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03화 (103/204)
  • 103화. 필살기

    시즌 내내 갈궈놓은 탓에 경준이는 내 사인을 보고 바로 의심의 여지 없이 바로 움직인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수비 사인을 처음 본 코너 외야수들은 뭐 하는 짓인지 몰라 멀뚱멀뚱 먼 산만 바라본다. 사인을 보고 전진 수비를 내려오던 경준이가 움직이지 않는 외야수들에게 소리를 쳐서 좌우도 수비 위치를 당긴다.

    경준이의 외침에도 이해가 안 돼 쭈뼛거리는 외야수들에게 내가 다시 한번 내려오라고 소리를 쳤다. 그제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려오는 선수들… 야구하기 힘들다….

    - 무사 주자 2루. 대한민국의 외야수들 전진 수비를 펼치고 있습니다.

    - 한 점도 안 주겠다는 거죠. 기인환 감독 여기서 점수를 뺏기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어요.

    외야가 당겨지는 걸 보면서 1루와 3루에 선상 수비를 하라고 지시를 하고 2루수에게 베이스는 포기하고 우중간을 막는 수비를 할 것을 지시했다.

    - 대한민국 시프트, 독특합니다. 라인을 지키면서 삼유 간을 크게 열어줍니다.

    - 극단적이네요. 장타는 없다고 확신을 가지고 무조건 짧게 막겠다는 것 같은데 그러기엔 유격수가 책임져야 할 공간이 크거든요. 좌타자인 4번 타자 유키치 선수를 의식하고 하는 것 같은데. 무리수 같아요.

    우완 사이드암이 좌타자에 약한 건 성경에 쓰여 있다. 심지어 그 타자가 팀의 4번 타자인 데다가 1루가 비어 있으면 볼넷으로 거르라고 아브라함이 얘기했었다고 십계명 뒷판에 적혀 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타자를 거르려는 배터리에게 한국어로 소리쳤다.

    “해정아, 바깥쪽 높게 세게 던져봐. 나머지는 형이 책임질게.”

    셋 포지션에 들어갔던 투수가 발을 풀고 나를 본다. 그리고는 삼유 간에 광활한 빈칸을 보며 내게 되묻는다.

    “형, 미쳤어요?”

    내가 미쳤다기엔 감독이 미쳤지. 나보고 맘대로 하라길래 나도 내 멋대로 해보는 거다. 안타는 하나 쳤지만, 오늘 저 4번, 확실히 컨디션 별로거든.

    “여기서 주자 채우면 더 힘들어. 나 믿어봐.”

    전혀 믿음을 가지지 않는 투수. 그래, 네가 정상이지.

    하지만 내 감이 내 촉이 말하고 있다. 얘가 좌타자라 4번이지, 타격만 보면 5번이 더 잘 친다. 채울 거면 5번을 채워야지 얘는 아니다.

    - 무사 주자 2루. 2구 볼. 많이 벗어납니다.

    - 볼 두 개죠. 1루가 비었거든요. 1루를 채우고 병살이라든지 선행 주자를 잡아내는 게 정석이에요.

    “해정아. 공 좋아. 좋으니까 넣어봐!”

    여전히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투수가 믿음이 부족한 만큼 애매하게 공을 던진다.

    “스트라이크!”

    - 박해정 이번엔 집어넣었습니다.

    - 빠졌다고 봤는데 주심이 잡아주네요. 그래도 이럴 필요 없거든요. 뺄 거면 확실하게 빼줘야 해요.

    봐라. 이 믿음이 부족한 녀석아. 네가 거부하고 싶어도 야구의 신이 공을 존 안으로 끌어가지 않냐. 나를 믿어라~

    - 파울. 파울입니다.

    - 위험했어요. 지금 반대 투구가 나왔거든요. 포수는 바깥쪽을 원했는데 공은 몸쪽으로 붙었어요. 박해정 선수 생각을 명확히 가지고 던져야 합니다.

    지금 타자가 준비 안 했으니 망정이지 진짜 위험했다. 저 타자한테 몸쪽은 쥐약이다. 바깥쪽 높게. 그쪽에 던져서야 해.

    “해정아. 굿! 이번엔 바깥쪽이다.”

    - 어느새 볼 카운트가 투투로 바꿨습니다. 마운드에는 박해정, 타석에는 유키치.

    -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던져줘야 해요.

    밖으로 밖으로 흘러나가는 거 건드리기만 하면 된다. 바깥쪽… 바깥쪽으로 강하게 때려 박히는 공. 그거면 된다.

    - 밀어친 타구. 유격수가 잡아냅니다. 2루 주자! 2루 주자! 걸렸습니다.

    - 런다운플레이죠. 공 빠진다고 본 것 같아요.

    - 유격수, 3루수에게 연결. 3루수 2루에게 연결. 2루수 주자 3루로 몰고 갑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4번 타자가 바깥쪽 공을 때릴 때 배트가 퍼져나오는 기분이 들어 계속 바깥을 던지라고 주문했다.

    맞은 타구가 선상을 따라 장타가 되거나 강한 타구가 1-2루를 뚫어버리는 게 무섭지, 삼유 간의 힘없는 타구는 무조건 막을 수 있다. 막아낼 것이다.

    나에게 와라. 나에게 와라. 주문을 외우고 또 외우자 기적적으로 공이 밀려온다. 코스는 좋지만, 힘은 없는 타구. 오른쪽으로 한 스텝을 밟고는 왼손을 쭉 뻗어본다.

    손끝에서 들려오는 묵직함. 한쪽 무릎을 굽히면서 몸을 일으키는데 3루로 달리던 주자가 내 눈앞에 잠시 멈춘다.

    네 이놈, 공 보지도 않고 냅다 뛰었구나.

    내 눈앞에서 멈췄다가 어정쩡하게 3루를 향하는 주자를 보며 공을 3루로 던진다. 공을 잡은 3루수가 주자를 향해 달려간다. 정석적인 런다운. 나는 비어 있는 3루를 커버하기 위해 3루수 뒤로 들어간다.

    3루수가 쫓아오자 등을 돌리고 2루를 향해 달리는 주자. 이걸 본 3루수 인준이가 냅다 2루로 공을 던진다.

    야! 이 멍청아, 더 몰고 가야지 뭐 하냐?

    아니나 다를까 2루수가 공을 잡자마자 다시 방향을 트는 주자. 2루까지 거리보다 3루까지 거리가 훨씬 가깝다.

    - 주자 머뭇거립니다. 2루수 박민기 주자를 쫓습니다.

    - 박민기 3루로 공 던져야 해요. 지금 주자가 시간을 끌고 있거든요. 결정을 빨리 해야 해요.

    얘들아 너희 뭐 하냐?

    - 주자 다시 3루로 달립니다. 박민기 같이 달립니다.

    “민기야 던져! 던지라고!”

    더 뒀다가는 다 살겠다 싶어 내가 먼저 주자에게 달려든다. 이놈들 잔머리 굴리는 게 다 보인다. 빨리 2루를 점유해서 타자 주자가 2루 가는 건 막아야 한다.

    - 김소전도 주자에 달려들고 있습니다.

    - 박민기, 공 빨리 줘야 해요. 늦어요. 늦어.

    “민기야! 던지라고!”

    주자를 팔만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까지 다가갔을 때 2루로부터 공이 날아든다. 공안 날아오는 척 글러브를 내리고 있다가 공이 주자를 통과하는 순간 왼팔을 들어 공을 낚아챈다.

    그제서야 깜짝 놀라 몸을 뒤틀어 2루로 향하는 주자. 지금부턴 달리기 시합이다.

    - 김소전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공을 잡고 주자에게 달려갑니다.

    - 2루까지 거리가 좀 있어요. 빨리 쫓아가서 타자 주자가 올라오는 걸 막아줘야 해요.

    1미터 뒤에서 출발한 나와 몸을 돌려서 출발하는 상대 팀 주자. 이건 무조건 내가 이기는 싸움이다. 왜냐하면 못 잡을 것 같으면 2루로 공을 던지면 되거든. 2루에… 공을… 던지면… 안 되네……. 이 멍청한 XX들아!

    - 2루로 몰고 가는 김소전.

    - 박해정, 2루 베이스 백업 들어가야 해요. 2루가 비었어요.

    - 아, 2루에 아무도 없습니다.

    - 1루에 있던 타자 주자도 2루로 달리죠. 이거 복잡해졌어요.

    미치겠다. 잘잘못은 나중에 따지고 우선 너부터 거기 서봐라!

    - 김소전, 몸을 날려 주자를 태그합니다. 2루 주자 아웃. 김소전 재빨리 일어나 1루 송구! 1루에서 아웃! 타자 주자마저 아웃됩니다.

    - 지금 일본의 본헤드 플레이에요. 순식간에 양 팀의 실수가 겹쳐서 이런 상황이 나왔어요.

    - 일본의 실수와 대한민국 김소전의 투혼으로 아웃 카운트 두 개가 올라갑니다.

    1루에서 타자가 죽는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내야에 있는 머저리들을 노려본다.

    내가 노려보는데도 자기들이 뭘 잘못했는지 인지조차 못 하는 멍청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고 있다.

    머리가 아프다. 내가 이놈들 가르쳐야 하는 코치가 아님에 안도를 해본다.

    - 기인환 감독, 공을 받아들고 올라옵니다.

    - 맞아 나가는 게 안 된다고 판단한 거죠. 타이밍이 조금 아쉽긴 합니다만 주자 없는 상황에서 시작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어떤 XX가 기인환 감독이 명장이라고 그랬어. 바꿀 거면 좌타자 상대하기 전에 바꾸든가, 좌타자 간신히 잡아놓고 우타자 상대로 사이드암 투수를 내리는 건 무슨 헛짓거리야.

    랩터스 김민중 감독님 보고 생각도 없이 기계적으로 경기 운영한다고 깠었는데 반성한다. 기계적으로 운영만 해도 선녀였어…….

    결국 6회에 바꾼 투수가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면서 0:0 승부를 지켜낸다. 위기 뒤에 기회라고 했으니까 이번에 점수 내면 돼지, 뭐…….

    그리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스코어 0:0 9회 초 대한민국의 정규 이닝 마지막 공격이 시작됩니다.

    - 우리 팀 타선 좋아요. 9회에 점수 내고 승부치기는 안 봤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랩터스 암흑기 때 기인환 감독이 불펜 쪼개기 신공으로 성적을 끌어올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그 꼴을 실제로 보니 경이롭다.

    아웃 카운트 별로 투수가 바뀌는 것도 모자라 볼 카운트 간에도 투수를 교체해 가면서 구질구질하게 일본의 타선을 막아냈다.

    약팀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필살기. 이제 타자들이 점수만 내면 된다.

    - 대한민국의 마지막 공격 시작은 1번 타자 박민기부터 시작됩니다.

    - 앞선 세 타석에서 결과는 안 좋았지만 그래도 점점 타이밍이 맞아가고 있어요

    - 박민기, 이제 칠 때가 됐습니다.

    타석에 들어간 우리 1번 타자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평소와 다르게 배팅 박스 앞쪽으로 자리를 잡는 박민기. 너… 그런 거 안 돼…….

    - 번트 댔습니다. 잘 댔습니다. 포수와 투수 사이에 떨어진 공. 투수 잡아서 1루에서 아웃. 아웃입니다.

    - 코스는 정말 좋았거든요. 무네오 투수, 군더더기 없는 번트 수비를 보여줬어요. 시도는 좋았는데 아쉽습니다.

    저 멍청이……. 기습 번트라는 게 상대가 모르게 해야지, 그렇게 티 나게 하면… 에효…….

    - 삼진. 정인규 삼진을 당하고 돌아옵니다.

    - 타이밍을 전혀 못 맞추고 있어요. 4번 김소전에게 까지만 연결되면 될 것도 같은데 쉽지 않네요.

    자, 잠깐. 뭔가 조금 이상한데. 마지막 공 포크볼 아니었나? 느낌이 다른데?

    - 3번 주상훈, 하나 해줄 때가 됐습니다.

    - 오늘 멀티히트를 치고 있는 김소전 앞에 주자가 한 번도 없었거든요. 김소전 앞에 주자가 있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

    9회 초 2아웃. 3번 타자지만 어제오늘 대삽을 들고 있는 상훈이. 어제오늘뿐만 아니라 대표팀 오고 나서부터 성적이라고는 약에 쓰려 해도 없는 상훈이.

    그랬던 상훈이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 맞았나요? 맞았습니다.

    - 옷깃에 살짝 스친 거 같죠? 주상훈 선수는 괜찮아 보여요. 확실하네요. 1루까지 뛰어가네요.

    저, 저런 추접스러운 놈. 공에 맞긴 맞았냐? 스쳤다고 하기에도 뭐 하지 않냐?

    타자를 공짜로 1루까지 내보낸 투수의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자기가 드래곤도 아닌데 입에서 불을 내뿜는다.

    - 드디어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김소전입니다.

    - 오늘 센터 방향으로 안타 두 개를 쳐냈어요. 컨디션이 좋다는 얘기거든요.

    타석에 들어가 투수를 바라보니 아직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게 느껴진다. 기껏 사구 하나 나온 거로 멘탈이 무너지다니, 넌 오래 못 간다.

    - 대한민국의 덕아웃이 바쁘네요. 쉴 새 없이 사인이 나오고 있습니다.

    -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짧은 안타에 홈까지 들어올 수 있게 런 앤 히트 같은 작전이 나올 때거든요.

    뭐, 뭐지? 3루 코치님 모션은 엄청 화려한데, 사인이 없는데?

    하긴 투 아웃에 자동 스타트인데 무슨 작전을 거냐. 그럼 내가 해결을 해야지.

    - 볼. 초구 볼을 골라내는 김소전입니다.

    - 집중력이 살아 있어요. 이렇게 하면 되거든요. 급한 거 없어요. 천천히 좋은 공 골라서 치면 돼요.

    재수가 좋았다. 존 안에서 존 안으로 떨어지는 포크볼이 조금 더 떨어지면서 볼 카운트 싸움을 유리하게 끌어가게 됐고 그거보다 중요한 비밀이 밝혀졌다.

    - 김소전! 퍼 올립니다.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 펜스를 넘어갑니다.

    일본의 투수. 우리나라에선 보크 받아도 할 말 없을 정도의 이중 동작을 한다. 의도적으로 하는 투구 중의 멈춤 동작. 멈추는 것도 문젠데 멈춰 있는 시간이 제 맘대로다.

    그래도 투 아웃에 자동 스타트가 걸리니 멈춤을 길게 가져가지 못하고 멈추는 흉내만 내고 던지는 공. 그렇게 저 까다로운 투수의 타이밍은 해결을 했고 다음은 구종을 확인할 차례다.

    중간에 끊어지는 것도 모자라 축발로 버티며 살짝 주저앉았다 일어나는 투구 폼. 언뜻 봐선 똑같지만, 포크볼을 던질 때는 지금처럼 조금 더 주저앉는다.

    타이밍도 구종도 해결했으니 남은 건… 냅다 후려갈기면 된다.

    아름답게 날아가는 공. 그런데 이거 좀… 별로다. 오늘 하루종일 돔에서 야구 하느라 즐거웠는데 아무리 봐도 이건 좀 별론데…….

    이런 타이밍에 홈런이면 까만 하늘을 가르면 날아가야지, 이 밋밋한 느낌은 뭐야……. 구단주 형한테 돔구장 사달라고 하려 했던 거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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