리는 것 같다고 안 해”
“털리긴. 얘기 듣고 야구파크에 부캐로 글 쓰니까 그렇지”
여자에게 펙트로 공격당한 남자가 반박을 못 하고 커피만 홀짝인다.
“그거나 얘기해줘 봐요. 기 감독님 어떻게 감독자리 눌러 앉혔는지. 진짜 안 할 거 같더니 왜 마음이 바뀌셨대요?”
“아…. 그거….”
말을 시작하며 애매모호한 웃음을 짓는 남자. 여자가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으며 불안한 기운을 느낀다.
“조 단장도 기 감독님 3총사 알지? 예전에 소닉스에서 같이 뛰던 트리오”
“그럴 어찌 모르겠어요. 그 XX들한테 랩터스가 홈런 몇 개를 퍼줬는데….”
“그 3총사가 술 먹다가 올스타전 브레이크 때 남자들끼리 낚시가기로 약속했는데 형수님한테 허락 맡을 방법이 없다는 거야”
“뭐?”
“그래서 내가 그날 사람 하나 죽여서 부고장 만들어 주기로 했거든? 어때? 조 단장 부모님 안녕하시지? 우리 식구들 부고장은 신문에 나니까 힘들고…. 조 단장이 딱이네. 어머님 이름으로 부고장 하나만 만들자. 대의를 위해서 도와줘”
혼자만의 완벽한 계획에 신이나 도망갈 타이밍을 놓친 남자.
“미친 XX야! 어디 멀쩡한 우리 엄마를 뭐? 우리 엄마가 아니라 네놈 부고장을 만들어 줄게! XXX야!”
멀리서 커플을 지켜보던 카페 사장님이 알 수 없는 약을 한 움큼 입에 털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