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01화 (101/204)
  • 101화. 완패

    * * *

    고척에서 착실한 훈련을 마친 U-24 대표팀이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대회를 치르기 위해 도쿄돔으로 이동했다.

    이름처럼 프로 야구 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참가하는 대회. 자그마치 3개국의 유망주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어차피 우승은 일본인 대회. 일본의 U-24 대표팀과 정예 한국 대표팀이 붙어도 승패를 장담하기 힘든 판에 한국은 국가 대표 경험 없는 유망주를 위주로 팀을 꾸리면서 미래를 준비했다.

    각 팀의 1, 2년 차 중에서 성장 가능성만 보고 뽑아 올린 대표팀 선수들. 그중에 유일한 3년 차이자 국가 대표 출신인 랩터스의 유격수가 마법 같은 리더십으로 팀을 하나로 만들어서 준우승에 도전한다.

    - 도쿄돔에서 열리는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 대한민국의 첫 경기, 일본과 치러집니다.

    - 첫 경기부터 한일전이죠. 한 수 위의 기량을 가지고 있는 일본이지만 한일전은 질 수 없는 경기예요.

    - 대표팀의 기인환 감독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승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대한민국 선수단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내 인생 이렇게 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 진짜 이 악물고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올려서 팀 동료들을 도왔다.

    “형, 쉬어요. 형, 야구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쉬세요.”

    “형.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형… 제발 쉬어요.”

    “형~ 우리가 너무 미안하잖아요.”

    저, 저놈들이 나만 보면 쉬라고 한다. 나 진짜 X꼬에 얼음찜질 좀 하니까 괜찮아졌는데 저것들은 계속 날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저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멀쩡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교필아. 너 투수 공 받아주느라고 배팅 훈련 모자라지? 이리와. 내가 몇 개 던져줄게.”

    “…….”

    “인준아. 도루는 투수 뒤꿈치를 보는 거야. 잘 봐봐, 견제할 때 축발이 뜨지? 저러면 무조건 돌아와야지.”

    “…….”

    “윤찬아. 아까 민기한테 밀려서 커브 던지다 말았지? 형이 좀 받아줄게.”

    하루 종일 훈련장 구석구석을 싸돌아다니면서 선수들을 돕고 또 도왔다. 그리고 나서야 시작하는 개인 훈련. 다른 선수들 훈련이 다 끝난 후 그들보다 더 많이 열심히 훈련하고 또 한다.

    오로지 내 건재함을 알리기 위해서. 내가 멀쩡하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처음엔 내 말을 믿지 않던 대표팀 선수들도 일본행 비행기를 탈 때쯤부터는 내 진심을 알아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본에 도착했을 때 어떤 XX가 먼저 시작했는지 내 이름 대신 위인들이나 붙는다는 호를 붙여서 부르기 시작한다.

    “강고형~ 간식 드시래요~”

    “야! 하지 말라고!”

    “형. 안 하고 싶은데 너무 찰떡이에요. 입에 짝짝 붙어요! 강고형~”

    강고… 강철의 고환…….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고 불펜포수 하면서까지 내 멀쩡함을 보여주는데도 저… 위아래 없는 싸가지들은 날 놀리는 걸 쉬지 않는다.

    마음 같아선 확 다 패버리고 싶은데 경준이 한 대 때리고 징계받은 게 마음에 남아서 때리지도 못하고 속으로 삭인다. 절대 저놈들이 나보다 쌈 잘할 거 같아서는 아니다.

    - 1회 초 대한민국의 공격부터 시작되는 경기. 1번 타자 워호스의 박민기부터 시작됩니다.

    - 야구 팬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이름입니다만 2군에서 착실하게 1번 타자로 준비하는 선수예요.

    - 이번 시즌 최창현 선수는 부상 중에 잠시 1군에 올라왔습니다만 출장 기록은 없습니다.

    - 조금 아쉽죠. 좋은 선수가 팬들 앞에서 경기를 보여줬어야 하는데 아쉬워요. 정교한 타격과 넓은 수비 범위를 보여주는 선수이니만큼 다음 시즌엔 팬들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다음 시즌 한자리를 예고하는 박민기의 타격 보시겠습니다.

    어색하다. 시즌 내내 1번에서 가장 먼저 경기에 나갔는데 1번 자리를 다른 선수에게 내어주고 덕아웃에서 구경하는 게 낯설다.

    그러다 괜히 헛웃음이 난다. 내가 언제부터 주전이었다고. 정신 차리고 경기에 집중하자.

    - 박민기 스윙! 강하게 돌려보지만 공 하고 거리가 있습니다.

    - 이시모 투수 공 좋네요. 박민기 선수 무턱대고 들어갈 공이 아니에요.

    투수 놈 공 좋다. 이제 2년 차라고 하는데 KBO 오면 바로 씹어먹을 공이다. 조금 더 보면서 느껴봐야 할 것 같은데…….

    - 삼진. 박민기 삼진으로 돌아옵니다.

    - 삼진 당하는 건 어쩔 수 없는데 저런 모습은 좋지 않네요. 스윙을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아야지 저런 어정쩡한 자세는 좋지 않아요.

    민기, 저놈. 나한테는 그렇게 막 대하더니 투수 구위에 눌렸다. 저 일본 놈. 체구도 크지 않은데 저런 공은 어떻게 던지는 거야?

    - 연속 삼진……. 두 타자 연속 삼진을 당하고 마는 대한민국입니다.

    - 이시모……. 좌타자에 약점이 있다고 알려진 선수거든요. 약점이 있는 건 확실해 보이는데 우리 선수들이 직구조차 대응이 안 되네요. 기인환 감독. 생각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2번 타자 인규가 그래도 컨택은 되는 선순데 멀뚱거리다 돌아왔다. 시작부터 제구되는 150이 타자의 약점을 찌르고 들어오니 감히 배트를 낼 생각도 못 한다.

    아웃 카운트 두 개만의 타자들 얼굴에 공포가 서린다. 이거… 곤란하다.

    - 대한민국의 3번 타자, 폭스의 주상훈입니다.

    3번 상훈이……. 기대가 안 된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실연의 아픔으로 웨이트도 잘 못 하는 상훈이. 얼마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3대 500도 못 치고 근육 찢어진다고 사기를 치면서 울고 마는 울보 상훈이…….

    여자 때문에 운동 못 하는 놈이나 내가 얘 컨디션 안 좋다고 얘기하는데도 3번에 집어넣는 감독이나……. 내가 할 일이 진짜 많다.

    - 주상훈, 다시 한번 커트! 조금씩 타이밍을 맞춰갑니다.

    - 배트 날카롭게 나오네요. 오늘 컨디션 굉장히 좋아 보입니다. 시즌 때보다 더 좋아 보여요.

    - 원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5구째 맞겠습니다.

    - 투수가 계속 직구를 고집하고 있어요. 타자도 직구만 머릿속에 넣고 이겨 내야 해요. 주상훈이 하나 치면서 우리 타자들이 일본의 공을 이겨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해요.

    대기 타석에 나가 앞 타자의 타격에 맞춰서 타이밍을 조절한다. 덕아웃에서도 구위가 좋아 보였는데 그라운드 올라와서 보니까 더 대단하다. 저렇게 찍어 누르면 상훈이가 이겨 내기 쉽지 않겠는데…….

    - 파울! 다시 한번 나오는 파울. 주상훈 끈질긴 모습을 보여줍니다.

    - 이시모 선수의 공이 좋기는 하지만 직구만 던지는데 우리 선수들이 쳐낼 수 있거든요. 더군다나 한일전이에요. 선수들, 없던 힘도 생겨날 겁니다.

    상훈이의 머리에 직구만 가득해 보인다. 이미 짧게 잡은 배트를 더 짧게 잡고 배터박스 가장 뒤에 들어가 있는 타자. 포수와 사인을 나눈 투수가 입을 크게 벌리면서 호흡을 가져간다.

    - 주상훈 헛스윙 삼진. 대한민국의 1회 초 공격, 삼진 세 개로 마무리됩니다.

    - 지금 포크볼이었어요. 오늘 경기 처음 던진 브레이킹볼인데 쉽지 않겠어요. 직구도 구위가 좋은데 저 포크볼 떨어지는 각도는 대단하네요. 저 선수가 2년 차인 게 믿기지 않아요

    1회에 타석에 못 나가본 거 정말 오랜만이다. 타자가 삼진을 당하는 걸 보고는 다시 덕아웃으로 들어가 글러브를 챙겨서 나온다.

    수비수들이 몰려나올 때야 삼진 당한 아쉬움을 곱씹으며 터덜터덜 덕아웃으로 들어오는 대한민국의 3번 지명타자. 이놈 저러는 거 보기 싫네…….

    수비 위치로 가는 길을 조금 멀리 돌아서 가기로 한다. 힘없이 들어오는 삼진 당한 멍청이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야구장에선 뛰어다니는 거다. 자꾸 여자 친구가 머리에 맴도나 본데, 오늘 경기 지면 그 생각 싹 날려줄 만큼 굴려줄 테니까 기대해.”

    팀에서 주장이 자주 써먹는 협박을 다른 팀 후배한테 써먹어 봤더니 이게 먹힌다. 삼진 먹고 멍해졌던 눈빛이 돌아온다.

    “형… 설마 무게 더 늘리는 건 아니죠?”

    “아니지. 대신 횟수를 두 배로 늘려줄게.”

    “형… 살려주세요.”

    쯧쯧……. 저러니 반응 속도가 떨어지고 직구에 밀리지. 저놈 새 여자 친구를 소개시켜 주든지 해야지. 안쓰럽네.

    - 1회 말 수비에 들어가는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의 선발 투수 울브스의 표지상입니다.

    - 이번 시즌 중반에 콜업돼서 선발로 8경기를 나왔어요. 2승 3패. 평균 자책점 4.34 42이닝을 던졌어요. 마운드에서 자기 공을 뿌릴 줄 아는 선수예요.

    표지상이다. 보고만 있어도 시원시원하게 공을 던지는, 5년 뒤 울브스 에이스. 구속도 좋고 구위도 좋고 자신감도 좋은데 그날그날 영점 잡히는 거에 따라 성적이 갈리는 제구레기.

    얘 나중에 울브스 투수 코치 바뀐 다음에나 제구 잡힐 텐데……. 아니지. 제구가 잡히는 게 아니고 구위가 더 좋아져서 한가운데 때려 박는 거지. 그냥 오늘은 영점 좀 맞아라…….

    - 초구 스트라이크. 표지상 바깥쪽 꽉 찬 스트라이크를 던지며 경기를 시작합니다.

    - 좋은 공이에요. 오늘 우리나라 선수들 컨디션이 좋아 보이네요. 집중력을 가지고 경기해 줬으면 좋겠어요.

    확실히 존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매력 있는 공이다. 일본 선수들도 영상으로 많이 봤겠지만 저런 공은 직접 보면 위압감이 다르다.

    좋아! 계속 이렇게 던져라!

    - 볼. 볼이 연속으로 두 개가 들어갑니다.

    - 표지상 저럴 필요 없어요. 구위가 좋거든요. 너무 정교한 제구를 신경 쓰기보다 강하게 던져줘야 합니다.

    오늘 영점이 잡히는 날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어……. 그저 하나가 어쩌다 들어간 거였어.

    투수가 제구가 안 잡히면 타자도 공략하기 까다롭지만, 수비수도 자리 잡기가 어렵다. 특히나 나 정도 경륜 있는 내야수라면 경기 전 준비한 시프트 외에도 순간순간 포수의 사인을 보면서 한두 발 정도 움직이기도 하는데 던지는 족족 반대 투구면 그런 시도를 할 수가 없다.

    2볼 1스트라이크에서 하나 더 빠지면 답 안 나오는 포수가 덕아웃을 바라보고는 바깥쪽 높은 직구 사인을 낸다.

    덕아웃에서 나온 사인이겠지만 지금 선택할 만한 볼 배합이 나왔다. 좌타자 상대로 바깥쪽 높은 직구.

    어차피 되지도 않는 제구. 차라리 힘 있는 공을 높은 쪽에 던져서 타자의 배트를 이끌어 낸다. 몰려도 좋으니까 존 안에만 집어넣어라

    - 4구! 밀어친 타구! 3유 간! 유격수 잡아서 1루~ 1루에서 아웃! 1루에서 아웃되는 세네토미! 유격수 김소전의 멋진 수비가 나왔습니다!

    - 높았어요. 몸쪽 높았거든요. 세네토미 선수, 타이밍이 조금 늦으면서 밀렸어요. 빠진다고 봤는데 유격수가 잘 잡아냈네요.

    어떤 놈이 쟤가 우리나라 에이스라고 그랬어! 올라와서 공 4개를 던지는데 던지는 족족 반대 투구야! 인간적으로 고등학교팀도 아니고 국가 대표팀인데 포수가 요구하는 거 반은 던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 표지상. 한국의 수비 좋습니다. 수비수들을 믿고 좋은 경기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야, 이~ XXX야! 반대 투구 하지 말란다고 그따위로 던지면 어쩌냐!

    - 아, 큽니다.

    - 넘어갔어요.

    - 1회 말, 일본 가이슈 선수의 선제 홈런으로 앞서가는 일본입니다.

    - 공 자체는 좋은데 너무 몰렸어요. 아무리 좋은 공이라도 테크닉적으로 한국보다 우위에 있는 일본 선수들에게 저런 정직한 공은 안 돼요.

    제구가 안 된다고 한가운데 욱여넣은 공. 상대 타자도 처음 보는 자기 공을 지켜볼 거라고 생각했으면… 그건 그냥 KBO 수준에 맞는 짓이지.

    골든이글스의 2번 타자가 선제 홈런을 쏘아 올린 걸 시작으로 일본 선수들의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5년 뒤 울부스의 에이스가 피하지 않고 힘으로 맞붙었으나 끝도 없이 터져 나오는 장타에 1회를 채 버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 결국 표지상 마운드를 내려옵니다.

    - 안타깝네요. 표지상 오늘 구위는 좋았거든요. 공이 조금씩 몰리니까 맞아 나갔어요. 일본 선수들도 어린 선수들인데 격차가 느껴지네요.

    - 스코어 0:6. 하지만 어떤 이변이든 일어날 수 있는 한일전입니다. 우리 선수들,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 승리가 아니고 기인환 감독은 오늘 경기 마무리와 내일 대만과의 경기 생각을 해야 해요. 첫 경기 에이스 표지상을 내고도 이 정도로 벌어지면 선수들 동요할 수 있어요.

    우리 팀 에이스라고 불리는 선수가 아웃 카운트 2개 잡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리그 경기에서도 이러면 충격이 큰데 국가 대표 경기, 그것도 한일전에서 이렇게 털리면 답이 안 나온다.

    - 주상훈! 주상훈! 아… 아웃입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0:8. 대한민국, 최선을 다했으나 일본과의 승부 아쉬운 패배를 기록합니다.

    - 안타까운 경기지만 이게 현실이에요.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국가 대표가 우승을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우리 야구와 일본과의 격차가 이 정도 나는 거예요.

    - 하지만 끝이 아닙니다. 내일 대만과의 경기에서 이기면 하루 쉬고 일본과 다시 한번 겨룰 수 있습니다. 오늘 패배를 곱씹고 내일 대만과의 경기 준비를 잘해야 할 대한민국입니다.

    - 선수단은 준비를 잘해야겠지만 KBO는 정신 차려야 해요. 이번 대회 준비하면서 KBO의 지원이 부족하거든요. 불펜 포수가 없어서 주장 김소전 선수가 공 받다 다치고 그랬단 말이에요. 성적을 요구하기 전에 협회가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다음… 다음 타석이 난데……. 여자한테 미쳐서 정신 못 차리는 상훈이가 걸어만 나갔어도 다음 타석이 난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팀 완봉패라니……. 그것도 도쿄돔에서……. 이거 다 우리 애들이 나 놀리느라 바빠서 운동 설렁설렁해서 그런 거다.

    오늘 다 집합! 오늘 쓰레기 같은 안타만 두 개 친 나부터 특타할 테니 쓰레기만도 못 한 삼진 당한 너희들은 잠잘 생각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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