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23화 (123/204)

123화. 예선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다고 또 여기저기 끌려다니면서 조리돌림을 당했다. 얼굴은 어려 보였지만 소맥 마는 게 최소 10년은 갈고닦은 기술이었는데 신분증 좀 없이 술 팔았다고 구박을 해도 너무한다.

그럼 시키지나 말던가. 나 하기 싫은 거 시켜놓고 난리야…….

경기끝나고 가뜩이나 기분이 더러운데 밤에 그분에게서 전화가 온다.

“걔 이뻤냐?”

“무슨 소리야”

“술판애. 17살짜리 이뻤냐고”

“27살 누나라고. 소맥 마는데 소주병 바닥에서 입구까지 회오리가 올라오는데 17살짜리 실력이 아니야!”

전화기 반대쪽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얘는 왜 항상 나한테 이런 반응이야.

“됐다. 차나 내놔. 내일 내가 가서 받아올 테니까 비행기 타기 전에 전화 받고 가”

이거였구나. 이 얘기를 하고 싶었구나

“너 작년에 가져간 내 차는?”

“그거 잘 길들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 면허도 없고 지하철 타고 다니잖아. 차 세워두면 안 좋아. 누나가 가끔 타면서 예뻐해 줘야 차 잘나간다.”

그렇구나… 내가 차가 없어서 몰랐다…….

“넌 미국 안 오냐?”

“보고 싶냐?”

이것이 말을 해도 꼭 이따위로…….

“너 또 쫓아와서 이상한 인터뷰 딸까 봐 도망 다니려고 그러지”

“말을 해도. 그러니까 네가 욕을 먹고 다니는 거야. 말이라도 예쁘게 해야지”

예쁘게라니… 너한테 예쁘게 말이 나가겠냐

“누나 간다. 명색이 스포츠 아나운선데 안가겠냐? 나 이미 원탑이다. 올림픽에서 그렇게 난잡하게 논다는데 나한테 걸리지 말고 조신하게 하고 있어라.”

자. 잠깐? 중간에 뭔가 꼭 알아야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난 올림픽 나갔던 주장한테 물어봐야겠다.

* * *

밤새 루다에게 시달리고, 아침에 자동차회사에서 본인인증까지 하고 멍한 상태로 비행기를 탔다.

전지 훈련차 몇 번 미국 가봤다고 비행기가 낯설지 않다.

정신없는 상태로 공항에 내리고 경준이와 한방에 들어간다.

다른 팀 선수들은 내리자마자 어디 나간 것 같기도 한데 나는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전반기 막판 떨어지는 체력. 시간이 날 때마다 체력을 보강해야 한다. 경준이를 데리고 훈련장으로 직행해 보강훈련을 시작한다.

“형. 우리는 안 나가요?”

저… 손 많이 가는 놈. 꼭 말을 하게 만들어요

“경준아. 너 여기 온 이유가 뭐냐?”

“네? 우리 야구하러 왔지요.”

아니지, 야구는 내가 할 거고 너는 내 노예 하러 왔지

“경준아. 우리가 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에게 이겨야 한다. 그것도 모자라서 멕시코, 도미니카도 이겨야 하고. 쉴 때가 아니다.”

“형 그래도 올림픽인데 다른 종목 선수들과도 친해지고…….”

“경준아!”

내 호통에 깜짝 놀라는 경준이

“너 미필 아니냐? 형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따고 면젠데 넌 군대 갈래? 형이 도와줄 때 노력하자. 나 기분 나빠지면 야구 대충한다”

눈이 번쩍 띄이는 경준이

“형. 열심히 하겠습니다.”

부려 먹기도 힘들다.

- 여기는 LA 다저스 스타디움입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재현하고자 하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예선 1차전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 주최국인 미국과의 경기예요. 현역 메이저리거가 출전했어요. 대한민국은 동메달을 목표로 전략을 잘 세웠어야 합니다.

- 대표팀 기인환감독은 우승을 언급했습니다.

- 일종의 연막작전이라고 봐야겠죠. KBO에서도 목표는 동메달로 잡고 있어요

티비로만 보던 경기장에 실제로 들어오니 기분이 묘하다. 그리고 그것보다 앞에 있는 메이저리거 선수들이 더 경이롭다.

- 2028 LA 올림픽 야구는 참가한 8개 팀이 예선 풀리그를 치르고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하게 됩니다.

- 대한민국과 일본, 대만이 올라왔고 주최국 미국, 멕시코, 쿠바, 도미니카공화국 그리고 캐나다가 올라왔어요. 이 중 4팀만 결선 토너먼트에 갈 수 있어요

저 미국놈들… 연습 투구하는 것부터… 외국인 투수들이랑 똑같은 게 딱히 이질감이 없는데? 뭐지? 메이저리거면 공이 UFO처럼 날아오고 그런 거 아니었어? 진짜 외국인 투수들이랑 거기서 거긴데?

- LA 올림픽 첫 경기 대한민국의 공격으로 시작됩니다.

- 메이저리거들로 구성된 미국팀입니다. 우리는 아쉬울 게 없어요. 최선을 다해서 실력껏 싸우면 돼요

음… 쟤 에인절스 1선발이라며… 썬더스 1선발만도 못한 거 같은데…….

- 대한민국의 1번 타자 랩터스의 김소전입니다.

- 평범한 1번 타자가 아니죠. 펀치력을 가지고 있는 1번 타자입니다. 리그에서 처럼만 하면 돼요

뭐야? 공 던지는 게 뭐 이리 어설퍼?

- 초구 타격! 크다! 크다! 크다!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 센터 펜스를 넘어갑니다! 김소전의 선제 솔로홈런! 김소전이 LA 올림픽에서 첫 득점을 홈런으로 기록합니다.

- 빠른 공을 받혀놓고 쳤어요. 대단합니다! 어린 선수들로 구성돼 우려가 많았던 대표팀인데 그런 우려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멋진 타격이었어요

전형적인 겉멋에 찌든 외국인 투수. 투구폼 크고 팔은 W 뒤집어 놓은 자세로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 연습 투구 때 일부러 크게 크게 던지는 건 줄 알았는데 진짜 와인드업시 투구동작이 느릿느릿하게 던져진다.

그러면서 릴리스포인트에서부터는 빠른 팔 스윙. 타이밍만 잡히면 뭐. 그깟 빠른 공이지

- 데이비드의 초구 156㎞의 빠른 공이였습니다.

- 김소전의 빠른 공 대처는 리그 최고죠. 김소전에게 속도는 의미 없어요. 그 빠른 공으로 약점을 집요하게 괴롭히지 않으면 지금 같은 결과가 나오는 거예요. 완벽한 타이밍에 맞았어요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아 세레머니를 하고 홈을 밟자. 다음 타자 경준이가 나른 경의에 찬 모습으로 바라본다.

이놈. 그래도 눈이 장식품은 아니었구나.

“형. 어떻게 치신 거예요?”

봤으면서도 몰라보니 설명해줘야겠다.

“쟤 투구동작 시작할 때 외쳐 ‘햄버거~’”

날 미친놈 보듯 바라보는 경준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꼭 그따위 표정을 해요

완벽한 팁을 알려주고 덕아웃에 들어오니 잔뜩 긴장했던 선수들의 얼굴에 편안함이 보인다.

우리 팀 선수들의 표정이 다 좋아지는데 저기 타석의 한 놈만 얼굴이 별로다.

- 스트라이크. 노경준 투스트라이크까지 몰립니다.

- 노경준도 빠른 공에 강점이 있는 선수입니다만 데이비스 선수의 공에는 반응을 못 하고 있네요. 빨라도 우선 배트를 내밀어 보는 게 필요해요

저… 모자란 놈. 미국 와서 햄버거가 맛있다고 한 끼에 네 개씩 쳐묵쳐묵 하시길래 맞춤식으로 설명해 드렸더니 왜 시키는 것도 못 해.

볼카운트에 몰리고 덕아웃을 한번 바라보는 경준이와 눈이 마주친다.

경준이의 암울한 눈을 보며 입을 크게 벌려 햄~버~거~~를 외쳐준다.

여전히 믿음이 없는 경준이…. 넌 이따 경기 끝나고 훈련장에서 보자.

- 3구 타격! 노경준의 잡아 당긴 타구 좌측! 좌측! 좌측담장을 넘어갔습니다. 백투백! 대한민국 대표팀의 백투백 홈런이 나왔습니다.

- 이렇게 잘합니다! 우리 대표팀이 이렇게 잘해요! 리그 간 격차는 있어도 최상급 선수들끼리는 종이 한 장 차이거든요. 우리 대표팀 선수들 이렇게만 해주면 됩니다.

그라운드를 돌아 들어오는 경준이가 선수단의 미친 듯한 구타를 당하고 내 앞에 당도한다.

“형 진짜 햄버거가 되네요.”

“쟤는 투구동작이 느린데 깨끗하잖아. 햄버거 신이 도우면 쟤 정도는 쉽게 물리칠 수 있다.”

“믿어요. 형”

“그런 의미에서 경기 끝나고 더블패티 햄버거 두 개 방으로 가지고 올라와라. ”

- 9회 말 투아웃 미국의 마지막 공격. 타석에 패트릭 선수입니다.

- 미국팀 오늘 경기가 안 풀려요. 그 기운이 마지막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 패트릭의 타격! 타구 내야에 높이 뜹니다. 2루수! 2루수 박민기! 박민기 잡아냅니다. 경기 끝 대한민국 대표팀이 미국을 4:1로 이기고 예선 라운드 첫 승리를 가져옵니다.

- 예선 첫 경기. 유기적으로 손발이 맞아 돌아가는 대한민국과는 다르게 어딘지 어색한 미국팀이었어요. 이번 대회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 미국을 껐었으니 자신감을 가져도 될 우리 대표팀이에요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공만 빠르지 딱히 변화구를 많이 던지지도 않고 지저분하게 이리저리 도망 다니지도 않으니 상대하기 더 편하다.

타자들도 타구가 조금 빠를 뿐 크게 정교해 보이지도 않고. 썬더스나 소닉스가 더 무서운 팀 같은데…. 이게 뭐지…….

미국을 이긴 김에 쿠바와 캐나다까지 꺾었다. 비시즌 기간에 하는 대회도 아니고 시즌 중에 몸까지 다 만들어져 있는 상태에서 하는 경기인데… 상대 선수들 생각보다… 별로다.

- 무패를 달리는 대한민국의 4번째 경기 대만과 상대합니다.

- 대한민국과는 다르게 3패를 당한 대만이죠. 투수력에 약점을 보이고 있지만, 타선은 나쁘지 않아요. 방심하면 안 돼요

우리보다 몸집이 훨씬 큰 나라들을 상대로 연승을 이어가자 대표팀 분위기가 편안해진다. 그러다 만난 아시아팀 대만. 선수들 사이에 쉬어가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 9회 말. 2:2 대한민국의 공격입니다.

- 미국에 와서 가장 어려운 경기를 하고 있어요. 선수들 집중해야 해요

뭐가 이상하다.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우리가 확실히 더 잘한다. 공도 더 잘 치고 수비도 우리가 더 탄탄하다 그런데 야구의 신이 우리의 승리를 자꾸 거부한다.

- 주상훈의 타구! 3루수 직선타! 3루수 직선타로 마무리되는 9회 말 대한민국의 공격. 이제 승부치기에 들어갑니다.

뭐냐… 뭐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있냐……. 신성한 야구에 승부치기라니…. 우리가 미국도 꺾고 쿠바도 꺾은 팀인데 대만이랑 승부치기라니…. 뭐가 잘못됐다.

- 차대영 삼진! 실점 없이 10회 초를 막아내는 대한민국 대표팀입니다.

- 강력한 마무리가 있다는 게 이렇게 중요하죠. 차대영이라면 대만의 타자들을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어요. 기인환감독 차대영을 마지막까지 아낀 이유가 있었네요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규정. 10회를 시작하는데 주자 둘을 세워놓고 이닝을 시작하다니. 주자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수비위치가 얼마나 많이 바뀌는데…. 어떤 놈이 만들었는지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다

- 10회 말 대한민국의 공격입니다. 2루에 정인준, 1루에 송교필 그리고 타석에는 김소전입니다.

- 앞서 대만의 공격에서 보셨듯이 무사 1, 2루에서 이닝을 시작해요. 안타 하나면 바로 점수가 날 수 있기 때문에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어요

수비할 때는 기분이 더러웠는데 공격 입장이 되니… 마음이 달라지네…. 2루와 1루. 특히나 2루에 주자가 있으니 적당히 안타 한 방이면 타점 아니야…. 이게 리그 경기였으면 연봉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네…….

- 빼나요? 공 많이 벗어납니다.

- 김소전 부담스럽죠. 이번 대회 최고의 타자인 김소전인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 그렇다고 걸어 보낼 수도 없는 대만입니다.

- 10회 말 공격에 무사 만루가 되면 수비하는 대만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어지죠. 어떻게든 승부는 할 겁니다.

투수. 나랑 자꾸 눈을 피한다. 그래봐야 너 던질 공 뻔한데 도망 다닌다고 답이 나오냐? 그냥 직구를 던지든지 짧게 꺾이는 슬라이더를 던지던지 해. 괜히 체인지업 던지다 형한테 맞지 말고

- 김소전 걷어 올렸습니다. 떨어지는 변화구를 걷어 올린 김소전의 타구. 우익수! 우익수! 우익수 더 이상 쫓아갈 수 없습니다. 끝내기 쓰리런! 대한민국 10회 말에 대만을 꺾고 무패행진을 이어갑니다.

거기서 커브를 던지냐. 던질 거면 확실히 원바운드도 생각하면서 던지던가. 애매하게 가운데 몰리면 형이 칠 수밖에 없잖아.

아니면 진작 던지던지. 오늘 일찍 끝나고 하체 하려고 했는데 조금밖에 못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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