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전조
- 시즌 초반 잘 나가는 두 팀이 만났습니다. 1위를 달리고 있는 8승 3패의 랩터스, 공동 2위 7승 4패의 타이탄스. 시즌 초반 위치를 결정지을 주말 3연전. 고척에서 보내드립니다.
신기한 팀이다. 랩터스가 원래 도깨비 같은 팀이긴 하지만 이따위 타선으로 1위를 하고 있다. 잠실에서 2번부터 6번까지 홈런만 노리는 스윙을 하고 있는데 바꿀 생각도 안 하는 감독. 나만 죽어라 하고 노력하지 뒷놈들은 그런 생각 한 명도 안 하는 것 같다.
그나마 7번까지 가야 주장이 좀 출루를 할까…. 그래 봐야 8번에서 끊어먹고…. 감독을 바꿔야 해.
- 랩터스의 1회 초. 랩터스를 공격은 모두 이 선수부터 시작됩니다. 김소전. 타석에 들어옵니다.
- 시즌 초반 컨택에 집중하고 있는 김소전이죠. 지난 시즌부터 타격이 확실히 스텝 업 했어요. 볼뿐만 아니라 스트라이크가 들어와도 본인이 거북하다 싶으면 흘려보내는 여유가 생겼거든요. 무서운 선수예요.
뭐가 됐던 내가 나가야 뒤에서 한방 칠 때 들어올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나가서 뛰어야 하고 가급적 멀리 쳐야 한다.
- 볼넷. 볼을 잘 골라내는 김소전.
- 잘 골랐어요. 타자가 저 정도로 존을 좁히면 투수도 부담이 생겨요.
쳇. 실투하나 던져줄 줄 알았는데 안 던지고 계속 도망 다니네.
- 무사 주자 1루. 타석에 노경준입니다.
- 노경준선수. 이번 시즌엔 컨택 능력도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이번 시즌 2할 8푼까지 타율을 끌어올리고 있어요.
테이크백도 짧아지고 머리도 고정되니 배트에 공을 맞히기 시작한다. 최소한 작년처럼 홈런 치겠다고 무식하게 힘만 쓰는 게 줄어들긴 했다.
그러면 내가 해줄 게 더 많지
- 1루 주자 초구부터 뛰었습니다. 2루에 살아 들어갑니다.
- 투수가 주자를 견제하는데도 뛰었어요. 이러면 타이탄스 배터리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지난 시즌까지는 굳이 1루에서 뛰지 않았다. 차라리 뛸 듯 뛸 듯 깐족거리는 게 타자에게 더 도움이 되니까.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저 몸치가 배트에 공을 맞히기도 하고 뒤에 비슷한 공갈포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기에 한 명이라도 더 주자를 몰아넣고 압박을 넣어야 한다.
- 노경준.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갑니다.
- 최형식 선수. 쉽게 승부를 가져가지 못하고 있어요. 이러면 곤란합니다.
저… 경준이의 뻥카가 통한다. 볼 하나 들어올 때마다. 빈스윙을 하면서 투수에게 시위하자 투수가 감히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고 슬금슬금 도망 다닌다.
- 볼넷. 연속 볼넷. 불안한 시작을 보이는 최형식. 타이탄스 벤치에서 투수코치가 올라옵니다.
- 투수가 마운드에서 자신감을 잃어버리면 안 돼요. 경기 초반 한점 줘도 된다는 생각으로 붙어야죠. 끌려다니면 안 돼요.
투수코치 잘 올라왔다. 한 타석만 더 늦게 들어왔어도 다 무너지는 거였는데…. 아쉽네….
- 타석에 3번 타자 모리스 선수입니다.
- 랩터스 이번 시즌 새로 뽑은 외국인 선수죠. 타율은 2할 5푼이지만 벌써 홈런이 3개에요. 감독도 맞추는 타격을 하지 말고 때리는 타격을 하라고 주문했거든요. 주자 있는 상황에서 상대가 느끼는 공포심은 무시무시할 겁니다.
어디서 저런 선수를 데려왔는지. 타격 연습하는 걸 본 감독이 컨택은 답이 안 나오니 그냥 세게만 치라고 했더니 눈이 반짝이면서 모든 공을 풀스윙으로 잡아당기는 멍청이 2호. 영어라도 좀 하면 좀 더 편하게 말이라도 해줄 텐데 통역을 거쳐 스패니쉬로 얘기를 하다 보니 말이 잘 전달이 안 된다.
얘도 힘은 좋으니 발 땅에 붙이고 경준이처럼 치면 좀 더 나아질 것 같은데…. 말만 하면 헤이~브로~ 만 외치고 듣는 척도 안 한다….
이래저래 야구는 힘든 운동이야….
- 모리스 잡아당겼습니다. 중견수 뒤로~ 중견수 뒤로~ 중견수! 중견수 잡아냅니다! 중견수 최강훈의 슈퍼 캐치! 대단한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 2루 주자 3루 가지요.
- 2루 주자 김소전 3루! 3루 통과합니다!
- 타이탄스 김소형 선수! 김소형 안일했어요.
- 김소전 홈을 밟습니다. 선취점! 중견수 희생플라이에 2루에서 홈까지 파고드는 김소전의 빠른 발! 랩터스의 1위를 견인합니다.
치려면 잘 칠 것이지 꼭 저따위로 친다. 잠실에 가려서 그렇지 고척도 꽤나 홈런 안 나오는 구장. 넘어갈 듯 안 넘어갈 듯 애매하게 날아가던 타구가 펜스 앞으로 떨어진다.
그 순간 여전히 첫발은 이상하게 뗀 중견수가 말도 안 되는 주력으로 끝까지 따라와 타구를 낚아챈다.
공이 날아갈 때부터 기분이 사나웠어. 이럴 줄 알았지. 중견수가 뒤로 뛰는 게 눈에 들어올 때부터 2루로 돌아와 3루 태그업을 준비했다.
고개를 뒤로 돌리고 글러브에 공이 사라지는 순간 발을 뗀다. 어차피 외야 플라이 3루로 뛰면서 공이 중계되는 걸 지켜본다. 주자는 1, 2루. 2루 주자가 3루 가는 건 못 막는다고 생각했는지 중견수가 3루 쪽으로 치우쳐 있는 유격수 대신 1루와 2루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2루수에게 천천히 공을 던진다.
잠깐…. 이거 뭔가 이상한데
공을 잡는 것까지는 잘 잡은 관종… 저 관종이 2루수에게 큰 포물선을 그리며 공을 던진다. 그리고 1루 주자가 2루에 뛰는 걸 크게 신경 쓰지 않은 2루수가 어정쩡하게 서서 날아오는 공을 받는다. 그리고 그 2루수의 어깨는…. 소녀…. 그렇다면….
- 타이탄스 아쉬워요. 아쉽네요
- 최강훈 선수 잘 잡았는데 2루 주자 김소전이 잘 들어왔습니다.
- 잡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2루수 김소형 선수의 수비가 아쉬웠어요. 깊은 외야 플라이였거든요. 주자들 전부 태그업을 준비했단 말이에요. 그러면 2루에 커버를 들어가야지요. 거기 서 있었으면 안 돼요
- 타이탄스로서는 아쉬운 수비가 나왔습니다.
- 이런 디테일에서 약하면 우승하기 어렵거든요. 타이탄스 이번 시즌 전력이 좋은 데 집중해줘야 해요.
큰 댐도 작은 구멍 하나가 무너뜨리는 법이다. 안 그래도 멘탈이 무너져가던 투수가 2루 주자가 들어온 희생플라이로 완전히 무너졌다.
- 투수 바뀝니다.
- 지난 경기 좋았거든요. 아쉽네요. 다음 로테이션까지 준비 잘해서 나와야겠어요.
1회 초부터 터진 타선. 이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기는 게 최고다.
- 1차전 16:2 대승을 거둔 랩터스와 어제의 패배로 공동 2위에서 4위로 떨어진 타이탄스. 양 팀 다 승리를 위해 다시 만났습니다.
- 랩터스가 살짝 치고 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대로 놔둘 수는 없겠죠. 타이탄스도 이번 경기를 잡아내야 해요.
시즌 초반인데? 왜 빠졌지? 어제 나한테 당한 게 억울해서 술이라도 먹었나?
- 타이탄스 수비에 변화가 있습니다. 어제 2안타 경기를 펼쳤던 최강훈이 못 나왔습니다.
- 가벼운 컨디션 난조라고 하거든요. 큰 문제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흠…. 타이탄스와의 경기는 중견수에서 불어오는 악의 기운을 느끼면서 해야 제맛인데…. 그놈이 없으니…. 좀 심심하다….
- 경기 끝. 랩터스가 타이탄스를 4:0으로 셧아웃시키면서 위닝시리즈를 확보합니다.
- 점수가 안 나서 그랬지 타이탄스도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요. 중간에 김소전 선수와 노경준 선수의 좋은 수비가 흐름을 끊었어요
- 오늘의 수훈선수는 결승 쓰리런 홈런을 때린 성현범 선수입니다.
- 아니. 여태 김소전과 노경준 칭찬을 했는데….
공이 맞긴 하는데 뜨지 않는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공이 생각보다 안 뜬다. 이게 일시적인지 아니면 내가 메커니즘에 뭔가 변화가 생긴 건지 모르겠다.
전력팀에 물어봐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하면서 마지막에 손목이 좀 일찍 덮어지지만 문제 될 부분은 아니라고 하는데…. 훈련장에서 좀 쳐보면서 고민해봐야겠다.
점점…. 좁아진다. 우리 팀에 주축이 할아버지들이었을 때는 다들 경기 끝나고 집에 가거나 술 마시러 일찍 일찍 퇴근하시는 문화라 훈련장이 널널했었는데 라인업에 어린이들이 잔뜩 들어오고 난 뒤부터는 얘들이 퇴근을 안 한다.
“형 좀 나와요. 현범이 인터뷰하고 이제 왔잖아요. 비켜줘요”
“나 얼마 치지도 않았어.”
“형! 형은 오늘도 안타 두 개나 때렸잖아요. 현범이는 삼진만 세 개 먹었다고요”
“삼진 세 개 먹고 결승 쓰리런을 쳤는데?”
“형! 진짜 경기 집중 안 해요! 그거 빗맞은 게 넘어간 거잖아요! 요즘 현범이 공 안 맞아서 얼마나 힘들어하는데 사람이 왜 그렇게 이기적이에요!”
나쁜 놈들. 경준이 한 놈일 때는 어떻게 컨트롤이 됐는데 저놈들이 떼로 덤벼들기 시작하니까 대응이 안 된다. 한 놈씩 찢어놔야 하나. 야구 하기도 바쁜데 머리가 복잡하다.
주변의 쏟아지는 시선에 한 박스를 채 다 지치지도 못하고 배팅케이지에서 쫓겨났다. 땀을 닦으며 경준이에게 눈을 흘겼다.
“너 이따 배팅볼 좀 던져”
“네?”
“오늘 훈련량 못 채웠으니까 이따 해야지”
“자…. 잠깐. 전화…. 전화 좀…. 어~ 그래~ 오랜만이네. 어~”
저. 너 친구 없는 거 내가 뻔히 아는데 무슨 그런 연기를….
나를 뒤에 두고 밖으로 슬금슬금 도망치는 경준이를 추격한다. 한밤중에 야구장 복도를 서성이는 추격전. 한참을 도망가던 경준이가 멈추어 선다.
“형. 최강훈이 아프다는데요?”
“걔는 원래 항상 아파”
“어제 술 먹다 쓰러졌대요”
“뭐?”
“오늘 그래서 못 나왔다는데요. 내일은 나올 거 같대요”
“누가 그래?”
“타이탄스에 있는 친구요.”
뭐지? 다른 건 몰라도 몸 상태 하나는 은퇴할 때까지 멀쩡했던 놈 아니었어?
* * *
“최강훈이 쓰러졌어.”
“확인된 거예요?”
“병원 기록까지 다 뒤진 거야. 간질에 따른 급성 심장마비”
“미친X. 그럴 줄 알았어.”
응원팀의 성적이 좋아서 그런가? 부쩍 자주 만나는 커플. 평소엔 간질간질한 이야기만 하던 커플이 오늘은 진지한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컨디션 난조라고 버티다가 안 되면 유전에 의한 간질이라고 발표할 거야.”
“간질은 무슨. 약을 적당히 해야지”
“합법이시라잖아. 합법. 약하는 거 합법이라잖아.”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를 맞은편 남자에게 쏟아내는 여자의 눈빛. 그 눈을 바라보던 남자가 슬며시 시선을 떨군다.
“그 지경인데도 타이탄스는 최강훈이를 국가대표에 보내겠다는 거예요?”
“60일만 채우면 1년 당겨서 FA 신청이 되잖아. 팔아야지”
“이놈이나 저놈이나 죄다 XXX들만 넘쳐나네”
말을 자근자근 씹어서 내뱉은 여자. 남자의 떨어지는 시선이 올라올 줄 모른다.
“국대가 아니라 당장 이번 시즌은 뛸 수 있고요?”
“내가 의사가 아니니까 뭐라고 못하지만, 지금처럼 약 먹어가면서 야구하면 조만간 향불 피우지 않겠어?”
“아예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자 그래요?”
남자의 막말에 여자가 쏴붙인다.
“그래서 고민이야. 남의 팀 선수 딱히 신경 안 쓰고 싶은데 경기하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야구판 망가질까 봐. 난 그게 걱정이네”
“지금 그게 제일 걱정이지? 사람 죽는 건 상관없고?”
“지가 죽겠다고 저러는 걸 누가 말려. 방법이 없지”
남자를 경멸스럽게 바라보는 여자의 눈. 여전히 왜 갈굼을 당하는지 모르는 남자는 괜히 이 분위기가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도 우리 팀에 있던 선순데. 방법 좀 찾아봐요. 산목숨 죽일 순 없잖아.”
“어떻게!”
“나도 모르겠으니까 찾아보라고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