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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106화 (106/204)

106화. 잠적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최근에 이 정도로 뒤집힌 적이 별로 없었는데 랩터스 홈페이지가 다운됐다. 랩터스 홈페이지 접속이 안 되자 랩터스 훌리건들이 각종 야구 커뮤니티를 폭파시키면서 화력을 집중한다.

야구 시즌이 끝나 남는 잉여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타팀 야구 팬들까지 달라붙어 KBO 연봉 체계 및 효율에 관한 열띤 논쟁이 펼쳐진다.

끝도 없는 난상토론이 펼쳐지는 가운데 SBC에서 사건을 확대 재생산하는 긴급 인터뷰가 방송된다.

‘야구 바보, 김소전의 진심.’

분명 노경준과 김소전이 같이 찍은 인터뷰였고 내용도 가볍게 선수보다 방송국의 신임 아나운서를 부각시키는 내용이었는데 대어의 냄새를 맡은 방송국 놈들이 마법을 부리자 세상 진지한 심층 르포로 장르가 변환되었다.

여신급 미모의 신입 아나운서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농담을 섞어가며 선수의 속마음을 천천히 하나씩 끄집어낸다.

중간중간 들어간 김소전을 존경해 마지않는 후배 노경준의 인터뷰까지 들어가며 프로그램의 감칠맛을 살린다. 그것도 모자라 신인상 수상 소감에서 18번에 걸쳐 김소전을 울부짖은 장면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김소전이 동료들에게 얼마나 인정받는 선수인지 알게 해주었다.

야구 선수 김소전이 야구를 얼마나 진지하게 바라보는지, 다른 데 눈길 한번 안 주고, 야구에만 몰입하는지에 관한 내레이션을 SBC 신입 이루다 아나운서가 인터뷰 때와는 다르게 차분하고 따뜻한 감정을 실어 펼쳐놓는다.

훈훈하고 따뜻하다 못해 절로 야구애가 불타오르려던 순간,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이 차갑게 변한다.

선수의 개인 성적, 체력적 부담 등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몸을 불살랐던 선수에게 구단은 시장가에 전혀 미치지 않는 금액으로 계약을 한다. 야구 말고 다른 건 잘 모르는 김소전이 도장을 찍자 여기저기서 달려드는 하이에나. 그 하이에나 중에 치명적인 놈도 있었다.

불우한 가정사로 아버지의 빚을 떠맡아 이겨내야 하는 김소전. 얼마 되지도 않는 연봉에서 아버지 빚을 갚기 위해 매달 돈이 빠져나간다.

하늘이 감복한 걸까. 돈을 받기 위해 김소전의 경기를 관전하던 채권자마저도 김소전의 야구에 관한 열정에 빠져들어 개인적으로 홍삼을 보내주는 열성 팬이 되어 버렸다.

어느새 팬들의 사랑을 가득 받는 선수가 된 김소전은 2027시즌 팀을 홀로 이끌면서 우승시키고는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것도 모자라 남들보다 한 달 늦게 시즌을 끝낸 몸을 이끌고 U-24 국가 대표팀 주장으로서 전문가들이 30년은 이길 수 없다던 숙적 일본을 꺾고 우승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하지만 팀에서도 국가 대표팀에서도 헌신적인 선수를 보는 구단의 눈은 채권자만도 못하다. 랩터스 구단은 철저히 실리에 따라 선수를 이용하려고만 한다.

만3년 차 이하의 선수는 연봉 조정 신청조차 못 하는 걸 악용해 리그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선수에게 비슷한 성적을 거둔 다른 선수의 1/4도 안 되는 연봉을 제시한다.

영상의 마지막. 다음 시즌 연봉이 기대되겠다는 아나운서의 물음에 밝게 웃으며 선수가 대답한다.

“제 가슴에 자랑스러운 팀이 박혀 있습니다. 유니폼을 입고 뛸 때는 돈을 보고 뛰지 않습니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의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선수의 마지막 인터뷰를 내레이터가 KBO 규정과 근시안적인 구단의 시야에 안타까움을 내비치며 끝맺는다.

한차례 폭풍이 몰아쳤던 야구 커뮤니티 전체를 셧다운 시켜버리는 대형 태풍. 한때 SBC 방송국 서버마저 위태위태하게 한 방송이 나간 후 랩터스 구단 사무실은 전 직원 비상 소집이 발령된다.

“정정보도 신청은요?”

“수용 못 하겠답니다.”

“스포츠국 김 국장 만났어요? 국장 뭐라고 해요? 미쳤대요?”

“신입이 사고 친 거라고 조심시키겠답니다.”

“그게 말이야! 당장 정정보도 내보내요! 아니다. 내가 이따 방송국 들어갑니다. 사장 일정 확인하세요.”

우승하고 성과급만 생각하며 느긋하게 지내야 할 랩터스 프런트가 겨울 동안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며 힘든 시간을 보낸다.

“저 인터뷰는 언제 만든 거래요? 김소전은 연락 안 되고, 노경준은 뭐라고 해요?”

“일본에서 결승전 한 날 이루다 아나운서하고 단독 인터뷰했답니다. 그런 게 조금 이상한 게 인터뷰했던 것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데요. 인터뷰는 이루다 아나운서 자기 소개처럼 했다는데 다르게 나왔답니다.”

“노경준, 언론과 차단시켜요.”

홍보팀에서 하는 하나 마나 한 소리에 선수에게 인터뷰 금지를 시킨 단장이 스카우트팀을 지목한다.

“FA 협상은요?”

“일단 중단됐습니다. 에이전트들이 지금 저희와 만나는 거 부담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정한영 쪽은 이번 방송에 대해서 구단의 확실한 대응이 있어야 다음 만남이 가능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일하는 게 하나도 마음에 안 드는 단장이 불타오르는 속을 숨기며 화살을 운영팀으로 돌린다.

“내부 FA들은?”

단장과 같이 분노 게이지를 끝까지 채운 운영팀 여홍지 팀장이 기계적인 목소리로 상황을 보고한다.

“다들 입을 맞췄는지 같은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김소전 계약하는 거 보고 결정하겠답니다.”

단장의 속이 뒤틀리는 게 다들 사람들도 느껴진다. 입술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채널 136번 립스틱은 다 사라진 지 오래고 이에 괴롭힘당한 입술이 립스틱보다 더 쨍한 붉은색으로 물든다.

회의실의 시선이 매혹적인 붉은 입술에 빠져둘 때 생각을 정리한 단장이 간결하게 지시 사항을 내린다.

“별도 지시 있을 때까지 외부 FA 협상 홀딩합니다. 내부 FA도 최초 금액 다시 한번 통보하고 기다리세요. 그리고 재계약 대상자들은 빠르게 통보하고 계약서 가져오세요. 거부하는 선수들 전원 연봉 조정 신청 넣고 조정 준비합니다. 마지막으로 연봉 계약 없이 스프링 캠프 없습니다. 명확히 하세요.”

이것 말고도 지시해야 할 사항이 산더미지만 가장 큰 연봉 협상에 관한 가이드를 제시하고는 단장이 회의실을 빠져나간다.

호랑이가 사라진 회의실, 팀의 NO. 2, 사석에서 단장과 언니 동생 하는 운영팀장이 나서 자잘한 사항들에 대해 조율을 시작했다.

* * *

잠실 상권이야 일 년 내내 장사가 잘되긴 하지만, 카페는 여름이 겨울보다 장사가 잘된다. 특히 여름에 아이스 음료 500원씩 더 받는 게 꿀이다. 그럼에도 잠실에서 가장 장사가 잘된다는 카페 사장님이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권리금을 알아보고 다닌다.

돈보다도 중요한 건강이 자꾸 악화되어 어쩔 수 없다. 바로 당장은 아니지만 여기서 더 못 버티면 언제라도 떠날 수 있게 준비를 하기 위해 발품을 판다.

목도 좋고 인지도도 좋아 주변보다 꽤나 높은 권리금을 받을 수 있지만, 막상 팔려니 아쉬운 건 사실. 시장 조사를 마친 사장이 무거운 마음을 안고 가게로 돌아온다.

사장의 손때가 묻은 집기들을 하나하나 닦으면서 처음 카페를 열었을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세상에서 가장 정성스러운 커피를 손님에게 대접하겠다는 그때의 마음가짐이 떠오른다.

그러자 다시 한번 힘내서 열심히 장사해 보겠다는 생각이 들고 매장 내에 있는 손님들이 모두 다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한다.

갑자기 솟아오르는 뜨거운 열정. 커피 외길을 달려온 그때의 그 열정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며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긴다.

어쩐지 오늘 로스팅한 커피 향이 더욱 고소하다. 이 고소함을 손님께 그대로 전해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 문이 열리고 새 손님이 들어온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바닐라 시럽 넣어주세요. 시럽은 쿠폰이요.”

중간중간 구멍 나고 신발 자국 있는 쿠폰 두 개를 합쳐서 내는 진상 손님을 보고 이성의 끈이 끊기려고 하지만 화내면 안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 억지로 웃으며 주문을 받는다. 그리고는 권리금을 손해 보더라도 가게를 넘기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 * *

“박현민이 데려와.”

“나랑도 통화 안 된다니까. 김소전 잘 있다는 톡만 가끔 와. 그게 다야. 나도 몰라.”

오는 길에 단골 커피숍 쿠폰을 주워 기분이 좋았던 남자가 만나자마자 다른 남자를 찾는 여자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다.

“진짜 이렇게 할 거야? 당장 내년 FA도 못 잡게 생겼다고!”

“이런, 그럼 곤란한데. 단장이 일을 그렇게 못해서야 곤란해.”

생각을 하지 않고 말부터 나간 대가는 혹독했다.

“아, 그렇군요. 단장이 일을 못 해서 사태가 이렇게 된 거군요. 알겠습니다. 조치하죠.”

어린 것이 차라리 반말을 찍찍 내뱉을 때가 좋았다. 얼굴에 핏기라고는 하나 없는 표정으로 살이 에일 듯한 말을 던지는 여자를 보며 남자가 두려움에 떤다.

“아, 아니. 조 단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무슨 말을 그렇게까지 해. 얘기해 봐.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

남자가 먼저 숙이고 들어오자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요구 사항을 말한다.

“박현민이 끌고 오든지, 김소전 계약서에 도장 받아와요. 아니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니까.”

여자가 뭔갈 하겠다는 말에 두려웠지만, 지금까지 해온 거짓말이 있기에 선뜻 응하지 못하는 남자.

“나도 진짜 현민이 연락 안 돼. 그리고 2억에는 도장 못 찍는다잖아.”

“이루다, 이 여우 같은 게 사람들한테 2억이라고 세뇌를 시켜놨어. 2억8천이라고, 2억8천!”

얼음을 씹어 부수며 2억8천을 외치는 여자를 보며 등에 한기가 서린 남자가 몸부림을 치면서 저항을 해본다.

“2억이고 2억8천이고, 2억 대에는 못하겠대. 내가 에이전트도 아닌데 나한테 해봐야 할 수 있는 게 없어.”

남자의 변명을 들은 척도 안 하는 여자가 남자의 심장을 찌르고 들어온다.

“난 얘기했어요. 도장을 찍어오든 박현민이를 내 앞에 끌고 오던 결정하세요. 그전까지 김소전 스프링 캠프도 없고, FA 계약도 없어요. 나 수틀리면 나이 먹은 내부 FA도 죄다 풀어버릴 거니까 각오해요.”

여자가 무서운 말을 남기고 떠나자 남자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무심코 핸드폰을 열어 습관처럼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 야구 파크에 접속을 한다.

그리고 본 무서운 글.

[오피셜―김소전 열애설]

아무리 비시즌이라 혈중야구 농도가 낮아져서 미쳐 있다고는 하지만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본 남자의 호흡이 가빠진다.

하도 어이가 없어 눌러 본 게시글. 거기에 스포츠 전일 신문으로의 링크만 덩그러니 적혀있고 그 링크를 따라가자 믿을 수 없는 기사가 떠올랐다.

[랩터스 김소전, SBC 신인 아나운서 이루다 핑크빛 만남]

야구판에서 이름 앞에 ‘꽃’ 자가 붙었을 땐 무슨 상황인지 다들 아는데. 랩터스 ‘꽃’소전과 남자가 어려서부터 업어 키운 경국지색 루다가 사귄다는 소식에 광분한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자후를 외친다.

남자의 사자후와 함께 주변의 시선이 쏟아지고 카운터에 멍하게 있던 카페 사장이 급하게 신경안정제를 입에 한 움큼 털어 넣고는 아직은 자신의 소중한 영업장을 지키기 위해 힘든 발걸음을 뗀다.

* * *

“여홍지!”

- 너 말이 짧다?

“이게 뭐야? 뭐 하는 짓이야? 당장 안 돌려놔!”

- SBC에서 어른한테 말 예쁘게 하는 건 안 알려줬어? 기대도 안 했지만, 생각보다 더 별로네.

“야!”

- 소리치지 마. 어디서 어린 게 까불어?

전화를 두고 두 여우가 침묵의 신경전을 치열하게 펼쳐진다.

“나한테 왜 그래요?”

아무래도 한 살이라도 나이 어린 SBC 아나운서가 먼저 침묵을 깨고 공격한다.

- 뭘?

“기사 내려요.”

- 그럼 김소전 인터뷰 기사부터 내리든가.

“그걸 왜 내려요! 내 건 사실이고 당신은 거짓말이잖아!”

어린 여우의 공격에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언니 여우가 말을 받아친다.

- 그럼 서로 할 말 없겠네. 그만하자.

“진짜 이럴 거예요? 랩터스에서 소전이 노예로 부리는 거 사실이잖아요! 사과는 못 할망정 이렇게 치사하게 굴 거냐고요!”

- 사과? 지금 사과를 받아야 할 게 누군데? 너 구단에 허락 맡고 김소전 인터뷰했어? 한밤중에 숙소에 있는 선수 꼬셔서 밤새 괴롭혀도 돼? 네가 착한 소전이 망치고 있는 거야. 알아?

언니 여우의 괴변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동생 여우가 발끈한다.

“지금 누구한테 그런 소리를 해!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애 살살 꼬셔서 가지고 노는 게 누군데! 내가 그 꼴을 그냥 볼 것 같아?”

- 맞네. 사귀는 거 맞네. 기사 잘 썼네. 전일 신문 강 기자한테 기레기라고 한 거 취소해야겠네. 참 언론인이야.

“무슨 헛소리야! 사귀긴 누가 사귀어! 이게 지금 누구 앞길을 막으려고! 자꾸 그렇게 나올 거야!”

전화 밖으로 울려 퍼지는 어린 여우의 울부짖음을 가볍게 흘려들은 언니 여우가 다시 한번 도발을 한다.

“- 이 사귀는 거 아니면 김소전 데리고 나와. 나와서 TV 앞에서 인터뷰 한번 해. 그러면 되잖아. 둘이 같이 나와서 눈 보고 아니라고 하면 내가 믿는 척해 줄게.

“아니라고! 자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성을 잃고 발악하는 어린 여우가 소리를 지르다 문뜩 악랄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진짜 기사 안 내려?”

- 김소전 데려와. 그러면 내려줄게.

“안 데려오면?”

- 그럼 김소전 스프링 캠프 못 가고 이루다가 김소전 내년 시즌 날려 먹은 게 되는 거지.

“결국 내가 XXX이다, 이거네?”

- 설마. 이루다가 그렇게 XX이겠어?

예쁜 여우 간의 험한 설전이 이어지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어린 여우가 선전포고를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언니. 나 싫어하죠? 지금까지는 야구판에 XXX이 여홍지였지만 이제 진짜 이 구역의 XXX이 누군지 내가 보여줄게요. 기대해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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