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00화 (100/204)
  • 100화. 원팀

    * * *

    랩터스 사무실이 거칠게 열리고 곱게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이 어깨를 들썩이며 들어온다.

    굉장히 화가 난 듯한 그러면서 어쩐지 조심스러워 보이는.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는 과격한 잡상인의 등장에 몇몇 직원이 막아보려 나섰다가 아는 얼굴임을 알고 인사를 시도한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들을 거칠게 무시하는 잡상인. 무시는 하지만 확 밀쳐내지도 못하고 수줍게 어깨를 접으며 막아서는 사람들을 피한다.

    거칠지만 조용한 발걸음으로 한달음에 단장실까지 도달한 잡상인이 똑똑 노크를 하고는 또다시 거칠게 문을 연다.

    “무슨 일이죠?”

    “단장님! 이래도 되는 겁니까!”

    모니터에 코를 박고 뭔가를 보던 랩터스의 단장이 벌컥 열린 문을 보고는 인상이 확 찡그려졌다 펴진다. 양복을 입었음에도 누군지 알아본 단장이 아는 척을 한다.

    “이수영 선수 오랜만이네요. 단장실을 박차고 들어오는 용기 정도면 방출하지 말고 더 둘 거 그랬어요.”

    항의하러 온 단장에게 선제공격을 당한 신입 사원이 휘청거린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놓칠 단장이 아니다.

    “취직했다며? 명함부터 줘야지? 좋은 회사는 아니어도 첫 직장인데?”

    연타를 맞은 신입 사원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단장이 손수 커피를 내려서 탁자에 내려놓는다.

    “앉아. 나랑 할 얘기 있어서 온 거잖아. 그래도 우리 팀 선수였는데 내가 커피는 한잔 내줘야지.”

    사장님한테 배운 ABC는 어디로 가고 머리가 하얘진 신입 사원. 단장의 명령에 반항도 못 하고 다소곳이 소파에 앉는다.

    “웃어. 내가 뭐 잡아먹기라도 해? 명함부터 좀 줘봐. 우리 팀 선수가 취직했다는데 축하라도 해줘야지.”

    한때는 랩터스에서 선수로 뛰었던 신입 사원이 전에 모시던 단장의 명령에 품에서 지갑을 꺼내 두 손으로 공손히 명함을 건넨다.

    길고 가느다란 손으로 우아하게 낚아채 단장이 명함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한다.

    “KBO 스카우팅 치프 매니저? 잠깐. 뒷장엔… 과장이네? 과장이 치프 매니저야? 여긴 사원 없어? 들어가면 과장부터 시작이야?”

    회사의 대외비를 마구마구 까발리는 상대에게 당황한 신입 사원이 또다시 허둥대기만 한다. 이 모습을 보는 단장이 딱해 살길을 열어준다.

    “좀 진정하고. 나 이수영 선수… 아니지, 이수영 과장 안 잡아먹는다니까. 커피 마시면서 숨 좀 쉬고. 그러다 얼굴 터지겠어.”

    어려서부터 말 잘 듣던 신입 사원은 단장이 시키는 대로 커피를 홀짝이고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자세를 바로 한다.

    “그래. 이러니까 멋있네. 보통은 유니폼이 더 멋있는데 넌 정장이 잘 어울리네. 멋있어졌어.”

    그제야 조금 여유를 찾은 신입 사원이 눈에 힘을 주고 단장을 똑바로 바라보려다 실패한다. 신입 사원 정도의 내공으로는 도저히 바라볼 수 없는 산이다.

    “자, 커피 다 마셨으면 본론을 얘기해야지.”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단장의 까딱거리는 손에 시선을 맞춘다. 얼굴을 바라보지 않으니 그래도 바늘 틈만큼 숨 쉴 공간이 생긴다.

    “구, 구단이 선수… 선수 관리를 어떻게 하는 겁니까!”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버벅대다 에라 모르겠다. 마지막엔 질러버리는 신입 사원. 패기 있게 소리를 쳤지만, 단장의 까딱거리는 손이 멈추는 걸 보고는 등에 식은땀을 흘린다.

    “은퇴하더니 목소리가 커졌어. 경기장에서 이렇게 소리 지를 줄 알았으면 내가 응원단에라도 넣어주는 건데.”

    조금 전까지 살짝 습기 있던 목소리에 물기가 싹 빠졌다. 숨이 막히는 듯한 건조함. 신입 사원의 정신이 혼미해져 간다.

    “용건만 간단히. 하고 싶은 얘기는?”

    다짜고짜 말하라고 명령하는 단장. 신입 사원이 눈에 맺히는 물기로 말라붙은 코를 녹이며 해야 하는 말을 해본다.

    “기, 김소전. HM… 코퍼레이션… 선수가 다… 다쳤…….”

    “뭐? 어쩌라고? 국가 대표 가서 다친 걸 나보고 책임지라고? 그 말 하려고?”

    반쯤은 우는 목소리로 얘기하는 불쌍한 중생을 봐주는 건지도 모르는 신입 사원이 코가 목으로 넘어가 켁켁 거리면 말을 잇지 못한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 사고뭉치가 포수 미트 쓰고 공 받다가 맞은 거 때문에 그러는 거 같은데. 괜찮으니까 오버하지 마.”

    무서워서 그런 건지, 소전이 때문에 감정이 복받쳐서 그런 건지 김소전의 에이전트가 매섭게 대든다.

    “괜찮다니요! 남자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아세요!”

    다시 한번 크게 소리를 높이는 신입 사원. 단장이 피식하고 비웃는다.

    “이런 패기로 공을 쳤어야지. 이런 패기만 있었어도 2년은 야구 더 했겠네.”

    자신을 공격하는 단장의 말에 또다시 쓰러질 뻔했지만 자기가 보호해야 할 선수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힘을 내본다.

    “단장님은 여자라 몰라요! 그게 그런 게 아닙니다!”

    여전히 올라간 입꼬리로 상대를 바라보는 단장

    “김소전이랑 통화 안 했어?”

    “경준이랑 했습니다! 지금 소전이가 통화할 정신이나 있습니까!”

    앞으로 확 다가와 신입 사원을 빤히 바라보는 단장. 그러더니 혀를 끌끌 찬다.

    “이런 걸 과장이라고. 이수영 선수. 아니, 이수영 과장. 김소전 생산 활동에 아무 문제 없으니까 지랄 그만하고 가지?”

    “갈 수 없습니다!”

    “야! 그 멍청한 놈 엉덩이에 공 맞고 쓰러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선수나 에이전트나 이렇게 멍청할 줄 알았으면 콱 거기나 맞아야 했는데.”

    진짜 뭔가를 터트릴 듯한 눈빛을 본 신입 사원의 간담이 서늘해진다. 안 그래도 단정했던 몸가짐이 더욱 단정해진다.

    “그게 끝? 선수 관리 잘하라는 게 끝? 그게 끝이면 가보고.”

    단장의 축객령.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신입 사원이 갈 생각을 안 한다.

    “왜? 더 할 말 있어?”

    속에 담은 말은 있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 신입 사원이 입술만 꼼지락거린다.

    “뭐야? 할 말 있으면 하고 아니면 나가.”

    여기까지 와서 할 말은 하고 가야겠기에 신입 사원이 용기를 내어 한마디 던진다.

    “소전이 연봉 얼마 주실 겁니까?”

    신입 사원의 당찬 발언에 미팅 내내 비웃는 얼굴을 하고 있던 단장의 표정이 싹 바뀐다.

    “뭐? 지금 뭐라고 했어?”

    “제가 김소전 대리인입니다. 연봉 제시해 주십시오.”

    애초부터 그다지 호의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확연히 적대감을 온몸으로 내뿜어내는 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앉는다.

    “사장 오라 그래.”

    “사장님 미국 가셨습니다.”

    “전화해.”

    “소전이 제 담당입니다.”

    말을 귓등으로 듣지 않는 단장이 앞에 있는 담당자를 벌레 보듯 보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 상대.

    전화를 거칠게 내려놓은 단장이 다시 벌레와 이야기할 마음을 갖는다.

    “얼마?”

    다짜고짜 앞뒤 잘라먹고, 얼마냐고 묻는 단장. 이때를 위해서 어젯밤 사장님과 백 번도 넘게 시뮬레이션을 했다.

    “선제요.”

    단장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며 주먹이 꽉 쥐어진다.

    더 이상 흘릴 땀도 없는 것 같은데 등짝이 다시 한번 축축해져만 간다.

    “지금 내가 상대해 주고 있잖아. 어디 FA도 아닌 게 나 하고 협상을 하려고 해.”

    “……”

    어젯밤 사장님과의 시뮬레이션. 백 번도 넘게 해보면서 결론을 얻어냈다.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요구액을 말하지 않는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네버! 말하지 않는다.

    “뭐야? 입을 닫기로 작정한 거야? 얘기해! 얼마를 원해?”

    “선제요.”

    “야! 장난해!”

    확실히 의사를 표명하고 있음에도 화를 내는 단장을 보면서 또다시 마음이 작아진다. 너무나 무서운 마음에 이 꼴 저 꼴 안 보자는 심정으로 눈을 감는 신입 사원. 그 모습을 본 단장이 순간 폭발한다.

    “뭐야? 이제 막가자는 거지? 박현민이 어딨어! 이 XX, 전화도 안 받고! 야, 박현민 데려와.”

    “사장님 미국 가셨습니다.”

    “이게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그래. 박현민이 우리 구단주랑 같이 출국하는데 그런 헛소리를 해! 빨리 박현민이 안 잡아 와!”

    “……”

    말을 안 하려고 안 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서 입을 떼지 못하는 신입 사원. 혼자서 길길이 날뛰던 단장이 포기하고 나지막이 금액을 입에 담는다.

    “이억오천.”

    나왔다. 지금이다.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단장의 연봉액을 들은 신입 사원이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며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야, 뭐야?”

    갑작스러운 기립에 놀란 단장이 신입 사원을 잡아보려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신입 사원이 동요도 없이 그대로 단장실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벙쪄 있던 단장이 당혹감과 쪽팔림이 동시에 밀려들며 단말마 비명을 지른다.

    당당한 표정으로 잘 움직이지도 않는 발을 질질 끌고 사무실을 나선 신입 사원도 복도 끝에 가서 탈진해 바닥에 주저앉는다.

    “세상에서 야구가 제일 쉬웠어요.”

    * * *

    “형, 괜찮아요?”

    “아, 아니죠?”

    “형… 트레이너 형이 시즌 끝나고 수술해야 한다고 하는데… 아니죠? 괜찮은 거죠?”

    “형… 제, 제가 공을 잘못 던져서… 죄송해요…….”

    투수 훈련하는데 놀러 갔다가 재수 없게 포수 마스크를 쓰고 원 바운드 블로킹에 실수하며 공에 맞았다. 그리고 그 공이… 영 좋지 않은데 맞았다.

    등줄기를 따라 몸 전체가 굳어지는 듯한 짜릿함. 정신이 멍해지고 세상이 끝나는 것만 같았다.

    너무 아파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는데 누군가 엉덩이를 미친 듯이 친다. 맞을 때마다 욕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오고 바닥에 몇 바퀴를 뒹구는지 모를 때쯤 어디선가 나타난 들것에 실려 마사지실로 끌려간다.

    상황이 얼마나 급한지 한달음에 달려온 의사 선생님이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바지를 쑥 내려버리고는 그 우락부락한 손을 쑥 집어넣는다. 기분이 더럽고 어쩐지 결혼을 못할 것만 같은… 그런 슬픈 기분이 들 때쯤…….

    “잠깐, 여기가 아닌데? 여기 아파?”

    “악! 그렇게 잡으면 아프잖아요!”

    “그래? 여기가 아닌데……. 그럼… 여기…….”

    “으악… 악…….”

    “여기네, 여기야. 잠깐…….”

    “으악… 악……. 뭐, 뭐야!”

    “맞아도 여길……. 괜찮아질 거야. 그런데 검사는 한번 해보자.”

    그리고 검사 결과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천만다행이다. 그래도 공이 잘 피해서 항문을 때렸다.”

    그게 다행인가요? 겁나 아팠는데?

    “검사해 봤는데 너 3기다.”

    3기… 3기라니…….

    “위험한가요?”

    “위험하지.”

    “어떡해야 합니까?”

    “수술하자.”

    “저 당장 다음 주에 일본 가서 경기해야 합니다.”

    대표팀 주치의 선생님이 고민에 빠진다.

    “한 2주 힘들겠구나. 참을 수 있겠어?”

    “지금까지도 참았는데요. 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랩터스 지정 병원에 차트 넘겨줄게. 치질이라는 게, 발견했을 때 고치면 쉽게 끝낼 수 있다. 너 늦었지만 늦은 게 아니야.”

    그렇게 바로 수술 날짜가 잡히고 간단한 처치 후 다음 날부터 정상 훈련에 참여했다.

    나야 크게 문제가 없는데 같이 훈련하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져 있었다.

    “형, 존경합니다. 그런 사고를 당하고 수술도 갔다 와서 받으신다면서요?”

    “형, 저 좀 봐주세요. 형한테 짐 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형, 제가 여자는 소개 못 시켜드리겠고 비혼 선언한 형들을 좀 알거든요. 거기 모임 소개해 드릴게요.”

    내가 한 일이라고는 공에 맞아 쓰러졌다 일어난 것뿐인데, 선수단의 투지가 불타오른다. 이런 식의 하나 됨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얘들아. 형 그런 거 아니야. 거기에 공 맞고 그러지 않았어.”

    “네, 형. 저희도 형 거기에 공 안 맞았다고 얘기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저희가 무덤까지 가져갈게요.”

    “아니라고!”

    “네, 아닙니다. 그럼요. 아닙니다.”

    “진짜 아니라고!”

    “다들 들었지? 소전이 형 얘기 나오면 다 아닌 거다!”

    지난번에 한 놈 때리고 6경기 정지였는데 여기 있는 애들 다 패버리면 몇 경기 정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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