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실패
미친 게 틀림없다. 주자 놓고, 와인드업이라니. 와인드업을 하면 견제를 못 하는데 와인드업을 한다고? 그러면 2루 주자가 3루로 뛰면…. 그럴 일이…. 없구나….
- 그러고 보니 그렇습니다. 브릿지선수 와인드업으로 공을 뿌리고 있습니다.
- 일반적으로 투수들이 투구자세를 나눠서 가져가거든요. 주자가 없을 때는 와인드업, 주자가 있을 때는 퀵모션
- 지금은 주자가 1루와 2루에 있는 상황입니다.
- 이럴 때는 퀵모션을 해서 슬라이드 스텝으로 던지는 게 정상적입니다만 지금 브릿지선수 와인드업을 해서 던지고 있어요
- 특이한 상황이네요
전문 계투들이라면 주자가 있건 없건 퀵모션으로만 던지는 투수들도 있지만, 선발투수들이라면 투구자세를 두 개로 나눠 던지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퀵모션으로 해서 슬라이드 스텝을 밟는 것보다 자기에게 가장 편안한 자세에서 자연스럽게 던질 때 공의 구위나 제구가 더 안정되기 때문에 주자가 없을 때는 그렇게들 던진다.
그런데. 저놈은 지금 주자를 등 뒤에 놓고 와인드업하고 있다.
- 투수가 퀵모션을 취하는 이유가 주자를 견제하기 위함이거든요. 와인드업을 하게 되면 투구폼도 커지고 와인드업 시작부터 투구자세에 들어갔다고 봐지기 때문에 주자에게 견제를 할 수도 없어요.
- 그럼 2루 주자가 뛰면 되겠군요
- 그렇습니다. 2루 주자가 뛰면 되는데 주자가 김정하네요
랩터스의 주전 포수 김정하. 신인 때부터 실전에서 굴러가며 배운 블로킹과 볼 배합 능력으로 포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김정하. 공격에서는 간간이 나오는 뜬금포 외에는 딱히 기대가 안 되지만 경험치 축적만으로는 레벌업을 이룬 전설의 욕받이 무녀
그리고 특이사항이 하나 더 있다면…. 리그 대표…. 똥차….
- 2구. 헛스윙. 원바운드로 떨어지는 커브였습니다.
- 커브죠. 원바운드였는데 포수가 잘 블로킹했어요.
- 빠질뻔했습니다.
- 이거 문제가 좀 있네요. 소닉스 2루 주자가 못 뛴다는 확신이 있어요
선수마다 케바케지만 주자가 있을 때 공격하기 쉬워져야 하는 건 사실이다. 아무래도 수비수가 주자를 신경 쓰면서 자리도 잡아야 하고 공이 뒤로 빠질까 봐 원바운드성 공도 잘 못 던지고 하기 때문에 타자에게 유리한 상황이 벌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저놈들은…. 그런 상황을 전부 배제해버린다. 우리 팀 2루 주자가 절대 3루를 노릴 수 없기 때문에….
- 빗맞은 타구 1루수 파울라인 밖에서 잡아냅니다. 원아웃. 브릿지선수 자신이 만든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시작합니다.
변태도 아니고 볼넷을 주자를 내보내고 타자를 잡는다고? 이게 말이 되는 짓이야? 이런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 삼진! 4번 타자 노아를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하는 브릿지 선수입니다.
- 랩터스 이거 대응할 수 있을까요? 김소전이 출루하면서 내야를 흔들어 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김소전이 선두타자로 출루할 수 있는 건 1회 초 한 번뿐이에요
- 그렇습니다. 다른 공격 기회에서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습니다.
- 9번 타자를 2루까지 보내서 김소전의 주루플레이를 막는다? 이게 말이 안 되는 작전이긴 한데 지금 결과를 보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도 않고….
- 랩터스 고민스럽겠습니다.
- 야구는 결과로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좋다 안 좋다 말하긴 어렵지만, 지금은 성공적이에요. 대응법을 찾아야 합니다.
미치겠다. 무사 주자 1, 2루에서 무득점을 끝났다. 그것도 상대한테 농락당하고 끝났다. 무슨 이런 일이 있나.
- 2028 KBO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2차전. 소닉스가 이대로 승기를 굳히느냐 랩터스의 반격이 일어나느냐 절대 질 수 없는 승부가 잠시 후 시작됩니다.
1차전 졌다고 또다시 확 뜯어고친 라인업. 이번엔 할아버지들이 전진배지 되어 들어왔다. 최소한 어제보다는 낫겠지
- 김소전 첫 타석 안타를 치고 나갑니다. 어제와는 다른 시작. 랩터스가 더 높은 곳을 바라보려 합니다.
- 잘 쳐요. 김소전이 올림픽을 다녀와서부터 뭔가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이거든요
- 그렇습니다. 김소전선수의 후반기 성적이 전반기보다 매우 좋습니다.
- 김소전선수의 전반기도 좋았어요. 전반기 성적이 3할 3푼에 홈런 25개를 치고 있었거든요
- 후반기 성적은 4할 5푼입니다.
- 저 정도면 나올 때마다 안타를 친다고 느껴질 거예요
안타를 치긴 했는데…. 왜 기분이 나쁘지? 이거 하나 치라고 높은 쪽에 슬슬 던져준 거 같은데? 기분이 안 좋다.
- 견제가 연속으로 세 개가 들어갑니다.
- 뛰지 말라는 거죠. 투수와 주자 신경전이 대단하네요
견제구가 들어는 오는데…. 잡겠다는 건 아니고…. 오늘 왜 자꾸 찜찜하게 이러는 거야….
- 주자 스타트. 포수 던지지 않습니다. 1루 주자 김소전 도루 성공
- 투구폼을 뺏겼어요. 안 던진 게 잘한 거죠
투수…. 날 잡을 생각이 없는데. 자세만 퀵모션이지 그냥 던지는데? 뭐야.
- 우익수 잡았습니다. 2루 주자 3루로~ 3루에 들어갑니다.
- 야구 쉽게 하죠. 안타 하나치고 도루. 외야플라이에 3루까지. 랩터스 야구 잘하네요
상황은 납득이 되는데…. 과정이 뭔가 이상하다. 자꾸 기분이 더러운 게…. 뭔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다….
- 삼진! 아웃카운트를 하나 더 늘리는 톰슨. 주자 3루에 묶여있습니다.
이거 아니다. 아니다 싶다. 이거 확실히 아니다.
- 높이 떴습니다. 좌익수 뒤로~ 좌익수 뒤로~ 좌익수 워닝트렉에서 잡아냅니다.
- 조금 모자랐어요. 조영근 선수 잘 쳤는데 조금 아쉬웠네요
아…. 조영근 선배 며칠 사이에 또 낡았어…. 하루가 다르게 낡아가는 조영근 선배…. 와일드카드 때만 했어도 넘어가는 거였는데….
그건 그거고…. 1회에 점수 못난 거 실화냐? 무사에 2루까지 갔는데…. 점수가 안 났어….
- 오늘은 투수전입니다. 6회에 터진 안경문의 홈런으로 소닉스가 한점 앞서가는 가운데 7회 초 랩터스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안되는 날은 방법이 없다. 최선영 선배가 잘던지다 실투하나 했는데 그게 넘어갔어… 그래도 1점 홈런이니까 어떻게든 쫓아가 보자.
- 9번 타자 김정하.
- 어제 같은 장면이 있었어요.
- 어제는 김정하가 볼넷으로 나갔습니다. 이번에는 어떨지…. 고의사구 나왔습니다. 고의사구
- 한점 싸움이거든요. 한점 싸움에서도 주자를 채우는 선택이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슬슬 짜증이 난다. 야구를 뭐로 보고 저딴 짓을….
- 7회 초 무사 주자 1루. 타석에는 김소전.
- 볼넷 주나요?
- 연속타자 고의사구! 김소전도 1루로 걸어갑니다.
- 이거 무모해요. 무모해 보이는데 계속 사용합니다.
훗. 너희들만 머리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 감독도 머리가 있다.
- 랩터스 대주자. 2루 주자 김정하 빠지고 임선엽이 대주자로 들어갑니다.
이건 몰랐지. 우리 포스트시즌 포수 엔트리가 3명이다!
- 이러면 소닉스가 당하겠는데요. 2루주자가 임선엽으로 바꿨어요. 단독으로 3루도 파고들 수 있는 선수예요
소닉스와 경기를 하면서 기분이 좋은 적이 별로 없었지만, 오늘은 유독 더하다.
당황한 표정이라도 지어줘야 하는 투수 놈이 알고 있었다는 듯 미동도 안 한다.
-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양 팀 감독들의 지략싸움 치열합니다.
- 타자도 라정안이거든요. 톰슨 선수의 공도 때려낼 수 있는 선수예요.
역시. 2루에 나가 있는 임선업 선배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투수가 헛짓거리하면 무조건 3루를 훔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임선엽. 든든하네
- 투수 2루 견제
- 돌아가라는 거죠. 2루 주자 리드가 길어요
- 견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자 리드를 늘려나갑니다.
그렇지 대주자로 나왔으면 저런 패기를 보여줘야지. 잘한다. 잘해
- 견제가 연속으로 들어갑니다.
- 기 싸움이죠. 투수도 견제구를 던지고는 있지만 잡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 주자도 리드를 줄일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한방이다. 투수가 주자에 신경 쓰고 있을 때 주장이 한방만 쳐주면 경기 뒤집을 수 있다. 주장. 하나 칩시다
- 톰슨 던집니다. 피치아웃! 2루 주자 걸렸습니다.
- 런다운이죠. 3루수 이병삼 주자 2루로 잘 몰고 가네요
- 임선엽 아웃. 1루 주자 김소전은 1루에 그대로 묶여있습니다.
피치아웃이라니…. 저 투수의 눈은 타자에게 던지는 눈이었는데 피치아웃이라니…. 내가 2루 주자였어도 걸렸을 것 같다.
- 라정안의 타구 투수 잡아서 2루로 2루에서 1루 아웃 더블플레이. 무사 주자 1, 2루의 위기를 막아내는 소닉스의 7회 초 수비였습니다.
- 소닉스 준비를 잘했어요. 랩터스 갑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덕아웃이 조용하다. 전력도 소닉스에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데 이상한 작전에 당해버리니 기세가 꺾인다. 이러면 안 되는데 방법이 안 보인다.
- 경기 끝. 0:3으로 2차전마저 잡아내는 소닉스 플레이오프 진출의 한 발 더 다가갑니다.
- 랩터스가 못했다기엔 소닉스가 잘했어요. 랩터스는 하루 쉬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해요
잠실에서 5경기를 하지만 두 경기하고 하루 쉬는 이동일. 감독님이 다들 나오지 말고 쉬라고 하지만 청개구리 랩터스 선수들이 그럴 리가 없다. 휴식일 쉬지도 않고 나온 선수들이 3연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 이대로 준플레이오프를 끝내야 하는 소닉스와 경기를 이어나가야 하는 랩터스의 승부 잠실에서 열립니다.
감독님…. 하루 쉬는 동안 뭘 했는지 얼굴이 반쪽이 되고 흰머리도 희끗희끗해져서 왔다. 그러고 오면 뭔가 해결 방법을 찾아왔어야 했는데… 표정이 그래 보이지 않는다. 어쩌지….
- 소닉스의 1회부터 타선이 폭발합니다.
- 최선영의 구위가 나빠 보이진 않는데 볼 배합을 알고 치는 것 같아요. 이러면 방법이 없어요
공격은 무슨…. 투수가 털리는데….
- 경기 끝. 소닉스가 지난 시즌 우승팀 랩터스를 꺾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합니다.
- 랩터스 이번 시즌 리빌딩해가면서 여기까지 왔거든요. 다음 시즌에는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가 되네요
야구를 하는데 타자와 투수가 별개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야구도 단체운동이고 투수가 버티지 못하면 타자들도 힘을 내지 못한다.
1회부터 에이스가 터져버린 경기. 타자들도 힘을 못 쓰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2년 연속 우승한 팀인데…. 우승은커녕 한국시리즈도 못 가고 미끄러졌다.
경기에 못 나오는 경준이한테 자랑하기 위해 꼭 우승하고 싶었는데. 나 혼자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만 확인하고 졌다.
속에서부터 뜨거운 김이 치솟아 오른다. 졌는데 쉬는 것도 사치다. 미국에 연락해서 당장 내일부터 훈련에 들어갈 거다.
경기 후 락커에서 간단하게 팀 미팅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억울해서 잠이 안 오지만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12시다….
프로 생활하면서 이렇게까지 늦게 잔적이 없는데…. 게을러졌다.
대충 얼굴에 물만 묻히고 구단으로 출근한다. 1군 선수들은 다음 주까지 마무리 훈련 제외지만 스트레칭도 하고 보강훈련도 하려 출근은 해야 한다.
지난 시즌의 속상함은 속상함이고 나는 다음 시즌도 뛰어야 하니…. 다시 준비한다.
역시…. 아무도 없는 훈련장. 어제 가을야구에서 떨어졌는데 선수들이 나와 있을 리가 없지…. 오랜만에 사람도 없는 조용한 훈련장에서 혼자 몸을 풀어본다.
“넌 전화 안 받냐?”
시간이 얼마나 됐는지도 모르게 쇠질을 하고 있는데 매니저 형이 훈련장으로 들어온다.
“형은 쉬는 날에 왜 나왔어요?”
“왜 나오긴 너 때문에 나왔지”
응? 나 왜?
“저요? 저 잘못한 거 없는데요”
“없기는. 영장 나왔다. 이거 줄려고 너 찾아다녔어”
뭐? 영장? 그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