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11화 (111/204)
  • 111화. 연봉계약

    구단과 선수와의 싸움이 극에 달한다.

    이제 겨우 4년 차가 되는 선수가 구단에 반기를 들고 계약을 거부한다. 선수에게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구단도 활동 제한을 무기로 선수를 압박한다.

    양측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은 채 시간만 하염없이 흘러간다.

    일 잘하는 에이전트와 계약한 선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개인 훈련에 집중한다. 훈련파트너로 메이저리거와 함께하니 하루에 한 뼘씩 실력이 늘어난다. 그것도 모자라 비공인 세계 최고의 코치와 분석가가 서포트를 해주니 선수는 그저 자기가 가장 잘하는 노오력만 하면 된다. 노오력.

    세상에서 가장 쉬운. 누구나 할 수 있는 노오력. 그리고 이 선수는 노오력 스킬을 타고났다.

    “야! 이거 실투야! 실투! 공 봐봐 실밥이 튀어나왔어!”

    “형 그런 게 어딨어요. 공 교체 안 하는 것도 실력이죠”

    “안 되겠다. 새 공 가져와! 미국놈들 공을 어떻게 만들길래 공이 이렇게 미끄러워”

    “가져와도 똑같아요. 미끄러우면 로진을 더 바르세요”

    “발라도 미끄럽다고! 아 몰라. 다시 해!”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메이저리거 투수는 한국과 다른 미끌거리는 공에 적응하기 위해서 공을 던지고 또 던지고, 훈련파트너로 온 KBO의 골든글러브 유격수는 본인의 약점인 타격 타이밍을 잡으려고 배트를 휘두르고 또 휘두른다.

    미국에서 야구에 미친 놈 둘의 피 터지는 경쟁이 정점으로 치달아갈 때쯤 한국에서도 거물들의 회동이 성사된다. 해가 바뀌고 눈여겨봤던 외부 FA 들도 하나둘 다른 팀을 찾아가자 조바심이 끝에 닿은 랩터스 광팬이 거물들의 만남을 주선한다.

    “죽기는 싫었나 보네. 다음주쯤 멕시코 마피아한테 찾아달라고 의뢰하려고 했는데 제 발로 들어오네”

    “조 단장. 오랜만에 봤는데 유머가 늘었어. 재미있는 농담이야.”

    “재미있으라고 한 말 아닌데? 마이애미 주소까지 확인했어. 헬기만 섭외되면 바로 작전시작인데. 우리 다음주에 다시 만날까? 병원에서 볼지 무덤에서 볼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얼굴표정 하나 안 바뀌고 험악한 소리를 내뱉는 랩터스 단장에게 잔뜩 겁을 먹어버린 에이전트가 두려움에 입을 닫는다.

    그러자 그 옆에서 만남을 주선한 구단주가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말을 받는다.

    “조 단장. 미국에서도 그러면 범죄야. 그리고 얘 잡아봐야 뉴스에 안나와. 현민이 그렇게 비중 있는 인물이 아니야!”

    구단주의 말에 단장이 바로 받아친다.

    “알아요. 저 양아치만 잡으면 뉴스에 안 나오겠지요. 그런데 대한 금융 그룹 이사회의장을 같이 잡으면 어떨까? 미국이랑 한국이 같이 시끄러워질 거 같은데.

    궁금하니까 다음 주에 봅시다. 아…. 구단주님은 특별하니까 총 말고 야구 배트로 다뤄달라고 주문할게요”

    다른 사람이 이런 소리를 했으면 농담이라면서 웃어넘겼겠지만, 랩터스의 철혈마녀가 이런 소리를 하니까 앞에 있는 사람들의 몸이 얼어붙는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진짜 멕시코 친구들을 만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대로 얼음이 된 사람들.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넘겨보고자 화제를 돌린다.

    “이런 재미없는 얘기는 그만두고 비즈니스 해야지. 비즈니스. 김소전 얼마 줄 거야?”

    살기를 느낀 에이전트가 어떻게든 빨리 도망치고 싶어서 ABC 없이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얼마 받고 싶은데?”

    “선제요”

    에이전트가 절대 구단의 후려치기에 당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두려움을 무릅쓰고 전설의 스킬을 발휘했다.

    “죽고 싶어?”

    단장이 말하라는 제시액을 말하지도 않으면서 다짜고짜 협박하자 에이전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앉아”

    “나 이런 식으로는 일 못 해. 나이도 어린 게 말이야 반말이나 찍찍하고. 나 못해”

    “그러던가?”

    협상의 의지가 없는 단장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고는 구단주를 향해 앞으로의 업무추진 방향에 대해서 밝힌다.

    “스프링캠프 전에 김소전 해결되지 않으면 내부 FA도 다 풉니다. 스프링캠프 시작되면 고액연봉선수들은 다른 팀 유망주들이랑 트레이드 할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야! 자…. 잠깐…. 조 단장. 사람이 왜 그렇게 성급해. 앉아. 앉아봐”

    사건을 해결해야 할 당사자 둘이 서로의 입장을 고수하자 마음 급한 주선자가 끼어든다.

    “둘 다 앉아봐. 우리 사건을 해결하러 온 사람들 아니야. 천천히. 따뜻한 커피 드시면서 천천히 얘기 좀 해보자고. 사람들이 이렇게 성격이 급해”

    주선자의 간곡한 부탁에 다시 시작되는 협상. 여전히 냉랭한 분위기에서 양측의 간 보기가 진행된다.

    “얼마?”

    “2억8천”

    “그건 도둑이지”

    “그럼 얼마?”

    “5억”

    “미쳤냐?”

    “2억8천은 정상이고 5억은 비정상?”

    “괘씸죄 추가”

    “뭐야!”

    잘 진행되던 협의가 또다시 삐걱거린다. 옆에서 지켜보는 주선자가 심판의 자격으로 끼어든다.

    “서로 감정 빼고 비즈니스로 이야기를 해봅시다. 프로끼리 왜 이렇게 아마추어 같이 굴고 그래.”

    중간에 중재자가 끼어들어서 말리자 싸움의 당사자 둘이 흥분을 조금은 가라앉힌다.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는 눈에서 불꽃이 튀지만 그래도 조금은 이야기를 할 분위기는 잡힌다.

    “둘 다 들어봐봐. 내가 보니까 둘 다 일리가 있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딱 정해줄 게 2억8천하고 5억 해서 중간값. 4억 하자”

    물건값을 정할 때 써먹는 기적의 공식 중간값이 나왔다. 서로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양측의 면을 세워주는 마법의 주먹구구 공식. 한 건 했다고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구단주에게 양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온다.

    “미친놈 아니야?”

    “야 XXX야. 내가 이러려고 그 고생을 한 줄 알아!”

    좋은 일하려고 했다 욕만 먹은 구단주. 심통이 나 조정포기를 선언한다.

    “아 몰라. 나 안 해! 너희끼리 알아서 잘해봐”

    조정자가 빠지자 그래도 구단주라고 눈치를 보던 단장의 자세가 더욱 거만해진다. 말을 안 해도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 메이저에서도 큰소리치던 에이전트가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아진다.

    “조단장. 봐봐. 이게 김소전 기록이라고. 현대야구에서 타율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OPS, WRC, RAA. 그리고 KBO 수비 스탯이 아무리 엉망이어요 봐봐 수비는 이 세상 수비가 아니야. DRS하고 UZR 봐봐….”

    일단 말이 시작되자 에이전트의 혀가 빛을 발한다. 선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리된 세이버 자료들을 속사포 랩으로 쏟아낸다. 자료만 보면 야구의 신 그 자체가 돼버린 선수. 억만금을 줘도 잡아야 할 선수의 몸값을 착한 에이전트가 싸게 책정한다.

    “봤지. 김소전이 착하니까 랩터스에 뛰어주는 거야. 그러면 랩터스도 소전이한테 성의를 보여야 할 거 아니야. 그러니까 5억 줘. 5억도 싸다. 싸.”

    앞에서 가공된 스탯을 늘어놓은 래퍼를 가소롭게 쳐다보던 단장이 테이블 가득 쌓여있는 종이 쪼가리들을 치워버린다.

    “어디서 이런 헛짓거리를. 기준이 뭐야? 가중치를 왜 네 멋대로 정해? 적당히 해”

    “적당히 라니! 그러면 너는 기준이 뭐야?”

    기준이 뭐냐는 말에 에이전트 앞으로 태블릿을 쓱 밀어준다.

    “구단주랑 같이 연봉 고과 프로그램 보는 거 아니까 사용법 따위는 물어보지도 말고. 구단 연봉 고과 알면서 기준을 왜 물어?”

    팀 내 1급 기밀인 연봉 고과를 구단주가 빼돌렸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단장. 단장이 기밀을 빼돌린걸 알고 있다고 하니 더욱 거칠 것이 없어진 에이전트가 뻔뻔해진다.

    “그래! 봤다! 구단도 소전이 연봉 3억8천이라며! 그런데 왜 2억8천을 불러! 내가 화나게 생겼어 안 생겼어! 구단이 먼저 양아치 짓 한 거 아니냐고!”

    에이전트의 합리적인 컴플레인에 단장도 뻔뻔해진다.

    “그건 단순 계산 결과가 3억8천이고 환경요소 넣으면 3억이잖아”

    “그럼 3억이라도 부르던지 2억8천이 뭐야! 내가 그렇게 우스워?”

    “에이전트가 양아치니까 격을 같이 맞춰줘야지.”

    “그게 무슨 말이야!”

    “안 그래? 구단이랑 협상할 생각은 있었어? 말 한마디 안 하고 시간 끈 거 아니야! 무슨 쌍팔년도 연봉협상도 아니고 구질구질하게 뭐 하는 짓이야!”

    “그럼 이렇게 후려치는 건 최신 연봉협상이고? 오죽하면 그러겠냐!”

    또다시 험악해진 분위기. 한 발 떨어져 있던 중재자가 다시 등장한다.

    “별거 아닌데 왜들 그래. 둘 다 서로 잘못했네. 조금씩 양보들 합시다.”

    여전히 크게 양보의 의사는 없지만 억지로라도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는 양측이 화를 조금 누그러트린다.

    “구단도 3억8천이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그러면 속 시원히 줍시다. 그럼 안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물어보는 거야. 물어볼 수는 있잖아.”

    자기도 단장을 해봤으면서 왜 이딴 X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의 단장이 화를 꾹꾹 눌러가면 설명을 시작한다.

    “구단 페이롤도 걸리고 역대 4년 차 최고 연봉이 3억9천이에요. 거기다 아무리 클래식스탯인 타율이 의미 없다고는 해도 3할도 못 치는 타자한테 3억8천 주면 다른 팀에 욕먹어요”

    “그냥 주기 싫은 게 아니고?”

    구단주에게 공격을 당한 단장이 매섭게 노려본다.

    “생각해봐 봐 왜 김소전한테만 그렇게 매몰차? 2년 차 때도 그렇고 작년에도 1억도 안 채워주고. 팬들은 안고 죽으라는 선수를 구단은 왜 미워해?”

    구단주의 매서운 반박에 협상의 공기가 바뀐다. 근본적으로 랩터스에 김소전이라는 선수의 존재하는 이유에 관한 질문. 단장이 대답할 차례다.

    “랩터스의 김소전이니까요. 랩터스의 김소전이여야 하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랩터스를 지키고 싶고, 김소전을 그냥 두면 랩터스의 김소전이 아니라 김소전의 랩터스가 될 거니까요.”

    “그걸 말이라고 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선수를 핍박하는 걸 눈으로 확인하자 지금까지 중재자로 나섰던 구단주가 분노하기 시작한다.

    “봐요. 이미 김소전한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붙어서 휘두르고 있는지 보라고요. 야구선수 연봉계약에 방송국이 따라붙고, 국회의원이 전화를 해요. 지금은 도와주는 거 같지만 이러다 선수 흔들려요. 구단이 선수 틀어쥐고 막아줄 겁니다.”

    단장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구단주

    “이거 실망인데.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

    “실망해도 상관없고, 난 랩터스만 지키면 돼요”

    여전히 한마디도 지지 않는 단장에게 구단주가 쏘아붙인다.

    “랩터스가 김소전의 랩터스가 아니듯 조수아의 랩터스도 아닌데 뭘 잘못 생각하고 있어. 구단이 선수들 쥐고 흔들어서 망가졌던 때가 얼마나 됐다고 이러는 거야?”

    “그건 야구도 모르는 멍청한 사람들이고, 난 필요한 부분만 관리한다고요!”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구단주.

    “지금이야 조수아가 똑똑하니까 괜찮겠지. 5년 10년이 지나도 그럴까? 지금도 성공의 아이콘인데 그때 되면 더 많은 트로피를 손에 쥐고 자기 아집에 빠져있을 텐데?”

    “무슨 소리예요!”

    “수아야. 틀렸어. 자기가 컨트롤 하는 건 자기만이야. 다른 사람까지 자기처럼 살기를 강요하지 마. 넌 너대로, 소전이는 소전이대로 살게 해.”

    “지금도 김소전 없는 랩터스는 존립이 안 된다고요! 얘가 일탈하면 끝이에요!”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는 단장을 보는 구단주의 눈빛이 애처롭다.

    “놔둬. 김소전의 랩터스가 되든, 김소전이 말아먹은 랩터스가 되든 놔둬. 그런 건 인력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달리는 말에 채찍이 아니라 당근을 더 줘. 배불러서 못 달려도 자기가 이룬 성과는 인정받아야 할 거 아니야. 그게 맞는 거야”

    여전히 불만 가득한 단장을 두고 구단주가 강제 조정에 들어간다.

    “정리합시다. 김소전 연봉액 3억8천을 놓고 2년 차, 3년 차에 못 받은 연봉까지 이번에 보상해서 3천 추가합시다. 내년 연봉 4억 1천만 원. 더 할 말 있으신 분?”

    “몰라! 맘대로 해!”

    구단주의 강제 조정을 들은 단장이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그 모습을 태연하게 바라보던 구단주가 연봉계약서를 집어 들어 에이전트에게 건넨다.

    “야.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거냐? 조수아 또 뭐라고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나가면서 계약서에 사인하고 나갔잖아. 아휴. 무서워서 혼났네. 죽다 살았다.”

    “나도. 그런데 넌 왜 계속 조수아 단장으로 두냐? 나 같으면 심장 떨려서 갈아치워도 벌써 갈아 치웠다.”

    오랜 친구의 물음에 구단주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 대답을 한다.

    “일을 잘하니까”

    “일을 잘하는 사람 많잖아. 찾으면 있잖아.”

    친구의 집요함에 구단주가 정확하게 답을 해준다.

    “아니 없어. 얘만큼 잘하는 애 없어. 그리고 일을 너무 잘해서 내가 단장하면서 비자금 세탁한 것도 얘가 꽉 쥐고 있어. 그래서 절대 버릴 수가 없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