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10화 (110/204)
  • 110화. 난타전

    사장이 불렀음에도 꽤 나 시간이 지나도록 신입사원이 오지 않는다. 랩터스의 운영팀장의 차가운 기운으로 회의실이 꽁꽁 얼어붙을 때쯤에야 문이 열리고 눈부시게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이루다입니다~”

    오늘 방송도 없는데 풀메이크업을 하고 온몸을 명품으로 도배를 한 오늘의 핵심 인사가 등장한다.

    앞에 있는 일본 순정만화의 히로인같은 미녀와는 또 다른 서양 로맨틱 코미디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미녀가 특유의 눈웃음을 치며 사장에게 인사를 건네자 회의실의 공기가 또다시 무거워진다.

    “당사자들 사이에 문제가 있어서 불렀어요. 두 분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털어놓고 정리해보는 게 어떻겠어요?”

    내년도 경영성과도 신입사원의 뒤에 있는 거대한 힘도 포기할 수 없는 SBC 사장이 절묘한 줄타기스킬을 발동한다.

    “사장님. 계속 말씀드리지만, 랩터스는 이루다 씨하고 얘기할 게 없습니다. 그냥 제 눈앞에서 치워주세요”

    “뭐? 치워? 치우라고요? 내가 물건이에요? 치우게?”

    시작부터 두 여자의 신경전이 벌어지자. 중재하는 척하면서 자기의 실리를 챙겨야 하는 사장의 입이 바빠진다.

    “그러지들 말고 서로 간의 오해를 풀어봐요. 그게 랩터스에도 우리 SBC에도 좋지 않겠어요?”

    옆에서 뭐라고 하든 관심도 없는 두 여자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으르렁거린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 앞에 있는 장애물은 치워야 하니까. 지금까지는 걸리적거려도 놔뒀는데 안 되겠더라고. 이제 좀 비켜줄래?”

    “기업의 썩은 부분을 지적해서 도려내게 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거든요? 블랙 기업이 반성하고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계속 걸리적거려야겠어요”

    서로 한마디도 지지 않고 치고받는 전초전. 괜히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침만 꼴딱꼴딱 넘어간다.

    “어차피 얘기가 통할 거라고 생각은 안 했어. 그래서 돈으로 치워보려고. 사장님이랑 얘기 잘되고 있는데 이쯤에서 포기하지. 다음엔 널 직접 때려야 하는데. 어린애 때리기는 좀…. 마음이 그렇잖아.”

    상대를 때릴 때도 마구 패지 않고 마지막 인류애를 남기려는 언니의 마음을 몰라주는 동생이 기가 찬다는 듯 이야기를 받는다.

    “여홍지 팀장님 돈 많아요?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자기 돈도 아니고 회삿돈을 나 하나 잡는데 쓰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배임인데?”

    “배임이라니. 사익을 지키기 위한 필수 지출이지.”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않는 전쟁. 동양의 꽃과 서양의 꽃이 싸우는 게 마음 아픈 방송국 사장이 중재를 시도한다.

    “자. 다들 그러지 말고. 서로 조금씩 양보해 봅시다. 이루다씨. 랩터스에 제작비 지원과 CF 완판을 제시했어요. 랩터스에서 이렇게 진정성 있게 대화를 원하면 얘기를 좀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네요. 제법 진정성 있게 가져왔네요. 그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네요.”

    “뭐? 그 수준? 사장님. 쟤랑 계속 보고 있어야 하나요? 보기 불편한데요.”

    두 여자 사이에 끼어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내심 이 상황을 즐기는 방송국 사장이 즐거운 감정을 누르며 제안을 한다.

    “여팀장님. 우리 쪽 입장도 있는데 살살합시다. 살살”

    “살살? 어떻게 살살해 드릴까요?”

    앞에 있는 어린 여우에게 사나운 눈초리를 한번 보내고는 사장과 눈을 맞추는 언니 여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돈을 더 풀겠다는 마음을 먹고 먹잇감에서 요구사항을 더 말해보라고 재촉한다.

    “이루다 아나운서. 우리가 고심해서 뽑은 인재예요. 욕심이 과해서 마찰이 좀 있는 것 같은데 당분간 교육을 보내는 선에서 정리하는 게 어떻겠어요? 알잖아요. 직원 뽑아놓고 내보내기도 힘들어요.”

    “그건 제 요구 조건이랑 다른데요.”

    자기의 거취를 놓고 협상을 하는 사람들의 대화가 가소롭지도 않다는 듯 보고 있는 어린 여우가 어디까지 하나 보자는 듯 눈 동그랗게 뜨고 바라본다.

    “김국장! 기자도 아닌 아나운서가 취재한다고 돌아다녀도 돼? 보도의 기본은 알아? 좀 잘 알려줘야 할 거 같은데 미국으로 한 3년 교육연수를 보내는 건 어때?”

    갑자기 자기한테 불똥이 튀어 뭐라 대답하지 못하는 보도국장이 어버버 하고 있는데 이제 게임을 끝내려고 하는 언니 여우가 확실한 지침을 내려준다.

    “미국보다 요즘 아프리카가 핫하다는데 아프리카에 5년 어때요?”

    “아프리카? 그래. 우리 아프리카 제작 지원사업 있지? 거기 지원자 못 받았잖아. 오늘 지원자가 나온 것 같은데 이건 누구 담당이지?”

    팔짱을 끼고 코웃음을 치면서 이 상황을 바라보는 어린 여우와 최소한의 성과라도 얻으려는 언니 여우가 서로의 분위기를 살핀다.

    “여팀장님. 이 정도에서 정리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정리라니요. 내일 나가는 저희 선수들 특별인터뷰도 취소해주시고 랩터스티비 제작 지원해주시면서 구단의 선수단 운영방안도 따로 내보내 주셔야지요.”

    물주의 세부적인 지시사항에 사장이 웃으며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기 전에 지금까지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던 어린 여우가 입을 연다.

    “일을 해봤어야지. 언니. 그런 건 사장님하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국장님도 아니고 편성부장님하고 얘기하는 거예요. 밑에서 시다만 하느라 일 못 배웠죠?”

    “사장님! 쟤 계속 떠들게 둘 거에요?”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참아내며 물주가 사장에게 쏘아붙인다.

    당황한 사장이 신입사원에게 뭐라고 하려고 하기 전에 당돌한 신입사원이 입을 뗀다.

    “언니. 돈이 있고 힘이 있는데 일을 왜 그렇게 해요? 아…. 돈을 가진 적이 없어서 그랬지…. 미안하네. 내가 없는 집, 사람들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는지 잘몰라서요. 미안해요.”

    “사장님!”

    활활 불타오르는 두 여우 사이에 낀 사장님이 마지막 마무리를 위해 작은 여우를 내치기로 한다.

    “이루다씨! 나가 있어요. 무슨 상황인지 인지했을 테니까 아프리카 갈 준비부터 하고 반성하고 있어요.”

    사장답게 신입사원을 따끔하게 혼낸 오늘의 승리자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면 물주에게 감사를 표한다.

    “여팀장님. 방송국이 일 잘하는 구단을 서포트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앞으로도 좋은 관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랩터스도 우리 많이 도와주세요. 오늘 여기까지 와줘서 감사해요.”

    사장의 감사 인사를 듣고도 기분이 안 좋은 물주. 사장에게 재차 똑같은 요구를 한다.

    “사장님. 그것보다 쟤는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죠? 전 눈에 거슬리는 게 있으면 기분이 안 좋거든요.”

    그제서야 자기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옆에 있는 작은 여우를 인지한 사장. 자기가 무시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목소리가 커진다.

    “이루다씨! 나가라는 말 못 들었어요? 곧 인사발령 있을 거니까 준비하라고!”

    사장의 호통에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대 대며 조용히 하라고 하는 작은 여우가 스피커폰을 켜고 누군가와 통화를 시작한다.

    “루다야~ 어쩐 일이야~ 아빠는 잘 계시고? 루다도 여전히 예쁘지?”

    “삼촌~ 루다가 좀 안 예뻐지려고요”

    “왜? 루다가 안 예뻐지면 세상에 예쁜 애가 어딨다고”

    “그러니까요. 루다가 다시 예뻐지려면 삼촌이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요”

    “뭘 도와줄까? 회사에서 혼났어? 장 사장이라도 짤라줄까?”

    “네”

    스피커폰을 통해 울려 나오는 대화에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경악이 물든다.

    그중에서도 당사자인 SBC 장용수 사장의 표정이 확 일그러진다.

    “당신 누구야! 누군데 날 자르니 마니 한다는 거야!”

    성질 급한 방송국 사장이 소리를 지른다.

    “장 사장? 나 방통위 최현밸세….”

    남의 전화로 서로의 통성명을 끝낸 두 사람이 난처해진다.

    “최 위원장님. 장용숩니다. 인사 못 드렸습니다.”

    “다음 달 국감에서 볼 건데 뭘…. 그건 그렇고 장 사장 뭘 잘못해서 루다가 화가 났나? 내가 잘 좀 부탁한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이거 실망이네”

    표정 관리가 안되는 방송국 사장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전화기 주인이 대신 대답한다.

    “삼촌. 방송국 사장이 부조리를 파헤치려는 직원을 아프리카로 보내는 게 말이 돼요? 그것도 모자라서 기업에서 돈 받아먹고 인터뷰 묻어버리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급해서 뭔가 말을 하려는 사장이 입을 열기도 전에 수화기 반대편에서 호통이 터져 나온다.

    “장 사장! 이게 무슨 일인가! 루다가 어딜가? 방송국에서 사건을 묻어? 장 사장 기자 출신 아니었나?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듣고 있는 거야?”

    “위원장님. 그게 아니고 제가 지금 찾아뵙겠습니다.”

    “루다 데리고 지금 들어오게. 이거야 원. 이래서야 내가 이현석 회장을 무슨 면목으로 보겠나. 당장 들어와서 소명해.”

    여당의 실세이자 국회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사장을 호출하자 밑에 직원들의 표정이 싹 바뀐다. 안 그래도 다음 달 국정감사에서 털릴 게 수두룩한데 그전에 미운털이 박히고 시작해야 하니 다들 마음이 급해진다.

    “여팀장. 급하게 바쁜 일이 생겨서 좀 가봐야겠어요. 우리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합시다.”

    아까까지의 밝은 표정은 어디 가고 확 썩어버린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장을 보는 언니 여우의 표정도 같이 확 찌그러진다.

    당당한 승리자의 표정으로 문을 나서는 사장의 뒤를 따르는 어린 여우가 패배를 곱씹는 언니 여우에게 충고를 남긴다.

    “언니. 돈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에요. 돈은 말이죠. 남 잘되라고 쓸 때보다 남을 주저앉힐 때 써야 효과적이에요. 언니 다음에 또 봐요~”

    * * *

    매물로 나온 잠실의 한 카페 사장의 얼굴이 오늘도 어둡다.

    평소에 늦은 시간에만 오던 진상이 오픈할 때부터 노트북과 멀티탭을 들고 와서는 카페 한자리를 피시방으로 만들어놨다. 그것도 모자라 뭘 보는지 모니터를 보면서 웃다가 욕하다가 키보드가 터져나가라 시끄럽게 자판을 두드린다.

    오죽하면 그 주변에 공부하던 진상 카공족들도 버티지 못하고 슬슬 자리를 피한다. 두 시간이 됐을 무렵 쫓아내려고 마음을 먹자 귀신같이 알고 다가와 오늘의 커피 한 잔을 더 주문하는 X 진상….

    오늘도 카페 사장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커피를 내린다.

    주변을 비운 카페 구석 자리로 시커먼 후드에 시커먼 패딩을 입고 시커먼 모자를 눌러쓴 여자가 다가간다. 그리고는 진상의 노트북을 덮어 버린다.

    “장난질 그만하고 김소전내놔”

    “나도 모른다고.”

    “진짜 이럴 거야?”

    “연봉협상을 단장이 해야지 왜 구단주한테 그래”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된 사랑싸움. 오늘은 어쩐지 평소보다 더 분위기가 안 좋아 보인다.

    “나 진심이야. 김소전 날려버릴 수도 있어.”

    “김소전이 우리 팀 전력의 반인데 그럴 수 없지”

    “아니 그럴 거야”

    “못할걸”

    서로의 자존심 싸움. 자기들의 자존심을 다른 대상에 투영해서 하니 못하니로 시비를 건다.

    “계약하기 전에 스프링캠프 없어”

    “그럴 수 있을까? 김소전이 수비포메이션의 핵심인데?”

    “그럴 수 있어. 이번에 내부건 외부건 FA도 다 풀어버리고 유망주로 새 팀 짤 거야. 랩터스 리빌딩이야.”

    “야! 그런 식으로 리빌딩 안된다고! 어린애들 억지로 박는다고 안 큰다고! 내가 몇 번을 얘기해! 몰라?”

    “알아”

    “아는데 뭐 하는 짓이야!”

    남자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자 씩 하고 웃는 여자

    “내가 생각을 해봤거든. 당신한테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생각을 해봤는데 이게 제일 아프겠더라고. 김소전 내놓지 않으면 랩터스 예전으로 돌아갈 거야. 돈도 쓰고 열심히도 하는 데 실패하는 유망주들의 무덤. 앞으로 30년 동안 우승 못 하는 팀으로 만들어 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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