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14화 (114/204)
  • 114화. 비상

    한국 스포츠 방송에 샛별이 등장했다. 생긴 건 우크라이나에서 밭 갈게 생긴 신인 아나운서가 대한전자 은하수 핸드폰 하나 딸랑 들고 혈혈단신으로 10개 팀 스프링캠프장을 기습방문해서 굴욕 샷을 마다하지 않고 진상짓을 벌인다.

    이번 시즌 고액 FA 계약을 맺는 선수들한테는 받은 계약금으로 어떤 건물을 사야 하는지 재테크 상담을 해주고, 지난 시즌 폭망해 연봉이 반 토막 선수한테는 다른 직업 적성검사를 해준다. 그것도 모자라 남자는 다다익선이라며 각 구단에 잘 생기고 어린 선수들을 골라 억지로 자기와 맞팔을 맺고는 DM으로 미공개 프로필사진을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 팀의 단장과 감독을 찾아가 지난 시즌 잘못한 것들만 쏙쏙 골라서 직접적으로 캐묻는다. 다른 방송인들처럼 적당히 돌려 까는 게 아니라 가장 논란이 됐던 경기, 사건을 일일이 지목하면서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하는 건지 정확히 묻고 사과를 받아 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징계를 받을까 봐 인터넷으로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이 SBC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방송국 프로그램들까지 다 잡아먹으며 야구 분야 검색어 순위 1위를 찍어낸다.

    다들 좋아한다. 선수들도 팬들에 노출돼서 더 친근감이 생기고, 구단도 팬들이 늘어나면서 좋아한다. 단 한 명만 빼놓고….

    “형~ 저 팔로워 또 늘었어요. 이제 10만! 10만!”

    “경준아 SNS 하지 말라고! 그거 인생 낭비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하냐!”

    “형. 저도 그러고 싶은데…. 이거 좀 보실래요? 팬이라고 DM이 왔는데…. 사진인데…. 한번 만나자고….”

    이 개념 없는 XX가. 음…. 하…. 음….

    “야! 이거 다 보정이야. 요즘 중국 뭐시기 사진 앱 쓰면 너도 원빈으로 바뀐다고! 사진빨에 속지 마!”

    “네…. 형…. 그런데 형은 진짜 인별안해요?”

    “난 안 해.”

    “하긴…. 형은. 안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형 어제도 야구파크에 댓글이…. 어휴…. 안 보는 게 나아요”

    안보긴. 내 유일한 취미가 내 기사 찾고 내 관련 글 찾아서 댓글까지 정독하는 거다.

    루다의 핸드폰 하나로 촬영한 스프링캠프 프로그램. 자기만 핸드폰 하나 들고 다녔지 그 뒤로 수십 명의 스텝이 쫓아다닌 프로그램 탓에 남들은 분유왕, 효자왕자 뭐 이런 별명들이 붙었는데….

    나는 혐이다…. 국민 혐…. 이 XXX들. 여신님 한테 함부로 한다고 내 사진이 올라가면 혐표시가 붙는다. XXX들.

    언제는 루다한테 집적거리지 말라 그러더니 루다 떨구면 루다한테 공손하게 안 한다고 XX….

    야구선수가 야구만 하면 되지. 야구 외적인 거로 욕하는 XX들이 제일 나쁘다. 옛날에 야구 못할 때는 악플이라도 달리라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무플은 안되고 선플을 달라고! XXX들아!

    악플을 볼 때마다 쭉쭉 차오르는 분노 게이지를 타구에 실어 날려 보낸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가 다르게 타구의 질이 좋아진다. 악플조금만 더 받으면 잠실에서도 장외를 때려낼 것만 같다.

    2028시즌을 맞아 10개 구단이 스프링캠프까지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시범경기를 진행한다. 시범경기라면 야구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랩터스가 봄터스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고 무패행진을 이어나간다.

    작년부터 계속 함께하는 외국인 투수 둘과 이번 시즌 1루와 우익수로 활약할 새 외국인 타자까지 상대 팀을 농락하며 완벽히 팀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인다.

    이번 시즌 어린 선수들 위주로 전력이 구성되어 전문가들 사이에 중위권은커녕 하위권으로 분류됐던 랩터스의 평가가 바뀐다. 부잣집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위권까지 떨어졌던 랩터스가 미디어데이에서 감독이 우승을 공약하자 탑2까지 올라간다.

    시작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은 2028시즌. 우승팀의 홈에서 개막전이 시작된다.

    - 야구팬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2028 프로야구 개막전. 잠실에서 보내드립니다.

    - 이번 시즌 전력의 평준화가 일어났다고 평가되고 있거든요. 흥미진진한 시즌이 될 것 같아요

    이미 시범경기를 하면서 잠실에서 컨디션 조절을 마쳤지만, 실제 시즌이 시작되면 느낌이 아예 다르다. 가득 찬 관중석들의 함성에 살짝 긴장감이 올라오면서 집중력이 더욱 높아진다.

    다시 시작하는 새 시즌. 이 기분으로 우승까지 달려가는 거다!

    - 1회 초 수비에 나서는 랩터스의 수비위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투수 최선영, 포수 오정찬, 1루에 황경철, 2루에 민수경….

    지난 시즌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와 다섯이나 다른 라인업. 투수야 그렇다고 쳐도 1,2루수에 포수와 우익수까지 그라운드 오른쪽이 통으로 바꿨다.

    지난 시즌 그라운드에서 수비를 조율하는 건 유격수인 내가 했다. 그렇긴 하지만 2루에 있는 박재호 선배와 의견을 나누고 귀찮은 사인만 내가 전담으로 냈다.

    그런데 이번 시즌 내 옆에 주전 2루수를 차지하고 들어온 선수는 나보다 2년 선배이긴 하지만 타격성적의 기복이 너무 커 주로 대주자와 대수비로 나오는 민수경.

    민수경선배의 수비도 수준급이지만 그렇다고 벤치에서 나오는 사인을 전달하는 걸 넘어 내야와 외야를 조율하는 역할까지 맡기기는 무리가 있다.그 말은…. 이번 시즌 내가 혼자서 다 해야 한다는 말이다.

    - 랩터스의 최선영. 개막전 첫 선발등판입니다.

    - 지난 시즌 1선발이었던 이시윤이 미국에 진출하면서 최선영이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줘야 하죠. 이시윤이 워낙 대단해서 그렇지 최선영도 확실한 1승을 책임질 수 있는 카드에요

    - 그렇습니다. 외국인 선수들도 밀어내고 랩터스의 에이스 자리를 치한 최선영입니다.

    - 그렇죠. 자리가 사람을 만들거든요. 실제로 선수들 경기력에 영향이 있어요. 최선영 36살, 한국 나이로 37살 시즌이지만 팀의 에이스로 마운드에 올랐어요. 자기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라는 걸 후배들에게 증명하고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돼주었으면 좋겠어요

    작년에 1선발로 비윤리적으로 사람한테 돌덩이 던지던 투수를 보다가 이번 시즌 적당히 빠른 공과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는 인간적인 투수를 보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귀찮다.

    수비위치에서 벤치의 수비에 대한 사인을 확인하고 포수의 사인을 바라보면서 내감을 섞어 수비위치를 잡는다.

    - 타석에 워호스의 임현식입니다.

    - 워호스도 이번 시즌 준비를 많이 했어요. 특히 1번에 이성엽 선수를 고정하면서 그동안 답답했던 1번 타자를 해결하려고 하거든요.

    상대는 발 빠른 똑딱이 우투좌타. 특히나 밀어치는 좌타. 내야를 정상 수비에 놓고 외야를 좌익수 쪽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나도 정상위치에서 두 발 더 뒤로 물러난다.

    - 최선영 계속 바깥쪽으로 두드리고 있습니다만 타자가 반응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 최선영 선수 컨디션은 괜찮아 보이거든요. 스트라이크존에서 살짝살짝 빠지는 공인데 이성엽 선수 잘 골라내고 있어요

    시즌 첫 경기 첫 타자부터 만만치 않다. 투수가 의도를 가지고 타자의 눈을 현혹시키려는걸 아는지 몸쪽으로 붙어 들어가는 공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이제는 바깥쪽. 바깥쪽에 타자가 원하는 바깥쪽에 던져줘야 하는 시간이다. 여지없이 나오는 바깥쪽 꽉 찬 공사인. 그걸 보면서 3루 쪽으로 두 발 더 이동해본다.

    - 3구 잘 밀어친 타구! 유격수! 김소전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갑니다.

    - 김소전 언제 저기 가 있었죠? 랩터스의 시프트 굉장히 적극적이네요. 이성엽. 안타를 하나 도둑맞았어요

    제구가 되는 선수를 믿고 수비위치를 잡으니까 좋네. 투수가 이래야지. 이렇게 수비수를 믿고 공을 던지고 그래야 인간적이지. 무식하게 죄다 삼진 잡겠다고 그러면 안 되지.

    - 1루 땅볼 아웃. 워호스의 1회 초 공격 삼자범퇴로 마무리됩니다.

    - 시즌 전 랩터스의 수비가 약해질 것이라고 예상을 했는데 기우였네요. 랩터스가 적극적인 시프트를 펼쳐내면서 타구가 가는 길목을 선점하고 있어요. 잘하네요. 잘해요

    내가 잡은 것도 아닌데 괜히 기분이 좋다. 여전히 내야에 나보다 어린 선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랑 몇 살 차이 안 나는 선수들로 구성된 내야.훈련할 때는 그렇게 말을 안 듣더니. 실전에 들어가자 내야수들이 내가 지시하는 대로 토 달지 않고 하나로 움직인다.

    내가 지시하는 위치에 자리 잡은 선수 앞으로 날아드는 타구. 쌓여가는 아웃카운트.

    내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올라간다.

    - 1회 말 랩터스의 공격입니다. 첫 타석. 지난 시즌 유격수 부분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김소전입니다.

    - 이제는 리그 최고의 유격수라는걸 부정할 수 없는 김소전선수에요. 겨울 동안 양키스로 간 이시윤 선수하고 개인 훈련을 잘 소화했다고 들었거든요.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네요

    야구가 수비만 하는 것도, 공격만 하는 것도 아니다. 수비 나가서 좋은 플레이를 펼치면 그 기운이 그대로 공격에까지 이어지는 게 야구다.

    - 초구부터 타격하는 김소전의 타구. 크게~ 크게 날아갑니다~. 2028시즌을 홈런으로 시작하는 랩터스! 디펜딩 챔피언 랩터스가 건재함을 알리는 대형홈런이 김소전으로부터 나왔습니다!

    - 이게 무슨 일이죠? 김소전의 약점으로 알려져있는 바깥쪽 흘러나가는 슬라이더였거든요! 심지어 볼이였어요. 볼을 결대로 밀어서 담장을 넘겼어요! 김소전이 홈런을 밀어서 넘겼어요! 이번 시즌 김소전에 대한 스카우트리포트 고쳐야겠네요

    시윤이형이랑 훈련한 게 확실히 도움이 된다. 빠른 공으로 윽박지르다가 느린 공으로 살살 도망갈 줄도 아는 시윤이 형하고 훈련을 하다 보니 저 느린 공도 억지로 레그킥을 바꿔가며 타이밍 안 맞추고 코어 힘만으로 빠져나오는 손을 쥐게 두면서 속도 조절이 가능해졌다.더불어 미국의 코치님과 디자이너님의 연구 결과로 앞손 팔꿈치 위치를 조절하는 방법까지 새로 장착했다.그래도 미국에서 시윤이 형하고 상대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눈에 보인다. 어설프게 약 올리면서 도망가려는 공이 눈에 보인다.나에게 안녕하고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공. 시윤이 형한테 하던 대로 흘러나가는 공을 중심 앞에 잡아두고 시간이 좀 늦어도 포기하지 않고 흘러나가는 대로 그대로 외야로 되돌려준다.

    그랬더니…. 넘어가네…. 시윤이 형 공은 그래도 안 넘어가 가던데 넘어가네…. 거…. 참….

    그라운드에 시간을 멈추고 겨우내 야구를 못 봐 한이 서렸던 팬들을 바라보며 경기장을 돌아온다. 올 시즌 처음으로 밟아보는 홈플레이트.다시 시계를 돌리는 홈플레이트를 밟으면서 시즌 처음으로 하늘에 계신 아빠에게 네모난 돈다발을 그려 보내준다.

    - 길고 길었던 랩터스의 1회 말 공격이 드디어 끝이 납니다.

    - 1회부터 빅이닝을 만들어냈어요. 랩터스 무섭네요

    - 투수보다 공격력에서 문제가 발생할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무색하게 만드는 랩터스의 1회 말이었습니다.

    - 랩터스 선발라인업만 보면 24세가 안 되는 라인업이란 말이죠. 40살의 조영근 선수가 있는데도 24살이 안 돼요. 이런 팀은 한번 분위기를 타면 걷잡을 수가 없어요. 랩터스 이번 시즌에도 강력한 우승 후보가 될 것 같습니다.

    다들 경기 못 해서 기분이 안 좋았었나. 워호스 상대로 왜들 이러는 거지? 살살합시다. 살살. 첫 경기부터 애들 울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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