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21화 (121/204)
  • 121화. 이사회

    도곡동 KBO 사무실 앞에 모인 선량한 시위꾼들이 집시법 위반으로 강제해산을 당하느라 시끄러운 가운데 KBO 긴급 이사회가 열렸다.

    “랩터스는 구단주가 사장 아니었나? 왜 단장이 와있어?”

    기업에서 낙하산으로 꽂혀 들어온 배 나온 아저씨들이 귀찮게 회의에 참석하게 되자 심기가 불편하다.

    “저희 구단주님 지병이 도져 모처에서 요양중이십니다. 구단주 대행이자 랩터스 사장 대행으로 참석했습니다.”

    이 사태를 만든 랩터스에서 주인도 아니고 머슴. 그것도 어린 여자가 얼굴 꼿꼿이 들고 참가하자 아저씨들의 화가 폭발한다.

    “어디가 얼마나 아프길래 사고치고 나오지도 않아!”

    선수 군 문제해결이 급하지 않은 랩터스와는 반대로 이번에 올림픽 동메달이라도 못 따면 2선발 투수와 팀의 중심타자가 군대에 가야 하는 워호스에서 사납게 묻는다.

    “대한 그룹 직계입니다. 가계 유전병입니다.”

    “가계 유전병? 대한 그룹 성격장애가 유전 아니야? 그거 군대 빼려고 그런 게 아니라 진짜야? 진짜 미친놈들이었어?”

    평소 대한 그룹의 미친놈들을 너무 많이 본 소닉스 사장이 이해된다는 듯이 되묻는다.

    “저희 구단주님은 현역으로 군 복무도 마쳤습니다. 하지만 유전병 발발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랩터스구단주 대행의 설명에 다들 납득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래서 그랬구나. 한밤중에 미친놈처럼 헛소리하더니 진짜 미쳐서 그랬네”

    “그건 구단주님이 하신 게 아닙니다.”

    랩터스 단장의 부정에 회의실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럼 누가 한 건데! 사고 쳐놓고 회피하겠다는 거야!”

    대한 그룹의 뻔한 오리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장들이 쉽게 속아주지 않는다.

    “해킹당했습니다.”

    “해킹?”

    “네. 누군가 해킹했습니다.”

    “그게 말이 돼! 대한 그룹 직계가 해킹당했다는 게 말이 되냐고! 차라리 청와대가 해킹당했다고 해!”

    순간 국정원과 대한 그룹 비서실이 전쟁하면 누가 이길지 고민하던 랩터스 단장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해명을 시작한다.

    “저희 구단주님 쓰는 회선이 여러 개입니다. 대한 통신회선뿐만 아니라 드래곤스 모회사인 초일 텔레콤 회선도 쓰시는데 그 회선이 해킹당했습니다. 우리 법무팀에서 형사고발과 민사소송 준비 중입니다.”

    뒤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가 깜짝 놀란 드래곤스 사장의 눈이 크게 떠진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전 사실만 얘기합니다. 사장님도 그룹에 확인해보십시오. 저희는 이번에 미필 쿼터를 한 장도 못 받는 드래곤스가 벌인 자작극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이봐! 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어린 X이 미쳤나!”

    “어린 X? 미쳤나?”

    가만히 있다가 총 맞은 드래곤스 사장의 벌떡 일어나서는 말실수가 튀어나오자 주변에서 말리기 시작한다.

    “최 사장. 진정해. 갑자기 화를 내고 그래”

    “그래. 최 사장. 혈압도 안 좋은 양반이 진정해. 진정”

    주변에 만류에 드래곤스 사장이 마지못해 자리에 앉는다.

    “딸 같아서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할 말 못 할 말을 구분 못 하네. 내가 너만 한 딸이 있어! 어디 우리 그룹에 해코지를 하려고 해!”

    의자에 앉아서도 큰소리를 치는 드래곤스 사장. 하지만 상대는 책상물림 하며 사장까지 올라간 아저씨와는 다르게 필드에서 산만한 운동선수들과 드잡이질하며 단장까지 올라간 파이터다.

    “사장님이나 저나 어차피 월급쟁인데 나이 보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서로 회사 보고 얘기해야 하지 않겠어요? 우린 대한인데? 한번 해보자는 건가요?”

    어린데 싸가지도 없는 랩터스 단장의 말에 드래곤스 사장이 잠시 참았던 화를 터트린다.

    “해! 해봐! 내가 이 바닥에 40년을 있었어. 회사가 어디 어린애들 하고 싶은 데로 되는 줄 알아?”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는 드래곤스 단장을 향해 빙긋 웃음을 지어보는 랩터스의 어린애. 이제는 턱에 손까지 괴고는 당돌한 제안을 시작한다.

    “그럼 이제 어른들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예쁘고 어린데 당돌하기까지 한 여자 단장. 상대를 해야 하는 아저씨들의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래서 조 단장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이번엔 군 면제 없이 베스트로 뽑아가자? 이거야?”

    “베스트라기보다는 감독이 알아서 뽑게 놔두자는 거지요.”

    “감독이 재규어스 감독 아니야? 그럼 재규어스만 노 나는 거잖아.”

    “거기서 왜 우리가 나와. 난 아무 얘기도 안 하는데”

    전임감독제를 했다가 포기한 KBO가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재규어스 김기영 감독을 선임했다. 김기영 감독이 끝까지 고사했지만, 기술위원회에서 사전작업은 다 해주기로 하고 억지로 떠맡겼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게 허울만 좋지 선수 선발도 마음대로 못하고 훈련도 마음대로 못 시키면서 책임만 져야 하는 자리인지라 현역 감독들 모두 하기 싫어하는데 팀 운영에 크게 관심이 없는 재규어스 사장을 사무총장이 살살 구슬려서 감독을 낙점시켰다.

    이번 회의도 아무 생각 없이 오래서 왔다가 화살이 자기에게 향하자 재규어스 사장이 먼저 한 발 뺀다.

    “난 상관없으니까 여러분들 마음대로 하세요. 난 구단 욕만 안 먹고 회장님한테 누만 안 끼치면 되는 사람이에요. 이 사태만 잘 해결되면 되니까 알아서들 결정해요”

    여전히 구단 운영에는 관심이 없는 재규어스 사장.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랩터스 단장이 끼어든다.

    “재규어스도 동의하시면 아예 새로 판을 짜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뭘? 올림픽 얼마나 남았다고 지금 새로 판을 짜?”

    “훈련한번도 안 해본 대표팀이고 공식적으로는 최종명단 발표도 안 한 대표팀입니다. 지금부터 새로 해도 충분합니다.”

    이 사태를 만든 랩터스에서 제안하는데 영 꺼름직스러운 사장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어차피 지금 인터넷에 대표팀 명단 전부 유출됐습니다. 이대로 뽑았다가 성적 안 나오면 뒷감당 못 합니다.”

    “성적을 내면 되잖아!”

    팀 성적보다 군 문제에 항상 민감한 워호스에서 미필자들 뽑아서 성적을 내면 되지 않냐고 발끈한다.

    “성적 내면 되겠지요. 그런데 자신 있으세요? 성적 안 나오면 재규어스 감독님이 죄다 뒤집어쓰실 텐데?”

    “왜 또 우리가 나와! 우리 안 나가! 감독 못 나가게 할 거야!”

    팀 성적이나 팀의 미래보다 그저 조용히 팀을 운영하고 싶어 하는 재규어스에서 감독직 사퇴를 걸고 나서자 또다시 어수선해진다.

    “김기영 감독님이 대표팀 감독을 못 하게 됐는데 감독부터 다시 뽑죠. 누가 감독하면 될까요? 워호스 하시죠? 요즘 성적도 잘 나오는데 감독님 국가대표 감독하시면 좋겠네요.”

    “무슨 소리야! 우리 올림픽 기간에 할 일이 많아”

    “그럼 어쩌자고요. 대안을 주시던가요”

    어느 순간 회의를 이끌고 있는 랩터스의 단장이 여기저기 다른 구단 사장들을 직원 다루듯 갈구기 시작한다.

    “1등이 누구야! 썬더스! 썬더스가 감독해!”

    “아니 사장님 우리 감독 전에 국제대회 말아먹고 공황장애를 겪었던 사람이에요. 우리는 안 됩니다.”

    자기 팀 선수는 딱 미필 선수만 보내고 성적은 나길 바라는 사장들. 서로 눈곱만큼도 손해 보지 않기 위해 머리싸움이 치열해진다.

    “어쩔 수 없네요. 이번에 드래곤스 딸랑 한 명 뽑혔는데. 감독님이라도 보내시죠”

    “무슨 말을 그따위로 해! 우리가 주전들이 나가도 되면 4명은 나가! 미필들 봐주려다 보니까 우리 선수들이 못 나가는 거 아니야! 보자 보자 하니까 너무하네”

    “그럼 감독 누가 해요?”

    서로 싸우던 사장단이 순간 서로의 눈빛을 교환한다.

    “이 사태를 만든 랩터스가 책임지지”

    “그래. 랩터스가 책임지면 되겠네. 그림도 좋네! 작년 우승팀 감독이 새로 시작하는 거 괜찮네”

    그제서야 씩 웃는 랩터스 단장

    “좋습니다. 랩터스에서 대표팀 감독 맡겠습니다. 대신 아까 말씀하신 대로 선수선발권은 김민중 감독에게 전부 일임하시는 겁니다.”

    “아니. 그건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구단마다 사정이 있는데”

    “그래 막말로 김민중이 대표팀하고 랩터스 선수들만 싹 끌고 나가면 어쩌려고?”

    다시 화난 표정을 짓는 랩터스 단장

    “그럼 어쩌자고요! 우린 선수 한 명도 안 데려가도 괜찮으니까 뒤로 빠질게요. 사장님들이 알아서 이 사태 해결하세요. 사고는 드래곤스에서 치고 왜 우리가 욕먹어야 합니까!”

    “야! 랩터스구단주가 사고 친 걸 왜 자꾸 우리한테 뒤집어씌워!”

    간신히 참았던 화를 다시 터트리는 드래곤스 사장

    “보죠. 누가 잘못했는지 봐요. 지금 내가 아무것도 없이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는 거 같아? 오늘 저녁부터 초일 텔레콤 해킹당했다고 언론보도 나갈 거니까 당신은 그것부터 막아야 할 거야!”

    “저… 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나한테 당신! 당신이라고 했어!”

    또다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드래곤스 사장을 주변에서 말린다.

    “차… 참아. 대한 그룹 애들이 원래 위아래가 없잖아. 자네가 참아”

    “놔! 이거 놔!”

    “아이. 애들도 생각해야지. 여기서 더 화내면 쓰러져. 참아. 참아.”

    주변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간신히 다시 자리에 앉은 드래곤스 사장. 회의실 분위기가 더욱 사나워진다.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고 결론 내죠.”

    “무슨 결론. 랩터스가 사고쳐놓고 왜 자꾸 우리까지 끌고 들어가”

    “랩터스 제안입니다.”

    날카로운 사장들의 힐난에도 굴하지 않고 랩터스 단장이 할 말만 던진다.

    “작년에 U-24 대표팀으로 우승했던 기인환감독에게 전권을 주고 국가대표팀을 맡기시죠. 각 팀의 어린 선수들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감독입니다. 그게 최선이에요”

    랩터스의 제안에 여기저기서 반발이 들려온다.

    “기인환이 전에 랩터스 감독이었잖아. 랩터스 선수만 뽑으려고 하는 거 아니야!”

    “인정할 수 없어! 기인환이 그 똘아이는 우리말 안 듣잖아. 안된다고!”

    “우리 이번에 꼭 군 면제 받아야 하는 선수들 있다고! 기인환이한테 그 말이 먹힐 거 같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사장들

    “그럼 알아서들 하시라고요! 기인환감독을 뽑아서 전권을 주든 아니면 꼭두각시를 뽑아서 하든 마음대로 하세요. 우리 선수 다 빼도 좋으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랩터스의 강경한 반응에 사장들이 움찔한다.

    “대신에 기대하세요. 이 사태 못 막으면 대한 그룹에서 언론플레이 들어갑니다. 드래곤스에서 구단주 전화 해킹, 워호스에서 김정식 억지로 대표님 넣겠다고 기술위에 압력행사 전부 기사화됩니다. 알아두세요”

    이 말만 남기고 랩터스 단장이 회의장을 떠났다.

    * * *

    “넌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냐?”

    “꺼… 꺼내줘…….”

    장충동 대한 호텔 펜트하우스에 장기투숙 중인 친구를 만나러 미국에서 온 남자가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다.

    “나 조수아한테 간신히 허락받아서 면회 온 거야… 데리고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등 뒤에 자리를 잡고 있는 덩치들을 가리키며 고개를 젓는다.

    절망감에 빠진 환자가 몸부림을 친다.

    “조… 조수아…. 그… 악독한 것…. 나를 여기 가뒀어. 아무것도 못 하게 손발 묶어놓고 가뒀어…….”

    미쳐가는 친구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5성 호텔 스위트룸에 이탈리아 정식 풀코스가 깔려있는걸. 보면서 그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인터넷으로 야구만 접속 못 하게 했다며, 다른 건 다 연결되는데 뭘 그래. 영화나 봐. 야구영화 그런 거라도 찾아봐”

    “그것도… 안돼… 조수아가 다 끊었어… 다 접속 불가야…. 야구, 소프트볼, 크리켓도 불가야. 복수… 복수할 거야…. 내 전부를 앗아갔어…. 용서치 않을 거야!”

    방구석에서 괴로워하며 비명을 지르는 친구를 위해 그간 못 들었던 야구 이야기를 해준다.

    “결국 기인환감독이 대표팀 맡았어.”

    “우리 팀 감독자리는 그렇게 버리더니 다른 팀 감독은 잘도 맡고 다니네”

    “조수아가 억지로 시켰다더라”

    “조수아한테 뭐 약점이라도 잡혔대?”

    “아니, 형수님한테 명품백 10개를 들고 가서 설득시켰대”

    자기가 좋아하는 형님이 기껏 가방 몇 개에 흔들리는 걸 안 환자가 괴로움에 몸부림을 친다.

    “차라리 가방회사를 사달라면 내가 사줄 것을…. 그 형님도 가난해서 안 돼…….”

    그간 벌어놓은 거 투자를 잘해서 연간 3억 정도밖에 못 버는 가난한 형 이야기는 그만하고 팀이야기를 시작한다.

    “기인환감독이 선수 선발 잘못했다고 난리도 아니다.”

    “왜? 누굴 뽑았길래”

    “지맘대로”

    “우리는 누구 뽑았어?”

    “김소전하고 노경준”

    “노경준? 그 반푼이를 왜?”

    “몰라. 그 사람도 아닌 척하더니 인맥 야구 쩔어. 절반이 U-24 출신이야.”

    “성적 포기했구나.”

    “우승하겠다던데”

    말을 하고도 어이가 없어 웃는 친구와 웃는 친구를 보고 하도 어이가 없어 미친 듯이 웃는 환자.

    “현민아 안 되겠다. 나 지금 나가야겠다. 너 여기서 시간 좀 끌어라. 나 헬기 불러서 탈출할 거니까 시간 좀 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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