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20화 (120/204)
  • 120화. 위기

    팀이 1위를 탈환했다 강탈당했다를 반복하자 어그로가 미친 듯이 끌린다.

    나이를 먹어 팔, 다리, 어깨, 허리, 무릎 안 아픈 데가 없는 선배들이 투수도 아닌데 5이닝만 간신히 소화하지만, 그것만도 감지덕지. 그나마 영광의 베테랑들이 이끌어주는 동안 어떻게든 승기를 가져오고, 그들이 체력고갈과 동시에 집중력이 떨어질 때쯤 신인들이 나와서 꾸역꾸역 승리를 지켜낸다.

    실패하는 날도 많지만 어쨌든 1위 싸움을 해주는 팀. 아무리 봐도 감독의 의도를 가지고 리빌딩을 하는 게 아닌데 언론에서 역대 가장 완벽한 리빌딩이라는 설레발이 터져 나온다.

    “소전아. 오늘은 레프트 들어가자”

    “네?”

    “영근이 오늘은 도저히 안될 거 같다”

    “네? 조영근 선배가 안 된다고 하는 날이 있어요?”

    “아니. 그럴 리가 있냐. 감독님이 오늘 출근하지도 말라고 하고 병원 보냈어. 강제 휴식이야.”

    아… 진짜… 다 낡았어. 도무지 기워 쓰려고 해도 쓸 선수도 없네…….

    [수원에서 랩터스와 썬더스의 경기를 보내드립니다.]

    [어느새 썬더스도 치고 올라왔어요. 이번 주말 3연전 결과에 따라서 썬더스도 1위 가능성이 있어요]

    [역대급 혼전을 보여주는 1위 싸움입니다.]

    [당사자들은 피가 마르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재미있죠. 옆에서 보는 저도 흥미진진합니다.]

    날이 더워져 오면서 시즌 초반 반짝 잘 달리던 팀들이 떨어지고, 시즌 초 좋은 평가를 받던 팀들이 결국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온다.

    특히나, 이번에 외국인 선수도 잘 뽑고 팁 뎁스를 안정적으로 갖췄다고 평가받던 썬더스가 남들이 지쳐갈 때쯤 쭉쭉 치고 올라온다.

    반면에 랩터스 노인정은… 기온의 영향을 크게 받아 좀처럼 추진력을 잃어만 가고… 뭔가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랩터스의 1번 타자 김소전. 오늘은 좌익수로 출전합니다.]

    [올해 김소전선수 연봉에 대해 말들이 좀 있었는데, 더 줘야 해요. 김소전 없었으면 랩터스가 어땠을지 아찔해요]

    이번 시즌에 외야에 몇 번씩 들어가긴 했지만 그건 경준이 없을 때 중견수로 들어간 건데, 경준이를 가운데 두고 우익수도 아니고 좌익수로 들어가니 기분이 새롭다.

    [김소전. 이번 시즌 타격 전 부분에서 상위권에 랭크되고 있습니다.]

    [일부 팬들 사이에서 검증론이 있는데, 이 정도 기록을 보여주면 검증은 됐다고 봐야 합니다. 가지고 있는 게 훌륭한데 지금까지 약점으로 지적되던 삼진과 볼넷이 개선됐거든요. 이젠 인정해야 해요]

    [그런데도 영양가에 대한 말들이 좀 있습니다.]

    [김소전이 1번 타자가 거든요. 성적이 중심타자 같은 성적이 나오니까 자꾸 비교를 3, 4번 타자들과 해서 그런데, 그러면 안 돼요.]

    [한 간에는 김소전 선수의 타선을 클린업트리오로 내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건 야구를 너무 모르는 얘기에요. 출루율이 4할 5푼이 넘는데 타석에 계속 나와서 출루를 해줘야지요. 이런 타자에게 영양가를 따지는 건 사치에요]

    깨끗하게 정리된 그라운드. 1회 초 누구도 들어가지 않은 배터박스에 들어가면 기분부터가 상큼하다.

    마운드에 키 큰 외국인 투수가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지만 상쾌한 기분에 그것마저도 즐겁다.

    [잡아당긴 타구! 1, 2루를 지나갑니다. 선두타자 출루에서 성공하는 랩터스.]

    [시프트가 걸렸는데도 쳐내지요. 김소전의 장점이에요]

    [그렇습니다. 썬더스의 수비수들이 전체적으로 우측으로 몰려있는데도 안타를 만들어 냈습니다.]

    [타구 속도가 빨라서 그래요. 그라운드 볼 임에도 타구 속도가 170㎞가 넘어가거든요. 정면으로 오는 타구가 아니면 수비수가 반응하기 쉽지 않아요]

    띄워야 하는데 아직도 어렵다. 투수들이 낮게 낮게 던지는데, 신경을 쓰지만 높은 쪽 공이 살아 들어오면 그걸 맞추는 게 더 어렵다. 특히나 나처럼 어퍼스윙이 기본 장착이면 더 어렵다.

    높은 공을 보고 결대로 쭉 밀어준다는 느낌으로 붙어야 하는데 말이 쉽지, 어렵다. 저런 놈한테는 아니겠지만…….

    [노경준! 공을 띄웠습니다.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 원바운드로 펜스를 맞춥니다.]

    내가 하는 중심이동 타법과는 결이 다른 로테이션 타법을 사용하는 경준이. 나는 몸쪽공을 치려면 팔꿈치를 펴서 앞으로 크게 사각형을 만들어 주면서 배트를 끌고 나와야 하지만, 경준이는 다르다.

    뒤쪽 손을 최대한 옆구리 붙이고 배트를 끌고 나오다가 그것도 안 되면 한쪽 팔을 놓아버리면서 배트를 쭉 밀어버린다. 배트가 몸에 붙은 듯 몸통 회전으로 날려버리는 티라노 타법. 저런 좋은 기술을 쓸 수 있는데도… 저놈은 안된다.

    맞는 순간 애매하다고 봤는데 역시나 안 넘어간다. 시즌 초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움직임이 큰 머리. 저 머리를 어떻게든 고정을 해야 정타를 때리지… 타격자세를 아무리 만들면 뭐 하냐고. 실전에서 머리가 흔들리는데…. 지금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1루 주자 3루까지. 타자는 2루. 2루까지. 1회 초 무사에 주자 1, 2루를 만드는 랩터스]

    [랩터스의 테이블세터가 왜 자기들이 1, 2번에 들어가 있는지 결과로 보여주고 있어요. 잘 치는 타자들이 한 타석이라도 더 나와서 루상에 주자를 모으는 게 좋은 야구에요.]

    1회 초. 무자 주자 2, 3루. 여기선 무조건 선취점이 나야 한다. 집중. 또 집중해야 한다.

    [지금 자동 고의4구가 나왔습니다.]

    [1루를 채우네요]

    [1회 초부터 주자를 가득 채워주는 썬더스. 이해하기 힘든 작전이 나옵니다.]

    [랩터스의 4번 타자 조영근이 오늘 결장했거든요. 오늘 4번에 들어온 노아 선수는 무섭지 않다는 건데. 이게 무슨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겠습니다.]

    3번으로는 부족한 장타력을 보여주지만 4할대 출루를 기록하는 주장을 1루가 비웠다고 걸어서 내보냈다. 아무리 4번에 초강력 선풍기 노아가 들어온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그러다 크게 맞으면 게임이 터지는데?

    [4구 삼진! 4번 타자 노아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로즈버그]

    [많이 벗어나는 공인데 욕심이 앞섰어요]

    루상에 발 빠른 주자가 셋이나 들어차 있는데 건드리기만 해도 한 점인데… 저… 선풍기…. 그냥 외야로 띄워만 줘도 되는데…….

    [1사 만루. 다음 타자 황경철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쳤다 하면 외야로 공을 보내는 황경철이다. 차분하게 타구를 보고 기회를 노리면 된다.

    [3구 강한 타구! 2루수 직선타! 2루 주자! 노경준. 걸렸습니다. 2루 주자 노경준 2루와 3루 사이에서 멈춰 섰습니다.]

    [이거 아니에요]

    맞는 소리부터 잘 맞은 타구. 잘 맞은 타구가 2루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간다. 기분 좋게 첫발을 뗐다가 2루수 팔이 쭉 늘어나는 걸 보고는 멈췄다.

    나는 멈췄는데 2루에 있는 귀만 좋은 멍청이는 아무 생각 없이 세 발을 뗀다.

    2루 글러브에 공이 빨려 들어가는 걸 보면서 바로 베이스커버에 들어오는 유격수. 3루로 세 발을 뗀 2루 주자가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선다. 그대로 아웃… 무사 만루가 하늘로 날아간다.

    느낌이 사납다. 이거 느낌이 사납다.

    [무사 만루 위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낸 썬더스의 공격입니다. 1번 타자 김태훈입니다.]

    [김태훈 선수 요즘 타격감 좋아요.]

    불안하다. 방금 잘 맞은 타구를 잡아낸 2루수가 선두타자로 들어온다. 보통 이럴 때 안타를 맞는데…….

    [3구 타격.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 놓쳤습니다. 중견수 노경준 공을 뒤로 흘립니다. 김태훈 2루로 다시 3루까지 달립니다.]

    저… 저놈…. 딴생각했다. 외야에서 공을 놓치면 장타를 내주는 건데… 저… 덜떨어진 것 같으니…….

    [무사 주자 3루.]

    [원히트 원에러로 기록되죠. 노경준 급했어요. 어차피 안타였거든요. 급할 필요 없는데 아쉬운 수비였어요]

    주자 3루. 괜히 점수 안 준다고 어렵게 가면 안 된다. 쉽게 쉽게 가야지

    [김준수 높이 띄운 타구! 우익수 노아 자리를 잡습니다.]

    [짧아요. 좀 짧아요]

    [노아! 잡았다 놓칩니다. 공을 못 찾는 노아. 3루 주자 홈까지 타자주자는 1루에서 2루 가지 못합니다.]

    [랩터스 어수선하네요. 1회 초 기회를 놓친 게 팀 분위기를 흐려놓고 있어요. 정돈해야 해요]

    가관이다. 외야에서 뭣들 하는 거야…….

    [높이 뜬 공. 3루수 현병주 파울라인 밖에서 잡아냅니다. 쓰리아웃! 경기 종료. 3:9로 첫 경기 승리를 가져가며 오늘 패배를 기록한 소닉스를 끌어내리고 2위로 올라가는 썬더스입니다.]

    [고비 고비 때마다 터진 타선이 팀을 승리로 이끌었죠. 그에 반해 랩터스 집중을 못 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그렇습니다. 오늘 경기 공식적인 에러만 5개를 기록한 랩터스 수비였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실책은 더 많아요. 랩터스는 오늘 경기 패배로 썬더스와 반 경기까지 쫓기게 됐거든요. 소닉스 내일 경기 중요합니다.]

    랩터스가 이 정도 대환장 파티를 벌인 게 오랜만이라 그런지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가 불타올랐다. 더욱이 큰불이 났던 랩터스 홈페이지가 아직도 복구가 안 됐던지라 유목민이 된 랩터스 팬들이 여기저기 떠돌면서 방화를 지르는 바람에 전방위적으로 시끄러워졌다.

    과도한 팬심으로 욱하는 마음에 랩터스를 까던 랩돌이들이 자기들이 지껄인 말에 타 팀 팬들이 반응해서 랩터스를 까자 눈이 뒤집혀 쉴더로 돌변한다.

    이랬다저랬다 변덕이 죽 끓는 랩돌이들. 랩터스 까랴, 타 팀 까랴, 까면서 자팀쉴드치랴. 정신없는 밤이 깊어간다.

    랩터스 프런트직원들이 퇴근도 못 하고 야구 커뮤니티들 모니터링하느라 밤을 새던 시간 랩터스 역사상 최고의 빌런이 등판했다.

    글// 야구도 못 하는데 올림픽은 왜 데려가냐? - 방구석워리어(aka. 랩터스구단주)

    오늘은 한잔했음. (feat.막사와 막콜을 3:7로 혼합)

    기분이 더러워 반말이니 꼬우면 뒤로가셈.

    하는 꼬락서니 보니 근본도 없는 썬더스한테 왕권 내주게 생겼음. 빡침.

    다음 주 올림픽 예비엔트리 발표됨.

    다들 알다시피 팀당 미필 쿼터 한 장씩 해서 발표될 것임. But. 랩터스는 미필 쿼터 두 장임!

    그래서 랩터스 미필 쿼터로 노경준과 백종오를 보내려고 했음! 그런데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경준이 하는 꼴을 보니 어디 창피해서 국대 보내겠냐!

    2할 5푼도 못 치는데 외야에서 공도 못잡는 돌 글러브를 국격 떨어지게 올림픽에 보낼 수가 없어졌다.

    그래서! KBO 가서 국가대표 똑바로 뽑으라고 시위할 건데 같이 할 사람 내일 아침 10시에 도곡동으로 집합해라!

    노경준 빼고 금민준 넣을 때까지 형이 도시락 댄다. 몸만 와라!

    * * *

    한밤중에 한 여자가 삼성교 위를 미친 듯이 뛰다가 전화를 받는다.

    “단장님 어디세요?”

    “홍지야. 나 이동 중”

    한밤중에 강바람을 맞으며 뛰면서도 호흡하나 흐트러트리지 않는 여자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전화를 받는다.

    “통화 괜찮으세요?”

    “어. 말해”

    “야구파크에 글이 하나 올라왔는데요”

    “알아”

    “보셨어요? 그 건으로 사무총장님이 단장님 연락하는데 통화가 안 된다고 해서요”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통화음이 작아지기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는 발을 늦추지 않는다.

    “놔둬. 여기 볼일만 보고 내가 통화할게”

    “어디 가세요? 멀리 가세요? 제가 사무총장님 먼저 보고 올까요?”

    여자가 달리는 속도를 높이며 소리를 친다.

    “기다려! 그 XX 경찰서 가기 전에 잡아야 해. 경찰서에서 패면 골치 아프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