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16화 (116/204)
  • 116화. 버티기

    무너진 투타 밸런스. 무너져야 정상인 상태로 1위를 달려 나간다.

    시즌 초부터 투수진은 붕괴 직전이지만 은퇴 날짜 받아둔 노장들이 상대 팀의 1, 2선발을 제외한 다른 투수들을 박살 내버린다….

    TV에서 연일 랩터스의 돌풍을 찬양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매일 매일 1, 2점 차 승부. 경기 막판만 되면 짜내고 짜내면서 만들어 내는 1점. 이기고 있으니 모르지, 팀의 피로도가 극한에 다다른다.

    - 5월 5일 어린이날, 1위 랩터스와 3위 소닉스의 어린이날 매치가 잠실에서 펼쳐집니다.

    - 금, 토, 일 주말 연휴죠. 오늘 어린이 팬들이 잠실을 꽉 채웠습니다. 오늘 같은 경기는 선수들이 더 신경 써서 이겨줘야 해요. 이때 이긴 팀 어린이들이 커서까지 팬이 되는 거예요

    어린이날 잠실 매치. 힘들다. 경기 준비하기도 바쁜데 뭐 이렇게 시키는 게 많다. 그래도 작년까지는 팬 사인회만 했는데 올해는 공룡 옷 입고 애들 장난감도 나눠줘야 했다.

    홍보팀에서 고액연봉자라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의무라고 하는데 좀 의문이 생긴다. 계약서를 아무리 뒤져봐도 공룡 옷 입고 장난감 나눠줘야 한다는 얘기는 없는데 아무래도 사기당한 것 같다.

    “와~ 김소전이다~”

    “안녕. 잘생겼네. 선물”

    “와~ 못생겼는데 착해”

    뭐. 내가 너 상처받을까 봐 못생겼다고 안 했데. 뭐라고?

    “아들! 엄마가 못생긴 사람한테 못생겼다고 하면 안 된다고 했지! 사과해”

    “김소전 아저씨 못생겨서 못생겼다고 한 거 죄송합니다.”

    저… 꼬맹이. 이게 지금 사과냐! 옆에 엄마만 없으면 한 대 쥐어 박는 건데. 잠깐 저 엄마는 지금 뭐라고 했지?

    “호호호. 김소전선수 팬이에요. 우리 애도 리틀야구단 선순데 유니폼에 사인 좀 해주세요”

    오호~ 싸인. 그럼요. 제가 리그에서 팬서비스 가장 잘해주는 사람인데 해드려야죠.

    -커서 형 닮은 선수가 되세요~ NO. 75 김소전-

    “우아앙~ 엄마 나 커서 쟤처럼 생겨지면 어떡해! 어… 엉 엉”

    “아들! 엄마가 좋은 생각만 하고 사는 거라고 했지. 키만. 키만 닮아. 그러면 돼. 아들은 본판이 잘생겨서 괜찮아.”

    뭐… 뭐야 이 아줌마

    “호호. 김소전 선수 고마워요~”

    갑작스럽게 일격을 당해 변변히 반격도 못 하고 그 자리에 멈췄다. 억울해서 혼자 씩씩대고 있는데 주변에 있는 애들이 여론몰이를 시작한다.

    “김소전이 쟤 울렸어!”

    “야구선수가 어린이를 울렸다.~”

    “엄마~ 김소전이 초딩 때렸대”

    “아빠~ 김소전한테 맞아서 병원 갔대~ 아빠~”

    미… 미친… 이 어린것들 멱살 잡고 싸울 수도 없고… 난 억울하고 눈에서 눈물이 맺히려 한다.

    “꼬맹이들 얼음! 누나랑 사진 찍을 사람 여기 모여”

    “와~ 루다다~ 이루다다~”

    “다들~ 줄을 서시오~ 줄 서서 누나랑 공룡이랑 같이 찍어요~”

    “못생긴 공룡이랑 찍기 싫어요!”

    “누나가 비밀을 하나 알려줄게. 누나가 원래도 예쁘지만, 더 예쁜 이유가 뭔지 알아?”

    “뭔데요?”

    “못생긴 애들 옆에서 사진 찍어서 더 예쁘게 나오는 거야. 누나랑 같이 사진 잘 찍고 싶은 사람 이리 오세요~”

    얘는 애가 아니니까 멱살 잡고 싸워도 될까? 머리가 기니까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는 게 유리할까?

    머릿속에서 워류겐과 아따따뚜겐 커멘드를 입력하는 사이 길고 길었던 팬과의 시간이 끝난다.

    “도와줘서 고맙다.”

    “얼~ 김소전 사람 됐네. 고맙다는 얘기도 하고 누나가 어린애 업어 키운 보람이 있다.”

    게임 종목을 바꿔야겠다. 108식으로 견제를 하고, 100식으로 귀신을 태우고 101식으로 마무리….

    “너 눈빛이 왜 그래? 여태 나한테 감사할 것들 생각하냐? 내가 적어줘?”

    시작도 안 했는데 졌다. 이건 뭐. 말이 통해야 싸움을 하든지 하지… 감사할 거 생각하냐니… 포기다.

    “감사하는 김에 더 해봐. 오늘 사진 찍은 거 잘 포장해서 방송 내보내면 반응 괜찮을 거다. 자 경기전 영상은 충분히 뽑았으니 누나는 경기브리핑 준비 간다. 슬쩍 네 얘기 던질 테니까 오늘 잘해라. 누나한테 한턱내고”

    지혼자 뭐라 뭐라 떠들고는 사라졌다. 무서운 꼬맹이들을 잘 처리해 준 고마움 따위는 이미 없어졌고, 경기전 영상을 내보낸다는 것만 머리에서 떠다닌다.

    이번엔 또 무슨 이상한 걸 내보내려고… 두렵다. 이걸 묻어버리려면 방법은 하나. 사전행사가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경기에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

    오늘 나는 한국시리즈 7차전이다!

    - 6회 말 소닉스의 2점을 추가하며 8:7. 한 점 차까지 추격하는 소닉스. 경기 초반 큰 점수차를 포기하지 않고 야금야금 쫓아가고 있습니다.

    - 초반부터 큰 점수차가 났음에도 포기하지 않은 소닉스 선수들을 칭찬하면서 랩터스 선수들에 대해서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네요.

    - 랩터스가 수비가 불안합니다.

    - 불안이 아니라 안일해요. 기본에 충실한 수비를 해야 하거든요. 지금 에러가 몇 갭니까. 이러면 안 돼요

    1번으로 선발로 출장해서 분노의 2루타를 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랩터스의 타선이 터졌다. 1회에 8점을 뽑아내면서 투수가 맘 놓고 던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놨는데… 경기가 꼬인다.

    1회에 6-4-3 병살 상황에서 베이스 커버들이오는 2루수의 스텝이 꼬여 타자주자를 살려주는 것부터 시작된 이상한 플레이가 이닝마다 나온다.

    바람도 안 부는 화창한 날에 외야수가 공을 놓치지 않나, 3루에서 날아오는 송구를 받던 1루수가 베이스를 못 밟아서 주자 올세잎을 만들어 주지 않나… 투수 멘탈이 털려버릴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

    랩터스의 삽질이 이어지자 1회 절망에 빠졌던 소닉스의 경기력이 서서히 올라온다.

    - 8회 말. 1사 만루. 소닉스의 여민석입니다.

    - 만루에 강한 여민석이에요. 랩터스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지 모르겠네요

    안되는 날이다. 답이 없다.

    2루수가 에러 2개, 1루수가 1개, 우익수 1개. 그것도 모자라 포수 패스트볼이 2개… 소닉스 이기라고 밥을 떠서 먹여주고 있는 수비진.

    감독이 투수들을 갈아 넣으면서 한 점 차 승부를 끌고 가지 만 이건 진짜 쉽지 않다. 한 점을 줘도 아웃카운트를 늘리는 수비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한 점도 안주는 수비를 해야 하는가.

    점수를 주면 우리가 9회에 점수를 낼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복잡한 머리로 덕아웃을 바라보자 덕아웃에서는 외야를 당기고 내야에 더블플레이 할 것을 지시한다.

    내야 더블플레이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외야를 당기는 건 좀… 불안한데….

    - 초구 그대로 바라봅니다. 박요훈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갑니다.

    - 박요훈 올라와서 직구 위주의 승부를 가져가고 있거든요. 변화구를 언제 던지냐가 관건이 될 것 같아요

    뒤에서 보면 느껴진다. 박요훈도 늙었다. 진짜 이놈의 팀 쓸만한 선수는 죄다 늙었다. 직구 구속은 나오지만, 구위가 작년의 구위가 아니다. 이제 5월 촌데…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 투수 발풀고, 2루 주자 재빨리 귀루합니다.

    - 소닉스 단번에 역전을 노리는 것 같은데 욕심을 너무 내면 안 돼요. 차근차근해야죠

    2루 주자의 리드가 평소보다 조금 더 크기에 주자를 묶어두기 위해 주자 등 뒤에서 요란하게 움직였다.

    화들짝 놀라면서 2루로 되돌아가는 주자. 이렇게 주자가 묶였으면 투수가 공을 던져야 하는데… 우리 포수님도… 오늘 안된다.

    2루의 움직임을 보고 투수에게 발을 빼라고 소리를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무래도 3루 주자의 움직임이 신경이 쓰였던 것 같은데… 지금 1사 만루에 무슨 작전이 걸리겠냐고요. 타자도 만루에서 4할을 치는 여민석인데!

    오늘 왜 다들 이러는 거야….

    - 여민석 밀어냅니다.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3루 주자 들어오고 2루 주자 스타트가 늦었습니다.

    한번 속았다고 겁도 없이 리드를 늘리는 2루 주자. 그렇다고 이 꼴을 그냥 볼 수는 없으니 이번엔 2루로 뛰어가면서 소리까지 질러본다.

    내 고함에 깜짝 놀란 2루 주자가 허둥지둥 귀루를 하는 중에 던져진 공. 타구의 90%를 잡아당겨서 우익수 쪽으로 날리는 여민석의 배트가 마지막에 살짝 꺾인 슬라이더에 밀리고 만다.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공. 전진 수비를 했다고는 해도 40 먹은 조영근의 어깨로 3루 주자를 홈 송구로 잡는 건 불가능하다. 홈 송구를 포기하고 앵커인 나에게 던져진 공. 상황이 묘해진다.

    내 페이크에 속아서 2루로 돌아갔다 다시 달려 나가는 2루 주자. 공이 나에게 연결되는 동안 간신히 3루에 들어간다.

    간신히 3루에 들어갔으면 얌전히 있을 것이지 쓸데없이 베이스를 크게 밟는다. 어차피 홈은 의미도 없겠다. 글러브에 들어온 공을 그대로 3루로 뿌려본다.

    - 3루. 장준태 오버런! 아웃! 아웃입니다. 소닉스 비디오판독 신청합니다.

    - 경기가 전반적으로 어수선하네요. 지금 욕심낼 필요가 없었는데 거기서 왜 돌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이래서 중계되는 공은 끝까지 보고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외야에서 날아오는 공을 중간에 잡아서 다른 아웃카운트를 노릴 수도 있는데 어째 나한테 속아서 열받은 거 같더라니 질주본능을 숨기지 못했어. 나야 고맙지

    - 아웃! 라정안선수 태그가 빨랐습니다.

    - 랩터스의 김소전-라정안라인은 믿음직스럽네요. 좋은 수비와 안타까운 주루가 나왔어요

    2루 주자를 3루에서 잡은 건 좋은데 그래봐야 동점을 허용했다. 8회 초까지 지켜온 리드가 한순간에 날아갔다. 그리고 여전히 2아웃 주자 1, 2루. 쉬운 상황이 아니다.

    - 소닉스 김희순 타석에 들어섭니다.

    - 지금은 자신감 있게 해야 해요. 비슷하면 쳐서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해요

    힘있게 잡아당기는 우타자가 타석에 들어온다. 투아웃인데 발은 그다지 빠르지 않은 잡아당기는 타자. 그러면 뒤로 가야지.

    - 랩터스 깊은 수비를 펼칩니다.

    - 김희순 선수의 타격이 잡아당기는 면이 있죠. 유격수와 3루수가 깊은 수비를 펼치고 있는 게 보여요

    내가 뒤로 물러나자 3루수 주장 라정안선배도 뒤로 물러난다. 수비를 할 때는 이런 맛이 있어야 하는데… 반대쪽은… 그래 이런 거 바라지도 않으니까 잡기나 잘해줘

    - 김희순의 강한 타구! 유격수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갑니다.

    - 아까웠어요. 지금 좋은 타구였거든요. 유격수 김소전선수 이걸 잡아내네요.

    - 타구 속도가 170㎞가 나왔습니다.

    - 이 정도면 공이 빨려 들어갔다고 봐야겠네요. 글러브에 공이 빨려 들어갔어요

    확실히 할 수만 있으면 최대한 뒤에서 공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여유를 가지고 공을 잡지. 지금도 조금만 앞에 있었으면 글러브 늦었겠네

    - 8:8 동점에서 랩터스의 9회 초 마지막 공격이 시작됩니다.

    1회에 8점을 뽑고 그점수로 여기까지 왔다. 1회에 2루타 칠 때까지만 해도 여유롭게 이기고 갈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 박상원. 1루 땅볼 아웃. 다음 타자 오늘 멀티히트 경기를 하고 있는 김소전입니다.

    - 랩터스 야구 혼자하고 있죠. 1회 이후로 출루한 건 김소전밖에 없어요. 랩터스 선수들 집중력이 떨어지면 안 돼요

    대기타석을 봐도 기대가 안 된다. 내가 아무리 치고 나가면 뭐 하나 뒤 타자들 상태가 별론데.

    혼자 나가봐야 나를 불러들여 줄 타자가 없으니…. 기운이 빠진다.

    - 파울. 김소전 초구를 3루 관중석으로 날려 보냅니다.

    점수를 내려면 무슨 수를 써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치사하게 공을 던지는 투수 놈. 사람이 예의가 없어요. 예의가.

    - 4구 잘 참아냅니다. 떨어지는 공을 참아내는 김소전입니다.

    - 김소전 올해 선구안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삼진이 볼넷보다 두 배 이상 많았거든요. 올해는 볼넷이 삼진보다 두 배가 많아요. 투수 임기범선수 정교한 제구를 해야 해요

    겨우내 미친 우완이랑 훈련해서 그런가 어지간한 오른손잡이들이 던지는 공은 다 거기서 거기다. 소닉스 임기범이 투심 장인이라지만 그래봐야 뉴욕에서 3승을 하고있는 이시윤의 짧은 슬라이더만도 못한 공이다.

    - 김소전! 공을 하늘로 띄웁니다. 크게 날아가는공! 랩터스 어린이 팬들의 함성이 잠실을 뒤덮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