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29화 (129/204)

129화. 음해

기인환 감독이 피식 웃는다.

“29개입니다”

“29개라니요?”

“최강훈 도루 전반기 기준 29개였습니다. 후반기 첫 경기에 두 개해서 31개 된 거고, 노경준은 전반기 기준 타율 2할 5푼 7리 도루 21개였습니다.”

질문을 한 국회의원이 종이를 들고 소리를 친다.

“KBO에서 받은 자료입니다! 선수 기인환은 최고의 타자였는데 감독으로는 그렇지 않으신가 봅니다.”

여전히 비웃음 가득한 감독.

“감독으로 리그 우승 3회,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우승을 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브레이크로 공식적인 전반기 끝이 올스타전이 아닙니다. 그걸 놓치신 것 같네요”

자기 손으로 손가락 접어가며 우승 횟수를 세다니…. 잘생기면 뻔뻔하다더니…. 진짜구나…. 그나저나 팩폭을 당하니 저 아저씨 얼굴이 막 바뀌는데

“이건 KBO에 확인하고 책임을 묻겠습니다! 증인이 거짓말을 하는지 KBO가 허위자료를 제출했는지 엄히 묻겠습니다.”

무서워야 하는데 왜…. 귀엽지…. 이런 거에 막 설레고 그러면 안 되는데…. 하는 짓이 귀여우시네

“어쨌든 최강훈 대신 노경준을 뽑은 이유가 뭡니까? 기록에서 보더라도 최강훈이 더 좋은 선수 아닙니까? 이거 노경준 병역면제를 위해 억지로 뽑은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왜 뽑았습니까! 대한 그룹에서 압력이라도 행사했습니까!”

“감독 취향입니다.”

“이보세요!”

감독 취향이라니…. 선수선발. 그것도 국가대표 선수선발에 이유로 감독이 취향을 입에 올렸다. 아무리 아줌마부대가 커버를 친다고 해도 야구팬들 화력을 다 감당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데….

“신성한 국가대표에 취향을 개입하는 게 말이 됩니까?”

“감독 수락 조건이 선수선발권 보장이었습니다. 감독이 원하는 선수를 선발하고 싶었고, 감독이 원하는 선수 뽑아서 결과로 증명했습니다. 어느 부분에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능력을 결과로 증명한 감독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지역구 의원과 눈싸움을 벌인다. 국회밥 먹으며 갑질의 마스터가 된 국회의원이지만 필드에서 물고 뜯으며 제왕이 된 남자의 눈빛에 결국 시선을 내리깔기 시작한다.

“흠. 흠. 연봉 2억을 받으며 집에서 TV로 경기를 보고 코드인사로 선수를 선발한 게 펙트입니다. 인정하십니까!”

감독에게 눈도 못 마주치는 국회의원이 뭐라고 낙서가 돼 있는지 모를 종이를 바라보며 다그치듯 묻는다.

“인정합니다.”

“지금 불법행위를 인정하신 겁니다”

“불법은 행한 적이 없습니다.”

“이보세요!”

감독이 말을 못 알아듣자 국회의원의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그에 비해 감독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분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최강훈 선수를 왜 배제했습니까?”

저 멍청한 국회의원 놈. 최강훈이는 야구를 못 하잖아 야구를!

“뽑을 수 있는 자원 중에 노경준이 가장 좋은 중견수였습니다. 최강훈 선수를 뽑았으면 백업이나 대주자 요원인데 팀 성격에 맞지 않아 제외했습니다.”

“자료까지 제시해 드렸는데도 이러십니까! 타자로서 타율! 주자로서 도루! 전부 최강훈이 앞선 데 왜 노경준입니까! 심지어 노경준은 리그에서 5번째 타격 실력의 중견수인데!”

“누가 그럽니까? 노경준선수가 중견수 중 5번째 타격이라고 누가 그런 소리를 합니까? 축구 감독도 아니고 어디서 그런 멍청한 소리를 합니까”

“기감독! 국회에요! 국회를 이렇게 모독해도 됩니까! 여기 최강훈 측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말이죠….”

잠깐 자료를 최강훈한테 받았다고? 이건 또 뭐야….

“그 헛소리 강훈이한테서 받으신 겁니까?”

“흠. 흠…. 국회의원이 자료야 여기저기서 받아보는 겁니다. 제보자의 신상을 더 알려고 하지 마세요!”

그놈은 진짜 자기가 좋은 타자라고 생각하는 건가? 경준이도 쓰레기지만 그놈은…. 생산성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데….

“이걸 어떻게 쉽게 풀어서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해보세요”

“야구에서 타율이 전부가 아닙니다. 세이버메트릭스 관점에서 보면 3할 4푼 타자와 2할 5푼 타자의 생산성이 같을 수 있습니다.”

감독의 당연한 이야기에 야알못 아저씨가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내가 소닉스 30년 팬입니다! 어디 그런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합니까! OPS도 최강훈이 더 높습니다! 국회가 무섭지도 않습니까!”

“야구가 타격만 하는 줄 아시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오시는 겁니다. 타격과 주루, 그리고 타격시 상황, 앞 타자와의 연계까지 생각하면 타격 생산성에서 노경준이 최강훈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러니 야구팬들이 기인환감독 경질하자고 들고일어나는 거 아닙니까!”

멍청한 감독…. 경준이가 내 사인에 맞춰서 필요할 때 뛰고, 내가 주자로 나갔을 때 직구를 노리고, 우타자인지라 자연스럽게 좌우 놀이가 되는걸 경준이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감독님…. 그거 경준이가 잘하는 게 아니고 내가 잘하는 거라고요

내 속에서 열불이 터지는데 옆에서 칭찬을 듣고 있는 멍청이의 눈에 사랑이 올라온다. 이 멍청한 놈…. 감독의 감언이설에 빠져들었네… 에효….

“그렇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노경준이 최강훈만 못하다고 해도 국가대표팀 중견수 공격력으로는 충분하고 남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수비가 다릅니다.”

“지금 리그 최고 중견수가 2년 차 선수보다 모자란다고 하는 겁니까?”

“정확합니다.”

감독의 확신 가득한 말에 포기해버리는 아저씨….

“그동안 팬이었는데 이렇게 말이 안 통하시는 분인 줄 몰랐습니다. 들어가시고 전 다른 증인을 부르겠습니다.”

나를 부르려나 보군…. 너무 오래 앉아있어 뻐근해진 몸을 뒤척이며 준비를 한다.

“한희승 증인 좀 나와주시죠”

어? 누구? 갑자기 누구? 구단주 형? 그 형이 여기 왔어?

이 생각을 나만 한 건 아닌 듯하다. 국감장이 소란스러워지고 저 뒤에서 위풍당당하게 구단주 형이 등장한다. 들어오는 길에 조수아 단장이 잠깐 팔을 붙잡고 뭐라고 하자 박력 있게 뿌리치지 못하고 잡혀서 질질 끌려가 몇 마디 듣고는 국감장에 들어온다.

“증인. 랩터스 구단주 맞습니까?”

“네”

“증인은 평소 국가대표 감독인 기인환 감독과 친분이 있죠?”

“네”

“그 친분을 이용해서 랩터스 선수를 뽑아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습니까?”

“네”

오늘 기자들 물 만났다. 속기사 수준의 타자 소리가 국감장을 휘감는다.

“그게 문제가 된다는 생각은 해보신 적이 없습니까?”

“없는데요”

우리 동네 바보형도 저 형보다는 생각이 있을 것만 같다. 여기 카메라가 몇 대고 기자들이 몇 명인데…. 아무 생각 없는 대답…. 사실이 그래도 좀 아닌 척을 해야지….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병역면제를 위해서 국가대표 선발을 청탁하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병역면제? 난 라정안 뽑아달라고 했는데요?”

“노경준이 아니고?”

“그놈은 내가 뽑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뽑아갔다고. 그것 때문에 내가 3일 동안 술을 먹었다고요. 뽑을 애가 없어서 노경준을 뽑냐고. 내가 속이 터져서…. 또 소주땡기네”

구단주 형…. 소문만 들으면 일을 그렇게 잘한다는데 믿을 수가 없다. 아무리 봐도 머리를 장식품으로 달고 다는 것 같은데

“노경준을 뽑지 말라고 했다고요?”

“내가 야구파크에 글 쓴 거 몰라요? 그거 내가 쓴 거라고. 그런데 사람들이 내 계정 해킹당한 줄 알아. 내가 남의 아이디 해킹을 하면 했지 내 것은 안 털린다고요. 나 오늘 그거 해명하러 여기 나왔어.”

몸조심해야 한다. 저 뒤에서부터 그분의 살기가 느껴진다. 구단주 형 조수아 단장한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으면서 왜 개길까….

“그럼 청탁도 안 했는데 노경준이 어떻게 뽑힌 겁니까!”

“야구 안봤어요? 김소전 세트 메뉴니까 뽑아갔잖아. 김소전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멍청인데 그래도 김소전이랑 붙여놓으면 쓸만하니까 뽑아갔잖아요”

“아무리 쓸만해도 최강훈만 하겠습니까!”

구단주 형이 여전히 최강훈에 미련을 못 버리는 국회의원을 매섭게 째려본다.

“야알못이네. 야구 처음 봐요? 최강훈이는 쓸데가 없잖아.”

“쓸데가 없다니요?”

“아…. 진짜. 최강훈을 쓸려면 1번 말고는 쓸데가 없는데 1번은 김소전이고, 좌타인 김소전 1번일 때 2번에 우타 노경준이 들어가는 게 그림이 좋고, 또 결국 우리가 강팀하고 상대할 때 빠른 볼 상대할 텐데 노경준이 변화구를 못 쳐서 그렇지 직구 대처 능력은 최강훈보다 낫지. 보면 몰라요?”

“기록이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립니까!”

“거 참. 야구 진짜 안봤네. 기록 그거 시즌 초에 노경준이 홈런 치겠다고 백스윙 키우다가 삽질해서 그렇고 후반기 들면서 노경준 컨디션 올라온 거 안보여요?”

저형…. 바보인 게 틀림없는데…. 저런 분석을….

“그래도 최강훈이…”

“아 진짜. 내가 이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해봐요”

“공손히 얘기해야지”

“뭐요?”

“듣고 싶으면 공손히 해주시라고 해야지”

음…. 동네 바보형 맞아….

어처구니없어하는 국회의원과 구단주 형의 신경전이 이어진다. 느긋한 구단주 형과 다르게 질문 시간이 시시각각 줄어드는 국회의원이 졌다.

“…해주세요”

“쩝…. 안 해주려고 했는데 내가 큰맘먹고 해준다.”

한껏 거드름을 피우는 구단주 형. 보기만 해도 꼴사납다.

“최강훈 건강에 문제가 있잖아. 걔 이번 시즌에 몸 불어난 거 안보여요? 특히나 야구선수가 윗배가 나오고 있거든요. 얘 지금 풀 약 빨고 있는 상태에요.”

랩터스 구단주 입에서 약물 이야기가 나오자 기자들의 환호성이 터진다.

“더군다나 최강훈이랑 술 먹는 친구들한테 듣는 이야기와 구단 분석팀 자료 이용해서 검토한 결과. 최강훈 조만간 탈 납니다. 감독이 바보도 아니고 오늘내일하는 애를 데려다가 송장 치를 일 있겠어요?”

기자들이 소리를 지르다 못해 미친 듯한 타이핑을 하며 기쁨의 눈물까지 흘린다.

“한희승 씨 그 말 책임질 수 있어요? 그런 발언으로 멀쩡한 선수가 매장될 수 있어요!”

“나는 책임질 수 있는데 그쪽은 아예 대놓고 거짓말했잖아. 내가 노경준은 뽑지 말라고 매일같이 얘기했다고. 그런데 뽑아간 거라고. 난 지금 감독한테 화를 내야 한다고!”

“아까는 노경준이 좋은 선수라더니 이제는 말이 바뀝니까!”

“거참. 야구 모르면 이런 쇼 하지 마. 봐봐. 우리가 미국, 일본이랑만 경기하냐고. 노경준이도 김소전과라 느린 공은 그냥 못 친단 말이야. 그래서 드래곤스 박라빈을 데려가야 하는데 감독이 고집으로 나이 많은 선수 안 데려가려고 용쓰다 경준이 데려갔잖아.”

구단주 형의 안목에 다시 한번 놀란다. 경준이를 이렇게 자세하게 파악한다고? 그런데 김소전과는 뭐지? 잘생겼는데 잘 치고 뭐 이런 건가?

“이 사람들 도저히 안 되겠네. 다들 준비하고 온 것 같은데 국회의 권위를 위해서라도 책임을 묻겠습니다.”

“잠깐”

책임을 묻는다는 말에 표정이 심상치 않은 구단주 형이 말을 끊는다.

“전화 한 통화만 해도 될까요?”

“국감에 와서 뭐 하는 짓입니까!”

“잠깐 잠깐이면 돼요”

말을 하면서 휴대폰을 꺼내는 구단주 형.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다.

“대표님. 한희승이에요”

“인사는 뭘. 사과 몇 개 보낸 걸로”

“그건 됐고 나 하나 통보 좀 하려고”

“어. 아니. 그게 아니고 나 지금 문체위 국감장에 있는데 X도 모르는 게 나대는 애가 있어서. 다음 달부터 공식, 비공식 성금을 못 낼 거 같아.”

“아니. 뭘….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면 안 되지. 적당히. 그래요. 아니, 아니. 오지 마. 여기 끝내고 내가 올라갈게요. 네 끊어요”

벙찐 사람들. 생중계로 통화 장면이 방송됐고 누구랑 통화했는지 너무나도 궁금한 국회의원이 묻는다.

“국감장에서 누구랑 통화를 한 겁니까!”

“아. 그쪽 당 대표요. 나랑 좀 친하거든요. 아. 의원님 5분 안에 와서 석고대죄 안 하면 다음 공천 없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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