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37화 (137/204)
  • 137화. 준비

    욕만 먹었다.

    나쁜 놈들…. 진짜 지들은 다 알고 있었어…. 본인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커플 확정…. 내 번호 모르지도 않는데…. 이런 건 좀 같이 공유하고 해야지…. 나쁜 XX들… 니들… 내 뒤끝에 죽어봐라!

    나를 비웃으면서 떠난 후배님들… 다 떠나고 옆에는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니라고 열변을 토하는 연애 초보 멍청이 한 명만 남아있다.

    “왜 나만 모르냐?”

    “형. 진짜 아니라니까요. 아직 사귀는 거 아니고 썸만 타는 그런 거….”

    됐다. 이 멍청이 얘기 들을 게 뭐가 있다고….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

    “진도라니….”

    “왜 이래. 내가 딱 정리해 줄게. 우리 거꾸로 얘기해보자”

    “형.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니까 손잡았어? 안 잡았어? 뽀뽀했어? 안 했어?”

    뽀뽀 얘기에 얼굴이 빨개지는 경준이….

    “형…. 애도 아니고…. 그런 건 고등학교 때….”

    이XX. 어린 게 벌써부터 이래가지고. 커서 뭐가 되려고!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거꾸로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니까. 개XX야!”

    “형. 왜 욕을 해요”

    미안…. 나도 모르게 진심이…. 형이 절대 뽀뽀를 못 해봐서는 아니고…. 아 또 열받네….

    “야 너 공 다시 때려봐”

    “갑자기?”

    “연습 중이잖아. 연습 중. 팀이 우승도 못 하는데 연애를 하는 게 말이 되냐! 엉! 공이나 쳐봐. 내가 처음부터 봐줄게”

    절대 다른 뜻은 없다. 다음 시즌엔 경준이가 좀 쳐줘야 팀 성적이 올라가기에 봐주는 것이다.

    “아니지. 몸이 먼저 가고 머리가 따라 나오면 흔들리지”

    “아니지. 머리가 먼저 나오고 몸이 나오면 안 되지”

    “아니지. 무릎을 먼저 내미는 건 어떻게 하는 거냐?”

    볼수록 신기하다. 몸이 저렇게 둔한데 선수를 하는 것도 신기하고 저 실력으로 연봉을 받는 것도 신기하다.

    그러고 보니…. 나 연봉협상은 어떻게 돼가는 거지? 우리 연봉협상 안 되면 스프링캠프 합류도 안 시키는 게 팀 방침 아니었나?

    “경준아 너 연봉 계약했냐?”

    “아니요? 형은 했어요?”

    “아니”

    “새현누나가 형이랑 저랑 한 번에 계약한다고 했어요.”

    음…. 그렇군…. 그런데 왜 너랑 한 번에 계약이야?

    “우리 연봉계약 못 하면 스프링캠프 못 오는 거 아니냐?”

    “아. 그건 맞는데 형이랑 저랑 세트로 묶어서 총액은 합의했다던데요.”

    뭐. 뭐냐? 이 신박한 소리는?

    “그런 계약도 있냐?”

    “둘이 같은 에이전트니까 그랬다고 해요”

    뭐. 그렇다니 그렇겠지만…. 에이전트형 정상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일도 이딴 식이구나…. 수영이한테는 미안해도 에이전트를 바꿔야 하나?

    “그래서 연봉이 얼만데?”

    “둘이 합쳐서 8억3천이요”

    얼마? 8억3천? 저 멍청이는 올해 한 거라고는 딸랑 20홈런 친 거 말고는 없으니 1억도 아깝고…. 내 연봉이 7억3천이 넘는다고? 랩터스가 돈이 썩어난다고 해도…. 7억3천?

    잠깐…. 작년에 받는 연봉으로는 아파트를 샀으니까…. 이번엔 뭘 사야 할지? 엄마 나가는 식당을 사버려야 하나?

    혼자만의 세상에서 건물주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데 산통을 깨는 소리가 들려온다.

    “형. 새현누나가 살짝 얘기해줬는데요. 제 연봉이 1억5천에서 2억 사이에서 결정될 거 같다고 하거든요. 그러면 제가 2억이니까 형이 6억? 우와 형 진짜 고액연봉자 같아요”

    뭐? 누가 2억? 야구를 그따위로 하는데 2억을 줄 거 같으면 나는 10억 선수지…. 무슨 그런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그래 계산을 거꾸로 해보니 내가 8억에 니가 3천일 거 같으니…. 내가 고액연봉자가 맞는 것 같다. 3천도 아깝긴 하지만 최저연봉 기준이 있으니 그건 받아야지”

    “형. 재미있었어요”

    역시 재미가 있었는지 아무 말 않고 배팅 머신 앞에 서는 경준이. 자세를 잡고 중심이동…. 안되네….

    “경준아. 안 되냐?”

    “아무리 봐도 형이 이상한 거예요.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몸이 움직이는데 머리를 안 움직이고 중심이동을 무슨 수로 해요?”

    이 둔한 놈…. 그러니 넌 연봉 3천짜리인 것이다.

    “안 되겠다. 타격도 거꾸로 해보자. 너 배운 거 딱 반대로만 해봐”

    “반대요?”

    “어. 중심이동 하지 말고 다리 땅에 박고 오른 다리에 체중 두고 때려봐”

    계속해도 안 되네 반대로 해보면 뭔가 느끼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 시켜봤더니….

    ‘쾅!’

    뭐…. 뭐냐….

    “형! 이거에요! 지금 뭔가 느낌이 왔어요! 이거에요. 땅에 다리 박고 팔을 먼저 뺐더니 느낌이 와요! 이거였네”

    그게 무슨 헛소리야. 팔이 먼저 돌면 안 된다고…. 이…. 아니다. 말을 말자…. 저놈 느낌이 왔다는데 이런 날이라도 있어야지…. 됐다.

    어째 이번 스프링캠프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 * *

    “6억5천, 1억8천”

    “…”

    “찍어”

    “…”

    “열 센다.”

    “7억에 2억”

    “총액은 합의가 끝난 걸로 알고 있는데? 여태 실무자들이 합의한 건 안중에 없지?”

    “내가 외국인 투수 잘 골라다 줬잖아. 7천만 더 써”

    “그랬으니까 지금 나랑 마주 보고 있을 수 있는 거야. 아니었으면 친구랑 같이 골방에 가뒀어”

    선수 파는 행상이 오랜 단골인 랩터스에 찾아와 몸값 흥정을 시작했다. 이미 오기 전에 밑에 직원들끼리 얼굴 붉혀가며 큰 틀에서 합의는 마친 사항이지만, 사장의 체면이 있지, 조금이라도 더 받아보려고 신경전을 벌인다.

    “열. 아홉. 여덟”

    “자…. 잠깐….”

    “일곱. 여섯”

    흥정을 위해 잔기술을 부려보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를 위해선 큰 기술을 걸어야 한다.

    “한자리! 한자리 더 채워줄게”

    “다섯. 넷”

    “랩터스 빈 외국인 선수 슬롯! 내가 채워준다고!”

    “가장 문제였던 타자는 좌타 모리스로 바꿨고, 투수는 1선발은 피츠버그 40인 그레이슨. 2선발은 신시내티 40인 브래들리를 데려왔는데? 우리 빈자리가 어디?”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이 있음에도 어디서 저런 선수들을 데려왔는지 말문을 막히게 만드는 단장. 그러고 보니…. 저들 중 둘은 자기가 소개해준 것이라는 깨닫고는 순간 자책을 한다.

    “셋. 둘”

    “빈자리! 빈자리! 육성형 외국인!”

    “뭐? 육성형 외국인?”

    KBO에 도입된 육성형 외국인. 평소엔 2군에서만 뛰어야 하는 외국인 선수를 투수 1명, 타자 1명 데려와서 1군 외국인 선수가 망했을 때 대체를 하거나 아플 때 대신 내보낼 수 있는 참신한 제도인데….

    “필요 없어”

    “왜!”

    “내가 왜 죽 쒀서 개 주는 짓을 해야 하지?”

    “뭐?”

    “연봉 30만 불짜리 외국인 선수 뻔하지 않아? 우리가 버티기 하는 팀도 아니고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인데 그 정도 선수를 쓸 일이 없어”

    손님의 단호한 말에 잠시 숨이 턱 하고 막혀왔으나 장사꾼이라면 이 정도 공격에 물러나면 안 된다.

    “지난 시즌 타자 노아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감독이 엔트리 짤 때마다 저놈을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는 얘기 못 들었어?”

    “30만 수준에 노아보다 괜찮은 선수는 없어”

    여전히 단호한 손님. 틀린 말도 아니니 마땅히 반박할 핑계가 생각나지 않는다.

    “하나”

    “나한테 있다. 30만에 모리스보다 괜찮은 선수”

    ‘퍽’

    나이가 훨씬 더 많은데 반말도 모자라 다이어리를 집어 던지는 랩터스 단장. 그런데도 선수를 팔아야 하는 에이전트가 코끝이 찡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브리핑을 시작한다.

    “들어봐! 그러니까 말이지….”

    “…”

    “어때? 괜찮지?”

    팔짱을 끼고 판매자의 브리핑을 조용히 들은 단장이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다 뜨더니 대뜸 욕을 한다.

    “XXXX! 그러면 처음부터 모리스가 아니라 얘를 데려왔어야지! 좀 맞자!”

    “아! 아파! 좋지? 괜찮지?”

    “좋긴 뭐가 좋아! 사기당했는데!”

    “좋으면서. 그럼 9억에 계약하는 거다?”

    “9억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모리스 사기 쳤다고 고소는 안 할 테니까 얘 데려와”

    “뭐야? 이거 양아치네. 몰라! 배 째! 나 못해”

    “못해? 그럼 더 맞던가!”

    * * *

    선수단이 전체적으로 젊어져서 그런지 스프링캠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랩터스 황금기를 이끌었던 고액 FA 들이 빠지면서 S급 또는 A급으로 불릴만한 야수들이 싹 사라졌다.

    그 결과 선배를 보고 배워야 하는 어린 후배들이 롤모델로 삼을만한 선배가 보이지 않자 그중 가장 잘할 것으로 보이는 선수에게 몰려든다.

    “형. 형은 왜 손이 안 까져요?”

    “형. 타이밍 잡는 비법이 있나요?”

    “형…. 글러브에서 공이 안 빠지는데요….”

    나 신인 때는 선배들 그림자도 못 쳐다봤는데 저것들은 나를 뭐로 생각하고….

    “경준아! 정신 차려! 내가 테이핑할 때 끝에 1밀리만 겹치라고 몇 번 얘기하냐!”

    “형…. 그냥 배팅을 한 상자 더 치고 말지…. 이건 못하겠어요….”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팀에 타격코치, 수비 코치, 심지어 장비 담당 매니저도 있는데…. 이것들이 나만 따라다닌다….

    “시끄러! 니가 애들 다 끌고 왔잖아. 책임져!”

    “형…. 그냥 훈련하러 가면 안 될까요? 우리도 여기 훈련하러 왔는데 왜…. 우리만….”

    “XXXX! 너랑 나는 수비 훈련도 필요 없다잖아. 너 때문이야! 다음 시즌 나 에러 하나 할 때마다 치킨 한 마리씩 사”

    “형! 저 연봉이 얼만데 치킨을 사요?”

    “이 XXX! 너 1억하고도 8천이다! 사와!”

    “형은 6억5천….”

    “이게 아직도 입만 살아서!”

    훈련도 못 하고 후배들 배트에 테이핑하던 스트레스를 옆에 있는 멍청이 때려가면서 풀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나타난다.

    “여기 있었네. 소전아! 경준아! 인사해! 새로 온 외국인 타자다”

    뭐? 외국인 타자? 덩치 산만한 외국인 타자 아침에도 나랑 같이 밥 먹었는데

    “형. 여기는 통역인 것 같고 선수는 어디 있어요?”

    “여기”

    “네? 여기?”

    “여기. 인사해 루카스라고 이번에 육성형 외국인 선수로 입단했다.”

    역시. 이놈의 구단…. 정상적으로 구단을 운영할 리가 없지…. 어디서…. 이런걸….

    키는 170도 안 돼 보이는데 삐쩍 말라서 배트나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야구선수라고? 말 타는 기수가 아니고?

    그래…. 육성선수니까.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되겠지. 그러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 * *

    “올해는 늦게 오셨습니다.”

    “바빠서요.”

    “겨울엔 쉬세요. 시즌 중엔 바쁘실 텐데요”

    “쉬기는요. 구단 꼴이 이 모양인데 어딜 쉬나요. 올해는 어때요?”

    스프링캠프가 끝날 무렵 단장이 훈련장을 확인하러 방문했다.

    “올해도 FA 한 명 안 사주신 단장이 물어보실 말씀은 아니신데요?”

    “그건…. 죄송합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야구를 씹어먹던 랩터스가 주춤하자 다른 팀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 결과 미친 듯한 FA오버페이. 어지간하면 지르려던 랩터스가 차라리 트레이드하고 말겠다며 시장에서 철수를 해버렸다.

    결과적으로 깡통을 차고 돌아온 스토브리그. 대신 외국인 선수 뽑는 데 집중을 해서 최대한 전력을 보강하고자 했지만…. 외국인 선수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법. 단장의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다.

    “해봐야 알겠지요. 외국인 선수도 전부 바꿨고, 주전 라인업도 많이 바꿨습니다. 이대로만 하면 우승전력인데 ‘만약’이 너무 많아요.”

    “‘만약’이 전부 터지면 우승 못 할 팀이 어딨겠어요. 그러니까 감독님 그 만약 터트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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