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02화 (102/204)

102화. 복수전

아무리 24세 이하 대표팀의 한일전이라지만 한일전에 패한 선수단의 사기가 크게 꺾였다. 참담한 표정으로 락커에 들어온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조용히 락커 문이 열리고 감독님이 들어온다. 굳은 얼굴로 들어온 감독님이 처져 있는 선수단을 보고는 얼굴에 미소를 띠운다.

“왜들 그래? 하늘이 무너졌어? 괜찮아, 괜찮아.”

감독이 들어오자 움직임이 생긴 선수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이 풀리지 않는 선수들에게 감독이 웃는 얼굴로 다독인다.

“쟤들 우리보다 연봉 10배는 많이 받는 애들이야. 질 수 있어. 괜찮아. 지는 건 괜찮다고.”

감독의 말에 몇몇 선수, 그중에 오늘 선발로 나와 1회부터 털려버린 투수는 고개를 파묻어버린다.

“지고 억울해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지금처럼 졌다고 꼬리까지 마는 건 안 되지 않겠어? 쟤들이 너희 연봉에 10배를 받든 100배를 받든 너희처럼 3끼 먹고 야구로 돈 버는 애들인데 실력이 부족하면 이길 때까지 부딪쳐봐야 하지 않겠어?”

여우 같은 감독. 웃는 얼굴로 후드려 패네.

“감독이 운영을 잘못해서 진 경기다. 오늘 시합은 여기까지다. 다 잊고 돌아가서 푹 자고 대만 잡고 다시 일본이랑 붙어서 이기면 된다. 가서 쉬어야 내일 대만 잡는다.”

웃으면서 그러지 마요. 목소리에 계속 쇠 끓는 소리 올라오는데 괜찮은 척하지 마요.

나도 머리가 복잡한데 감독이 나를 가리킨다.

“주장, 선수들 딴생각하지 말게 잘 추슬러서 쉬게 하고 주장도 일찍 자고. 내일 보자.”

끝까지 착한 척하며 웃으며 락커를 빠져나가는 감독. 잘생기면 잘생긴 거지, 멋있는 것까지 하려고 그래.

감독이 나가고 스멀스멀 짐을 정리하며 퇴근을 하려는 선수들. 내가 주장을 맡은 팀인데 이놈들을 이대로 돌려보낼 수 없다.

그리고 분명히 감독님도 딴생각하지 말게 잘 추스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난 주장으로서 내 역할을 하겠다.

“경준아, 뭐 해?”

“형, 가서 쉬려고요. 감독님도 가서 쉬고 내일 준비 잘하라고 하시잖아요.”

“지상아? 너 괜찮냐? 감독님이 괜찮다고 하니까 괜찮냐?”

쓸데없이 이럴 때만 몸이 날래서 짐 정리 마치고 일어서려는 경준이를 주저앉히고 오늘의 패전 투수가 된 선발에게 화살을 돌렸다.

“어차피 전 1차전 선발 던지고 이번 대회 끝이에요. 안 괜찮아도 어쩌겠어요.”

다른 생에선 자신감 넘치는 공으로 나를 쥐잡듯이 잡아내던 투수가 전의를 상실하고 자기 혼자 대회를 마무리하려 한다.

이런 멍청한 놈은 주장이 다독여줘야지. 축 처진 어깨로 나를 바보는 패전투수에게 다가가 눈을 맞춘다.

“그렇지. 감독님이 괜찮다고 해도 안 괜찮지? 그래 너도 알잖아. 안 괜찮은 거야. 저 XX들이 연봉이 10배가 많건 100배가 만 건 지면 억울하고 안 괜찮다고”

나에게 맞춘 눈으로 뭔 소리 하냐고 묻는 패전투수. 못 알아들으니 정확히 알려준다.

“너 오늘 공 50개도 못 던졌어. 이틀 쉬면 3이닝은 못 던지겠냐? 아니지, 일본이랑 결승하면 올해 공 잡을 없어. 이대로 질 거야?”

내 말에 반응해 분함이 올라오는 패전 투수. 리그에서도 패가 더 많긴 했지만, 시작부터 이렇게 털려본 적이 없던 투수가 스르륵 일어난다.

“형. 저 아까 아이싱을 잘못한 거 같아서 보강 좀 하다 가겠습니다.”

하나는 됐고 다음으로 어. 그렇지 저… 잉여XX.

“상훈아. 쟤들 공 빠르지? 거기다 갑자기 떨어지니까 못 치겠지?”

갑자기 나한테 총을 맞은 상훈이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난다.

“내 생각엔 내일도 그리고 결승도 주상훈이 대한민국의 3번을 칠 거 같은데, 안 그래?”

“네. 그래요.”

이… 이 XX.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자리가 자기 자리인 줄 알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내 생각에는 일본애들 또 만나봐야 대한민국의 3번은 포크볼 던지면 또 삼진 잡을 것 같단 말이야.”

“형…….”

“그러면 또 내 앞에서 주자가 없겠지. 그리고 나면 홈런도 못 치는 4번이 똑딱질이나 하고 있을 거야. 내가 아무리 쳐도 2 베이스 히트가 한계인데… 그렇네! 내가 문제네.”

“형… 그러지 마요.”

걸렸다. 선수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안 괜찮다고! 너희같이 1등만 하고 유소년부터 태극마크 달아 본 놈들은 잘난 놈들한테 져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나보다 잘하는 놈들 한번 이겨보겠다고 아등바등 운동한 나는 안 괜찮다고!”

내 고함에 선수들의 자세에 각이 잡힌다.

“내가 죽어라 해서 손에 잡은 태극마크다. 이게 있는 동안은 내가 우리나라 최고고 이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절대 져서는 안 된단 말이다.”

이쯤 하면 되지 않았을까…….

“한 번 진 것도 안 괜찮은데 두 번은 참을 수가 없다. 난 지금부터 특타하러 갈 거니까 너희는 알아서 해. 오늘 나보다 못한 놈들은 알아서 따라오고.”

짐을 챙겨서 지하 훈련장으로 내려가자 선수단이 죄다 쫓아와서 나머지 공부를 시작한다.

그래. 지는 날은 미친 듯이 땀 흘리고 기절하듯 자야 머리에 남지 않아. 나도 야구를 미친 듯이 해보고 나서야 알았어.

* * *

- 9:0 대한민국이 대만을 9:0으로 이기고 예선 전적 1승 1패를 기록합니다.

- 우리 선수들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경기력을 보여주었어요. 대만도 굉장히 까다로운 선수들이 나왔는데 근성 있는 플레이로 압도를 하네요.

- 그렇습니다. 우리 대표님 내일 경기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일본과의 결승이 유력합니다. 다시 만나 오늘 같은 경기를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확실히 대표팀 뽑힌 선수들 잘하긴 잘하는 선수들이다. 하룻밤 훈련한다고 달라져 봐야 얼마나 달라지겠냐만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몸을 던지는 적극성이 달라졌다.

대만의 조금은 어설픈 장면 장면마다 악착같이 달려들면서 한 베이스를 더 가면서 주자를 쌓는다.

4번 타자 앞에 자연스럽게 쌓인 주자. 랩터스에서 온 타점에 목마른 4번 타자가 기회가 생길 때마다 타점을 쪽쪽 뽑아낸다.

봐봐, 이기니까 기분이 좋잖아.

승리 후 들어온 락커는 어제의 락커와 공기가 다르다. 노래가 흐르지 않는데도 어깨가 들썩이는 공간. 이런 게 행복이다.

“잘했다, 내 새끼들. 잘했어. 오늘은 이겼으니까 두 시간만 더 하자!”

뭐,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이게 아닌가?

“미, 미안…. 두 시간은 좀 그렇지? 세 시간 하자~”

흥겨운 공간에 터져 나오는 한숨 소리. 내 옆에서 가장 큰 한숨 소리를 냈던 경준이가 선수들을 향해 말을 건넨다.

“봐. 내 말이 맞지? 지금 안 움직이면 우리 밤새 소전이 형한테 괴롭힘당할 수 있으니까 빨리빨리 움직입시다! 가자~”

“가자~”

“강고한테 이길 때까지 가즈아~”

뭐, 뭐야. 이 XX들. 일본에 이기랬더니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러나 피아식별을 못 하네. 이번 대회 잘해야 나중에 군 면제 걸린 대회 대표로 뽑히는 거야! 정신 차려!

* * *

- 2027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 대한민국과 일본이 결승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이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대한민국이 역사적인 첫 우승에 도전합니다.

- 예선에서 일본에 8점 차 패배를 당했습니다만 대만을 상대로 9점 차 승리를 가져온 대표팀이거든요. 일본전과 대만전은 완전히 다른 팀이에요. 오늘 해볼 만합니다.

벌써 몇 번 왔다고 도쿄돔에 점점 편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온도 딱 맞는 돔이 경기하기 좋다. 확 트인 개방감은 좀 덜하지만 그래도 이 겨울에 야구를 한다는 게 어디야. 따뜻한 남쪽 나라도 아니고 돔에서 야구하고 싶다.

- 1회 초 대한민국의 선공으로 경기 시작됩니다.

- 우리 대표팀 1번 타자 박민기죠. 지난 경기에서 꽁꽁 묶였었거든요. 오늘은 공격의 실마리를 풀어줬으면 좋겠어요.

타석에 나가는 박민기의 기합이 대단하다. 못 치면 맞고라도 나가겠다는 기운을 풀풀 풍기며 타석에 들어가는 타자. 좀 과한데…….

- 초구부터 과감한 스윙. 일본의 도시미치 선수의 공이 더 빠릅니다.

- 과감성을 보여주는 건 좋은데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거든요. 이래선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요.

3일을 죽어라 훈련했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1차전에 나왔던 투수만 공이 좋은 줄 알았더니 이놈은 각도까지 좋다. 저걸 어쩌지…….

- 힘없이 친 타구, 1루로 굴러갑니다. 1루 땅볼 아웃. 박민기 아쉬운 타구가 나왔습니다.

- 마지막 공은 슬라이더로 보이거든요. 각이 좋다 보니까 박민기 선수가 엉덩이가 빠지면서 팔로만 툭 가져다 댔어요. 이래선 좋은 타구 안 나오죠

볼품 사나운 타구를 만들어 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덕아웃으로 들어오는 1번 타자.

저 모지리……. 쫓아다니지 말고 삼진을 당하더라도 돌리라니까 그걸 못해…….

- 삼자범퇴. 1회 초 대한민국의 공격이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 1차전도 그랬지만 결승전의 도시미치 선수도 공이 너무 좋아요. 주상훈 선수가 타이밍을 억지로 잡아냈는데도 구위에 밀렸어요. 선발을 언제 끌어내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되겠어요

모지리, 모지리들……. 안되면 공이라도 오래 보라니까 그걸 초구부터 건드려. 공이 저렇게 좋은데 공개 수라도 늘려야지…….

- 1회 말 일본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는 박해정! KKK로 일본 타자들을 돌려세웁니다!

- 옆구리 투수 박해정의 각도가 독특하거든요. 일본도 변칙적인 투수들이 많지만 박해정도 만만치 않아요. 적응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미쳤네. 원래도 구위는 좋았던 박해정이 오늘 긁힌다. 마지막에 공 무브먼트가 미쳤다. 이러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 0:0의 팽팽한 균형이 유지되는 가운데 6회 말 대한민국의 마운드 박해정이 다시 오릅니다.

- 5회까지 84개를 던지면서 다섯 타자를 출루시켰지만 무실점이에요. 한 수 위의 기량을 가진 일본을 상대로 엄청난 호투를 해주고 있어요.

한 이닝, 한 이닝 지나갈 때마다 위에서 누르는 공기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양 팀 선수들 모두 신경이 당겨질 대로 당겨져서 자그마한 충격에도 끊어질 듯하다. 이 압박감에 먼저 굴복하는 팀이 지는 거다.

- 시게노부 빗맞은 타구. 1루수 변성호! 변성호 놓칩니다. 1루 에러! 6회 선두타자 시게노부 1루수 실책으로 진루에 성공합니다.

- 여기서 이런 수비가 나오네요. 공이 좀 튀긴 했지만 잡아줬어야지요. 공이 그렇게 빠르지도 않았거든요. 글러브를 못 가져다 대면 몸으로라도 막았어야 했는데 아쉬운 수비가 나왔어요

뭐지? 갑자기 지금 분위기상 이러면 안 되는데…….

- 1구. 주자 뜁니다. 4번 유키치의 타석에서 2루 도루를 감행하는 시게노부. 2루에서 넉넉하게 살아 들어갑니다.

- 선수들 집중해야 해요. 일본의 단 한 번의 플레이에 대한민국의 약점이 다 드러났어요. 투수는 주자를 못 묶고, 2루수는 도루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베이스 들어가지도 못했어요.

- 지금은 유격수가 베이스 커버했습니다.

- 우타자에 우리 팀 2루 베이스 커버는 2루수가 하기로 약속돼있거든요. 2루수가 못 들어오니까 백업으로 들어오던 김소전이 급하게 커버에 들어왔어요. 이러면 안 됩니다.

- 그래도 주장 김소전 선수가 백업을 잘했습니다.

- 아니죠. 지금 대표팀 수비 조율을 해줘야 할 선수가 김소전인데 전혀 선수들 조율을 못 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 자체가 나와서는 안 되는 상황이에요

이러면 안 된다. 선발 투수가 팔 갈아 가면서 만들어온 승부인데 팀이 우왕좌왕하다 점수 내주면 끝이다. 나 혼자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다른 선수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 감독이 마운드에 오릅니다.

- 교첸가요? 불펜에 김기훈도 있고 김명수도 있어요.

- 내야가 다 마운드에 모입니다. 프로에서는 흔치 않은 장면입니다.

- 감독이 투수 교체보다는 수비에 대해 주문을 하려는 것 같네요.

감독이 올라온다. 아직 공에 힘은 있어 보이지만 박해정은 결승에 할 만큼 하기도 했다. 고생했다.

투수 중 누가 올라오려나 불펜을 바라보는데 마운드로 오르는 감독이 수비수들을 부른다. 주자 스코어링 포지션 가니까 전진 수비라도 시키려나?

“김소전!”

“네?”

나? 갑자기 나를 왜 불러?

“너 뭐 해 인마!”

나? 나 왜? 나 열심히 하고 있는데.

“너 국가 대표지! 올림픽에서 일본에 이긴 국가 대표 아니야!”

“맞습니다.”

“네가 여기서 야구 가장 잘하는 선수라고! 저 일본 선수들은 들어가 보지도 못한 일본 국가 대표를 이기고 금메달을 딴 선수가 너라고! 내 말 무슨 말인 줄 알아!”

내가? 내가 여기서 야구를 제일 잘한다고? 내가?

“얘들은 자기 것만 하기도 벅차잖아! 그래도 하려고 하잖아! 그러면 주장이 중심을 잡고 끌고 가야 할 거 아니야! 너는 1인분 했다고 맘 편하게 보고만 있는 거야? 후배들은 나 몰라라 할 거냐고!”

감독의 호통에 선수들이 나를 바라본다. 새끼 새들같이 모여서 나만 바라보는 선수들. 이… 모지리들……. 내가 밥까지 떠 먹여줬어야 했구나……. 안 해봐서 몰랐다.

“다시 해보겠습니다.”

“할 수 있다. 이번 이닝 막으면 우리가 이긴다. 알았지! 집중해서 막자.”

말 많은 해설자 출신 감독이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보였지만 주심이 올라와 쫓아내는 바람에 투수한테는 한마디도 못 하고 마운드를 내려간다.

다시 시작되는 수비. 각자의 자리에 들어가 있는 수비수들이 나만 바라본다.

나도 덕아웃을 바라보지만 수비 코치가 수비 사인을 내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좀 심하잖아. 진짜? 내 맘대로 해? 그래도 돼?

칫.

머리 위로 손가락 세 개를 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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