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38화 (138/204)

138화. 원정 개막전

시즌이 가까워져 올수록 선수들의 몸 상태가 좋아진다. 아무래도 어린 선수들이 많아서 그런가? 하루가 다르게 몸이 좋아지는 게 보인다. 문제는…. 선수들의 긴장감도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

- 공 빠집니다! 1루수 성현범 선수 놓쳤습니다.

- 저건 잡아야지요. 이건 놓칠 수가 없는 공이였는데 급했어요.

시즌 개막전 시범경기. 시범경기임에도 관중이 꽉꽉 들어찬 경기장에 이번 시즌 주전으로 낙점받은 3년 차 1루수가 가슴으로 오는 공을 뒤로 흘린다.

- 걸렸어요. 1루에서 아웃.

- 양규환 선수. 욕심이 지나쳤지요. 열심히 하려고 하는 건 좋은데 무모한 건 아니거든요. 아무리 시범경기가 실험하는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양규환 선수는 아니에요. 양규환 선수는 보여줘야지요.

갑갑하다. 도루할 타이밍도 아니고 사인도 안 나갔는데 자기 혼자 리드를 길게 잡다 혼자 죽는다…. 불안하네….

- 볼넷…. 볼넷으로 밀어내기 실점을 허용하는 랩터스.

- 박한정 선수 밸런스가 안 맞는 모습이에요. 가운데 던지고 싶은데도 안 들어가는 것 같거든요. 2군이라도 가서 조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타자들이야 어린 선수들이 많다고 쳐도 투수들은 중간급이 튼튼히 있는데 같이 무너진다. 아무래도 타자들이 정신 못 차리니 같이 영향을 받는 것 같은데…. 불안하다.

- 2029 KBO 프로야구 미디어데이를 시작하겠습니다.

봄터스가 시범경기에 무너지다니…. 이럴 수가 없다. 시즌 꼴찌를 할 때도 시범경기에서는 절대자였는데 딸랑 1승만 기록하며 꼴찌로 떨어졌다.

꼴찌로 떨어졌다는 것만으로 PTSD가 도진 랩터스 팬들이 잠실에 집회신고를 하는 가운데 시즌 전 미디어데이가 열렸다.

최근 가장 앞자리에 자리하던 랩터스가 중심에서 벗어나 사이드에 자리를 잡고 얌전히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 2020년대 최고의 팀 랩터스를 만나볼 시간입니다. 감독님 지난 시즌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올해는 다를까요?

질문하는 사회자를 보고 빙긋이 웃는 감독.

“올해는 다릅니다.”

- 그럼 올해의 목표를 여쭤봐도 될까요?

“이번 시즌 랩터스의 목표는 우승입니다.”

몇 년째 우승만 부르짖는 랩터스의 레퍼토리에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도 그러려니 한다.

- 이번 시즌 전문가들의 평가는 냉정합니다. 전문가들이 모르는 비밀무기가 있을까요?

사회자가 푹 찔러 들어오는 공격에 전혀 아파하지 않는 감독

“비밀무기는 시범경기 때 다 보여드렸습니다.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충분히 강합니다.”

말 같지도 않은 감독의 말에 여기저기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감독도 웃으며 말을 덧붙인다.

“다들 못 믿으시는 것 같은데.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랩터스 팬들도 안 믿는 감독의 호언장담. 객관적으로 물음표 가득한 작년보다 떨어지는 전력에 우승은 기대도 안하고 5강 싸움만 하라는 기도 소리가 하늘에 닿는다.

- 야구팬 여러분 오래 기다렸습니다. 긴 겨울잠을 깨고 2029 KBO 프로야구가 개막합니다.

- 올해 각 팀 전력보강이 충실히 됐죠. 이번 시즌은 프로야구 10개 팀 모두가 우승 후보예요.

개막전…. 인천…. 2연전 경기하고 월요일 하루 쉬고 광주…. 개막식이라…. 홈에서 가득 찬 관중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승리를 쭉쭉 뽑아내 줘야 맛인데…. 이게…. 무슨….

- 드래곤스와 랩터스, 랩터스와 드래곤스가 인천에서 만났습니다.

- 랩터스 오랜만에 원정 개막전이죠.

- 지난 시즌 소닉스가 3등을 하면서 랩터스가 원정 개막을 맞게 되었습니다.

개막이고 뭐고…. 상황이 쉽지 않다. 지난 시즌 랩터스의 할아버지들 딱히 한 것도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고 욕먹고 있었는데 막상 죄다 엔트리에서 제외되자 라인업이 휑한 게 저게 뭔가 싶다.

- 개막전 랩터스의 라인업입니다. 1번 유격수 김소전, 2번 중견수 노경준, 3번 우익수 모리스….

- 지난 시즌과 보면 굉장히 많이 바꿨지요

그냥 싹 다 바꿨다. 3번부터 7번까지는 싹 다 바꿨다고 봐야 한다. 3번 치던 주장을 7번으로 내리고 5번, 6번에 1군에서 특별히 보여준 거 없는 어린이들을 박아넣었다.

3번 치기엔 너무 5툴 플레이어에 가까운 주장을 밑으로 내린 거야 그러려니 하지만 5번, 6번에 어린이들을 넣다니…. 감독이 이길 생각이 없어….

그렇다면…. 역시…. 내가 해줘야겠군…. 올해도 쉽지 않겠어….

- 2029 프로야구 하워드 선수의 투구로 시작됩니다.

여전히 건재한 드래곤스의 1선발. 이제 한국 생활도 꽤 돼서 긴장감 하나 없이 마운드에서 나를 노려본다.

표정은 너무 편안해 보이지만 난 네가 초조해하는 게 느껴진다. 넌 분명 팔꿈치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바닥에서 헤매던 팀에서 4년을 구른 데다 작년 막판 스퍼트하면서 갈려 나간 게 아무 일 없을 수가 없지. 그리고 내 기억에 너…. 이쯤 해서 퍼졌어….

- 초구 흘려보내는 김소전. 차분히 지켜봅니다.

- 작년 하반기 김소전이 좋아진 게 저 부분이거든요. 저 몸쪽 높이 들어가는공. 저공을 때리지 않고 있어요.

- 가만 놔두면 스트라이크입니다.

- 투스트라이크에 몰릴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기다리면 실투를 노릴 수도 있고, 실투가 안 들어와도 투스트라이크에서 커트가 가능해졌거든요. 이제 약점이 없어요.

나를 상대하는 투수들의 레퍼토리가 점점 더 단순해진다. 제구에 좀 자신이 있으면 몸쪽 높게 꽉 찬 스트라이크, 자신 없으면 바깥쪽 최대한 멀리 도망가는 흘러나가는 공.

그래 봐야 KBO 수준에 꾸준히 제구되는 공을 던질 투수는 거의 없다. 공 한두 개 들어와도 기다리면 결국 몰리는 공이 나오기 나름이다.

그리고 또 하나….

- 볼. 볼입니다.

- 이번엔 높았죠.

- 화면을 보면 방금 전 공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보입니다만 판정은 볼입니다.

-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꺾여 들어왔다고 봤나요? 조금 의아한 판정이긴 하네요.

우리 심판님들이 일관적인 스트라이크 존을 유지할 수가 없지. 이렇게 꽉 찬 공들은 확률 반반으로 스트라이크와 볼을 선언한다. 그러면…. 저렇게….

- 볼. 위험했어요. 빈볼이 나올 뻔했습니다.

- 김소전 선수가 잘 피했어요. 하워드 시작부터 힘이 많이 들어가네요.

위험한 공을 던지고 자기가 더 깜짝 놀라는 투수. 딱히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지는 않지만 네 눈에 당황함이 보인다. 이해한다. 너도 이러고 싶어서 그러겠냐? 존이 어딘지 확신이 안 서니까 던지는 순간까지 흔들리는 거지.

- 2볼 1스트라이크. 직구로 타자를 상대하고 있는 하워드입니다.

- 김소전선수를 상대하는 배터리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어요. 김소전선수가 직구에 강하지만 떨어지는 변화구에는 말도 안 되게 강하거든요. 횡으로 휘는 슬라이더가 아니면 오히려 직구가 나을 수 있어요.

직구만 세 개. 직구 직구 하다가 스플리터로 배트를 끌어내는 하워드의 투구 패턴. 뻔하다. 결국 언젠가 스플리터를 던져야 할 텐데 그것만 확인하면 된다.

- 김소전 타격! 우중간을 가릅니다! 시즌 첫 타석에서 2루타를 신고하는 김소전! 이번 시즌에도 무서워해야 할 타자임을 결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손가락 벌렸죠? 스플리터에요. 투수가 잘 던졌어요. 잘 던졌는데 타자가 기가 막히게 받아치네요. 확실해졌어요. 김소전에게 떨어지는 공은 던지면 안 돼요.

사인을 교환한 투수가 글러브에서 공을 돌리면서 투구자세에 들어간다. 마지막까지 바쁘게 노는 손가락. 광고판을 바라보다 슬쩍 본 투수의 팔목이 꺾이는 게 보인다.

그럼 그렇지. 세 살 버릇은 절대 버릴 수가 없는 법이다.

직구와 비슷한 릴리스 포인트에서 비슷한 투구폼으로 던져진 공. 너무 기다렸던 공이라 살짝 빗맞았다.

이게 문제다. 너무 좋으면…. 꼭 이런…. 삽질을….

그래도 홈런 공장 문학의 힘을 믿고 1루로 뛰면서 타구를 바라보는데 탄도가 너무 낮다. 젠장… 알고 쳤는데 문학에서도 못 넘기다니…. 아직도 부족하다.

- 첫 타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에 보내놓은 랩터스. 다음 타자 2번 노경준입니다.

- 지난 시즌에 조금 부진했던 노경준입니다만 2년 차였던걸 감안하고 홈런 개수와 OPS를 보면 알려진 것처럼 부진했던 건 아니거든요. 거기다 올림픽에서 다친 것까지 감안하면 충분히 자기 역할은 했다고 보여요

- 팀에서 선수를 얼마나 기대하는지는 연봉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이번 시즌 노경준 선수의 연봉이 1억8천만 원입니다.

- 후빈기를 통으로 쉬고도 1억8천을 줄 정도로 기대가 되는 거예요. 전반기 그렇게 못 쳤다고 해도 전반기에만 20홈런이에요. 줄 만해요.

2루 베이스 위에서 홀로 자책을 하고 있는데 타석에 멍청이가 들어오는 게 보인다. 라타코치하고 연습할 땐 그렇게 발전이 없던 멍청이가 스프링캠프에서 코치님 이론에 정반대로 훈련하다 보니…. 눈곱만큼 달라진 게 보인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어쨌든 힘만 센 몸치가 눈곱만큼 발전이 있으니…. 뭐…. 좋아해야지.

- 파울. 뒤로 날아갑니다.

- 타이밍이 조금 늦었어요. 노경준 선수 타격폼이 좀 달라진 것 같은데요

- 그렇습니까? 지난 시즌이랑 어떤 부분이 달라졌을까요?

- 노경준 선수의 약점이라면 어깨가 빨리 열리면서 시선이 흔들리면서 컨택에 문제가 발생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라요. 테이크백이 없이 무게중심을 뒤에 놓고 배트가 나오거든요.

멍청한 놈. 그렇게 팔부터 빼는 연습을 했는데 여전히 팔이 너무 늦게 나온다. 저렇게 뒤에서 치는데도 타이밍이 늦으면 더 빠른 공은 무슨 수로 치려고…. 올해도 나랑 매일 특타 확정이다.

- 와! 노경준의 타구!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담장을 넘어 야구장을 넘어가는 선제 투런 홈런! 일 년을 쉰 랩터스가 다시 우승을 노리고 돌아왔습니다.

저…. 무식하게 힘만 센 놈. 살짝 담장만 넘겨도 홈런이고 장외를 쳐도 똑같은 홈런인데…. 이게 무슨…. 시즌 초반이라 힘이 남아서 그런가. 저놈 힘이 남아도는 거 같으니 빡세게 굴려야겠다.

* * *

“밤길 조심해라. 나하고 현민이가 너 노리고 있어”

“요즘 길거리에 안심벨도 많아서 괜찮아요”

서로 바쁜 시간을 보내느라 오랜만에 만난 커플이 오래된 단골 카페에서 애틋한 눈빛을 보내며 만났다.

서로 할 말이 너무나도 많은 커플. 누구랄 것도 없이 속사포 랩을 쏟아낸다.

“팀 구성을 그따위로 하고도 마음이 놓여? 8, 9번도 아니고 5, 6번이 쉬어가는 타선이 되고 있는데 마음이 놓이냐!”

“이겼잖아”

“이기면 끝이냐!”

“첫 경기 개막전 이겼으면 됐지. 시즌 길어요. 야알못 아저씨”

남자가 또다시 랩을 시작하려고 하자 여자가 끊어버린다.

“겨울에 프리미어12 있는데 로비 좀 해줘요”

“뭐? 그걸 무슨 로비를 해”

“기인환 감독님이 관둔다잖아요. 좀 말려봐요”

“국정감사까지 끌려가서 욕먹었는데 하고 싶겠어?”

“그렇다고 다른 사람 맡길 사람도 없잖아요.”

“내버려 둬. KBO에서 알아서 잘하겠지. 자기들 밥줄인데 알아서 해야지. 팀에서 자꾸 흔드는 것도 안 좋아.”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아본 남자가 짐짓 위엄있는 목소리로 여자에게 말을 하지만 들은 척도 안 하는 여자

“다른 감독 뽑히면 선수들 갈려 나가요”

“기 감독님도 노경준 갈았어”

“그게 왜 감독 탓이야. 일본 XXX들이 그런 거지”

오랜만에 여자의 육두문자를 들은 남자가 급 작아진다. 자기한테 한 것도 아닌데 쪼그라든 간덩이…. 조용히 커피를 홀짝인다.

“어쨌든 기 감독님 무조건 계약 기간 채우라고 해요”

“아니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하냐고. 시즌 개막보다 그게 더 중요하냐?”

“중요하니까 그러지!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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