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15화 (115/204)
  • 115화. 산뜻한 출발

    야구전문가는 펠레보다도 위대하는걸 증명이라도 하듯 시즌 초반 랩터스의 상승세가 무섭게 달아오른다.

    개막 2연전 포함 홈 5연전을 싹 쓸어간 랩터스가 1번 선발진이 5이닝을 못 버티고 강판당하는 가운데도 난타전을 펼치며 주말 3연전에서도 위닝시리즈를 가져온다.

    지난 시즌까지 탄탄한 투수력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야구를 구사했던 랩터스가 이번 시즌엔 방패 따윈 치워버리고 닥공으로 적들을 물리친다.

    그리고 그 작전의 핵심엔 그저 존재 자체가 빛인 김소전의 활약이 있다.

    - 8회 초 6:7 2사 주자2로. 랩터스의 공격. 타석에는 김소전 2루에는 임선엽입니다.

    - 김소전선수가 결정을 지어 줘야 하는데 1루가 비었어요. 엘리펀츠 입장에서는 걸러도 좋다는 생각으로 상대해도 되요. 경기 넓게 봐야 해요

    - 타석에는 김소전은 오늘 4타수 3안타를 기록하고 있지만 다음 타자 노경준은 4타수 무안타 삼진 2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즌 초반 극심한 슬럼프를 겪고 있는 노경준이니만큼 1루를 채워도 좋지 않겠습니까?

    - 그렇죠. 1루 주자까지 나가면 역전주자가 나가게 되지만 최근 김소전선수의 타격감이 굉장히 좋거든요. 반면에 노경준선수는 2년차 징크스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1루를 채우는 게 현명한 판단이에요

    볼질을 하던 삼진을 잡던 마운드에 서면 시원시원하게 던지면서 이닝을 먹어주던 1선발이 빠지자 투수진이 전체적으로 부진에 빠졌다.

    1선발 하나가 이닝을 못 먹어준다고 중간계투진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중간계투들이 흔들린다고 선발투수들이 같이 흔들리는 뭣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

    그나마 랩터스 전력분석팀과 코치진의 헌신적인 시프트 연구가 점수를 억제하고 있지만 미친 듯이 맞아 나가는 타구를 전부다 막아낼 수도 없고… 방법은 맞은 만큼 점수를 더 뽑아내야 하는 건데… 점수를 뽑아내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뒷놈들이 쳐야 점수를 뽑아내지… 에효….

    - 볼넷. 엘리펀츠 1루를 채웁니다.

    - 좋은 선택이에요. 지금 김소전을 굳이 상대할 필요가 없거든요.

    - 랩터스 대타. 강정상입니다.

    - 김민중 감독 지금이 승부처라고 본 거예요. 강정상의 한방이 필요한 시간이에요

    경준이… 이번 시즌 탐욕에 눈이 멀어 스윙이 자꾸 커진다. 내가 계속 그러면 안 된다고 알려주면 그 자리에선 알아듣지만 너무나도 좋아진 자기 실력에 타석에만 들어서면 백스윙이 커지면서 배트가 퍼져 나온다.

    그나마 내가 루상에 있으면서 직구 던지라고 상대 팀 배터리에게 강요를 하지만 이제 내가 뛰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배터리들은 2루 도루를 내줄지언정 경준이에게 직구를 던져주지 않는다.

    참고 참고 또 참던 감독이 이번 경기 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욕심에 찌든 멍청이를 빼버리고 이번 시즌까지 뛰고 은퇴를 선언한 강정상 선배를 대타로 집어넣는다.

    그리고 엘리펀트의 움직임을 보면서 절망에 빠졌다.

    - 엘리펀트도 투수를 교체합니다. 마무리 조은식이 올라옵니다.

    - 이승혁 감독 조은식 선수에게 아웃카운트 4개를 맡기겠다는 거거든요. 김민중 감독 다른 수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주자 1, 2루에 놓고 직구 말고는 못 치는 경준이에게 상대 팀에서 직구를 던져줄 리가 없다. 2루 주자가 발이 빠르다고는 해도 투아웃에 3루 도루를 감행하기가 쉽지 않기에 투수는 계속 변화구만 선택할 것이다.

    똑똑한척하는 감독이 그걸 알고 이제 직구는 못 치는, 하지만 여전히 노림수로 변화구는 때려낼 수 있는 강정상을 대타로 내밀었다.

    랩터스 감독의 뻔한 수를 모를 리가 없는 엘리펀츠가 1점 차 리드를 지켜내기 위해 필살기를 꺼내 든다. 직구 스피드만으로도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마무리가 1과1/3이닝을 지켜내기 위해 등판한 순간 이 경기의 승패가 거의 결정된다.

    - 좌타자 강정상을 상대해야 하는 조은식. 포수와의 사인을 교환하고 셋 포지션에 들어갑니다.

    포수와의 사인 안 봐도 훤하다. 제구도 정교하게 하지 않고 무조건 빠른 공 던지겠지. 강정상 선배의 배트가 140 후반 정도라면 어떻게든 쫓아가겠지만 150이 넘어가면 절대 못 때린다.

    그건 확실한데. 그럼 이 사태를 어찌 해결해야 하는가….

    - 초구 스트라이크. 151km의 빠른 공이 타자의 배트를 피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합니다.

    - 강정상 선수 초구를 놓쳤어요. 가운데로 살짝 몰린 공인데 놓치면 칠 게 없거든요. 집중하고 덤벼들어야 합니다.

    초구를 큰 스윙으로 놓친 타자가 투수를 노려보고는 타격자세를 잡는다. 투수와 타자 사이의 답이 결정되어 있는 승부. 타자가 어떻게든 자기 역할을 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 지금 1루 주자의 리드가 큽니다.

    - 조은식 선수 지금 주자에게 신경을 쓸 때는 아니에요.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해야 해요

    뭐라도 해야 하기에 리드라도 길게 가져가 본다. 2루에 선행주자가 길막을 하긴 하지만 이런 미친 짓이라도 해줘야 투수의 심기가 불편해지지, 정상적인 상태에서 저 둘의 대결… 승산이 전혀 없다.

    - 2구 파울. 150㎞의 공을 커트해내고 마는 강 정상

    - 타이밍이 조금 늦었어요. 더 밀리면 안 됩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공략을 해야 해요

    역시... 강정상선배 배트가 무겁다. 경쾌한 맛이 하나도 없는 몸놀림…. 이대로는 쉽지 않은데. 투수 놈아 나 좀 보라고!- 지금 1루 주자의 스타트가 굉장히 좋았습니다.

    - 파울이긴 했습니다만 그 짧은 시간 동안 1루 주자가 2루 주자 바로 뒤까지 붙었어요. 이러면 엘리펀츠 부담스러워집니다. 타자에만 집중할 것인가 동점주자, 역전주자를 막아낼 것인가. 엘리펀트의 배터리가 선택해야 해요

    글러브로 입을 가렸지만, 투수가 욕을 하고 있는 게 필터링 없이 들린다. 옳지 잘한다. 욕해줘~ 더 해줘~

    - 볼. 공 하나 빼보는 엘리펀츠 배터리

    - 빠졌죠. 어깨에 힘이 들어가네요. 그럴 필요 없어요. 조은식 선수 구위 좋아요. 힘 빼고 상대해도 됩니다.

    딱히 다른 수단이 없으니 쓰는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먹히고 있다. 강한 공을 던지는 조은식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 얼굴을 최대한 아닌 척하면서 마운드에 오르지만 등 뒤에 주자가 흔들어대면 쉽게 영향을 받는다. 그냥 성격이 성격.

    아직 어릴 때야 공이 워낙 좋으니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나중에는 KBO 대표 새가슴으로 낙인이 찍히며 팀의 마무리 자리까지 내줄 것이다.

    - 투수 발 풀어봅니다. 1루 주자 2루 베이스 거의 절반까지 나갔다가 황급히 들어옵니다.

    - 이거 무모해요. 아무리 엘리펀츠가 1루 주자를 묶어두지 않는다고 해도 너무 멀리 나가 있어요.

    아우 XX. 발 풀 거면 푼다고 얘기라도 해주던가. 깜짝 놀랐네.- 다시 한번 발을 풀어보는 조은식. 1루에서 가벼운 설전이 일어납니다.

    “적당히 해라.”

    “그럼 베이스커버 들어오셔야지요”

    “뭐? 많이 컸네. 따박따박 말대답도 하고 많이 컸어.”

    원래 키는 내가 더 컸거든요.“저 바쁘니까 커버 안 들어오실 거면 계속 뒤로 빠져 주세요”

    “아. 이 야구 X같이 하는 XX. 너 조심해라.”

    조심하라고 하면 겁이라도 먹을 줄 알고? 겁먹어서 그러는 게 아니고 내가 김해영 선배 입장도 있으니 반발만 덜 나갈게

    - 4구 볼. 포수 1루 견제~

    - 아니에요

    - 공 뒤로 빠집니다. 1루수 김해영 커버가 늦었습니다.

    1루수가 계속 뒤로 물러나고 있어 7미터 이상 리드를 잡고 있으니 아무리 주자를 무시하는 투수라도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게 보인다. 다시 한번 어깨에 힘이 들어간 투수. 존안으로 던지지 못하고 밖으로 빠져나온다.

    투수보다 인내심이 더 없었던 포수가 1루로 돌아올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주자를 잡기 위해 공을 던진다.

    문제는 주자뿐만 아니라 1루수도 1루로 들어와야 하는 거리가 너무 멀다.

    - 2루 주자 3루 돌았습니다. 2루 주자 홈인 1루 주자 3루까지. 3루 돌아 들어오진 않습니다. 8회 초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랩터스 7:7 동점. 경기 지금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 주자를 신경 쓸 거면 처음부터 묶어두거나 신경 안 쓸 거면 계속 신경 안 썼어야 해요. 엘리펀츠 최악의 결과가 나오네요

    아휴 숨차. 죽는 줄 알았네. 투수만 흔들 생각이었는데 포수까지 같이 흔들릴 줄이야. 그래도 똘똘한 임선엽 선배가 홈까지 잘 들어가 줘서 다행이네. 이제 동점. 이번에도 뒤집을 수 있다.

    - 볼카운트 2-2. 주자 3루. 타석에는 강정상입니다.

    - 어차피 변화구는 없어요. 강정상이 직구에 대응하느냐 못하느냐가 이번 승부에 키에요

    화가 잔뜩 난 우투수와 눈을 맞췄다. 나는 네가 너무 사랑스러운데 너는 왜 나를 죽일 듯이 바라보냐?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다. 너도 나 겪어보면 알 거야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투수와 눈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지만, 화가 많이 났는지 투수의 표정이 좋아질 생각을 안 한다.

    사람이 사람을 설득하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닌데. 계속 눈을 맞추며 3루에서도 리드를 키워나간다.

    - 투수 자세를 풀어봅니다.

    - 3루 주자 리드가 커요. 무모할 정도로 커요.

    - 김소전선수 웃습니다. 야구가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이 말이거든요. 현역 때 야구를 이기기 위해서만 했지, 즐기면서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김소전선수는 즐기는 것 같기도 하네요. 부럽습니다. 야구를 즐기면서 하면 어떤 기분일까 부러워요

    사람이 말이야. 내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면 같이 사랑을 싹틔워줘야지 계속 그렇게 눈을 욕하면 잘하는 거에요? 나쁜 거예요? 이러면 나한테 혼나야지

    - 5구. 공 뒤로 빠집니다. 3루 주자 홈인. 8회에 기어이 역전에 성공하고 마는 랩터스! 조은식 선수 블론세이브를 기록합니다.

    내가 원한 게 이런 게 아닌데. 오래 보면서 계속 눈 맞춤해서 머릿속에 나만 생각하게 하려고 한 건데. 실패했네.

    집에 가라니 가지만 다음엔 우리 오래 봐요~

    - 강정상 삼진. 조은식 강정상을 삼진으로 잡아내고 악몽 같은 8회 초를 끝냅니다.

    - 엘리펀츠. 랩터스의 주루플레이에 너무 흔들렸어요. 그래도 8회 말 엘리펀츠도 1번부터 시작하거든요.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강정상 선배가 결국 빠른 공을 극복하지 못하는 걸 보고 수비를 나가려고 하는데 수비 코치가 나를 부른다.

    “소전아 센터다. 나갈 선수가 없다.”

    자… 잠깐. 경준이가 나가고… 박동수 선배는 아까 교체고. 우익수도 바꿨고… 아… 감독 이 멍청한 놈. 선수교체를 어떻게 하는 거야!

    - 8회 말 랩터스의 수비위치 변화가 많습니다. 포수에 김도식, 유격수에 대주자로 들어왔던 임선엽이 들어가고 유격수 김소전이 중견수로 이동합니다.

    - 지난 시즌에 유격수로 풀타임 출장한 김소전선수인데 한 시즌 만에 다시 포지션 이동이 시작되네요. 김소전 선수 포지션이 고정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데 제가 봐도 팀 사정상 그러기 힘들 거 같아요.

    어떻게 잡은 내 자린데… 이렇게 또 떠돌이가 되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감독놈! 우선 저 엘리펀츠 놈들부터 잡아내고 감독 잡으러 간다.

    - 잘 맞은 타구. 중견수 따라붙습니다. 중견수! 중견수! 중견수 김소전 워닝트렉에서 잡아냅니다.

    - 저거거든요. 저러니까 감독이 김소전을 믿고 자유로운 대타작전을 쓸 수 있는 거예요. 랩터스 이번 시즌도 강력한 우승 후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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