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17화 (117/204)

117화. 고난의 시간

1위 팀의 자존심으로 1차전은 이겼지만 거기까지. 억지로 이긴 1차전에 모든 전력을 쏟아부은 랩터스가 어린이날 연휴에 잠실야구장을 찾은 랩린이들 가슴에 대못을 박고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5월이면 아직 봄인데 봄터스의 전통을 무시하고 팀이 망가진다. 7할을 찍었던 팀 성적이 스윕패와 루징몇번을 당하니 5할이 금방이다.

그나마 일주일에 두어번씩 나오는 노장들이 서너번씩 나와주면서 상대 뒷순번 선발들한테 이겨주니 아주 나락으로 떨어지지만 않았을 뿐 날이 더워지면서 어르신들 체력 빠지면 계산이 아예 안 나는 상황이 펼쳐진다.

어딘지 모르게 감독의 머리숱이 적어진다고 느껴지고, 경기만 나가면 실책을 쏟아내는 어린 선수들이 경기가 끝나고도 훈련장에 남아 구슬땀을 흘린다.

“경준아. 우리가 이게 뭐 하는 짓이냐?”

“형. 어쩌겠어요. 제가 애들 알려주긴 하는데 아직 부족해요”

“애들 훈련 끝나고 따로 연습하는 건 맞지?”

“맞아요. 제가 형한테 배운 대로 알려주고 있다니까요”

“그렇지… 그래야지…. 내 훈련 시간 줄여서 이러고 있는데. 경준아. 각 잘 잡아서 돌리라고. 바쁘다고 대충하지 말고”

“아. 이거 섬세한 작업이네요. 쉽지 않아요.”

성적이 떨어지니 감독이 고육책으로 어린 선수들을 2군에서 끌어올린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같이 늦게까지 훈련했던 선수들이 1군에 올라오자 자연스럽게 내 동선을 따라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경기 후 둘만 있던 훈련장에 시커먼 사내들이 밤늦게까지 땀 냄새를 풍긴다.

2군에서 눈물 젖은 호텔부페를 먹던 선수들이 1군에서 훈련을 하는데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보인다. 팀에 장비 담당이 있음에도 뭘 부탁해야 하는지 몰라 쓰던 장비를 그냥 쓰는 신인급 선수들을 보면서 하면 안 되는 짓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칠칠치 못한 경준이 글러브 손질해주듯이 한명 두명 글러브, 스파이크. 이런걸 손봐주던 게 어느새 밤마다 후배들 장비를 수선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고귀한 일을 나 혼자 할 수 없으니 고무줄로 몸을 꽁꽁 묶고 타격 훈련을 하고 있는 경준이를 불러 같이 시켰다.

치열한 경기를 한 후 아무 생각 없이 글러브에 기름을 먹이고 있으면 잠깐 치열한 현실에서 벗어나 숨 쉴 구멍이 생기는 것 같다. 내가 장비 정비하는 걸 후배들이 불편해하지만 이 정도는 해줄 만하다. 오히려 나에게도 좋은 시간이다.

- 타이탄스와 랩터스, 랩터스와 타이탄스. 한 게임 차 2위와 3위의 순위가 바뀔 수 있는 경기를 잠실에서 보내드립니다.

- 최근 기세 좋게 치고 올라오는 타이탄스와 최근 주춤하는 랩터스의 경기예요. 양 팀 다 질 수 없는 승부에요

감독이 미쳤다. 감독이 이길 생각이 없다. 주말까지 치열하게 경기를 했다는 이유로 화요일 주중 첫 경기 할아버지들을 싹 다 빼고 2군에서 끌어올린 핏덩이들을 선발라인업에 올렸다.

1선발이나 외국인 투수 선발일 때 올렸으면 진정성이나 있지. 오늘은 5선발도 아니고 땜빵 선발이 들어오는 날인데 선발라인업을 다 뺀 건 지겠다는 말이지….

- 타이탄스의 1번 최강훈입니다. 지난 시즌 안 좋은 모습을 털어내고 이번 시즌 최고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최강훈 타석에 들어섭니다.

- 최강훈이 다시 돌아왔지요. 전체적으로 다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특히 타격에서 완전히 물이 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경기가 시작되고 첫 타석에 싸가지가 들어온다. 작년에 약사가 없어지고 약을 못 빨아서 그런지 성적이 곤두박질치더니 올해는 다시 회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는 거 보면 여전히 BQ는 영 아마추어인데 2년 전처럼 운동능력으로 극복하며 결과를 만들어 낸다.

볼 때마다 경이로운 반사신경… 저 약을 나도 빨아야 하나….

- 파울. 날카로운 타구가 파울라인을 벗어납니다.

- 스윙 매섭죠. 컨디션 굉장히 좋아 보입니다.

타구가 옆으로 빠졌으니 다행이지 안으로 들어오기만 했어도 무조건 안타가 될 타구. 저 빠른 타구를 잡기 위해 수비위치를 뒤로 옮기고 싶지만. 저놈의 발을 생각하면 여기서 1㎝도 움직이기 힘들다.

- 5구 볼. 첫 타자부터 3-2 풀카운트. 마운드의 백종오. 첫 선발 등판 경기 쉽지 않은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저놈을 잡을 방법은 없다. 마운드에 누가 있어도 저런 스윙을 가진 타자를 막아낼 방법은 없다. 볼질을 하느니 맞더라도 승부를 걸어보는 게 낫다.

“종오아! 공 좋아. 형이 잡아줄 테니까 그냥 던져”

첫 선발경기에 첫 타자부터 힘겨운 싸움이 시작되자 잔뜩 긴장한 투수. 가만두면 자기 공을 못 던질 것 같아 기운 내라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그냥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냥 기운이나 내라고 던진 말인데 저… 투수 놈… 진짜 그냥 던진다.

- 최강훈 타격! 투수 옆을 스쳐 지나가는 타구! 유격수 잡아서 1루 송구! 아웃! 김소전의 멋진 수비! 최강훈을 잡아냅니다.

- 이건 빠졌다고 봤거든요. 투수가 못 잡으면 무조건 안타가 되는 타구였는데 김소전 이걸 잡아냅니다.

- 최강훈 선수도 안타까워합니다. 억울한 표정입니다.

- 공 몰렸거든요. 실투였어요. 실투를 잘 받아쳤는데 그걸 저렇게 잡아버리면 타자 억울할 만해요.

재수가 좋았다. 무작정 몸을 날렸는데 그게 글러브로 빨려 들어왔으니 잡았지. 못 잡아도 뭐라고 할 수 없는 타구가 날아왔다. 속으로는 아싸를 외쳤지만 아까 한 말도 있고 해서 나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투수를 향해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손 한 번 들어줬다.

음… 이 정도면 멋있게 나왔겠지

- 백종오 선수. 김소전선수에게 굉장히 고마워합니다.

- 고마울 만해요. 맞는 순간 무조건 빠진다고 봤거든요. 김소전 선수도 입꼬리가 귀에 걸렸네요. 자기도 잘한 거 아는 거죠. 팬들이 불러주는 별명처럼 빛소전이에요

첫 선발에서 첫 타자를 잘 잡아내자 투수가 안정을 찾는다. 아직 어려서 투박한 공을 던지지만 그만큼 구위는 살아있다.

- 백종오 선수의 첫 선발등판. 실점 없이 1회 초를 넘어갑니다.

- 제구가 완벽하진 않지만, 구위가 좋아요. 지금처럼 자신감 있게만 던지면 상대 타자들 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 1회 말 랩터스의 공격입니다. 1번 타자 김소전부터 시작되는 타선입니다.

- 이번 시즌 김소전.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좋은 시즌을 보내고 있어요. 시즌타율 3할 5푼에 1번 타자로 나오면서 홈런을 벌서 6개나 뽑아주고 있거든요. 단점이 없는 선수가 돼가는 김소전이에요

어린 선수가 첫 선발로 나왔으면 편하게 던지게 해줘야 하는 게 형들의 의무다. 마운드의 경준이 친구가 내 말 듣고 씩씩하게 던져줬으니 나도 하나 보여준다.

- 4구 타격. 우중간을 가릅니다. 타자 2루까지. 2루타. 리그 최고의 1번 타자임을 증명하는 김소전의 타구입니다.

- 잘 치네요. 어느 투수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타자가 돼버린 김소전선수에요

- 김소전을 중심타선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습니다.

- 그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랩터스 중심타선의 홈런 개수가 떨어지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건데 김소전 선수가 지금처럼 계속 출루하면서 스코어링포지션에 나가주는 게 팀에 더 도움이 돼요. 뒤 타자들이 잘해야지 타순을 바꾸는 건 좋지 않아요

아쉽네. 마지막에 조금 더 끝까지 공을 밀어 올렸어야 하는데 요즘 밤에 타격 연습이 부족해서 그런가 마무리가 부족하다. 안 되겠다. 오늘 밤은 연습부터 하고 후배들 글러브 봐줘야지….

- 1루! 아웃. 1루에서 아웃이 되고 마는 노아. 잔루 1, 3루. 랩터스 좋은 기회를 잡고도 득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 김민중 감독 고민이 많아요. 1번에서 김소전이 계속 출루는 해주는데 해결을 못 하고 있거든요. 답답할 거예요

이젠… 포기다. 여전히 컨텍이 안되는 2번 타자 경준이와 더 이상 장타를 때리지 못하는 4번 타자. 그리고 맞으면 장타 안 맞으면 삼진인 5번 타자… 나 혼자 아무리 나가도 답이 없다.

3번에 라정안선배가 해결을 해주면 선취점을 내지만 타자가 잘 쳐도 3할인데 매번 안타를 때릴 수도 없고…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대책이라는 게 40살 먹은 선배들 컨디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니… 힘들다.

- 삼진! 이병환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하는 백종오! 5이닝 3실점. 첫선발등판경기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박종오 선수입니다.

- 좋은 선수네요. 김민중 감독이 말하는 대로 가능성이 보이는 투수예요. 기복이 좀 있기는 하지만 잘 다듬으면 좋은 투수가 될 자질이 있네요

- 스코어 3:1. 5회 말 랩터스의 공격 9번 타자 민수경부터 시작됩니다.

꾸역꾸역 이긴 해도 5회를 버텼다. 마운드에서 흘린 땀만 5㎏은 될 거 같지만 그래도 첫 선발등판에 5회를 버텨냈다. 대견한 놈. 후배가 저렇게 씩씩하게 던지는데 선배가 가만있으면 안 되지. 형이 너 꼭 승리투수 만들어 준다.

- 민수경! 기습번트. 3루 파울라인을 따라 흐르는공. 3루수 박기석 지켜보고 있습니다. 공 멈춥니다. 민수경의 기습번트 성공합니다.

- 야구센스가 좋은 민수경이에요. 3루수 위치를 보면서 그쪽으로 번트를 댔어요. 시도도 좋았고 코스도 좋았네요. 타격이 안될 때는 이렇게 번트라도 대서 나가야 해요

한 경기에 내 앞에 주자 있는 경우가 몇 번 안 오는데 오늘 벌써 두 번째다. 이런 날 쳐야 한다. 집중! 집중이다.

- 김소전 앞에 또다시 발 빠른 주자가 나가 있습니다.

- 2회 초에도 김소전의 중전안타로 선취점을 뽑은 랩터스거든요. 랩터스는 김소전 앞에 주자를 계속 모아야 합니다.

5회 말에 첫 타자에게 기분 나쁜 번트안타를 맞은 투수가 괜히 나한테 화풀이를 한다.

- 빠지는 공. 몸쪽 깊숙이 날아듭니다.

- 조심해야 해요. 너무 깊게 들어가거든요. 오해를 살 수 있어요

내가 어지간하면 맞고라도 나가는데 오늘은 안 돼요. 오늘 경준이의 헤드업은 오뚜기 수준이고, 3,4,5번도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이 안 생겨요. 내가 쳐야 한다고요.

- 1루 견제. 1루 주자의 리드가 컸습니다.

- 민수경선수 주루센스가 좋고 단독 도루도 가능합니다만. 지금 뛸 상황은 아니에요. 투수가 주자의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어요

잘한다. 민수경선배가 몇 번 못 나가서 그렇지 나가기만 하면 주루는 잘한다. 뛰지는 말고 그렇게 흔들기만 합시다. 괜히 1루 비워주면 나 또 볼넷으로 나가야 하니까 그건 안 돼요.

- 피치아웃. 공 하나 빼보는 권대운

- 이럴 필요 없는데요. 타이탄스 배터리 민수경선수 움직임에 말리고 있어요

볼을 하나 주고 시작한다고? 핸디캡 잡아주는 거야? 그러면 고맙지 뭐. 자 이제 뭘 던질 거냐!

- 2구! 크게 날아갑니다. 중견수 뒤로~ 중견수 뒤로~ 중견수 잡지 못하고 공 워닝트렉에 떨어집니다. 1루 주자 3루~ 3루 돌아서 홈까지! 타자주자 2루까지 1타점 2루타! 김소전! 추격을 시작하는 랩터스입니다.

- 잘 맞은 타구가 중견수 뒤로 날아갔어요. 최강훈 선수 잘 따라갔는데 첫발이 아쉽네요. 딱 한발 차이였거든요.

- 중견수 최강훈 굉장히 아쉬워합니다.

안 넘어가네. 훈련 부족이다. 넘어갔어야 하는데 안 넘어간다. 반성해야 한다. 내 실력에 무슨 후배들을 챙기고 있어. 오늘부터 내 것부터 하고 후배들 봐준다.

-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는 잠실입니다. 4:4동점. 9회 말 랩터스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됩니다.

- 이번 3연전 결과에 따라서 팀 순위가 바꿔요. 양 팀 모두 질 수 없거든요. 끝까지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 감독이 생각이 없는 거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무개념인 줄은 미처 몰랐다. 아니 알고는 있었는데… 해도 너무하지….

월요일 하루 쉬었다고 3연투했던 선수들이 화요일부터 우르르 몰려나와 원포인트로 아웃카운트를 잡아간다. 아무리 계투진을 못 믿어도 그렇지 투수들이 야수도 아니고 매일 출근을 시키면 어깨든 팔꿈치든 어딘가 고장나는데… 백정도 아니고 진짜….

이 경기 연장가면 투수들 팔 더 갈려 나갈 테니 여기서 끝내야 한다. 무조건 끝낸다.

- 9회 말 마지막 공격. 선두타자 8번 오정찬 타석에 대타 김민구 나섭니다.

점점 감독의 야구보는 눈에 의심이 생긴다 좌우 놀이한다고 좌타자를 내는데 타이탄스의 차대영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잘던지는 투순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 차대영은 은퇴할 때까지 좌우 놀이 따위는 통하지 않는 투수라고….

- 삼진! 김민구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차대영. 다음 타자 9번 민수경 대신 대타 박동수. 박동수 선수가 나옵니다.

저… 저기요. 감독님. 뭔 생각이신 거죠? 오늘 번트지만 안타 친 민수경선배 빼고, 박동수선배 라니요… 지금 내야수 빼면 10회에 2루에는 누구를 쓰시려고요? 아. 감독님아….

- 삼진! 연속 삼진을 잡아내는 차대영! 랩터스의 좌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있습니다.

괜히 투수 기만 살려줬어… 내가 가서 뭐 하라고….

- 9회 말 마지막 공격. 2사 주자 없이 타석에 김소전입니다.

- 오늘 2루타만 두 개 쳐내고 있는 김소전이죠. 투아웃이지만 쉽게 승부해선 안되는 타자예요

뭐야? 웃어? 지금 나보고 웃어? 내가 만만해?

투아웃에 주자가 없어 뭘 해야 하나 걱정 가득 안고 타석에 들어가는데 저 마무리투수 놈이 웃는다. 어디 지금 해보자는 거지?

야구가 왜 9회 말 투아웃에도 경기하는지 보여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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