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12화 (112/204)

112화. 겨울나기

한팀이지만 투수조와 타격조는 생활반경이 다르다. 지나다니면서 인사야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친한 선수가 아니면 딱히 교류가 많지는 않다. 그리고 투수는 워낙에 성질머리가 이상해서 어지간해서는 상종하면 안 되는 종족이다.

그중에서도 리그에서 가장 성격이 이상하다고 소문난 투수와 3개월을 1:1로 훈련을 하니. 나도 이상해진 것 같다.

“어떠냐! 내 회심의 스플리터다!”

“일회용이면 성공적이었어요. 다시 던지면 담장 밖으로 넘겨주겠어요!”

“뭐? 그딴 개 잡는 스윙으로 이걸 칠 수 있다고? 허풍이 심하구나”

“허풍? 좌투수도 아니고 우투수가 어디 나 같은 대타자님을 상대하려고 하십니까!”

“다시 한번 쳐봐라!”

“이게 뭐야! 형 스플리터 던진다면서요! 직구를 때려 박는 건 무슨 경우예요!”

“난 원래 직구를 80%이상 던지는 투수다! 상대 투수에 대해 분석도 안 하는 멍청한 놈아!”

“다시 해봐요! 다시! 어제 커브 홈런 맞았다고 삐진 거 같은데 오늘도 넘겨주겠어요”

“뭐 인마! 오늘은 죄다 삼진이다! 으랏차~”

처음엔 투수가 확실히 우위를 가져갔던 상대 전적이 훈련 막바지에 다가갈수록 박빙의 승부가 이어진다. 야구가 투수놀음인지라 여전히 투수가 타자를 윽박지르는 장면이 자주 나오긴 하지만 타자도 어떻게서든 배트 중심에 공을 맞히며 맞출 때마다 장타를 만들어낸다.

치열했던 개인 훈련의 시간이 지나고 3개월 동안 미운 정이 잔뜩 든 두 선수가 각자의 길을 향해 떠난다.

“형. 이제 언제 봐요? 형 저도 확실히 잡아내지 못하는 공이면 1년, 아니 한 달 안에 리턴할꺼 같은데 형 쓰던 락커 비원 놓을게요.”

“그걸 농담이라고 하냐? 내 락커에 24승의 기운이 서려 있으니 그 락커 네가 써라. 형처럼 완벽한 선수가 될 거다.”

완벽? 누가? 에이…. 농담도…. 리그정상급 제구레기의 기운이 들어오면 어쩌려고…. 안 해요 안 해.

“그렇다면 제일 먼저 콜업되서 올라오는 투수에게 그 자리 주겠습니다.”

내 대답에 괜스레 흐뭇해하는 전 팀 선배. 현 메이저리거가 진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새 소속팀 뉴욕으로 떠난다.

3개월간의 훈련파트너가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보며 부푼 기대감을 안고 서쪽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다.

3개월간 원 없이 좋은 공을 보고 또 보고 때리고 또 때렸다. 전에 미국에서 훈련하면 마이너 출신들의 공도 상대했었지만, 양키스의 4선발을 공을 3개월 동안 매일 봤다.

모든 공을 칠 수 있을 것 같다. 이 세상의 모든 공까지는 아닐지라도 리그에 있는 모든 투수의 공을 때려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간다. 올해도 랩터스를 순위표 가장 위에 올려놓으러 간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다른 사람들은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스프링캠프장, 올해도 나만 따로 스프링캠프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감독님과 코치님들을 만나 인사를 하고 선수들을 만나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일본에서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쉽 경기를 하고 3달여 만에 만나는 팀 동료들 그런데…. 구성이 좀…. 묘하다….

“이놈! 너 혼자 미국에서 뭐 하고 있었어!”

겨울마다 내가 뭐 하는지 알면서 물어보는 주장. 꼭 반가운 척을 이렇게 한다.

“시윤이형이랑 개인 훈련했습니다.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냈지. 난 시즌 때보다 겨울이 더 바쁘잖아. 그나저나 시윤이 잘 도와줬냐? 걱정이 많을 텐데?”

걱정이 많기는. 그 나르시시스트께선 나랑 훈련하면서 신구종까지 추가하시고 메이저를 씹어 드시겠다고 하고 있는데? 아. 20승 못할까 봐 걱정은 좀 합디다.

“많이 배우고 왔습니다.”

“잘 배운 거 맞아?”

배우긴 뭘 배워. 둘이 그저 잡아먹겠다고 쌈박질만 했는데. 뭐 코어 강화와 중심이동하는법은 좀 응용할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건 승부랑은 상관없었고, 아 팔 스윙 빨라지는 훈련은 좀 인정할 만했어.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래. 고생했네. 고생했어”

뭐야? 이 사람 오늘 왜 이래? 3개월 야구 못했다고 사람이 미쳐버린 거야? 갑자기 왜 안 하던 말을 하고 그래. 무섭게

“내가 이제부터 미션을 하나 주겠다.”

“네?”

뭐야.. 불안하게…. 왜 그래

“네 밑으로는 알아서 관리해라. 내가 신입까지는 못 하겠다.”

“네?”

이 사람이 갑자기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선수 관리를 주장이 해야지 왜 나한테 떠밀어?

“제 앞가림도 못하는데 후배 관리를 하다니요. 저보다 후배들이 더 자기관리 잘합니다.”

내가 최대한 공손하면서도 진정성 있고 불쌍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소전아. 프로가 뭐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프로가 뭐냐니?

“프로란 말이야. 돈이거든? 너 연봉 올해 4억천이지? 팀 내 연봉순위 6등, 야수 5등, FA 빼면 2등.”

그…. 그랬지…. 나와 피의 맹세로 평생을 함께할 HM 코퍼레이션의 뛰어난 협상으로 4억 하고 천만원이 내 연봉이었지. 실감이 안 났는데 이렇게 들으니까…. 많이 받았네

“그래서 네가 이번 시즌 부주장이다. 나는 올해 연봉 대폭 삭감당한 FA 노인들 달래줘야 하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잘 좀 챙겨봐. 특히 너보다 후배들은 확실히 챙겨.”

뭐…. 뭐야…. 그런 게 어딨어.

“저 봐 연봉 반 토막 난 10년 전 국가대표 키스톤들 첫날부터 쓰레빠 끌면서 쭈쭈바 먹는 거 봐.”

주장의 말대로 훈련장에 온 건지 휴양지에 온건지 모를 모습의 선배들의 모습을 보니 기가 찬다.

“할배들~ 먹을 거 있으면 나눠 먹어야지~ 혼자 드시고 그래요~”

주장이 사라지고 나자 공식 내 훈련 노예 1호기가 다가온다.

“형~ 그동안 못 봐서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요~”

“입술에 침이라도 좀 바르고 구라를 쳐야 하는 거 아니냐?”

“형. 구라라니요. 형 없이 훈련하려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뭘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놈의 몸덩이가 3개월 전보다 2배는 두꺼워진 게…. 나야말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야말로 나 없이 뭐 했길래 몸이 이렇게 좋아진 거냐? 내가 좀 배워야겠다.”

이때까진 후배한테 배우면 안된다는 걸 몰랐다.

“그렇죠? 형 나 몸 좋아진 거 같죠? 봐봐요. 허벅지가 커지니까 힙업이되요. 어때요. 내 엉덩이 죽이죠?”

이런 XX. 스프링캠프장 오자마자 바지를 엉덩이까지 올리고 그래! 눈이 썩잖아. 내 눈!

“그것 좀. 내리지 않을래? 남자 엉덩이 보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그제야 걷어 올린 바지를 내리는 경준이…. 저 XX 눈빛에 왜 아쉬움이 묻어있지? 기분이 더러워지는데?

“형”

“왜!”

기분이 더러워지니 말이 예쁘게 안 나간다. 괜히 날이 서 있는 목소리. 그냥 기분이 좀 더러워서 그렇다.

“형 없는 동안 동기들하고 같이 개인 훈련했거든요. 그런데 동기들이 형하고 같이 운동하고 싶대요. 우리 같이 하면 안 될까요?”

“뭐? 훈련을 같이하자고?”

내가 훈련 노예를 쏘아보면서 되묻자 노예가 말을 버벅댄다.

“혀…. 형…. 동기들이 좀 모자라긴 하는데요. 그래도 겨우내 기초체력은 조금 만들어놨거든요. 부족하지만 형 훈련하는데 방해할 정도는 아닌데….”

내가 이놈을 이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이를 어쩔까….

“경준아”

“네 형”

“내가 훈련할 때 다른 사람 훈련 못 하게 한 적 있냐?”

“네?”

“여기 훈련장 시설이 내꺼냐?”

“아니. 그건 아니죠”

“선수가 부족해서 훈련하는데 그걸 나한테 왜 물어봐. 자기가 부족하면 하는 거고, 하다가 모르면 옆에 선수한테 물어보면서 하는 거지 그런 걸 뭘 물어보고 그래?”

“아니 그래도 형 불편하실까 봐….”

이XX가…. 지가 언제부터 나 불편한 거 생각해줬다고.

“넌 나랑 국대까지 같이 갔다 온 게 왜 그러냐! 내가 다른 팀 선수들하고도 잘 지냈는데 우리 팀 선수들하고 운동하는 게 왜 불편해. 안 그래도 주장이 나한테 후배들 잘 챙기라는데 잘됐네. 다 데려와 같이 훈련하게”

항상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생각하고 말을 해야 한다. 스프링캠프 첫날. 첫날답게 간단한 단체훈련을 마치고 일정이 끝나자 당연하게 실내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몸 상태는 100%지만 스프링캠프 내내 단체훈련을 병행해야 하니 웨이트를 하면서 가볍게 몸 상태를 점검하려 했다.

언제나처럼 정면의 가장 큰 거울 앞에서 웃통을 벗고 근육의 자극을 확인하면서 스트레칭을 하는데 거울 뒤로 사람들이 슬슬 늘어난다. 어느새 내 동작 하나하나에 맞춰서 따라 하는 시커먼 검은 무리들….

나를 바늘로 콕콕 찌르는듯한 시선을 느껴지자 기분이 점점 나빠진다. 나빠지는 기분만큼 관절을 더 꺾어본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들. 스트레칭만 하는데 뒷줄에 몇몇이 퍼져서 쓰러진다.

평소보다 시간을 훨씬 더 많이 들여 그동안 갈고 닦은 필라테스 기술을 선보이면서 몸풀기를 마치자 앞선에 5명만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설픈 동작을 끝낸다.

“너희들 뭐하냐?”

내 눈앞에 모여있는 20명가량의 신인급 선수들. 계속해서 랩터스의 시즌 순위가 높았던 탓에 즉전감 특출난 선수는 없지만 저마다 특별한 발전 가능성 하나씩은 숨기고 있는 어린 선수들. 그 선수들이 나만 바라보며 뭐 빼먹을 거 없나 바라보고 있다.

“헤…. 핵…. 형…. 첫날부터 이러…. 이러면…. 우리 주…. 죽어요”

몇 달 안봤다고 몸만 키우고 유연성은 절반으로 떨어진 경준이가 헉헉대며 대답을 시작한다.

“형…. 형이랑 같이하고 싶어 하는 선수들 다 모아왔어요. 후…. 후….”

어질어질하다. 기껏해야 서너 명 될 줄 알았더니…. 이게 몇 명이야…. 3년 차 이하는 다 데려온 거 같은데…. 야수도 아니고 투수들은 여기 왜 와있어

이래서 네놈이 나 불편할 거라고 밑밥을 깔았구나….

“다들 뭘 잘 못 생각하는 거 같은데 훈련은 개인이 알아서 하는 거야. 그리고 운동은 내가 아니고 코치님들한테 배우는 거고. 나는 내 몸에 맞는 훈련을 하는 거고 너희들은 너희들 몸에 맞는 훈련을 해야 하는 거야”

떨어져라. 떨어져라.

“빡빡이 코치님이 형하는거 그대로 따라 해보고 다시 오라고 했어요.”

“타격코치님이 중심이동하고 로테이션 타격 형한테 물어보고 공부해서 오라고 했어요”

“투수코치님이 쿠세 형한테 교정받고 다시 오라고 했어요”

“수비 코치님이….”

“주루코치님이….”

이…. 미친…. 아무리 일하기 싫어도 그렇지 코치들이 월급 받으면서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이젠 아무것도 안 하고 월급 도둑질을 하려고 하네

“야! 누구야? 누가 그래! 나한테 그런 거 다 물어보라고 누가 시켰어!”

“나다.”

“넌 뭐야?”

뭐…. 뭐야…. 어떤 놈이 겁도 없이.. 힉….

“내가 시켰다.”

내 앞에 멍청이들 숲을 헤치고 커다란 덩치가 나타난다. 랩터스의 수장 김민중 감독이 나타나 웃는 얼굴로 나에게 지시를 한다.

“소전아. 네가 연봉협상 질질 끌어서 우리 외부 FA 한 명도 못 데려왔다. 그러면서 너는 고액연봉자가 됐으니까 책임을 져야지.”

아니 그걸 왜 내가 책임져. 선수 만드는 건 내가 아니고 구단이 할 일인데

“내가 많은 건 안 바란다. 주전 외야수 하나 내야 유틸리티 백업하나, 마당쇠 롱릴리프 하나만 만들어. 내가 많이 봐줬다.”

이게 봐준 거냐? 안 봐주면 아예 팀을 재건하라고 하겠네

“감독님. 저…. 타잔데요…. 투수를 어떻게 만들어요?”

“그래? 그럼 내가 주장한테 이번에 재계약한 노장들 시즌 100경기는 뛰게 만들라고 시켰는데 둘이 역할을 바꿔볼래? 골라.”

이놈의 팀 정상이 아닌 건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선수한테 선수를 만들라고 시키는 미친놈들이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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