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30화 (130/204)

130화. 30-30

랩터스 홈페이지야 일 년에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날이 별로 없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갔다.

스포츠 기사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기사까지 솟아오르는 조회 수에 기레기님들의 입이 귀에 걸린다.

“형. 우린 오늘 뭐한 거예요?”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가 언제 국회의사당에 들어가 보겠냐. 사진한방 박았으니 그걸로 됐다.”

최근 뉴스에서 소리치는 것만 봤지, 국회의원이 책상을 뛰어넘어 주먹을 휘두르는 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걸 라이브로 봤다.

그나저나 맞받아치려고 일어나다 혼자 넘어진 구단주 형은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내가 보기엔 아파서 못 일어난 게 아니라 쪽팔려서 못 일어난 것 같던데….

* * *

우리나라 최대기업 비서실장으로 별의별 사건을 다 겪어본 대한 그룹 강 전무도 이런 일은 처음 겪어보았다.

회사 월급쟁이 사장도 아니고 그룹 핏줄이 TV 생방송 되는 가운데 맞고 오는 꼴은 처음 보았다. 대한 금융 그룹 이사회의장이라는 사람이 기획재정위원회도 아니고 문체위에서 맞고 올 거라는 건 꿈에서라도 나온 적이 없었다.

이 참담한 사태를 확인하고 급히 회장실로 달려가 진노하신 회장님을 안정시키고는 빠른 수습을 시도한다.

“조 단장. 이게 무슨 일인가요? 희승 도련님 옆에서 잘 챙기랬더니 이게 뭡니까?”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인 조수아 단장도 급하게 구단주를 대한병원에 입원시키고는 비서실로 한걸음에 뛰어왔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지금 잘잘못을 따질 시기가 아니니 우선 잠자코 들어준다.

“상황이 급하게 됐어요. 단순히 야구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도련님은 왜 거길 나가서…. 하….”

야구단장에게 지시하려다가도 자꾸만 올라오는 화를 누르지 못하고 강 전무의 말이 계속 끊긴다.

“후…. 언론에서 대한 그룹이 비자금 로비한다는 특집기사부터 공천에 개입한다는 찌라시까지 죄다 준비하고 있어요. 이런 찌라시는 막기가 힘들어요”

사실 아니냐는 말이 입술 끝까지 올라왔지만, 인내심으로 꾹 눌러 참은 조수아 단장이 계속 강 전무의 말에 집중한다.

“이사건 잠잠해질 때까지 그룹이 납작 엎드려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야구단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있으세요.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현상 유지만 하고 있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주문이 들어왔다. 플러스마이너스 없는 현상 유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현상 유지…. 차라리 우승을 하는 게 쉽지 있는 듯 없는 듯 가만히 있는 건 진짜 절묘한 균형감각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강 전무의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어디 사고쳐놓고 말대답을 하려는 거냐는 듯한 눈빛.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는 랩터스 단장이 질문을 던진다.

“구단주님이 급히 병원에 들어가시는 바람에 결정권자가 공석입니다. 상황이 빠른 시일 내에는 못 나오실 것 같은데 구단에 권한 있는 결정권자가 필요합니다.”

단번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강 전무. 랩터스가 아무리 단장이 원하는 데로 운영이 됐다고는 해도 아닌 듯 야구에 미친 구단주가 사장 역할을 하면서 의사결정을 해주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린 강 전무가 시원시원한 결정을 내려준다.

“지금부터 조 단장이 도련님 나올 때까지 사장 대행입니다. 조 단장 자리 흔들 사람 없으니 내가 말한 대로 현상 유지에 방점을 찍고 운영하세요. 책임은 내가 집니다.”

대한 그룹 다른 놈들은 못 믿어도 구단주와 비서실 강 전무는 신뢰해도 된다는 걸 아는 조 단장이 바로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나가려 한다.

“그런데 조 단장. 내가 도련님 맞는 화면을 백번은 더 돌려 봤거든요? 분명 혼자 넘어졌단 말이야. 그것도 뒤로 넘어졌어. 그런데 병원에서 보니까 눈에 시커멓게 멍이 들었는데 그건 어떻게 된 건가요?”

강 전무의 물음에 자기가 구단주의 상태에 대해 보고가 미진했음을 알아차린 단장이 대답한다.

“그거 구급차에서 제가 손 좀 썼습니다. 하도 가만히 안 있고 몸부림치면서 반항하길래 진정시키려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골절은 없으니 부기 빠지면 괜찮아 질 겁니다.”

조 단장의 말에 머리를 쥐어뜯는 강 전무…. 이제 이 짓을 그만할 때가 됐나 심각한 고민에 빠져든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그렇게 때리면 돼요? 얼굴에 멍든 거 사진도 나갔는데 이건 어떻게 해결할 거예요?”

강 전무의 물음에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조 단장.

“SBC 생방화면 48분 20초에 살짝 주먹에 얼굴을 맞는듯한 장면 나옵니다. 그거 움짤로 만들어서 편집했으니 대응하시면 됩니다.”

8년 전에 야구단을 없앴어야 했는데 그걸 못해서 지금까지 시련을 겪는다고 생각하는 강 전무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 * *

- 어수선한 분위기의 랩터스와 5강의 희망을 버리지 못한 엘리펀츠가 만났습니다.

- 엘리펀츠 7위 지만 5위랑 2경기 차이예요. 따라붙을 수 있어요

재활하는 경준이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린 선수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느니 구단의 갑질이라느니 별별 시답잖은 기사가 쏟아진다.

특히나 구단주 형의 독단적인 팀 운영이 정상적인 리그 환경을 방해한다는 어려운 이야기까지 쏟아지면서 기레기들이 선수단을 괴롭힌다.

우리 팀 할아버지들 야구할 체력도 없는데 경기 지사가 전에 기부터 빨리고 들어오니…. 성적이 날 리가 없다.

- 오늘부터 확장엔트리가 시작됩니다. 체력에 부담을 느끼는 팀들에게는 좋은 소식입니다.

- 그렇죠. 특히 랩터스는 노장 선수들이 체력적 부담을 호소하고 있거든요. 백업선수들이 도와줘야 해요

확장엔트리는 어떤 놈이 만들어서… 경기 시작 전부터…. 귀찮네

확장엔트리가 시행되면서 2군에서 어린 선수들이 대거 올라왔다. 어차피 우리 팀 중간은 붕괴한지라 올라온 선수 대부분이 내 후배들이다. 그리고 그 후배들이 자꾸 나만 졸졸 따라다닌다.

“형. 경준이가 그랬는데요”

“형. 경준이 형이 어프로치 할 때요.”

“형. 글러브 길들여주시는데 5천 원 맞아요?”

“형. 스파이크는 어디 것이 좋아요?”

훈련하자 훈련…. 팀에서 타격할 사람이 없어서 나라도 쳐야 하는데 훈련해야 하지 않겠냐?

내 훈련하랴, 후배들 훈련 봐주랴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시합에 들어간다. 그래 시합을 하자 시합. 더블헤더 하자. 시합이 더 편하다.

- 1회 초 수비를 잘 마친 랩터스의 1회 말 공격입니다. 타선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번 유격수 김소전, 2번 3루수 라정안….

어쩐 일로 깔끔한 1회 초. 송호영 선배가 긁히는 날인 것 같다. 그러면 선취점이 더 중요하지. 자. 가즈아~

- 김소전 후반기에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김소전이 있어서 그나마 순위가 유지되고 있어요. 김소전 마저 없었으면 지금 5강 싸움도 힘들었을 거예요

장비를 차고 배트를 꺼내 천천히 배터박스에 들어간다. 언제나처럼 주심한테 인사를 건네고 포수에게 인사를 건넨다.

바닥을 고르고 배트를 들어본다. 9월 시작이라 그런지 기분도 좋고 하늘도 깨끗하다. 오늘 될 것만 같다.

- 엘리펀츠 투수 다니엘입니다.

- 임팩트는 없지만 자기 몫은 충분히 해주고 있는 다니엘이에요. 시즌 9승이거든요. 오늘 경기 이기고 10승 할 수 있어요

투수. 첫 공인데 포수와 사인이 길어진다. 어차피 시 함 들어오기 전에 나와의 승부는 다 계산하고 들어왔을 텐데 쓸데없이 시간 끈다. 그래봐야 소용없다. 나도 너에 대한 준비가 끝나있다.

- 다일엘도 9승이지만 타석의 김소전 선수도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 김소전 시즌 29홈런에 29도루죠. 남은 경기에서 홈런 하나 도루하나만 추가하면 30-30의 대기록을 작성합니다.

- 1번 타자가 30홈런을 치기가 쉽지 않은데요. 김소전선수 잠실을 쓰면서도 홈런을 꽤나 많이 적립했습니다.

- 잘 치면 1번 타자가 더 유리하다고도 할 수 있겠죠. 아무래도 많이 나오니까 홈런 칠 기회가 많아진다고 볼 수 있어요

던져라. 던져. 기분이 좋다. 들어오면 그대로 넘겨주마

- 볼. 초구 볼.

- 많이 빠졌죠. 힘 빼고 던져도 됩니다.

왜 이리 긴장하지? 시합 첫 타자 상대부터 이러면 너 오늘 어쩌려고 그러니?

- 2구도 빠집니다.

- 힘이 많이 들어가요. 김소전 선수를 힘으로 누르기는 쉽지 않거든요. 볼 배합에 문자가 있어 보여요

뭐하냐? 왜 그렇게 잔뜩 긴장했어?

- 3구 볼. 빠졌습니다.

- 좋지 않아요. 선두타자 내보내면 좋을 게 없거든요

- 포수 일어서서 받습니다. 고의사구

- 송호일 선수 공이 좋아 보였는데요. 선취점이 중요해집니다.

엘리펀츠 5강 싸움 때문에 긴장하나? 왜 저러지? 이걸 보니 우리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 우리도 저 진흙탕 같은 5강 싸움에 빠지면 똑같을 거 아니야…. 어휴 무서워. 위에 있을 때 잘하자.

- 2번 라정안입니다.

- 알게 모르게 라정안 선수가 큰 역할 해주고 있어요

- 시즌 초 3번으로 시작한 라정안 선수 노경준 선수 부상 이후 2번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 노경준선수가 특별한 케이스고 2번의 라정안은 전통적인 2번의 역할을 수행해 주고 있죠. 생산성에서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2번에 이런 선수가 있으면 1번 타자 김소전의 부담감이 줄어들어요

그린라이트. 주루사인이 나오고 타자에게도 히팅사인이 나왔다. 주장 정도면 내가 뛰면 뛰는 대로 안 뛰면 안 뛰는 대로 컨택은 가능하니까 마음이 편하다. 투수와 포수를 지켜보면서 리드를 늘려나가다가 투수의 뒤꿈치가 떨어질 때 뛰면 된다!

- 1구 볼. 1루 주자 2루에 여유 있게 들어갑니다.

- 공 던지기도 전에 스타트가 됐어요. 투수가 투구폼을 완전히 뺏겼거든요. 그러면 잡아내기 어렵죠

아 퉤퉤퉤. 흙 들어갔네. 내가 2루 오는 동안 여전히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는 투수를 보니…. 더 하고 싶네…. 다시 리드를 길게 잡는다.

- 30도를 먼저 기록하는 김소전입니다. 30-30까지 단 홈런 하나만 남겨둡니다.

- 20-20도 대단한데 30-30을 눈앞에 두네요. 제 기준엔 이번 시즌 강력한 MVP예요

2루에서 슬금슬금 리드를 넓혀가자 주장도 은근슬쩍 배트를 짧게 잡는다. 타격자세를 취하는 주장과 살짝 눈빛이 교환되고…. 느낌이 온다.

- 번트! 3루 쪽으로 공을 굴리는 라정안. 3루수 이제야 공을 잡습니다. 세잎. 1루에 던져보지도 못한 3루수 경주호. 순식간에 무사 주자 1, 3루를 만들어 내는 랩터스입니다.

- 이거 놔두면 볼이거든요. 그런데 3루가 빈 걸 보고 그쪽으로 잘댔어요. 라정안선수 센스는 정말 타고났어요

이제 우리 공격은 다 했다. 김소전-라정안…. 테이블세터가 출루했으니 공수교대 해야지…. 뒤 타자들 이제 기대도 안된다.

- 1회부터 위기에 빠지는 엘리펀츠. 3번 타자 노아 선수를 맞습니다.

제발~ 외야로 띄우기만 해라. 맞추기만 하면 외야는 가잖아 제발~

- 헛스윙 삼진! 떨어지는 공에 속고 마는 노아 선수

그럴 줄 알았다….

- 연속 삼진! 황경철 억울하다는 표정입니다.

- 멀어 보여요. 타석에서는 멀어 보이긴 할 거예요. 그래도 수긍해야죠. 볼 판정은 비디오 판독대상도 아니고 인정해야 해요

이게 뭐야. 1, 2번 타자가 무사 1, 3루를 만들어 줬는데…. 순식간에 투아웃…. 이러면 안 되지….

- 5번. 오랜만에 선발로 출장한 조영근입니다.

- 무릎이 좋지 않아요. 몸 상태만 괜찮으면 여전히 무서운 타자입니다만 현재 상태는 모르겠네요. 경기전 김민중 감독은 지명타자는 괜찮다고 했거든요

그래. 썩어도 준치라고 선배님 시원한 거 하나 부탁드립니다.

- 조영근 중견수 앞에 깨끗한 안타! 3루 주자 득점! 1루 주자 2루까지!

- 여전히 치는 건 무시무시하네요. 힘 빼고 결대로 밀어냈어요. 좋은 타자예요

저렇게 맞았으면 넘어갔어야지…. 조영근 선배도 진짜 다 된 것 같아….

- 8회 말 1아웃 점수 1:3 랩터스의 추가점이 절실합니다.

- 2점 차 원 기회거든요. 한점이라도 도망갈 수 있을 때 도망가야 합니다.

아 아재들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네…. 배트가 느려도 너무 느리다. 수비위치 좁은 거야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빠른 공에 너무 일방적으로 밀리면 답이 없는데….

- 오늘 3타수 1안타 볼넷 하나의 김소전입니다

- 오늘도 멀티출루에 성공했어요

- 후반기 김소전 선수의 기록은 대단합니다.

- 후반기 김소저은 못하는 게 없어요. 안타면 안타, 홈런이면 홈런….

- 김소전의 타구! 중견수~ 중견수~ 중견수 뒤로 넘어갑니다! 기어코 이번 경기에서 30홈런을 만들어 내는 김소전. 1루 측 팬들 굉장히 좋아합니다.

- 잠실을 홈으로 쓰면서 30-30을 기록했어요. 팬분들 좋아하실 만해요

1점이면 3점 차…. 불안한데…. 내가 경준이가 그리워 질 때가 생기다니…. 안 아프면 이제 좀 와라. 나 혼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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